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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Author: 정대천
“아이를 돌보는데 이렇게 마음을 두지 않아서야. 어찌하여 늘 남만 믿으려고 하는 것이냐? 만약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땐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명양 장공주는 태후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그 매서운 봉안을 마주하게 되었다. 눈매는 아름다웠으나 그 깊은 곳은 얼어붙은 칼날처럼 서늘했다. 그 기운에 짓눌린 장공주는 감히 한 마디도 보태지 못했다.

그녀는 이미 알아차렸다. 오늘의 일은 단순히 난처함을 조성하거나 장난스러운 꾸짖음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예왕은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어, 어릴 적부터 명양 장공주를 어머니처럼 의지했다. 오늘 그녀가 이 자리에 온 것도 예왕이 부탁한 대로 신 씨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태후는 누구도 이 일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분명히 선을 긋고 있었다. 명양 장공주는 그제야 여기에 음침한 꿍꿍이가 깔려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태후의 시선이 다시 신수빈에게 닿자 그녀의 목소리는 한결 더 차갑고 서늘해졌다.

“어찌 된 것이냐? 네가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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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97화

    정 씨는 눈을 붉힌 채 고개를 돌린 채로 그를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신수빈은 형수의 화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음을 알고, 오라버니에게 눈짓하며 말했다.“오라버니, 저와 형수님은 아침 일찍부터 달려왔고 아직 식사도 하지 못했으니, 먼저 하인들에게 아침을 준비하게 해 주세요.”신병문은 정 씨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신수빈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신수빈은 정 씨에게 먼저 꼬물이를 데리고 가도록 하고 자신은 뒤쪽의 작은 방으로 향했다.작은 방은 원래 고요했지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안에서 가볍게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신수빈은 냉소를 띤 채 걸음을 옮겼다.그 여자는 생김새가 나쁘지 않았지만, 말할 때 눈빛에는 풍진에 물든 듯한 기색이 스며 있었다.제대로 된 집안 출신 여자가 아니라는 게 한눈에 드러났다.방 안의 사람들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잠시 놀랐지만, 신수빈은 이미 이런 시선에 익숙했다.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보내는 그런 놀란 눈빛에도 그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은 이 여자를 누가 시켰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태후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일까?신수빈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위아래로 살폈다.경멸과 얕봄이 담긴 시선이 숨김없이 드러났다.그 여자는 경계심 어린 눈으로 신수빈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은 누구입니까?”신수빈은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이 여자가 자신을 몰라보는 것으로 보아, 우선 태후의 가능성은 제외할 수 있었다.만약 태후가 시킨 일이라면, 신병문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신수빈은 모호하게 웃으며 말했다.“대감께서 좋아하는 미녀가 어떤가 싶어 와봤더니 고작 이 정도일 줄이야. 설사 저 여자가 신가에 들어온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말을 마치자, 신수빈은 살짝 웃음을 내비치고 돌아섰다.그녀는 두 명의 유모를 불러 몇 가지를 물었다.알아보니, 그 여자는 어제부터 은근슬쩍 신가의 상황을 엿보고 있었다.집안이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96화

