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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Author: 정대천
금자는 주먹을 쥐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불과 몇 번의 동작만에 남자는 땅에 나가떨어졌고 청하는 재빨리 여자를 부축했다. 신수빈은 다가가 두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여인은 신수빈이 분명 어느 대가의 귀한 부인임을 알아차리고 두 아이를 데리고 얼른 무릎을 꿇어 절을 했다. 신수빈은 그녀들을 일으켜 세웠다.

"어찌하여 그자와 이혼하지 않으시고 이리도 그에게 휘둘리며 고생만 하십니까?"

여자는 목이 메어 답하였다.

"이혼이 말이 쉽지, 친정에서도 저를 받아주지 않을 터이고 무엇보다 이 두 아이를 차마 떼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신수빈은 잠시 말이 없었다. 양반가에는 양반가의 어려움이 있고, 백성에게는 백성의 고초가 있었다. 어떠한 여인이라도 마지막에는 자식에게 얽매이게 마련이었다.

"저자는 오늘 한낱 기생을 위해 그대를 능욕하고 당신 아이들까지 남들 앞에서 손가락질 받게 하였으니 앞으로 고개 들고 다니지도 못하게 될 겁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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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58화

    청하는 신수빈을 한 번 바라보더니,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마님, 오늘은 왕야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려 보시는 게 어떠세요? 오늘 밤만이라도… 왕야 마음에 마님 생각이 깊이 남게 해 두시면, 훗날에도 쉽게 잊지는 못하실 테니까요.”말을 마치자마자 청하의 얼굴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신수빈은 옅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그분이 원하는 건 내 얼굴뿐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여인은 얼마든지 많아. 그분이 정말 누군가를 마음에 두는 사람이었다면, 이십여 년 동안 후원을 비워 두었을 리가 없지.”신수빈은 이도현이 훗날 다른 여인을 들인다 해도 크게 마음 쓸 생각이 없었다. 그저 청하에게 윤연우를 잘 돌봐 달라고 당부한 뒤, 더 머물지 않고 돌아섰다.출발하기로 한 날은 정월 스무 날이었다.그날은 유난히 눈이 거세게 쏟아졌지만, 윤서원은 끝내 길을 나서겠다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하지만 막 관이 윤부를 나서려던 순간, 궁에서 내시가 칙명을 전하러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윤서원과 신수빈을 입궁시키라는 전갈이었다.윤서원의 안색이 미묘하게 어두워졌다. 혹시라도 일이 틀어질까 싶었던 그는 곧장 앞으로 나섰다. “내관, 아버지의 영구를 고향으로 모셔 가야 하니 시간을 늦출 수 없습니다. 부디 사정을 헤아려 주십시오.”내시는 그를 힐끗 내려다보더니 차갑게 되물었다.“네 아버지의 시간이 중하냐, 폐하의 명이 중하냐?”윤서원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결국 그는 더는 토를 달지 못하고 칙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입궁한 두 사람은 곧장 조회가 열리는 전각으로 이끌려 갔다. 아직 조회가 끝나지 않아, 백관들은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윤서원은 대전 한가운데 무릎을 꿇었다.신수빈은 호국부인으로서 초품 고명에 오른 몸이었기에, 군주 앞에서도 절을 면하고 대전 안에 그대로 서 있었다.백관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한꺼번에 쏠린 가운데, 윤서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폐하께서 신과 신의 부인을 이 자리에 부르신 연유를 여쭙고자 합니다.”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57화

