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44화

작가: 송진
박한빈은 전화한 후 서둘러 식당에 돌아가지 않고 정원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박하 냄새가 입안에 퍼지며 그의 마음도 점점 평온해졌다.

담배 한 대를 거의 다 피웠을 때 마침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박한빈은 발신자 번호를 힐끗 본 후 바로 꺼버렸다.

상대방이 또 전화를 걸어오자 박한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민 끝에 결국 전화를 받았다.

“박한빈.”

진무열의 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퍼플 프로젝트는 일부러 형에게 양보해서 낙찰받게 했어?”

박한빈은 가볍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진무열은 갑자기 웃었다.

“박 대표님은 정말 대범하네.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남에게 그저 양보하다니! 형이 성유리 씨와 혼인 신고 올리도록 도와주는 거야?”

“말 다 했어? 다 했으면 전화 끊어.”

박한빈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형이 성유리와 결혼하는 거 알아?”

진무열이 불쑥 말했다. 이 말은 마치 박한빈의 언어 시스템을 잘라버린 가위처럼 말문이 막히게 했다. 그는 심지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의심했다.

박한빈이 경악했을 거라고 짐작한 진무열은 웃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넌 아직 모르나 봐? 하긴, 안다면 이렇게 형을 돕지 않았겠지. 그럼 이 상황은 뭐지? 네가 전처를 위해 길을 터주는 셈인가? 그러고 보니 박 대표님은 정말... 대범하네.”

빈정거리는 진무열의 말을 들으며 박한빈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그럴 수 없어.”

박한빈의 단호한 말투에 진무열은 웃어버렸다.

“그럴 수 없다니? 이건 오늘 밤 형이 모든 사람 앞에서 인정한 일이야. 진심으로 성유리 씨를 사랑하고 결혼을 목적으로 교제한다고 했어! 말하자면 형은 너에게 고마워해야 해. 어제저녁 전까지만 해도 성유리 씨가 진씨 가문에 시집오려면 어려움이 많았어. 하지만 형이 퍼플 프로젝트를 따냈으니 시즌 그룹의 일등 공신이 되어 앞으로 누구와 결혼하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어.”

“그래서 두 사람이 결혼에 골인하게 되면 박한빈이 제일 큰 조력자야!”

진무열은 무슨 말을 더하고 싶었지만 박한빈은 이미 전화를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잠긴 챕터

관련 챕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45화

    “이런 사람은 없어. 그럼 왜 너의 사업에 도움이 될 사람을 거절해?”김서영은 여전히 이성적인 모습을 보였다.박한빈은 그녀의 이런 모습에 익숙했다. 만약 이런 김서영이 가르치지 않았다면 오늘의 박한빈도 없을 것이다.하지만 이때 김서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한빈이 물었다.“하지만 내가 왜 꼭 결혼해야죠?”이 물음에 김서영은 말문이 막혔다.박한빈은 싱긋 웃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저는 지금은 비록 좋아하는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나의 혼인으로 이익을 교환하고 싶지 않아요. 때문에... 나와 단예진 씨는 결혼할 수 없고 협력이 끝나면 아무런 관계가 없을 거예요.”말을 마치고 난 박한빈이 앞으로 나가려고 하자 김서영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하지만 혼인으로 이익을 교환하는 일은 지난번에도 하지 않았어? 다시 하는 것뿐인데 무슨 상관이야? 아니면 그전에... 상대가 성유리기 때문에 일부러 동의한 거야?”“아니에요.”이 말을 듣고 박한빈은 발걸음이 주춤했으나 대뜸 부인했다. 그러나 김서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박한빈을 지켜봤다.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지만 그녀의 비웃는 눈길에 박한빈은 불쾌해서 미간을 찌푸렸다.“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로 하지 뭐.”김서영이 계속해서 말했다.“하지만 한빈아, 거짓말을 해서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건 괜찮은데 자신까지 속여서는 안 돼.”박한빈은 김서영을 잠시 쳐다보다가 갑자기 웃어버렸다.“엄마의 이 말은 자신을 말하는 거예요? 분명히 그 사람이 밖에 사생아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엄마를 사랑한다고 모든 사람을 속였어요. 거짓말이 너무 많아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스스로도 분간할 수 없죠?”박한빈의 말이 끝나자 김서영의 표정도 조금씩 어두워졌다. 하지만 박한빈은 그녀를 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 정원을 떠났다.단예진은 거실에서 김난희와 얘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의외로 비위를 잘 맞춰주었는데 김난희는 웃느라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박한빈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시간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46화