    이도현은 먼저 왕부로 돌아가 조복으로 갈아입었다.그렇게 왕부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한 남녀가 대문 앞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마차 소리에 놀란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고, 그제야 이도현은 청하가 낯선 남자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남자는 키가 컸고, 생김새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으나 청하를 안고 있는 모습이 무척 친밀해 보였다.청하는 왕야가 이렇게 일찍 돌아올 줄은 몰랐기에 급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이도현은 청하 곁의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그 사람이 누구냐? 너희 둘은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것이냐?”청하는 급히 말했다.“그는 소경이라 합니다. 저의… 약혼자예요. 어젯밤 봄옷을 전하러 갔다가 야금 시간을 어겨서 지금에야 돌아왔습니다.”이도현은 청하의 긴장된 표정을 보고 시선을 소경에게 돌렸다.“오? 어디 사람이냐? 항주 쪽이냐?”소경은 마차 앞에서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왕야께 아룁니다. 저는 한주 사람입니다.”“지금 장안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청운서원에서 학자들에게 권법과 무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이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돌아가거라.”청하가 들어가고 소경이 자리를 떠난 뒤, 이도현은 조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소경이 청하 앞에 서 있던 키 큰 모습을 떠올렸다.말투에는 한주 사투리가 전혀 섞이지 않았고, 오히려 표준 관화에 가까웠다.게다가 한주 쪽 남자들 중에는 이렇게 큰 체구를 가진 사람이 드물어, 외관상으로는 관외 사람처럼 보였다.이도현은 장풍을 불러 말했다.“청하 곁에 있는 소경이라는 사람을 조사하거라.”그러다 생각이 바뀐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아니다. 장녕에게 알려서 조사하게 하거라.”장풍은 멍하니 물었다.“왕야, 제가 맡은 일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이도현은 곁눈질로 그를 바라보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네가 감히 나에게 묻는 것이냐? 진하빈 일은 본왕이 아직 따지지도 않았다. 너는 작은 문파라고, 그저 쉽게 넘기면 된다고만 했지.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95화

    비가 갠 뒤처럼, 청하는 소경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마음속에는 수줍음과 설렘이 가득 번져 있었다.방금 전 그는 얼마나 부드럽고 세심하게 자신을 감싸주었던가.그가 자신의 기분과 몸 상태를 살피던 마음 씀씀이가 온전히 느껴지자, 청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달콤함이 가슴에 물밀 듯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고개를 들어 소경을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제가 회임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그러면 혼인하면 되지. 내가 너와 우리 아이를 모두 책임질게.”소경은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청하는 순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왜 그러는 거야? 나와 혼인해서 아이를 낳는 게 싫은 거야?”청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지금은 주인님이 필요합니다. 아직 떠날 수 없어요. 헌데 주인께서 우리 사정을 알고 계시고, 허락도 해 주셨으니, 주인님 일이 끝나면 그때 우리 혼인하면 되지 않을까요?”소경의 눈가에 미묘한 불쾌감이 스쳤다.그는 손을 들어 청하의 턱을 살짝 잡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우리 둘의 인연이 네 주인과의 인연보다 못한 거야?”청하는 잠시 멈칫하다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미소 지었다.“그건 비교할 수 없어요. 우리 둘은 남녀의 정이고, 평생 함께할 운명이잖아요. 주인님과 저는 주종 관계였지만, 주인님은 저를 자매처럼 보살펴 주셨어요. 어린 시절, 제 고향이 전란을 겪었을 때 부모님과 동생은 도망쳤고, 저는 매춘소로 팔려 갈 뻔했어요. 여인인 제가 생김새가 좋다는 이유만으로요. 헌데 그때 주인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그때 주인님도 나이가 어렸지만,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그냥 곁에 두어 주셨어요. 표면상으로는 하녀였지만, 밖의 양반 아가씨보다도 더 나은 삶을 살았어요. 주인님은 저의 또 다른 부모와도 같았어요.”청하가 감정을 담아 이야기하는 사이, 눈가에는 눈물이 살짝 맺혔다.소경은 눈을 반짝이며 입가에 미소를 띠고 그녀를 달랬다.“왜 또 울어. 그때 일은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94화

