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내 장례식 날, 윤민재는 평소보다 훨씬 더 단정하게 자신을 꾸몄다. 그는 내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내 장례식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허준서는 원래 윤민재가 내 장례식장에 발조차 붙이지 못하게 막아설 작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엄마가 말리는 바람에 뜻을 꺾어야 했다. 그가 비록 자격 없는 남편일지언정, 법적으로는 내 배우자이니 친지와 친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죽어서까지 내가 손가락질받게 할 수는 없다는 엄마의 마음이었다.시어머니도 참석하셨는데, 가뜩이나 왜소하셨던 분이 단번에 수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윤민재는 줄곧 내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본인은 속죄라고 생각하겠지만, 이제 와서 그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그저 메스꺼울 따름이었다.장례를 마치고 윤민재는 윤하나를 가둬둔 오피스텔로 향했다.사흘 동안 굶주린 윤하나의 꼴은 이미 죽기 직전처럼 피폐했다. 문이 열리고 윤민재가 걸어 들어오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오빠, 내가 잘못했어. 내가 새언니인 척 톡 보내고, 다시 국내로 들어와서 오빠랑 새언니 사이 흔들어놓은 거... 나 진짜 잘못했어, 오빠, 제발...”윤하나가 진짜로 겁에 질렸다는 게 눈에 보였다. 이러다 윤민재의 손에 진짜로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그때 그 아이는 대체 어떻게 유산된 거야? 정말 소율이가 널 밀친 게 맞아?”윤하나는 진실을 털어놓아야 할지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윤하나, 기회는 지금뿐이야.”“새언니가 민 게 아니야... 내가 스스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거야.”“왜 그랬어?”“그 아이, 오빠 자식도 아니었고 그때 오빠도 새언니한테 흔들리기 시작했으니까.”“하나야, 우리 둘 다 죄인이었네. 같이 가서 소율이한테 사죄하자.”윤민재는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운 뒤, 겁에 질린 윤하나를 물속에 밀어 넣고 그녀의 손목을 그어 버렸다.그러고는 자신도 욕조 안으로 들어가 똑같이 손목을 그었다.서서히 의식이 아득해지는 죽음의 문턱에서 윤민재는 영
다음 날, 뜻밖에도 허준서가 다시 병원을 찾아왔다. 그는 말 한마디 없이 병실로 들이닥치더니, 다짜고짜 윤민재의 멱살을 틀어쥐고 밖으로 끌어냈다.“뭐 하는 짓이야? 미쳤어?”복도로 끌려 나온 윤민재가 불같이 화를 내며 손을 털어냈다.“우리 누나가 죽었다는 거 안 믿는다며. 오늘 내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 줄게.” 허준서는 무섭게 굳은 얼굴로 윤민재를 병원 밖으로 끌고 갔다.“미친 새끼, 나 안 가!”윤민재는 갑자기 극도로 발악하며 거부했다.“안 믿는다며, 그런데 왜 이렇게 발악해? 직접 가서 눈으로 보면 알 거 아니야, 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야!”윤민재는 기를 쓰고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허준서에게 질질 끌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허준서는 윤민재를 내 시신이 안치된 안치실 냉동고 앞으로 끌고 가 무섭게 짓눌렀다. 그리고 차갑게 얼어붙은 내 얼굴을 강제로 보게 했다.내 시신을 마주한 윤민재는 무의식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중얼거렸다.“이건 허소율이 아니야! 소율이가 아니라고! 그렇게 이기적이고 지독한 여자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었을 리가 없어!”“뭘 그렇게 두려워해. 눈 똑바로 뜨고 네 마누라가 어떻게 죽었는지 똑똑히 봐! 누나는 죽어가는 와중에도 네 핏줄 살리겠다고 발버둥 쳤어. 그런데 너희 년놈은 병원에서 애틋하게 놀아나고 있었잖아!”허준서는 발악하는 그의 고개를 짓눌러 강제로 내 시신을 직시하게 만들었다.내 주검을 마주하자 윤민재는 돌연 오열하며 빌기 시작했다.“미안해, 여보. 난 정말 그러려던 게 아니었어. 네가 죽기를 바란 적은 없었어, 정말이야. 난 그냥 하나가 몸이 약해서, 하나 먼저 구하고 널 구하려고 했던 것뿐이라고. 네가 죽을 줄은 정말 몰랐어.”윤민재는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내 시신을 향해 애원했다.“여보, 그만 자고 일어나. 우리 집에 가자. 이혼 안 할게. 내가 앞으로 진짜 잘할 테니까 제발 일어나 봐. 나 좀 보라고, 제발.”“개수작 부리지 마, 가증스러운 새끼야. 우리 누나 죽었