    이도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굳게 다문 입매에도 미세하게 힘이 들어간 듯 보였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조직의 실체를 밝혀내거라. 문주가 누구인지도 반드시 알아내고! 그리고… 부인 쪽에 무비랑 암위를 몇 명 더 붙이거라.”“예.”지시를 마친 뒤에도 그는 한동안 손에 든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편지에는 윤서원이 집안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신수빈의 말이 또렷이 적혀 있었다.그의 긴 눈매가 깊게 가라앉았다. 무언가를 조용히 곱씹는 듯한 눈빛이었다.*이튿날 아침, 윤서원은 자신이 말한 대로 곧장 움직였다. 평양후의 세습 작위를 사양하겠다는 상소를 올리고, 상여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집안 사람들까지 모두 떠날 채비를 시켰다.이런 일은 조정이라 해도 함부로 막을 수 없었다.윤서원은 근정전 안에 서서, 상좌에 앉은 이도현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조용히 기다렸다.그가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이도현이 권세를 앞세워 남의 부인을 빼앗으려 드는 것.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가 두 사람을 간통한 남녀로 몰아가고, 결국 그 소문이 그들을 짓누르는 것이었다.긴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이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서원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깊고 어두운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도현과 눈이 마주쳤다.한참 뒤에야, 이도현이 입을 열었다.“허한다.”윤서원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신수빈이 그의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결국 그 정도에 불과했던 모양이다.아무리 아끼는 여자라 해도, 높은 권세 앞에서는 그저 버릴 수 있는 패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신, 왕야께 감사드립니다. 폐하께도 감사드립니다. 신은 부인과 돌아가는 길에도 밤낮으로 왕야와 폐하의 안녕을 빌겠습니다.”윤서원은 겉으로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비웃음을 감추지 못했다.‘그 사람’이 말한 대로였다.신수빈을 장안에서 데려가기만 하면, 이도현이 억지로 빼앗으려 들 경우 조정 안팎의 여론이 그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했다.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56화

    눈앞의 사내는 한 번 손을 쓴 것만으로도 금자와 은보를 밀어낼 수 있었다.윤 가에 저만한 실력을 지닌 호위는 없었다. 평양후에게 그런 힘이 있었을 리는 더더욱 없었다.그렇다면 대체 누구일까. 누가 윤서원을 살려 냈고, 저런 고수까지 붙여 그를 지키게 한 것일까.신수빈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그물이 자신을 중심으로 서서히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그물의 끝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윤서원이 더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그가 낮게 웃었다. 눈빛은 여전히 축축하고 음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지금 네 머릿속으로 어떻게 빠져나갈지 계산하고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그러니 나도 솔직히 말해 주지. 나는 너와 화이할 생각이 없다. 더더욱 너를 순순히 놓아줄 생각도 없고. 윤 가를 떠나 그 사내와 함께 도망쳐 살 생각이라면, 애초에 접어라. 정 데려가고 싶거든, 그자를 불러와 우리 집에서 직접 너를 빼앗아 가라 해. 설마 내가 너희 둘을 곱게 이어 주기라도 바란 건 아니겠지? 그런 꿈은 깨는 게 좋을 거야.”말을 마친 그는 더욱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내일이면 상소를 올려 평양후 세자의 작위를 내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너는 내 부인이니, 당연히 나를 따라야겠지. 어디 두고 보자. 저 높으신 섭정왕이 온 세상이 보는 앞에서 신하의 부인을 억지로 붙잡을 수 있을지.”그의 웃음소리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번져 갔다.한참을 웃던 윤서원은 신수빈의 얼굴에 당황이나 혼란이 떠오르길 기다리는 듯했다. 그러나 끝내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자, 그는 비틀린 냉소를 흘렸다.“부인, 고향에 돌아가면… 부군으로서 아주 잘 대해 주지. 앞으로 함께할 날이 길지 않겠나?”윤서원은 그대로 돌아섰다.그가 창란원을 완전히 떠난 뒤에도, 신수빈은 꽉 쥔 두 손을 풀지 못한 채 한참을 서 있었다.이윽고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곧장 붓을 들어 편지를 썼다.“왕야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55화