    미화로.박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차를 몰고 이곳에 왔다. 지금 그는 손에 핸들을 잡고 앞에 있는 작은 골목길을 몇 번 쳐다보았지만 결국 차에서 내리지 않고 방향을 바꾸었다.그러나 그는 마침 봉지를 들고 약국에서 나오는 성유리를 보았다.오늘 금성의 기온은 아주 낮았다. 검은색 패딩을 입고 긴 머리를 어깨에 드리운 그녀는 추위에 코끝이 빨갛게 되었는데 부드럽고 얌전해 보였다.박한빈은 그녀를 보자마자 오늘 밤 어머니가 그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확실히 그는 혼인으로 이익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당시 두 가문에서 그와 성유리의 혼인을 말할 때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는데 그는 어머니의 그 말씀에 감명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누구와 결혼해도 차이가 없으니 차라리...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보니 아마... 틀린 것 같았다.‘혹시 내가 성유리를 좋아하는 건가?’박한빈은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결국 차에서 내리기로 했다.하지만 이때 진무혁이 그녀의 뒤에서 달려왔는데 두 사람은 무슨 논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무혁이 그녀의 손에 들린 물건을 빼앗았지만 성유리가 피하자 그는 이를 악물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제가 알아서 할게요.”이 말을 마치고 성유리는 곧 돌아서 떠났다.진무혁은 그녀를 막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비로소 몸을 돌려 떠났다.이때 그는 마침 길 맞은편에 세워진 박한빈의 차를 보았는데 박한빈은 이미 차창을 내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그들을 보고 있었다.진무혁은 주춤하다가 곧장 그를 향해 걸어갔다.박한빈은 움직이지 않고 차에 앉아 그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봤다.“박 대표님, 우연이네요. 하지만 박 대표님 신분으로는 이런 곳에 올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죠?”박한빈은 피식 웃었다.“제가 무엇을 하든 당신 승인이 필요해요?”박한빈의 말에 진무혁은 말문이 막혔으나 곧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건 아니죠. 그저 유리 씨의 기분을 고려해서 영향받을까 봐 걱정되었을 뿐이에요.”“영향?”“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47화

    그가 이렇게 말하자 성유리 비로소 그의 몸에서 술 냄새가 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눈도 조금 붉어졌는데 아무리 보아도 멀쩡한 것 같지는 않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직접 말해.”성유리가 말했다.진무열은 문 옆에 서서 한참 동안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보다가 말했다.“왜 내 약혼식에 안 왔어?”지난번 일 이후 성유리와 그는 연락이 없는데 지금 진무열이 불쑥 자신에게 묻자 성유리도 조금 의외였다.하지만 이내 냉정함을 되찾고 대답했다.“참석할 필요가 없었어.”“필요가 없다고? 우리는... 친구 아니야?”친구라는 두 글자를 진무열의 말은 더없이 어렵게 했다.성유리는 잠시 그를 바라본 뒤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너와 성유정이 손을 잡고 나를 모함했을 때부터 우리는 이미 친구가 아니었어.”“그래서 진무혁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복수하는 거야? 그래?”진무열의 표정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지금도 그 자식과 결혼할 생각이야?”“내가 무혁 오빠와 결혼한다고 누가 그래?”“아니야? 진무혁이 오늘 밤 진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인정했다. 그리고 방금 아래층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 나누는 걸 직접 봤어.”진무열의 말을 듣던 그녀는 어이없어 피식 웃어버렸다.“유리야,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거 알아. 저번에 내가 그렇게 한 건... 같이 죽자는 마음이었어.”“그런데 왜 하필이면 진무혁이야? 내가 진무혁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뻔히 알잖아. 이 세상에서 누구와 함께 있고 누구와 결혼하고 싶어도 괜찮지만 그 사람만은 안돼. 어릴 때부터 진무혁은 진씨 가문의 잘나가는 도련님이고, 나는 영원히 사람들 앞에 내세울 수 없었어. 먹고 쓰는 모든 것은 진무혁이 원하지 않는 물건들만 나에게 주어졌어.”“너도 알잖아...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됐을까?”“하지만 유리야. 넌 결국 날 배신했어. 왜 그랬어?”진무열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몸도 성유리 쪽으로 다가갔다.성유리는 문을 닫으려 했지만 진무열의 손은 이내 문에 닿았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48화

