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진주가 뚫리면 끝이야. 3만 대군이 기세를 타고 넘어오면, 담양 따위는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돼. 집 앞마당까지 불이 번지길 기다릴 거야? 아니면 대문 밖에서 끌 래?""하지만... 우리 병력은 고작 1,000명인데요.""그래서 가는 거야. 진주성에는 김시민 장군이 있어. 그 양반이랑 합치면 승산이 있어. 그리고..."나는 나대용을 바라보았다."우리에겐 현무가 있잖아."나대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 지금의 '현무'라면 3만 대군 앞에서도 길을 낼 수 있을 거요. 험한 산길도 '나무 탄조'와 '소가죽 완충재'가 버텨줄 거요.""결정합시다. 갑니까, 맙니까?"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나는 흑미숙이를 집어 들었다."간다. 가서 놈들의 콧대를 아주 박살을 내주자.""알겠습니다! 까짓거 한번 해보죠!"최가가 주먹을 쥐었다. 서백설은 한숨을 쉬면서도 벌써 보급품 목록을 적고 있었다."쌀 챙겨. 화약 다 털어 넣고. 가는 길에 먹을 주먹밥 3천 개 준비해."-다음 날 새벽.익호군 1,000명과 현무 4대가 연병장에 도열했다.지난 3개월간, 이들은 똥지게를 지고, 쇠를 나르고, 밥을 축내며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은, 눈빛이 살아있는 진짜 군대."출발한다!"내 호령과 함께 진격이 시작되었다.담양에서 진주까지.지리산 자락을 넘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평지라면 하루 이틀이면 갈 거리였지만, 수 톤에 달하는 현무를 끌고 산을 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하지만 나대용의 발명품은 위대했다."오오! 바퀴가 튀지 않습니다!"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지나는데도 현무는 부드럽게 굴러갔다. 나무 스프링이 낭창거리며 충격을 흡수했고, 소가죽 패드가 진동을 잡아주었다."밀어! 더 세게 밀어!""으라차차!"가끔 진흙탕에 빠지면 병사 수십 명이 달라붙어 들어 올렸다. 나도 미숙이를 내려놓고 직접 현무 뒤에 어깨를 대고 밀었다. 근육이 터질 듯 팽창하고 핏줄이 솟았다.
"쇠 바퀴의 딱딱함은 소가죽으로 막고, 무게는 네 바퀴로 나누고, 흔들림은 물푸레나무가 잡는다... 와, 진짜 미쳤네요.""어떤가? 이제 산길을 달려도 승차감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을 걸세. 자네가 밀 맛 좀 나지 않겠나?"나대용이 으쓱거리며 웃었다."문제는 자금이지. 물푸레나무에 소가죽까지 쓰려니 돈이 줄줄 새네. 바퀴 하나가 황소 값이야."나대용이 한숨을 쉬자,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돈 걱정은 마세요. 제가 다 해결했으니까."서백설이었다.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레를 끌고 들어왔다. 수레에는 패물들이 가득했다."이게 다 뭡니까?""뭐긴요. '특별 안보 회비'죠."그녀가 씩 웃으며 땀을 닦았다."소문을 듣고 피난 온 양반들이 갈수록 늘고 있어요. '김덕령 장군이 지켜주는 특별 구역' 입주비를 알아서들 낸다니까요. 다들 살겠다고 앞다퉈 돈 보따리를 푸는데, 심지어 어떤 대감마님은 첩실이 아끼던 은비녀, 노리개까지 탈탈 털어왔더라니까요?""와... 진짜 악마네. 존경합니다, 행수님.""칭찬으로 들을게요."돈, 기술, 그리고 사람.주식회사 익호는 전쟁통 속에서도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평화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더 독하게 준비했다.시간은 흘러 처서(處暑)가 지나고 9월이 되었다.들판의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수확의 계절이자, 전쟁의 계절.왜군들도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이제 움직여야 할 때였다.어느 날 늦은 밤.나는 잠이 오지 않아 마당에 나와 미숙이를 닦고 있었다. 흑단목이 달빛을 받아 검붉게 빛났다."똑똑."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급박하면서도 절제된 노크 소리."누구냐.""접니다, 대장님. 미령이에요."미령이였다. 평소라면 자고 있을 시간인데.문을 열어주자, 미령이가 창백한 얼굴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찻잔이 아닌, 붉은 도장이 찍힌 서신들이 들려 있었다."들어와. 무슨 일인데?