    요 며칠 사이 장안성은 평양후의 죽음으로 떠들썩했다.청루에서 여인들과 어울리다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소문만으로도 충분히 입방아에 오를 일이었는데, 반신불수로 누워 있던 세자 윤서원이 회복해 장례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까지 더해졌다.그 바람에 조문을 온 친지들과 옛 인연이 있던 이들까지 모두 윤서원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윤서원이 회복된 일은 신수빈에게도 전혀 예상 밖이었다.그 며칠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평양후의 빈소에 나가지 않았고, 윤서원 역시 그녀의 처소를 찾아오지 않았다.이도현은 이 일이 길어질수록 더 복잡해질 것을 염려했다.그래서 서 씨 때처럼 조칙을 내려, 신수빈을 윤 가와 갈라서게 하려 했다.훗날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간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 상대가 이도현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졌다.그 일은 반드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터였다.윤 가에서 잇달아 벌어진 사건, 가문의 몰락, 신수빈이 거듭 받은 봉작, 신 가에 더해진 영광까지 한데 엮이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 안에서 다른 뜻을 찾아내려 할 것이다.예로부터 사람들의 상상력은 결코 부족한 적이 없었다.찻집과 주루의 이야기꾼들은 한가할 때마다 권세가의 기묘한 소문을 끌어와 입맛대로 살을 붙이곤 했다.이도현이 그런 식으로 일을 밀어붙인다면, 스스로 제 명성을 깎아내리는 꼴이 될 수 있었다.섭정왕이 신하의 부인을 억지로 빼앗았다는 말, 신 씨가 윤 가를 해쳤다는 말, 그 밖의 온갖 억측과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질 것이 뻔했다.백성들의 마음속에서 더 이상 숭배와 경외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면, 그가 내리는 명령 역시 예전만 한 힘을 갖기 어려웠다.신수빈은 바로 그 점을 들어 그를 만류했다.이도현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오히려 누구보다 권세의 이치를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 이 정도를 모를 리 없었다.술에 취해 있던 순간에는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지라도, 술이 깨고 난 뒤에는 그 방법이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54화

    이도현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신수빈은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그녀의 얼굴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눈빛에는 억눌린 증오가 서늘하게 번뜩였다.잠시 입술을 굳게 다문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저께… 그 늙은 개가 윤서원이 깨어났다며 저를 불렀습니다. 제가 방심한 틈을 타 함정을 파 놓았더군요. 독한 미약을 써서 금자와 은보까지 모두 쓰러뜨리고… 저를 범해 윤 가의 아이를 낳게 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후작부의 대를 잇게 하려 한 것이지요. 다행히 그곳에 가기 전 미리 대비해 팔찌를 차고 있었고… 그자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독을 써서 죽였습니다.”그자가 그녀를 탐하려 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도현의 온몸이 그대로 굳어졌다.방 안의 공기마저 한순간에 얼어붙은 듯 숨 막히게 가라앉았다.신수빈은 처음으로 그의 몸에서 이토록 서늘하고 노골적인 살의를 느꼈다.이도현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려 했다.신수빈이 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왕야, 어디로 가십니까?”“본왕이 그자를 뼛가루도 남기지 않고 짓이겨 놓겠다!”신수빈은 낮게 웃으며,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는 그를 다시 끌어당겼다.“이미 벌은 받았잖아요. 윤 가 사람들은 체면과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고, 이익 앞에서는 눈이 멀어 버리는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이 죽어서 그런 꼴을 당하고, 그런 오명까지 뒤집어썼으니 저는 이미 충분히 속이 풀렸어요.”이도현은 돌아서서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그의 눈빛에는 짙은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그런 일을 당하고도, 왜 본왕에게 알리지 않았느냐.”“왕야께서 바쁘시기도 했고… 이미 끝난 일이었으니까요.”이도현은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깊게 가라앉아 있던 눈빛 끝에서, 결국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그는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빈아… 이제는 내게 시집오너라. 더는 너를 이런 늑대굴에 혼자 둘 수 없다.”이 깊은 내택 안에서는 곁에 붙어 있는 시녀들조차 언제든 계략에 휘말릴 수 있었다.암위는 사내라 그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53화