    진무열이 말을 할 때 입김이 전부 성유리의 뺨에 뿌려졌다.그 느낌에 성유리는 갑자기 자신이 지석민의 집에 있을 때가 떠올랐다.구역질이 순간적으로 치밀어 올랐지만 그녀는 천천히 이를 악물고 앞에 있는 사람을 주시한 채 말했다.“진무열, 오늘 감히 나한테 허튼짓을 하면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야...”“신고해.”진무열은 피식 웃으며 다시 말했다.“네가 지금 업계에서의 소문이 있는데 네가 하는 말을 믿을 사람이 있을 거로 생각해? 그때가 되면 다들 네가 날 꼬셨다고 생각할 거야?”진무열의 얼굴에 간사한 웃음이 떠올랐는데 그 모습 역시 성유리에게 익숙했다.하지만 이때 그녀는 익숙한 얼굴이 마치 자신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는 독사처럼 느껴질 뿐이었다.그녀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입술을 벌렸으나 말은 결국 창백하게 변했다.진무열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웃음을 더하더니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꽉 잡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유리야, 가자.”그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성유리의 입술에 키스했다.“오늘 밤이 지난 후 함께 이곳을 떠나 아무도 우리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시작하는 게 어때?”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손은 조용히 자신의 뒤 서랍을 열었다.진무열의 키스가 떨어지려던 참에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문을 발길질에 열렸다.요란한 인기척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박한빈이 문 앞에 서서 얼굴을 찡그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그의 각도에서 바라본 진무열의 손은 성유리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성유리의 한 손은 진무열의 어깨에 닿아 있었지만 얼굴에는 몸부림치는 기색이 전혀 없는 듯 보여 마치 자신의 난입으로 그들의 못다 한 키스를 방해한 듯 보였다.하지만 곧 박한빈은 뒤에 숨어 있는 성유리의 손을 보았는데 그녀는 가위를 쥐고 있다.박한빈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곧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진무열을 걷어차 땅에 쓰러뜨렸다.진무열은 아직 박한빈의 출현에 충격을 받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49화

    바로 그의 이런 냉정함 때문에 성유리는 그가 더 무서웠다. 성유리는 이런 박한빈을 처음 봤다.일반적으로 사람은 화가 났기 때문에 싸우지만 박한빈은 전혀 달랐다.성유리는 오히려 박한빈이 냉철해 보였는데 심지어 아까 진무열을 사람으로 보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저 그의 손에 들린... 물건처럼 죽든 살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다.이때 박한빈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성유리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박한빈은 그와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성유리를 힐끗 본 다음 직접 휴대전화를 꺼냈다.경찰에 신고하려는 박한빈을 보고 성유리는 어쩔 수 없이 달려들어 그의 손을 눌렀다.“안돼요...”박한빈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눈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먼저 병원에 보내요.”마침내 성유리는 목소리를 되찾았지만 박한빈은 대답도 움직이지도 않았다.한참을 기다려도 반응이 없자 성유리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더듬어 꺼내 전화하려고 했는데 손을 뻗고서야 그녀는 손에 가위를 든 채 휴대전화는 어디로 내팽개쳤는지 알 수도 없다는 걸 발견했다.성유리가 휴대전화를 찾으려고 돌아설 때 박한빈은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았다.“뭘 그렇게 두려워해?”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는데 성유리의 반응이 궁금한 것 같았다.“죽을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거야?”박한빈이 계속해서 물었다.이 말을 들은 성유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바라봤다.“걱정하지 마. 죽지 않아!”박한빈이 평온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성유리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고 박한빈을 바라봤다. 박한빈도 더는 고집을 피우지 않고 그저 비서에게 전화해 와서 처리하게 했다.“가자.”전화가 끊긴 후 그는 직접 성유리의 손을 잡아당겼는데 이에 그녀는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간다고요? 어디로... 가요?”“아직도 여기에 있고 싶어?”박한빈이 당연한 듯 물어보자 성유리는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박한빈은 아주 결단력이 있게 성유리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는 틈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50화