1592년 7월의 태양은 뜨거웠다.하지만 담양 객주의 열기는 그보다 더했다."하나, 둘! 하나, 둘! 발 맞춰라 이 굼벵이들아!"연병장으로 개조된 객주 뒷산 공터.최가의 고함 소리가 매미 소리보다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으아악! 살려주십시오, 조장님!""다리에 쥐납니다요!"신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찢고 있었다.이치와 금산 전투의 승전보를 듣고 전국 각지에서 장정들이 몰려들었다. 기존 병력에 이들까지 합치니 도합 1,000명. 산적 출신, 도망친 관군, 머슴, 심지어 과거에 낙방한 선비까지 출신 성분은 다양했지만, 지금은 모두 똑같은 '빨간 빤스(붉은 염색 바지)'를 입고 흙바닥을 구르고 있었다.나는 그늘막 아래 평상에 누워, 미령이가 부쳐주는 부채 바람을 맞으며 그 지옥도를 감상했다. 입에는 시원한 오미자차를 문 채였다."좋다. 아주 좋아. 비명이 우렁찬 게 밥값은 하겠어.""아저씨,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저러다 애들 다리몽둥이 부러지겠어요."미령이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훈련장을 바라봤다. 15살 소녀의 눈에도 저 훈련은 가혹해 보였나 보다."괜찮아. 다리 찢어진다고 안 죽어. 전쟁터 나가서 왜놈 칼에 배 찢어지는 것보단 낫지."나는 육포를 씹으며 몸을 일으켰다.지난 3개월. 한산도 대첩 이후 왜군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바닷길이 막히고 육로 보급이 끊기자, 놈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이다.덕분에 우리에겐 귀중한 시간이 생겼다.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평화는 폭풍 전의 고요라는 것을. 놈들이 굶주릴수록, 다음 공격은 더 처절할 테니까."그나저나 나대용 형씨는? 아침부터 코빼기도 안 보이네.""대장간에 계세요. 밥도 안 드시고 현무 바퀴랑 씨름하고 계시던데요.""그래? 또 뭔가 사고를 치시려나 보네."나는 미숙이를 허리춤에 차고 대장간으로 향했다.그곳에서는 쇠 두드리는 소리와 나무 깎는 소리가 요란했다."아니야! 탄성이 부족해! 산길을 타려면 충격을 흡
나는 피하지도 않았다.그냥 미숙이를 툭 내밀었다.깡!내 방망이가 그의 칼날을 때렸다. 쇠와 나무가 부딪쳤는데, 쇠가 비명을 질렀다. 와키자카의 손에서 칼이 튕겨 나가 바닥에 뒹굴었다."아..."그는 멍하니 빈손을 쳐다보았다.허무함. 평생을 갈고닦은 검술이, 막대기 하나에 무력화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말했잖아. 칼 버리라고."나는 놈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가볍네. 밥 좀 먹고 다니지 그랬어.""주, 죽여라... 무사의 명예를...""명예? 웃기고 있네."나는 놈을 바닥에 패대기쳤다.쿠당탕!모래바닥이라 뼈가 부러지진 않았겠지만, 충격은 꽤 컸을 것이다. 놈은 쿨럭거리며 몸을 웅크렸다."명예 찾는 놈이 미역 뜯어 먹으면서 숨어있냐? 진짜 명예를 안다면 배를 갈랐어야지."나는 놈의 갑옷 끈을 풀기 시작했다."이거 내놔. 넌 입을 자격 없어.""무, 무슨 짓이냐! 손대지 마라!"와키자카가 발버둥 쳤지만, 내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나는 놈의 투구를 벗기고, 갑옷을 벗기고, 안에 입은 비단옷까지 싹 다 벗겨냈다.잠시 후.천하의 명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하얀 훈도시(속옷) 차림으로 모래밭에 덩그러니 남겨졌다."으아아아! 죽여라! 차라리 죽여라!"그는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져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옷을 벗기는 건 목을 베는 것보다 더한 모욕이었다."죽이긴 왜 죽여. 넌 살아서 할 일이 있어."나는 바위에서 뜯어낸 젖은 미역 한 뭉치를 놈의 얼굴에 던졌다.철퍽.미역 줄기가 놈의 얼굴을 감쌌다. 짠내와 비린내가 진동했다."이거나 먹고 힘내라. 생일날 미역국도 못 얻어먹을 텐데, 미리 먹어두는 셈 치고.""크윽... 크으으..."와키자카는 미역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분노와 굴욕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기억해라. 조선 땅은 너희가 함부로 넘볼 곳이 아니다. 바다에는 이순신이 있고, 육지에는 내가 있다."나는 벗겨낸 갑옷과 칼을
