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고 임채아의 입가에도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돌려줘?’얼마나 교묘한 말인가.하지율은 화도 내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고지후, 앞뒤 상황 파악하고 결정하는 게 어때?”고지후의 표정이 차가웠다.“나랑 채아가 떠나자마자 일부러 채아 괴롭히려고 여기로 따라온 게 아니야?”하지율은 남자의 차갑고 매정한 얼굴을 슬쩍 보고는 도발적인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그녀는 미소를 지었다.“그래. 임채아 씨가 마음에 든다면 주면 되지.”고지후의 표정이 누그러지고 임채아는 한층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장하준은 더욱 의기양양하게 입꼬리가 하늘로 치솟을 기세였다.하지율이 팔찌를 건넸다.“임채아 씨, 가져요.”임채아는 거절하지 않고 곧장 손을 내밀었다.이 팔찌는 고지후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증거였고 하지율과의 대치에서 승리한 전리품이었다.그런데 임채아가 곧 팔찌를 건네받으려는 순간 팔찌가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지며 바닥에 떨어져 부서졌다.쨍그랑!청아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팔찌가 산산조각이 났다.모두가 당황했고 임채아는 더더욱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임채아 씨.”하지율이 불쑥 입을 열어 적막을 깨뜨렸다. 그녀는 나무라는 어투로 말했다.“이 팔찌 갖고 싶다면서요? 어떻게 실수로 팔찌를 받지도 못해요?”정신을 차린 임채아가 대꾸했다.“하지율 씨... 일부러 그랬죠!”“임채아 씨가 못 받아놓고 내 탓을 하는 건가요?”하지율이 눈썹을 들썩이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난 임채아 씨가 실수로 못 받았다고 했는데 임채아 씨는 바로 내가 일부러 그랬다고 모함하네요? 설마...”멈칫하던 그녀가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이런 쪽으로 경험이 많은가 봐요?”장하준이 분노하며 소리쳤다.“지후야, 하지율 악랄한 것 좀 봐. 일부러 채아 못 받게 해놓고 채아 탓을 하고 있어. 뻔뻔하기 그지없네!”고지후가 하지율의 속내를 모를 리 없었기에 그가 차갑게 말했다.“하지율, 채아에게
장하준은 직원을 돌아보며 차갑게 웃었다.“일 그만두고 싶으면 저 팔찌 저 여자에게 팔아도 돼. 그땐 S시가 아니라 Z국 어디든 발붙이지 못할 테니까.”놀란 직원이 임채아를 몇 번 쳐다보더니 얼굴이 순식간에 종이처럼 창백해졌다.직원은 곧 이 여자가 고지후와 스캔들을 일으켰던 인물임을 알아차렸다.평범한 그녀가 고성 그룹의 대단한 자본가와 맞설 힘이 어디 있겠나.임채아가 가식을 떨었다.“하준아, 그만해.”“채아, 너는 성격이 너무 착해서 하지율처럼 뻔뻔하게 침대에 기어오르는 여자에게 남자를 빼앗긴 거야. 내가 오늘 제대로 혼내줄 거야.”하지율이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당신은 날 혼내기엔 아직 그럴 자격이 안 돼.”말하며 그녀가 두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짓고는 목소리를 높였다.“고지후가 마음에 품은 사람이면 누가 먼저 눈여겨보고 누가 먼저 사든 다 무조건 이 아가씨한테 양보해야 하는 건가? 남들은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데 여긴 손님을 노예로 아나 봐? 고성 그룹은 이런 식으로 장사하나? 나중에 고성 그룹 소유의 백화점에서 물건을 살 땐 조심해야겠네. 고성 그룹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데 자칫 밉보였다간 Z국에서 살지도 못하겠어.”하지율은 교묘한 언변으로 임채아와 장하준을 대중의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물건을 사는 손님이든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이든 모두 아니꼬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이런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도 내로라하는 인물들인데 그들 모두 표정이 극도로 어두웠다.“요즘 고성 그룹이 아무리 잘나가도 독보적이진 않지. 벌써 이렇게 오만하면 나중에는 우리가 빌면서 물건을 사야겠어.”“허, 고성 그룹에만 주얼리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가면 그만이지. 라이벌인 도신 그룹 주얼리 가게에서 살 거야.”“앞으로 고성 그룹 물건은 사지 말자고.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걸 누가 뺏어가는 건 싫어.”“아빠가 내일 고성 그룹과 협력한다고 했는데 이 일을 알려줘야겠네.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구는 회사와 협력할 수는 없지.”순식간에 사람들의