    박한빈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철했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성유리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그의 동작은 마치 성유리가 그의 뜻에 어울리지 않는 대답을 하면 당장 부숴버릴 것만 같은 착각을 주었다.“만나기 싫은 게 아니에요.”성유리가 대답하자 박한빈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그저... 만날 필요가 없었어요.”성유리는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우리는...”“그럼 전에 왜 나와 결혼했어?”박한빈은 갑자기 그녀의 말을 잘라버렸다.성유리는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곧 침착해졌다.“이건 우리 두 집안에서 약정한 일이에요...”“그저 이것 때문이야?”“아니면 또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은 조금씩 느슨해졌다.성유리는 이 화제가 끝난 줄 알았지만 곧 그는 천천히 계속해서 물었다.“성유리, 당신이 성씨 가문과 관계를 끊는 성격과 태도로 보아 그들에게 휘둘릴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만약 정말 이 원인이라면 넌 몇 달 전에 조씨네 아들과 결혼했을 거야.”박한빈은 말하면서 성유리를 쳐다봤는데 그 눈빛에 성유리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그러나 그녀는 곧 눈길을 피했다.“저는... 그저 후에 그들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아, 그래?”“아니면요? 다른 이유라도 있겠어요?”“당신이 나를 좋아해서 그런 줄 알았어.”박한빈의 말은 마치 주먹처럼 성유리의 심장을 때렸다. 심한 떨림과 통증이 있고 난 뒤 근육이 움츠러들면서 성유리는 호흡마저 빨라지기 시작했다.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마침 박한빈의 장난스러운 눈빛과 마주했는데 성유리는 자신이 광대 같아 보였다.벌거벗은 채로 무대에 올랐으나 조심스럽게 몸을 가리며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으려 했지만 나중에 옷감이 벗겨지면서 불빛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광대가 되어버렸다.성유리의 손이 조금씩 조여졌다.“왜 이렇게 말해요?”한참 만에 목소리를 찾은 성유리가 박한빈에게 물었다.“그냥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51화

    박한빈이 성유리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버리는 바람에 성유리는 더 말할 흥취도 없어졌다. 성유리는 서서히 입을 꾹 닫아버렸고 화가 난 듯 박한빈을 째려보았다. “왜냐하면 나도 이젠 알았어.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박한빈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너랑 결혼했을 때 별로 많이 불편하지 않았어.” “나한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줄래?” 성유리는 지금 눈앞에 놓인 모든 것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마치 절벽에 서 있는 듯 아찔한 기분이 들었고 조금만 발을 헛딛어도 바로 절벽 아래로 추락할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외로 뼈가 다 으스러지는 고통은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구름 위에 누워있는 듯 포근하고 기분 좋은 냄새도 났다. 서서히 눈을 뜬 성유리는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도, 절벽도 그리고 구름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방 구조는 성유리에게 아주 익숙했다. 그곳은 바로 시월파크였다. ‘그럼 어제 그게 꿈이 아니었다는 건가?’ 성유리가 멍하니 서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박한빈이 성유리에게 두 개의 기사를 보내준 것이다. 첫 번째 기사는 진무열에 관한 기사였는데 그가 어젯밤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골절만 했을 뿐 생명에는 위협이 없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지화그룹과 단풍 그룹에 관한 기사였다. 두 가문에서 함께 하던 일은 이미 순조롭게 끝이 났다는 사실과 뉴스 발표회에 기자가 박한빈에게 그와 단예진의 사이를 물었던 일이 적혀있었다. 박한빈은 단예진과 그저 친구 사이라고 대답하는 동시에 두 가문의 인연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으니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도 좋다는 대답을 했다. 그의 단호한 대답에 단예진과 났던 많은 추문들이 하루아침에 농담거리가 돼버렸다. 성유리는 아주 자세하게 두 개의 기사를 다 읽었지만 박한빈에게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사실 성유리는 아직 신분의 변화에 익숙해지지 않아 박한빈이 자신을 대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52화

    “그게...” 성유리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은 말을 끊어버리며 다시 물었다. “아직 안에 있어? 나 이미 도착했는데.” 그의 말에 성유리는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들자 마침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고 김서영 또한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다. 성유리와 김서영이 눈이 마주치자 성유리는 오히려 아주 냉정해졌다. “왜 오신 거예요?” “밥 먹으러.” 박한빈의 대답은 짧고도 명료했다. “지금 이미 엘리베이터 안이에요. 주차장에서 기다려주세요.” 성유리는 말하며 1층 버튼을 눌렀다. 김서영은 그때까지도 가만히 성유리의 앞에 서 있었다. 1층에 도착한 순간, 성유리가 내리려 하자 김서영이 발 빠르게 먼저 내렸다. 옆에 있던 남자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는지 멍해 있다가 별다른 말 없이 성유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김서영을 따라나섰다. 성유리는 바로 엘리베이터 문을 닫아버렸다. 주차장에 도착한 성유리는 박한빈의 차를 보고 나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 있어?” 박한빈은 오늘 운전기사도 없이 혼자 운전해서 이곳에 왔다. 운전대에 올려놓은 박한빈의 팔은 핏줄도 선명해 관능적으로 보이기 그지없었다. 성유리는 그런 박한빈의 팔을 조금 바라보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아무거나 다 돼요.” 그녀의 대답에 박한빈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성유리가 안전벨트를 다 메고 나서야 시동을 걸었다. 박한빈의 차가 시월 파크를 빠져나갈 때, 성유리는 길가에 서 있는 김서영과 남자를 발견했다. 운전을 하던 박한빈도 뭔가 눈치를 챘는지 성유리의 시선을 따라 그곳을 쳐다보려 했다. 그러자 성유리는 빠르게 박한빈의 손을 잡으며 그의 시선을 돌렸다. “갑자기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운전대를 잡고 있던 박한빈은 성유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하마터면 옆에 주차된 차에 부딪힐 뻔했다. 다행히 가까스로 사고를 막아낸 박한빈은 멍한 표정으로 성유리를 쳐다봤지