파도가 붉게 물든 해안가.시체 처리는 얼추 끝나가고 있었다.익호군 녀석들은 신이 나서 왜군들의 갑옷을 벗기고, 품속에 숨겨진 은자나 부적 같은 전리품을 챙기고 있었다."대장님! 이놈은 금니를 했습니다! 뽑아가도 됩니까?"최가가 시체의 입을 벌리며 소리쳤다."적당히 해라. 죽은 놈 이빨까지 털면 꿈자리 사납다."나는 혀를 차며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수십 척의 왜선이 불타고 가라앉았지만, 개중에는 용케 도망친 배들도 보였다. 물론 이순신 장군님의 판옥선들이 끝까지 추격하고 있으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그런데 뭔가 허전했다."나대용 형씨. 아까 그 왜군 대장선, 침몰했습니까?"내가 묻자, 나대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글쎄요. 거북선이 들이받아서 반파되긴 했는데... 혼란 틈에 작은 배로 갈아타고 도망치는 걸 본 것 같기도 하고."그렇다면 살아있을 확률이 높다.와키자카 야스하루.용인 전투의 영웅이자, 일본 수군의 맹장.역사대로라면 그는 배를 버리고 인근 무인도로 도망쳐, 열흘 동안 미역만 뜯어 먹으며 연명하다가 겨우 탈출한다. 그리고 질기게 살아남아 정유재란 때 다시 쳐들어온다.'살려 보내면 귀찮아진다.'물론 여기서 죽인다고 역사가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놈의 콧대를 꺾어놓을 필요는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놈이 입고 있는 갑옷이 탐났다.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그 요란한 갑옷. 그거 팔면 쌀이 몇 석이야."최가야. 배 한 척 구해와라.""예? 배는 뭐 하시게요? 낚시라도 가십니까?""어. 대어(大魚) 낚으러 간다."나는 손가락으로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섬을 가리켰다."저기 숨어 있는 쥐새끼 한 마리 잡으러 가야지."화도(花島).한산도 근처에 있는 작은 무인도였다.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수풀이 우거지고, 해안가는 날카로운 바위로 둘러싸인 척박한 곳.우리는 노획한 왜군 전선(세키부네) 한 척을 타고 섬에 접근했다."대장님, 여기에 진짜 왜장이 있습니까? 그냥 바다에
붉게 새겨진 [미숙가단] 글자가 놈의 동공에 박혔다."손님. 여기 입장료는.""히익!"퍼억!"목숨이야."놈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미숙이가 놈의 이마를 강타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즉사였다.시작이었다."쳐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내 고함 소리와 함께, 숨어있던 익호군들이 해안가를 덮쳤다."와아아아!""죽여! 왜놈들이다!"해안가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바다에서 겨우 기어 올라온 왜군들은 무기도, 체력도 없었다. 그저 벌벌 떨며 기어 다니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타스케테쿠레! 코우산다! 코우산스루!(사, 살려줘! 항복! 항복한다!)"왜군 하나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 하지만 최가는 가차 없었다."머라고 씨부리는 거여? 조선에 왔으면 조선말을 혀야지!"푸욱!최가의 낫이 놈의 어깨를 찍었다. 놈은 비명도 못 지르고 쓰러졌다."대장님! 이쪽도 있습니다!"바위틈에 숨어있던 놈들을 춘식이가 찾아냈다. 대여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 떨고 있었다."처리해."나는 놈들에게 다가가며 미숙이를 휘둘렀다.붕- 퍽! 억!허리를 돌려 원심력을 실은 스윙.왜군들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흑단목은 피를 머금어 더욱 검게 빛났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피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크아악! 오니! 오니다!"뒤늦게 올라오던 왜군들이 그 참상을 보고 기겁했다. 놈들은 다시 바다로 도망치려 했다."어딜 가려고.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나는 등 뒤에 멘 활, 고삐리(고필)를 꺼내 들었다.시위를 당겼다.팽팽한 장력이 손끝을 파고들었다.'도망가는 놈 등짝 맞추는 게 제일 쉽지.'피융-!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파도를 헤치고 도망가던 왜병의 뒤통수에 꽂혔다."꼬르륵..."놈은 그대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붉은 피가 파도에 섞여 번졌다."나이스 샷."나는 연달아 화살을 날렸다.피융! 피융! 피융!백발백중.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