    이도현은 한 손을 들어 신수빈의 볼을 살짝 쓰다듬었다.그의 눈가에 번지는 부드러움이 단단한 이목구비를 감싸며 온화하게 흘러넘쳤다.“알겠다.”촛불이 흔들리며 빛과 그림자를 뒤섞었고, 은은한 불빛이 그의 옆모습 위로 흘러내렸다.신수빈은 그 깊은 눈동자에 매혹된 채 바라보다가, 심장이 살짝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그녀는 살짝 시선을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연우는 이미 고개를 기울인 채 그의 품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왕야,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에는 다시 성으로 돌아가야 하니, 연우와 유모는 내일 저와 형님과 함께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제가 그들을 왕부로 보낼게요.”이도현은 이 순간의 분위기를 읽고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녀가 불문 성지를 꺼린다는 걸 알기에 그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그리고 앞으로는 연우 말고, 내가 지어준 이름인 준우라고 부르거라.”그녀가 방을 나서자, 이도현은 품에 안긴 아이를 한 번 더 흘깃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듯 투덜거렸다.“인질 하나 잡았는데, 정작 어미는 못 낚을 줄이야.”이준우는 꿈속에서 무슨 좋은 일이라도 겪고 있는지 입가에 미소를 번뜨렸다.이도현은 한숨을 내쉬며 아이를 안고 침상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오후가 되자, 왕야는 유모와 이준우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 신수빈을 찾았다.청하는 심심함을 느끼던 차에 집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섰다.청운서원에서는 최근 며칠 동안 발생한 봉소야 사건 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청하는 서원 문 앞에서 소경을 기다리고 있다가, 곧이어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준비해 온 옷가지를 내밀었다.“이건 제가 요즘 만든 옷이에요. 곧 봄이니까 솜옷을 벗어야 하잖아요. 한 번 입어 보세요. 맞지 않으면 제가 다시 고쳐 드릴게요.”소경은 옷을 받아 들고 주변을 살핀 뒤, 사람 없는 것을 확인하고 청하의 얼굴에 재빨리 입을 맞췄다.“청하, 네가 이렇게 날 챙겨주니 지금 당장이라도 너와 혼인하고 싶어지는구나.”청하는 그가 이렇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93화

    세상 일은 돌고 도는 법이었다.신수빈은 연우가 이렇게까지 이도현에게 매달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하지만 오늘 밤, 그녀는 이도현과 함께 잠을 잘 수 없었다.이곳은 불문의 장소라 여러 가지 금기가 따랐기 때문이다.이도현은 이런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신수빈이 오늘 밤 그의 곁에 남는다면 분명 그가 선을 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게다가 형수도 아직 옆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신수빈은 아이를 바라본 뒤, 결국 애교를 부리듯 말했다.“그럼 오늘 밤은 왕야께서 수고해 주세요. 내일 제가 반드시 잘할게요.”이도현은 품에 안긴 아이를 보고 그녀가 남을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채자, 콧방귀를 뀌며 눈을 흘겼다.“본왕은 신경 쓰지 않는다.”신수빈은 아이를 피해 그의 곁으로 다가가 발끝을 살짝 들고 턱 위에 입을 맞췄다.“왕야께서 그리워하시는 마음은 알지만, 이곳은 불문 성지예요. 만약 부처님께서 이를 따지신다면 죄가 크지요.”그녀는 전생의 기억도 있는 만큼, 이런 점을 특히 중요하게 여겼다.하지만 이도현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약간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런 것들을 믿는 건 오직 너희 여인들뿐이다. 저런 향불 돈도 너희 같은 사람들이 모아 쓸모없는 승려들만 배불리는 것이지. 본왕이 손댈 틈이 나는 대로 전국의 사기 치는 사찰들을 한 번씩 정리할 것이다.”그는 이런 것들을 믿지 않았다.전에 장월이 고귀하다는 소문이나 각종 신령과 예언 이야기도 지겹게 들었다.백성들이 다니는 사찰 역시 무지한 민초들을 속여 공양을 받는 데 급급했고, 원래도 힘겨운 삶에 또 신과 부처를 섬기게 만들어 세뇌하는 것과 다름없었다.신수빈은 이도현의 말을 들으며 전생에 그가 불교를 억제하고 승려들을 환속시켜 농사를 짓게 했던 정책을 떠올렸다.수많은 사찰을 뒤엎고, 사대부의 선동으로 인해 전국 승려들과 원한을 쌓았던 일.그 때문에 민간에서 그에 대한 소문은 좋지 않았고, 백성과 권력자 사이에는 집행자만 존재했다.그 집행자들은 그의 업적을 말하지 않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92화