최신 챕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65화

    게다가 여러 번 성씨 저택으로 돌아갈 때마다 윤청하가 온갖 종류의 음료를 억지로 마시게 했기 때문에 성유리는 이제 집조차 돌아가고 싶지 않아 했다.이렇게 되면 원유진은 기회조차 잡을 수 없게 된다..시간이 지날수록 성유정은 점점 초조해졌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만약 정말 성유리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틀림없이 그녀와 박한빈 사이에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이 분명했다.박한빈은 책임감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녀의 어머니가 말한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성유리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따라서 그들이 아이를 가지게 되면 정말로 평생을 함께해야 할 것이다.며칠 동안 성유정은 이 일로 인해 초조해했고 윤청하가 다음 달에 그녀를 위한 생일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해도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이미 초대장을 보냈단다. 그때 도시 전체의 청년 권사들이 다 참석할 거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엄마한테 말해.”윤청하는 여전히 다정한 눈빛으로 성유정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성유정은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니?” 윤청하가 물었다.성유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윤청하를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전 아직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막 졸업했잖아요.”“바보야, 보자마자 지금 당장 결혼하는 게 아니야.”윤청하는 웃으며 말했다. “이건 너희들이 2년 동안 교제할 기회를 주는 거야. 그때 돼서는 약혼을 하고, 그리고 너...”“싫어요!”성유정이 화를 내며 말을 끊자 윤청하는 성유정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게 처음이라 당황했다.그러자 성유정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곧장 윤청하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엄마, 나 아직 어린데 연애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엄마 곁에만 있고 싶어요.”“바보야, 결혼해도 언제든지 올 수 있잖아.”윤청하는 이렇게 말하며 핸드폰에 있는 사진들을 보여주며 말했다.“일단 한번 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니?”성유정의 마음에는 박한빈밖에 없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64화

    “너 왜 저 여자를 감싸는 거야? 내가 방금 한 말 틀렸어?!”원유진은 성유정이 방으로 끌고 들어갔을 때도 여전히 분노에 차 있었다. “저 여자가 네 모든 걸 뺏어갔잖아!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저 여자도 어차피 성씨 가문의 핏줄이니 조금 나눠 주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박한빈은 달라! 전에 박한빈과 사귀던 사람은 분명 너였잖아!”“모두가 너희 둘이 한 쌍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결과는 어땠어? 결국엔 김서영을 꼬드겨서 네 약혼자를 빼앗았잖아!”“유진아, 그만해.”성유정은 원래 차분한 태도였지만 원유진이 박한빈에 관한 얘기를 꺼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원유진은 자신이 잘못 말했음을 깨닫고 서둘러 사과하며 말했다.“미안해, 네가 상처받은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됐는데. 하지만 나는 저 여자의 저런 태도를 참을 수가 없었어. 마치 자기가 피해자인 것처럼 굴잖아. 박한빈도 마찬가지야. 분명 널 좋아하면서 왜 굳이 어머니 말만 따르는지...”“유진아, 네가 틀렸어.”성유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와 한빈 오빠는... 이제 가능성이 없어.”“왜?!”원유진이 말했다.“내 생각엔 그렇지 않아. 박한빈이 어머니 말을 따라 성유리와 결혼했다지만 내 생각엔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네가 자리 잡고 있어서 전혀 좋아할 리 없다고.”“그들은 이미 아이가 있어.”성유정이 다시 그 말을 끊자 원유진은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서서히 눈을 크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성유리를 바라봤다.“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지?”성유리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거짓말하는 게 아니야. 이 일은... 우리 두 집안 사람들도 다 알고 있어. 아직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야.”“그래서 내가 말한 거야, 나와 오빠는 불가능하다고.”“예전에는... 난 자신을 속이며 그가 부모님과 박씨 가문의 명예 때문에, 설령 언니와 결혼했다 하더라도 그저 명목상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어.”“하지만 지금은, 언니가 이미 임신했어. 난 정말... 이제는 자신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63화