장하준과 임채아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곁에 나타난 하지율을 보고 동시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하지율은 그들을 무시하고 대신 앞에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한번 착용해 봐도 되나요?”직원은 눈을 반짝거리며 서둘러 답했다.“물론이죠.”요즘 부자들은 매우 겸손해서 예전처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었다.하지율은 천천히 옥팔찌를 손에 끼고 자세히 살펴보았다.충격에서 헤어 나온 장하준이 즉시 차갑게 조롱했다.“하지율, 여긴 당신 같은 가난뱅이가 올 곳이 아니야. 착용이라니... 가난한 냄새가 팔찌에 묻을까 봐 걱정도 안 돼? 빨리 벗어. 이 팔찌는 채아가 마음에 든다고 했어!”하지율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임채아 씨는 너무 비싸서 이 팔찌를 못 사니까 안 사겠다고 하던데?”장하준이 무례하게 비꼬았다.“허, 우리가 못 사는데 출근도 안 하고 남자에게 빌붙어 사는 기생충이 이렇게 비싼 걸 살 수는 있고? 장난 그만해.”말하며 그가 고개를 돌려 직원을 돌아보았다.“이봐요. 뭘 가만히 있어요? 빨리 팔찌 벗기지 않고.”직원이 장하준을 보며 물었다.“손님, 이 팔찌를 사실 건가요?”장하준은 숨이 턱 멎었다.사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비쌌다!최근 주식 투자로 많은 돈을 잃었고 손에 남은 자금도 거의 없었다.잔혹한 현실이 장하준으로 하여금 드물게 이성을 유지하게 했다.“하지율, 이 사기꾼 같은 여자야! 지후 돈을 가지고 이렇게 비싼 걸 사?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집안 망신시키지 마!”장하준은 자기가 가질 수 없는 건 하지율도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다들 여기 좀 보세요. 사기꾼 같은 여자가 몇 년 동안 일도 안 하고 남자의 돈으로만 먹고살아요! 이 얼굴 제대로 기억했다가 이 파렴치한 여자에게 속지 마세요!”순간 가게 안의 모든 직원과 손님들이 모두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임채아는 장하준의 팔을 살짝 잡아당기며 가식적으로 말했다. “하준아, 하지율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데 그냥 양보하는 게 어때
“하지율 씨는 모르죠? 지후가 방금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보상으로 주얼리 가게로 데려가 보석을 사주겠다네요. 나만 좋으면 안의 보석은 마음대로 골라도 된다면서... 아, 지후와 결혼할 때 결혼반지도 못 받았죠?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웃는 임채아의 얼굴엔 악의가 가득했다.“걱정 마요. 이따가 지후 설득해서 하지율 씨 것도 몇 개 고르라고 할게요.”임채아가 웃으며 떠나고 단종건은 수염을 펄럭거리며 눈을 부릅 떴다.“저 악랄한 계집이 평소에도 네 앞에서 저런 식으로 행동해?”하지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늘 저렇게 오만했어요.”“차라리 뺨이라도 때려서 정신 차리게 하지?”“양쪽 뺨 때리는 걸로는 너무 부족하죠.”당하고만 있을 단종건이 아니었기에 하지율을 돌아보며 물었다.“왜,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하지율은 은행 카드에 갑자기 나타난 천문학적인 숫자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저도 갑자기 밖으로 나가 보석을 사고 싶어졌어요.”단종건이 알겠다는 듯 웃었다.“얼른 가지 않고 뭐해. 저것들 멀리 가기 전에 서둘러.”...백화점에서 임채아는 옥팔찌를 고르고 있었다.고지후는 그녀의 곁에 없었다. 일이 바빠서 한가롭게 백화점을 돌아다닐 시간이 없었다.그래서 장하준을 불러 임채아와 동행하라고 했다.장하준은 임채아가 또다시 상처를 받았다는 걸 알고 가는 내내 어떻게든 웃게 하려고 애를 썼다.하지만 임채아는 여전히 우울한 표정이었다.장하준이 말했다. “이 옥팔찌가 너한테 잘 어울리네. 내가 사줄게.”눈앞의 옥팔찌는 6억짜리였지만 임채아는 관심이 없는 듯 벗어 던졌다.얼마 전 고윤택이 고씨 가문에서 며느리에게 물려주는 옥팔찌를 가져가 임채아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 옥팔찌는 의미나 가치 모두 눈앞에 놓인 몇억짜리 상품 하고는 비교가 안 되었다.“필요 없어.” 임채아가 고개를 흔들었다.“다 흔한 디자인이야.”장하준이 직원을 돌아보았다.“좀 더 특별한 건 없어요?”‘더 특별한 것?’직원은 서둘러 답했다.“있어요. 두 분
