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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겹침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10 12:35:43

서윤이 다시 장미 미용실을 찾은 건 약속된 시간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도 조심스러웠고,

종이 울리지 않도록 손으로 받치듯 닫는 모습은 이미 이 공간의 성질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이수는 그때 의자 아래를 쓸고 있었다.

먼지통을 비우려다 말고,

여자를 본 순간 동작이 느려졌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두 번째 만남이 항상 그렇듯 첫 만남보다 더 많은 걸 가져오기 때문이다.

“갑자기 와서… 죄송해요.”

윤서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돌아갈 기색은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형식이었고, 여기까지 온 선택은 이미 끝나 있었다.

“괜찮아요.”

이수는 빗자루를 세워두며 말했다.

“앉으세요.”

서윤은 이번엔 망설이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몸이 처음보다 더 안쪽으로 말려 있었다.

그건 폭력이 진행 중이라는 신호였다.

이수는 묻지 않아도 알았다.

“어제는…”

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 일 없었어요.”

이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말은 대개, 말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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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해드립니다.   145. 본인이 흔들리는 겁니다

    비는 예고 없이 쏟아졌다.오후까지만 해도 흐리기만 했던 하늘이 해 질 무렵 갑자기 무너졌다.빗줄기는 굵었고, 바닥을 때리는 소리는 일정하지 않았다.규칙 없이 쏟아지는 소리. 그건 사람의 감정과 비슷했다.헬스장 로비는 유난히 습했다.젖은 우산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바닥을 따라 길게 번졌다.이수는 일부러 러닝머신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로 자리를 옮겼다.이어폰은 귀에 꽂았지만 음악은 틀지 않았다.주변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태훈이었다.비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그는 우산을 접으며 로비를 훑었다.그리고, 이수를 발견했다.눈이 멈췄다.그 멈춤이 길었다.이수는 모르는 척 속도를 조절했다.숨이 일정하게 오르내렸다.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다.태훈이 다가왔다.“또 보네요.”그는 웃는 얼굴을 만들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그러게요.”이수는 속도를 줄이며 말했다.“비 많이 오네요.”“네.”짧은 대답.그의 시선이 그녀의 어깨, 손목, 다리로 천천히 내려갔다.확인하듯, 훑듯.“요즘 자주 오시네요.”“건강 챙기려고요.”"아직.. 만나시는 분은""없어요이수의 대답은 전과 같았지만, 이번엔 살짝 웃음이 섞였다.그 작은 변화가 태훈의 신경을 건드렸다.“확실해요?”“왜요.”“그냥.”그는 물병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요즘 이상하게 불안해 보여서.”그 말은, 며칠 전 이수가 그에게 던졌던 문장이었다.이수는 고개를 기울였다.“제가요?”“네.”“왜 그렇게 생각하세요.”태훈은 대답하지 못했다.자신이 불안한 건지, 상대가 불안한 건지 구분이 안 되는 얼굴이었다.이수는 머신을 멈추고 내려왔다.“저 먼저 갈게요.”태훈의 눈이 흔들렸다.“벌써요?”“네.”그녀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누가 기다려서.”그 문장은 일부러 던진 것이었다.태훈의 얼굴이 굳었다.“누가...”“일일이 대답할만큼 우리가 친한 사이는 아니죠”그녀는 가볍게 웃고 돌아섰다.태훈은 그 자리