    상대방은 마침 그녀 앞에 도착했다. 빨간 치마의 디자인은 매우 화려했고 두껍게 바른 립스틱은 그녀를 더욱 젊고 화사해 보이게 했다.이런 차림새는 분명히 병문안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유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성유리를 위아래로 훑어본 후 말했다.“네가 여기 있었네. 나는 사모님이 아주 바쁘신 줄 알고 한 번 얼굴 보려고 해도 예약을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원유진은 성유리에 대해 여전히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악의를 드러냈다. 성유리는 원유진과 잠시 눈을 마주친 후 가볍게 대답했다.“어.”그 반응에 원유진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지금 무슨 태연한 척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성유정이 지금 이렇게 되었겠어? 박씨 집안 사모님이 될 사람은 원래 성유정이였어! 왜 돌아왔어? 돌아오자마자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빼앗아갔잖아!”“너는 어젯밤에 성유정이 왜 교통사고가 났는지 알아?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그녀가 그렇게 많이 마셨던 거고!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차와 부딪힐 수 있었겠어?!”“성유정이 거의 죽을 뻔했다고, 알아?!”원유진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원유진은 독을 품은 눈빛으로 계속해서 성유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 눈빛을 날카로운 칼날로 만들어 성유리의 몸을 찌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성유리는 다소 의아해하며 말했다.“성유정이 어젯밤에 술을 마셨다고?”“맞아! 바로 네가...”“그렇지만 내가 성유정에게 술 마시라고 한 건 아니잖아.”성유리가 말했다. 가볍게 던진 한마디에 원유진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성유리를 보며 물었다.“ 뭐라고?”“나는 어젯밤에 성유정과 연락한 적도 없고 성유정이 술 마시러 간 것도 전혀 몰랐어. 그 차... 내가 사고를 낸 사람도 아닌데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성유리가 원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단순한 질문을 하는 것 같지만 원유진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국 자신을 조롱하는 것이었다.원유진이 뭔가 말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62화

    박한빈은 그곳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진지하면서도 날카로웠고 그녀의 얼굴에서 작은 불만이라도 읽어내려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평온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오히려 그가 서둘러 떠나길 바라는 듯했다.박한빈은 지금까지 자신의 남편을 다른 여자한테 밀어내는 그런 여성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매번 그녀는 그렇게 행동했다. 마치 그가 집안의 결정에 따라 결혼한 것처럼 말이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을까?그녀가 그와 결혼한 것은 어쩌면 성씨 가문과 다투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그녀와 성유정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사실은 박한빈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일이었다. 그는 아무리 그녀가 진짜 자식으로 태어난 딸이라 하더라도 성씨 집안 부모님 앞에서 성유정의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원래 그 자리는 본래 그녀의 부모님께 속해야 했기에 그녀가 질투와 슬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따라서 박한빈과의 결혼 약속을 받아들인 것은 성유정에 대한 강력한 복수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그녀는 결혼 후에도 그에게 변함없이 냉담했다.그녀는 그가 저녁 몇 시에 돌아오는지 출장은 어디로 가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와 성유정 사이의 친밀한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직접 선물을 건넸을 때도 그녀는 조금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보다도 그녀가 원래 결혼하고 싶어 했던 이는 오히려 진씨 집안의 그 사생아였을지도 모른다. 이때 박한빈은 어젯밤 그녀가 자신의 앞에서 이빨을 드러낸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그녀의 온화하고 순진한 모습과는 다른, 진짜 성유리의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그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그렇다면 진씨 가문의 그 사생아는 어땠을까?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그들 사이의 감정은 아주 좋았다고 한다. 만약 그때 자신이 약간의 수를 써서 진씨 가문이 그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남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61화

