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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틈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9 15:07:38

카페의 아침은 생각보다 빨랐다.

문을 열기도 전에 커피 향이 먼저 퍼졌고,

기계가 예열되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진상은 그 소리를 들으며 셔터를 올렸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순서였고 그래서 더 생각하지 않는 동작들이었다.

이수는 그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문을 열자 종이 울렸고, 그 소리에 진상이 고개를 들었다.

“일찍 왔네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계는 보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네.”

이수는 짧게 답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불필요한 온도는 없었다.

앞치마를 두르는 동안 그녀는 카페 안을 훑었다.

테이블 간격, 창가 자리, 카운터 뒤 동선.

어제와 달라진 건 거의 없었지만 아주 작은 차이가 하나 있었다.

자신의 자리.

어제는 ‘알바’였고, 오늘은 ‘있는 사람’이었다.

이수는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물은 어제보다 미지근했고, 세제 냄새는 여전히 강했다.

접시를 하나 집어 들면, 다음 접시가 자연스럽게 손에 잡혔다.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움직이는 일.

그건 이수가 가장 잘하는 종류의 일이었다.

진상은 커피를 내리다가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렸다.

힐끗, 이라는 표현이 맞았다.

확인하려는 눈빛은 아니었고

관성처럼 돌아가는 시선이었다.

이수는 그 시선을 느꼈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시선을 받는 쪽이 먼저 반응하면 그건 이미 대화가 된다.

지금은 아직, 대화가 필요하지 않았다.

손님이 한 명 들어왔다.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는 남자였다.

커피를 받아 들고 창가에 앉았다.

진상은 주문을 받으며 이수를 한 번 더 봤다.

“물은 이쪽에 둬요.”

그는 괜히 말을 붙였다.

이미 알고 있을 말이었다.

“네.”

이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 쪽으로 물통을 옮겼다.

그 동작은 부드러웠고, 부드러움은 늘 사람의 경계를 늦춘다.

카페는 한동안 조용했다.

기계 소리와 컵 부딪히는 소리만 남았다.

그 조용함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키운다.

진상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화를 내긴 했지만 이유가 있었고, 손을 들긴 했지만 먼저 자극받았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오래된 것이었고, 그래서 의심하지 않았다.

이수는 그런 종류의 확신을 이미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자 손님이 조금 늘었다.

바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손이 쉬지는 않았다.

이수는 컵을 닦다가 손을 잠시 멈췄다.

물기가 손목을 타고 내려왔다.

“장갑 낄까요?”

그녀가 먼저 물었다.

진상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금방 끝날 거예요.”

‘괜찮다’는 말은 대개 상대를 위한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안심시키는 말이다.

이수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은 조금 더 조심스러워야 했다.

조심스러운 손은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느린 동작은 사람의 시선을 붙잡는다.

“손 다치겠어요.”

진상이 말했다.

이번엔 진짜로 걱정하는 말처럼 들렸다.

이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짧게 마주친 시선. 길지 않았다.

“괜찮아요.”

말은 단순했지만 눈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시선을 먼저 끊는 쪽이 항상 우위에 선다.

진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고개를 숙인 뒤에도

한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건 의식하지 못한 틈이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진상은 계산대를 정리하며 말했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붙잡히길 기대하지 않는 얼굴. 그게 중요했다.

앞치마를 벗고 가방을 챙겼다.

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진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도 일찍 올 수 있어요?”

질문처럼 들렸지만 이미 답을 정해둔 목소리였다.

이수는 잠시 멈췄다가 돌아서지 않은 채 말했다.

“네. 괜찮아요.”

그 말이 끝났을 때, 진상은 비로소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은 얻었다고 느끼는 순간 경계를 완전히 푼다.

이수는 문을 열고 나왔다.

밖의 공기는 낮보다 차가웠고, 햇빛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걸음을 옮기며 그녀는 방금의 장면을 떠올렸다.

말을 붙였고, 시선이 길어졌고, 먼저 내일을 물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한 줄은 넘었다.

선을 넘었다는 자각은 대부분 나중에 온다.

사람들은 늘 넘어간 뒤에야 경계를 떠올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수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

천천히 걸었다.

몸이 먼저 하루를 정리하고 생각은 그 뒤를 따라오게 두었다.

진상의 얼굴이 떠올랐다.

욕망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이름이 없었고,

호의라고 하기엔 방향이 조금 어긋난 눈빛.

그 애매함이 가장 위험한 지점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불은 꺼져 있었다.

하빈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수는 신발을 벗고 불을 켰다.

조용한 집 안에 자신의 숨소리만 남았다.

물 한 컵을 마시고 소파에 앉았다.

손끝이 조금 저릿했다.

하루 종일 물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감각이 현실을 붙잡아주고 있었다.

이수는 생각했다.

오늘은 틈이 생긴 날이라고. 아주 작지만 되돌릴 수 없는 틈.

그 틈은 남자의 마음에 생겼고, 이제는 스스로 넓어질 것이다.

이수는 그걸 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다만, 넘어지게 둘 뿐이었다.

창밖에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제보다 조금 가볍게, 하지만 오래 갈 것 같은 비였다.

그녀는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일은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이미 정해진 순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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