  • 불륜해드립니다.   144. 압박

    태훈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지만, 곧바로 출발하지는 못했다.핸들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채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숨이 거칠게 올라왔다가 내려갔고, 이마에 맺힌 땀이 천천히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받지 않는 전화.거절된 영상통화.헬스장에 없던 여자.생각은 단순했지만, 감정은 단순하지 않았다.의심은 논리가 아니라 상상으로 자라났다.그리고 그 상상은 점점 구체적인 얼굴을 만들어냈다.‘누구지.’그는 스스로에게 묻는 대신, 이미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하고 있었다.액셀을 밟는 순간 차가 튀듯 앞으로 나갔다.젖은 도로 위로 타이어가 얕은 물을 가르며 미끄러지듯 달렸다.집 안은 고요했다.미정은 소파 끝에 앉아 있었다.깨진 휴대폰 액정 위로 가느다란 금이 여러 갈래로 퍼져 있었다.손목에는 아직 태훈의 손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났다.태훈이 들어왔다.술 냄새는 진하지 않았다.그 대신, 눈이 붉어 있었다.“왜 안 받아.”목소리는 낮았지만, 눌린 분노가 묻어 있었다.“받고 싶지 않았어.”미정의 대답은 예상보다 담담했다.“왜.”“지금은 말해도 안 통하니까.”태훈은 웃었다.짧고 비틀린 웃음이었다.“그래서 누구랑 통하는데.”그는 천천히 다가왔다.한 걸음, 또 한 걸음.“헬스장?”“아니.”“그럼 누구.”“아무도.”“거짓말.”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미정의 가방을 뒤졌다.지퍼가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방 안을 긁었다.“그만해.”“왜.”“이제 그런 거 안 보여줄 거야.”태훈의 손이 멈췄다.“안 보여줘?”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네가 뭔데.”그 문장은 낮았지만, 날이 서 있었다.남편이 아니라 주인이 말하는 어투였다.미정은 그 눈을 똑바로 보았다.“나도 사람이야. 더이상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라고”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 틈이 미정에게는 처음으로 생긴 공간이었다.“말 다 했어?.”“아니...이제 나도 물러서지 않고.”미정은 천천히 말했다.“지킬거야.”

  • 불륜해드립니다.   143. 난 들리는 것도 무서워

    깨지는 소리는 크지 않았다.유리컵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쨍’ 하는 소리 대신 ‘탁’ 하고 무거운 소리가 먼저 났다.그 다음에야 조각들이 흩어졌다.미정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은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일부러지.”태훈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아니.”“또 아니래.”그는 천천히 다가왔다.어제보다 조용했고, 그게 더 무서웠다.“요즘 왜 이렇게 당당해.”미정은 대답하지 않았다.대답하는 순간, 그의 프레임 안으로 다시 들어갈 것 같았다.“핸드폰.”그가 말했다.“오늘은 보여줘.”“싫어.”짧은 거절. 태훈의 턱이 굳었다.“나한테 숨기는 거 있으니까 안 보여주는거 아냐?”“숨기는 거 없어.”“그럼 왜 안 보여주는데?”미정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당신이 무서우니까.”태훈의 눈이 번쩍 뜨였다.“또 그 소리.”“맞아.”“내가 뭐 했는데.”그 말이 나왔다.그 말은 늘 그를 보호했다.‘내가 뭐 했는데.’기억하지 않는 척하는 문장.“어제.”미정이 말했다.“손 들었잖아.”“안 때렸잖아.”“때리려고 했잖아.”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그리고, 웃었다.“그 정도도 못 참아?”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미정은 깨달았다.이 사람은 폭력의 기준이 다르다.그에게 폭력은 피가 나야 성립한다.“난.”미정이 낮게 말했다.“들리는 것도 무서워.”태훈의 표정이 굳었다.“요즘 누가 자꾸 말해주지.”“뭐를.”“내가 나쁜 사람이라고.”그의 눈은 의심으로 가득했다.미정은 가만히 그를 봤다.“아니.”“그럼 왜 이렇게 변했어.”“원래 그랬어.”“거짓말.”그는 한 발 더 다가왔다.“남자 생겼지.”“아니.”“헬스장.”그 단어가 나왔다.미정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왜.”“거기서 누구 만나는 거 아니야?”그는 이미 결론을 내린 얼굴이었다.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몰아가려는 표정.“당신이 가서 봐.”미정의 말은 의외로 차분했다.태훈은 잠시 멈췄다.“뭐.”“가