    성유리의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등을 쭉 펴며 몸을 돌렸다.“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내려와서 드세요.”가사도우미의 얼굴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저 공손하게 말할 뿐이었다.성유리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씻고 나가야겠어요.”말을 내뱉자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마치 오래도록 병을 앓은 노파처럼 거칠고 허스키하게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알겠습니다.”가사도우미가 곧장 대답했다.돌아서서 가려던 순간, 성유리가 갑자기 가사도우미를 불러세웠다.“저기... 박한빈은 어디에 있어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도련님께서는 아침 일찍 떠나셨습니다.”가사도우미가 대답하며 덧붙였다. “문 앞 경비원 말로는 새벽에 나가신 것 같다고 하던데요.”말이 끝나자 성유리는 마치 조각상처럼 멍하니 서서 한동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부인님?”가사도우미가 한 번 더 부르자 성유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가사도우미를 바라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알겠어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앞에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차갑게 식었다.비록 경비원이 모호한 시간을 말했지만 성유리는 그것이 분명히 그들의 일이 끝난 직후임을 알고 있었다.그는 그녀와 함께 자는 것을 그토록 싫어했고 심지어 단 하룻밤조차도 감내하기를 원치 않았다.그렇다면, 그런데도 그는 왜...성유리는 생각하자마자 곧바로 답을 알게 되었다.어차피 그녀는 그저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필요할 때 사용하고 필요 없을 때 버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녀는 오히려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했다. 어젯밤 박한빈이 그녀를 방에서 내쫓지 않았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저녁에 박한빈은 꽤 일찍 돌아왔다.성유리는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그의 자동차 엔진 소리를 들었다.그녀는 순간 멈칫했으나 금방 아무렇지 않은 척 문 앞으로 가방 문을 걸어 잠갔다.문을 잠그고 나서야 그녀는 다시 컴퓨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60화

    “저 좀 놔주세요.”“제발 살살 좀... 박한빈 씨, 제발.”두 달 넘게 억눌러왔던 욕망을 지금 이 순간 남자는 모조리 터뜨리고 있었기에 성유리를 쉽게 놔줄 리가 없었다.성유리는 물에 빠졌다가 막 나온 사람처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목과 얼굴에 들러붙었고 붉어진 눈동자 너머로 드러난 얼굴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요염하고 아찔했다.마치 물속에서 기어 나온 아름다운 요괴 같았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한빈은 성유리의 손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꼭 이 순간, 그녀를 완전히 무너뜨리겠다는 듯이.처음에 성유리는 그저 순순히 따르려고 했다. 하지만 뱃속의 아이를 무시하는 박한빈의 무심한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다.도저히 참을 수 없던 성유리는 몸을 뒤로 젖히며 박한빈의 어깨를 있는 힘껏 물었다.가지런한 치아 사이로 살짝 튀어나온 왼쪽 송곳니가 그의 피부를 파고들었고 곧 입안에 피비린내가 퍼졌다.갑작스러운 ‘공격’에 박한빈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성유리의 턱을 꽉 쥐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날 문 거야?”그제야 성유리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지금까지 박한빈은 늘 순하고 얌전한 그녀만을 봐왔었다.성유리 역시 박한빈에게는 순응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왔지만 이번엔 달랐다.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가자 성유리는 본능적으로 입술을 오므리고 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젠 정말 못 참겠어서...”박한빈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성유리를 바라봤다. 방금 그녀가 화가 난 고양이처럼 자신을 물어뜯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그 장면이 묘하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박한빈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그녀의 턱을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으며 느긋하게 대답했다.“아직 끝 내기엔 너무 일러. 걱정하지 마. 조금 살살 해줄 테니까.”성유리는 박한빈이 언제 자신을 놓아줬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예전엔 관계가 끝나면 그녀는 꼭 스스로 먼저 방으로 돌아갔었다.박한빈은 누군가와 함께 자는 걸 싫어했으니까.하지만 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59화

    박한빈은 아내인 성유리에게 한 번도 그런 사실을 얘기해주지 않았었다.“한빈이 왔니?”윤청하는 재빨리 박한빈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그럼 저녁 같이 먹을까?”“아니요.”박한빈은 차디찬 말투로 대답했다.“회사 일이 좀 바빠서 지금 가봐야 합니다.”바쁘다면서 박한빈은 한 바퀴 빙 돌아 성유정을 집까지 데려다줬다.성유리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숙여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리고 그때, 박한빈이 성유리를 보며 물었다.“아직도 안 갈 거야?”박한빈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불만이 섞여 있었지만 성유리는 원래 거절하고 싶었다.하지만 만약 여기 남아 있으면 윤청하가 계속 이상한 한약을 먹으라고 강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던 성유리는 결국 박한빈을 따라가기로 했다.성씨 저택을 나선 박한빈의 발걸음은 매우 빨랐는데 성유리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 거의 뛰다시피 걸어야 했다.이내 차에 도착했을 때, 운전기사는 성유리를 보고 약간 놀라는 것 같았지만 바로 박한빈에게 물었다.“박 대표님, 회사로 가십니까? 아니면...”“회사요.”성유리는 박한빈 대신 대답했다.“가다가 적당한 곳에 내려 주세요.”그녀의 말이 끝났음에도 박한빈은 침묵했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쳐다보았다.“회사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하셨죠? 저 혼자 돌아갈 수 있어요.”심상치 않은 시선을 감지한 성유리가 바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박한빈은 그 말에 피식 웃었지만 성유리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그녀는 더 이상 말하기 싫어 차창 밖을 바라보며 몸을 창문 쪽으로 홱 돌려버렸다.그때 박한빈이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집으로 갑시다.”그의 목소리는 짧고 단호했다.그러나 성유리는 왜 집으로 가는지 묻지 않았고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성유리와 박한빈이 함께 집에 돌아오자 저택의 도우미들도 많이 놀란 듯했지만 그는 그들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집에 들어서고 성유리가 신발을 갈아 신으려는 순간, 박한빈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그대로 앞쪽으로 끌고 갔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58화