    신수빈은 아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는 듯 유모에게 물었다.“왜 이러는 것이냐?”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곁에서 돌보지 못했던 터라, 그녀는 유모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유모는 다소 망설이며 대답했다.“아마 잠이 오나 봅니다.”“헌데 왜 이렇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찾는 것이냐? 도대체 뭘 찾는 것이냐?”“아마 왕야를 찾는 것일 수도 있어요.”유모의 추측에 신수빈은 잠시 멈칫했다.“설마….”그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이도현은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니, 아이가 그를 그리워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마님,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전 왕부에 있을 때, 도련님께서는 이 시간쯤이면 늘 왕야와 함께 전원 서재에서 잠을 잤거든요. 아마 익숙한 사람을 찾고 있을 겁니다.”신수빈은 이번에 더 크게 놀랐다.“뭐라고? 왕야께서 밤마다 연우랑 같이 주무셨다고?”“네, 왕야께서 도련님을 데리고 주무신 지 십여 일째예요. 마님께서 호국사로 오시기 전날 밤부터였죠.”신수빈은 잠시 침묵했다.그날이 그들이 서란소축에서 만난 날이었음을 떠올리자, 마음속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켰다.그때 정 씨가 다가와 침상 옆에 앉아 아이를 안았다.그녀는 신수빈이 잠시 말없이 있는 모습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빈아, 왕야께서 잘 대해 주시니 믿고 맡겨도 될 것 같구나.”신수빈은 정 씨가 안고 있는 아이를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헌데, 저… 저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아요.”정 씨가 잘 듣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뭐라고?”신수빈은 눈을 들어 웃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그녀는 아이를 품에 안고 일어나, 살짝 등을 두드리며 천천히 걸었다.아이가 어깨 위에 기대자, 그녀는 어린 시절 유모가 불러 주던 자장가를 조용히 흥얼거렸다.*이도현은 손에 있던 주접을 모두 처리한 뒤, 옆방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본래 활달하고 잘 웃던 아이가 친어미를 보고 오히려 울다니.그가 일어나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244화

    신수빈은 이내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거두었지만, 눈물은 차마 삼킬 수 없어서 그대로 떨어져 가슴을 적셨다.이도현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드러난 턱선과 굳게 다문 입가에서 불쾌감이 숨김없이 읽혔다.“네 마음속에서 본왕은 그렇게 시비를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더냐?”신수빈은 강제로 그의 눈을 마주 보게 되었다. 아까부터 이어진 불안한 기색 그대로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이도현은 더는 태후와 얽힌 그 모든 일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남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마음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236화

    이도현이 더는 윤서원 저택으로 드나들지 않도록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설령 그녀를 찾고자 하더라도 가급적이면 밖에서 만나는 편이 좋았다. 그래야 들킬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다 방법이 있다.”신수빈은 그렇게 말하며 청하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 개자식은 귀가 유난히 밝았기에 혹시라도 들었다가는 또다시 기를 살려주기 위해 애를 먹어야 할 터였기 때문이다.신수빈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방으로 돌아왔다. 이도현은 그녀가 나오자 책에서 시선을 떼고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갑자기 눈썹을 치켜올렸다.“지난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237화

    이도현은 그렇게 몇 번이고 되뇌더니 가볍게 웃으며 읊조렸다.“아리따운 여인과 함께 걷고 있는데, 얼굴이 무궁화처럼 곱도다. 훨훨 날 듯 걷는 자태에 옥패 소리가 고요히 울리네. 아름다운 맹강이여 그 고운 수빈이 잊히지 않도다. 네 이름도 여기에서 따온 것이냐.”신수빈은 줄곧 그를 무인이라고 여겼다. 글 몇 편쯤 읽었을지는 몰라도 문인들만큼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진 시경의 구절까지 줄줄이 읊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그를 얕잡아보았다는 걸 깨달았다.“맞아요. 저와 오라버니의 이름은 모두 조부께서 지어주셨습니다.”“좋은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229화

    신수빈은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런데 곧 닥칠 것이라 여겼던 통증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벽 모퉁이에 기대어 있다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눈앞에 펼쳐진 것은 허리를 굽혀 작은 공간 하나를 떠받치고 선 이도현의 모습이 보였다.그 광경에 그녀는 잠시 멍해졌다.이도현은 고개를 숙여 창백한 얼굴로 움츠리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무언가에 맞은 줄로 여긴 것이다.“어디 다쳤느냐?”신수빈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젓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사방에는 흩어진 책들이 널려 있었고 그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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