  • 불륜해드립니다.   142. 선넘

    불은 이미 붙어 있었다.태훈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술잔을 드는 손이 그 증거였다.‘한 잔만.’그 말은 늘 시작이었다.미정은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전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눈을 피하지 않는다는 것.“운동.”태훈이 중얼거리듯 말했다.“요즘 운동 열심히 하네.”“응.”“누구랑.”“혼자.”태훈의 눈이 미세하게 좁아졌다.“헬스장에 남자 많지.”미정은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태훈을 더 자극했다.“나 바보 아니야.”“누가 뭐래.”“요즘 너.”그는 잔을 비웠다.“평소랑 달라졌어.”“그래”미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달라졌어.”그 한 문장이 방 안 공기를 갈랐다.태훈의 얼굴이 굳었다.“왜.”“이제 무섭다고 말했잖아.”“그거랑.”“연결돼.”그는 잠깐 멈췄다.“누가 옆에서 말했지.”“아니.”“그럼 혼자?”“응.”태훈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천천히 주먹으로 변했다.“너.”그가 낮게 말했다.“남자 생긴거 아냐?”미정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그런거 아니야.”“눈이 그래.”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핸드폰 줘봐.”“싫어.”짧은 대답.태훈은 그 한 단어에 잠깐 얼어붙었다.“뭐?”“싫다고.”그의 눈동자가 확연히 흔들렸다.“너.”“이제 안 보여줄 거야.”태훈의 숨이 거칠어졌다.“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없어.”“그럼 왜.”“당신이 이제는 싫고 무섭거든.”그 말은 조용했지만 정확했다.태훈은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손이 올라갔다.미정은 본능적으로 한 발 물러섰다.손은 멈췄다.허공에서.그 멈춤이 더 위험했다.“봐.”태훈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네가 날 이렇게 만들어.”그 문장은, 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전형적인 문장이었다.미정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아니.”“뭐가 아니야.”“당신이야.”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그 순간, 태훈의 휴대폰이 울렸다.회사 동료였다.그는 이를 악물며 전화를 받았다.“어.”목소

  • 불륜해드립니다.   141. 내가 당신을 이용하면

    와인바에서 돌아온 뒤로도 이수의 머릿속은 잠잠해지지 않았다.태훈의 말투. 기억이 안 난다는 표정.“전 그런 사람 아닙니다.”라고 말하던 순간의 눈빛.그 눈빛은 부정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웠다.자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의 눈이었다.“기억 안 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반복한다.”하빈은 운전석에 앉은 채 낮게 중얼거렸다.“그래.”이수는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근데 이번엔 단순 폭행으로 가면 길어져.”“그래서.”“불안.”이수는 고개를 돌렸다.“저 사람은 폭력보다 불안이 먼저야.”하빈은 그녀를 봤다.“아내가 밖에 나가는 게 불안했고.”“통제 안 되는 게 싫고.”“그래서 붙잡는 거고.”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불륜을 만들려면 욕망이 필요해.”“근데 태훈은?”“욕망보다 소유욕이 커.”차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하빈이 물었다.“그럼 어떻게 도발할 건데.”이수는 짧게 웃었다.“질투.”다음 날 오후. 미정은 장미 미용실에 앉아 있었다.손이 아직 조금 떨렸다.어제 집을 나왔다가, 밤늦게 다시 들어갔다.아이 때문에. 남편은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이었다.“어제는 어땠어요.”이수가 묻자 미정은 씁쓸하게 웃었다.“미안하대요.”“그리고.”“나 없으면 못 산대요.”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예상 그대로였다.“그래도.”미정이 덧붙였다.“눈이 이상했어요.”“어떻게요.”“붙잡고 싶어 하는 눈.”이수는 잠시 생각했다.“좋아요.”“뭐가요.”“이제 그 눈을 더 흔들 거예요.”미정은 놀란 표정이었다.“저… 위험해지지 않나요?”“조심할 거예요.”이수는 부드럽게 말했다.“이번엔 물리적으로 붙잡히는 상황 안 만들 거예요.”그녀는 휴대폰을 꺼냈다.“남편분 요즘 술은?”“끊겠다고 했어요.”“완전히요?”“아니요… 집에선 안 마신대요.”이수는 미묘하게 웃었다.“밖에서 마신다는 말이네요.”저녁에 태훈은 헬스장 로비에 서 있었다.이수는 운동복 차림이었다.머리는 묶었고, 화장은 거의 하지 않았다.와인바에서와는 다른 분위기