    청루 같은 곳에서 하룻밤 새 수많은 여인을 끼고 놀다가 제 명을 재촉한 일은, 개국 이래 처음이었다.둘째 대감과 셋째 대감 역시 낯뜨거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듯, 더는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집안에서는 곧바로 빈소를 차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윤씨 큰 마님의 장례를 치른 터라, 준비해야 할 것들 중 상당수는 이미 갖춰져 있었다.신수빈은 방 안에서 금자가 전해 주는 바깥 소란을 들으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때 바깥에서 시녀 하나가 들어와 아뢰었다.“마님, 큰 도련님을 보좌하는 무혁이 와서 내원 대패를 가져가겠다고 합니다. 마님께서는 병환 중이시니 이번 후작의 장례에는 참석하지 않으셔도 되고, 이곳에서 몸을 추스르시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장례는 큰 도련님께서 모두 맡으신답니다.”신수빈은 본래도 그 늙은 개의 장례에 나갈 생각이 없었다.삼베옷을 걸치고 곡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그녀는 은보에게 대패를 무혁에게 넘기게 하고, 장례 일은 윤수혁에게 맡겨 두었다.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윤수혁이 평양후를 이런 방식으로 ‘죽게’ 만들었다는 것은, 그를 향한 원망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 주는 일이었다.하지만 이렇게 복수했다 한들, 앞으로 윤수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그는 분명 평양후의 아들이었다. 부친의 평판은 그의 앞날은 물론, 혼사와 출세에까지 영향을 미칠 터였다.그는 이미 적지 않은 나이였다.그동안 떠돌며 지내다가, 이제 겨우 조정에 발을 들여 관직도 얻었고, 총애 또한 받고 있어서 장래가 밝았다.그리고 이제는 혼사도 생각해야 할 텐데…윤 가의 이런 평판은 결코 그에게 이로울 것이 없었다.이도현이 윤 가의 일을 들은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요 며칠 동안 그는 이방 사신들을 접견하고, 각지의 관리들과 변경의 장수들을 맞이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섣달그믐 밤에 헤어진 뒤로는 아직 신수빈을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그런데 이날 밤 연회 자리에서 뜻밖에도 윤 가의 소문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73화

    지난번 책봉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궁에 들어가 감사의 예를 올려야 했다.다음 날 이른 새벽, 궁중에서 이미 전갈이 내려왔다. 신수빈은 서둘러 일어나 청하의 시중을 받아 고명복을 단정히 입고 마차에 올라 궁궐로 향했다. 이번에는 청하를 데리고 가지 않고 은보만 동행시켰다. 궁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은보의 침착한 얼굴빛과 신중한 거동을 살펴보던 신수빈은 자신의 추측이 점점 더 확신으로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궁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가마가 준비되어 있었고 그녀는 그 위에 앉아 느릿느릿 영수궁을 향해 나아갔다.그 시각 바깥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76화

    “누가 어진 인재인지를 밝게 가려낼 능력이 있어야만 비로소 합당한 군주가 될 수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이 뜻을 아시겠습니까?”이도현은 열 살 남짓한 어린 황제를 바라보며 말할 때 자연스레 몸에 두른 차가운 기운을 거두어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스했다.황제는 알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본디 차가운 얼굴의 이 숙부와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으나 어미가 굳이 묻도록 강권했기에 어쩔 수 없이 나선 일이었다. 물음이 끝나자마자 대답도 막혀 그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태후는 이를 보자 황제 곁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녀는 어린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67화

    후부 내의 장부들은 모두 창란원에 모여 있었으나 신수빈은 책을 뒤적이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저쪽이 바로 분가 이후, 이십 해 가까이 이방과 삼방의 점포와 전답에서 들어온 수지 기장입니다. 옛 평양후께서 세상을 떠난 지도 십 해가 되어가죠. 그 십 해 동안은 조모님 곁을 지키던 배필 관사들이 매달, 매해의 출납을 빠짐없이 적어 두었습니다. 그중 몇몇 의복 가게들은 천하가 평정되면서 남쪽에서 진상된 촉비단과 소주 자수가 경중을 휩쓸자 진부한 양식만 내놓던 가게들은 매해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거기에 세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65화

    신수빈은 무릎 꿇은 윤서령을 힐끔 바라보았으나 단 한마디의 자비조차 베풀지 않았다.이도현. 그 개 같은 사내. 밉살스럽고 불쾌한 존재이긴 하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참으로 쓸모 있는 깃발이었다. 살아있는 염라대왕의 이름이니 누구든 그 이름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세 번쯤은 움찔할 수밖에.뜰에 가득 모인 관사와 유모, 하녀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한결같이 바랐다. 후부의 큰 아가씨인 윤서령이 나서서 새로 들어온 마님의 기세를 꺾어버렸으면 좋겠다고.하나 뜻밖에도, 결과는 완전히 거꾸로였다.마님의 말 몇 마디에 윤서령은 모욕을 당하고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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