하지율은 발걸음을 멈추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고지후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갑자기 말을 바꿔서 채아에게 약을 안 주고 나한테 돈 달라고 했잖아. 작은 일로 채아 괴롭히고... 내 관심 끌려고 이러는 것 아니야?”하지율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고지후, 당신 낯짝 한번 두껍네. 모든 사람이 남이 버린 쓰레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저 여자는 몰라도 나는 역겹다고.”하지율의 말에 고지후와 임채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하지율은 휴대폰에 입금된 200억을 떠올리며 약을 고지후에게 던졌다.“난 약속은 지켜. 1차 치료 과정 약이야. 약 안 먹어서 병이 심해지는 건 내 알 바 아니고.”말을 마친 하지율이 고지율의 손을 뿌리치고 뒤돌아 가려는데 고지후가 다시 붙잡았다.“아직 채아한테 사과 안 했어.”하지율이 시선을 들어 피식 웃었다.“사과 안 하면 어떡할 건데?”고지후의 동공이 움츠러들며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하지율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참, 임채아 씨 목숨이 걸린 약이 내 손에 있다는 걸 잊지 마. 날 화나게 하면 임채아 씨 약은 더 이상 없어.”웃음을 머금은 눈동자로 고지후를 바라보며 말하는 하지율의 목소리는 샘물처럼 맑고 청아했다.“지금 부탁하는 쪽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내 앞에서 오만하게 굴지 마.”말하며 하지율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말끔하게 사라지고 서늘한 한기만 남았다.“다음에 또 날 화나게 하면 그땐 저 여자가 아니라 당신도 무릎 꿇게 할 거야. 과연 당신에게 자존심이 중요한지, 임채아 목숨이 중요한지 두고 보자고.”하지율은 고지후를 밀치고 뒤돌아 걸어갔다.고지후는 멍하니 하지율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더 이상 붙잡지 못했다....단종건은 임채아가 이토록 악랄할 줄은 몰랐다. 감히 독에 손을 댈 줄이야.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그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를 더 이상 이곳에 두지 않기로 결심했다.어차피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 단종건은 임채아를 바로 내쫓았다.임
여기는 작업실이라 감시 카메라에 찍히지 않기 때문에 임채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었다.이때 환자 진료를 마친 단종건도 다가와 임채아의 말을 듣고 차갑게 말했다.“허, 본인이 약병을 잘못 집어놓고 내 탓이라고?”하지율이 말했다.“약병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 안에 뭐가 있는지 물어볼 줄도 몰라요? 우리가 입을 강제로 막기라도 했어요?”하지율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가운 웃음이 흘러나왔다.임채아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제가 방심했어요.”“임채아 씨 한 번의 방심으로 환자들과 한의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봤어요?”하지율은 조목조목 따지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 사람의 생명이 달려 있어요. 만약 환자가 여기서 약을 먹고 문제가 생기면 어르신도 책임을 져야 했겠죠.”말하며 하지율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두 눈에는 분노가 역력했다.정말로 화가 났다.임채아가 고지후 앞에서 온갖 여우짓에 불쌍한 척을 하며 수작 부리는 건 용서할 수 있어도, 일부러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사람 목숨 해치는 짓까지 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임채아는 저도 모르게 고지후를 돌아보았고 검은 눈동자가 마침 자신을 보고 있자 왠지 모르게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나... 나는 정말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이를 악문 그녀가 머리를 무겁게 바닥으로 조아렸다.“하지율 씨, 이유가 뭐든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 사과하고 벌도 달게 받을게요. 하지율 씨가 용서할 때까지요.”임채아가 하도 세게 힘을 주어 몇 번 머리를 조아리니 금세 피가 스며 나왔다.고지후의 동공이 움츠러들며 다가가 그녀를 제지했다.“채아야, 뭐 하는 거야? 빨리 일어나!”임채아는 눈물을 흘렸다.“지후 네가 내 약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고 많은 대가를 치렀는데 난 여기서 하지율 씨를 화나게 했어. 미안해, 지후야. 내가 너무 쓸모가 없어서 그래. 이번 일은... 내가 책임질게. 날 감옥으로 보내도 상관없어. 다만 하지율 씨가 너한테까지 화를 내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