  • 불륜해드립니다.   140. 반응

    다음 날은 유난히 조용했다.장미 미용실 유리문에 비친 거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이수는 자꾸만 휴대폰 화면을 뒤집어 보게 됐다.연락은 오지 않았다.“안 와?”하빈이 물었다.“안 와.”“의외네.”“아니.”이수는 고개를 저었다.“저런 사람은 바로 안 움직여.”하빈은 커피를 내려놓으며 그녀를 바라봤다.“왜.”“자기가 밀린 걸 인정하기 싫으니까.”이수는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자르면서도 생각이 흐트러지지 않았다.어제 태훈의 손.짧았지만 분명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놓는 순간의 표정.‘들켰다’는 얼굴.그건 중요한 장면이었다.폭력은 항상 작은 균열에서 먼저 드러난다.그리고 들켰다고 느끼는 순간,그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한다.더 숨기거나, 더 세게 누르거나.“오늘 안 오면,”하빈이 말했다.“네가 먼저 움직일 거야?”“아니.”“왜.”“기다리는 게 더 불안하거든.”그 말에 하빈이 잠깐 고개를 들었다.“너.”“응?”“요즘 더 차가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지?.”이수는 웃지 않았다.“차가운 게 아니라 계산하는 거야.”“같은 말이야.”잠깐의 정적.하빈은 덧붙였다.“계산하다가 다쳐.”이수는 대답 대신 손님의 머리를 말렸다.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떨어졌다.발신자: 태훈.이수는 바로 받지 않았다.벨이 세 번 울리고, 네 번 울릴 즈음 받았다.“네.”잠깐의 침묵.그쪽에서 숨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어제.”태훈이었다.목소리가 낮았다.술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네.”“어제 일은.”“뭐요.”“미안합니다.”형식적인 사과였다.이수는 차분하게 말했다.“뭐가요.”그는 잠깐 말을 고르는 듯했다.“손.”“기억하네요.”태훈의 숨이 한 번 멈췄다.“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그 말이 나왔다.이수는 조용히 웃었다.“전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그는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오늘.”그가 말했다.“시간 되세요?”“왜요.”“얘기 좀 하고 싶어서.”이수

  • 불륜해드립니다.   6. 오늘은 안 돼

    비는 새벽에 그쳤다가, 아침에 다시 내렸다.내리는 방식이 비슷해서 더 지쳤다.젖는 게 새롭지 않은 날이었다.이수는 카페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종이 울렸고, 안쪽 공기는 눅눅했다.커피 냄새가 평소보다 무거운 건, 아마 습기 때문일 것이다.습기는 냄새를 붙잡고 오래 놓아주지 않았다.진상은 이미 카운터 뒤에 서 있었다.오늘은 기계를 닦고 있었고, 천천히 닦는 손이 어딘가 과했다.바쁘지 않은데도 서두르는 사람처럼. 그런 날은 보통,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쉰다더니, 어떻게 왔어요?.”그가 말했다.물음이 아니라 확인이

  • 불륜해드립니다.   5. 흔들림

    아침 공기는 전날보다 무거웠다.비가 그쳤다는 사실보다, 언제든 다시 내릴 수 있다는 기척이 먼저 느껴졌다.습기는 벽에 남아 있었고, 냄새는 아직 빠지지 않았다.이수는 카페 문을 열며 잠시 멈췄다.안쪽에서 나는 소리가 어제와 달랐다.머신이 돌아가는 소리,컵이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사람의 움직임이 섞여 있었다.진상은 이미 나와 있었다.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다.“오늘은 왜이렇게 일찍 왔어요?”이수가 말했다.말끝은 가볍게 올렸지만 의미를 묻지는 않았다.“잠이 안 와서요.”그는 그렇게 답했다.변명처럼 들리지 않게,

  • 불륜해드립니다.   4. 닿은 손등

    비는 밤새 그쳤다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아침이 되자 길 위엔 물기가 남았고, 공기는 묘하게 가벼웠다.무언가 씻겨 내려간 뒤의 냄새였다.이수는 카페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종이 울렸고, 그 소리에 진상이 고개를 들었다.“일찍 왔네요.”어제와 같은 말이었다.하지만 어제와는 조금 다른 눈빛이었다.말보다 먼저 인식하는 방식.그건 습관이 아니라 선택에 가까웠다.“네.”이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집어 들었다.손이 앞치마 끈을 묶는 동안,진상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손을 따라갔다.손목, 손가락, 매듭.이수는 그 시

  • 불륜해드립니다.   3. 틈

    카페의 아침은 생각보다 빨랐다.문을 열기도 전에 커피 향이 먼저 퍼졌고,기계가 예열되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진상은 그 소리를 들으며 셔터를 올렸다.매일 같은 시간, 같은 순서였고 그래서 더 생각하지 않는 동작들이었다.이수는 그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문을 열자 종이 울렸고, 그 소리에 진상이 고개를 들었다.“일찍 왔네요.”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계는 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네.”이수는 짧게 답했다.목소리는 낮았고, 불필요한 온도는 없었다.앞치마를 두르는 동안 그녀는 카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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