    윤청하가 말한 좋은 물건은 아니나 다를까, 또 출처 불명의 한약이었다.이번 한약의 냄새는 그렇게까지 자극적이지 않았고 윤청하도 성유리에게 이렇게 말했다.“이건 내가 수많은 사람을 찾아가서 겨우 찾은 거야. 모두 말하길 이 한약만 먹으면 남자아이를 낳을 수 있대!”성유리는 자신이 환청이라도 들리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 시대에 이런 역설적인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전 안 먹을 거예요.”성유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지금 제 뱃속에 아기가 있는데 이걸 먹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소용 있어! 그 사람들이 말했어. 만약 첫 6개월 안에 마시면 무조건 효과가 있다니까. 설사 성별이 정해져도 바꿀 수 있다고.”성유리는 순간 윤청하가 미친 사람처럼 보여 바로 반박했다.“전 안 마실 거예요. 그리고 저는 남자아이, 여자아이 모두 괜찮아요.”“너 미쳤어? 박한빈은 박씨 가문의 유일한 혈육이야. 그런 집에서 아들이 나와야 후계자가 되지 않겠어?”“하지만 이 아이는 박씨 가문의 아이일 뿐만 아니라 제 아이이기도 하죠.”“너...”윤청하는 뭔 말을 더하려고 했지만 성유리의 눈을 마주친 후 갑자기 뚝 멈췄다.성유리는 처음에 그녀가 자신에게 설득당한 줄 알았지만 이내 윤청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너는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도 모르겠지?”“너랑 한빈이도 결혼했으니까 이 아이가 여자일지라도 별문제 없을 거야. 너희는 아직 젊고 앞으로 기회가 많을 테니까.”“그런데 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어버렸어? 한빈이도 그걸 아직 모르겠지? 한빈이가 원했던 조건이 그렇게 까다로웠는데 전에 네가...”윤청하의 말은 여기서 멈췄지만 그 말의 의미는 곧 성유리의 안색을 창백해지게 만들었다.“그래서 난 계속 너한테 빨리 임신하라고 재촉했던 거야. 아들이 생기면 너는 박씨 가문에서 당당하게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잖아!”“세상에 감춰진 불씨는 없으니까... 한빈이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너는 어떤 결말을 맞을지 알겠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57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성유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내리깔았다. 마치 이 모든 일이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인 것처럼.박한빈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그리고 그의 시선은 갑자기 성유리의 손목으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역시 이럴 줄 알았어.’박한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서영이 계속 말을 하고 있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었다.그는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고 차에 올라탄 후 곧바로 운전사에게 시동을 걸라고 지시했다.운전기사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고개만 끄덕인 뒤, 빠르게 출발했다.웅장한 저택은 금세 뒤처졌고 몇 개의 거리를 지나니 복잡한 도시가 펼쳐졌다.박한빈은 그 도시의 반짝이는 네온사인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에서 화염이 치솟는 느낌을 받았다.그는 너무 답답한 마음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넥타이를 풀었다.그때 에릭의 전화가 걸려 왔고 박한빈은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전화를 받았다.이내 들려오는 에릭의 말에 박한빈은 바로 입꼬리를 쓱 올렸지만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한 번이라도 쳐다봤다면 알았을 것이다.박한빈은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어떤 감정도 없어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보였다.“들어보니까 꽤 흥미롭네.”박한빈이 대답했다.“나도 끼워줘.”“그럼 언제 올 건데?”에릭은 묻다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멈칫했다.“아, 맞다, 너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지? 신혼부부를 떼놓으면 와이프가 싫어하는 거 아니야?”“쯧, 내가 결혼하지 말라고 했지? 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건데? 잘 됐다. 지금 아주 그냥 잡혀 살고 있겠지.”박한빈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세상에서 누가 날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그리고 만약 아버지의 유언이 아니었으면 내가 걔랑 결혼했을까?”박한빈의 대답에 에릭은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말했다.“빙고! 이래야 박한빈이지. 그럼 요 며칠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