사람이 서로의 눈을 맞추며 그려 내는 그 다정하고 아늑한 풍경을 보고 있자니, 가슴 속 깊은 곳이 순식간에 날카로운 칼날로 도려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내가 살아있었다면 분명 그들 사이의 눈엣가시에 불과했으리라.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사그라드는 건 정말이지 한순간이었다. 평생을 갈 것처럼 지독하고 집요했던 윤민재를 향한 내 사랑이, 그 찰나의 순간에 거짓말처럼 깡그리 깨져 버렸다.나는 윤민재가 윤하나를 보듬고 달래며, 배 속의 애와 함께 셋이서 누릴 헛된 행복을 속삭이는 소리를 그저 잠자코 들었다.이제 그를 향한 마음 따위 깨끗이 정리가 된 줄 알았는데. 그런데 왜 가슴 한구석은 이토록 곪아 터지다 못해 피고름이 흐르듯 아린 걸까.사랑하지 않으면 그의 곁을 떠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 영혼은 여전히 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나는 그가 윤하나를 재우고 병원을 나서 차를 모는 내내 뒤를 쫓았다.윤민재는 유아용품점에 들어가 아기 물건들을 한아름 샀다.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내가 임신했을 때 나도 윤민재에게 같이 아기용품을 사러 가자고 졸랐던 적이 있었다.그때 그는 너무 이르다며, 태어나면 그때 보자는 말로 차갑게 나를 거절했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다른 여자의 아이를 위해, 내가 그토록 꿈꿨던 그 일을 너무나 즐겁게 해내고 있다.유아용품점을 나온 그는 곧바로 주얼리 매장에 들어갔다.그는 금팔찌와 작은 금 열쇠를 골랐고, 결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우리가 결혼할 때, 나는 그에게 금목걸이, 금팔찌, 금귀걸이를 세트로 해 달라고 졸랐던 적이 있다.정말 금이 탐나서가 아니라 그저 남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인을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하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심지어 나를 적당히 둘러대며 달랠 성의조차 보이지 않은 채, 변명거리 하나 찾으려 하지 않았다.그때 그는 차가운 얼굴로 내게 자신은 속물적인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었다.그런데 지금, 그는 제 발로 윤하나를 위해 금팔찌를 사고, 그들의 아이를 위해 금
나는 믿기 힘든 폭언에 경악해 눈을 크게 떴다.‘윤민재가 대체 무슨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이 x발 놈이 돌았나! 우리 누나야, 피는 안 섞였어도 어릴 때부터 나 업어 키운 누나라고. 어디서 함부로 그 개 같은 주둥이를 놀려!”허준서는 극도로 분노해 눈이 핏발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윤민재, 내 딸은 너한테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 소율이랑 준서가 비록 피를 나눈 남매는 아닐지언정, 네 입에 그렇게 더럽게 오르내릴 애들은 아니야.”엄마 역시 눈앞의 남자를 생전 처음 본다는 듯, 경악과 충격에 휩싸인 얼굴이었다.“제가 없는 말 지어내는 건지 아닌지는 본인들이 제일 잘 알 겁니다.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요. 야심한 새벽에 허준서가 허소율 방에서 나오는 걸요.”“떳떳하지 못한 짓을 한 게 아니라면, 다 큰 동생이 오밤중에 누나 방에서 뭐 하러 나옵니까? 그러고 나서 한 달 뒤에 소율이가 임신했는데, 그 핏덩이가 과연 누구 애겠어요?”윤민재 역시 차가운 눈빛으로 허준서를 쏘아보았다.나는 윤민재를 응시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내가 그토록 수치심도 모르는 천박한 여자로 전락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날 밤, 나는 급성 위장염으로 쓰러져 허준서의 부축을 받아 응급실에 갔고, 입원이 필요해 허준서가 세면도구와 옷가지를 챙기러 잠시 내 방에 다녀온 것뿐이었다.그날 밤 병원으로 돌아온 허준서는 집에 갔을 때 윤민재와 마주쳤다는 말을 전해 주었었다.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그이가 나를 보러 병원으로 찾아와 줄 거라 굳게 믿으며 가슴을 졸였었다. 비록 크게 다툰 뒤 화를 참지 못해 친정으로 뛰쳐나온 상태였지만, 내가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면 적어도 달려와 줄 거라 믿었던 것이다.하지만 내가 퇴원하는 그날까지 윤민재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는 내가 입원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자신과 윤하나의 그 지저분한 관계처럼, 남동생과 부적절한 짓거리나 저지르고 다닌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차라리 내가 이미
세 사람이 병실에 도착했을 때, 윤민재는 윤하나에게 정성스레 소고기죽을 떠먹여 주고 있었다.애틋해 보이는 둘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졌지만, 신기하게도 전처럼 심장이 찢어질 듯 아프진 않았다.죽고 나니 모든 게 무뎌진 모양이었다. 이미 죽은 마당에 그들이 무슨 짓을 한들, 내가 살아있을 때처럼 날 다치게 할 수는 없을 테니까.가장 먼저 이성을 잃고 폭발한 것은 허준서였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윤민재를 노려보던 그는 윤민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윤하나에게 죽을 떠먹여 주는 모습을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윤민재에게 주먹을 날려 바닥에 쓰러뜨린 뒤, 사정없이 발길질을 퍼부으며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야! 우리 누나가 눈이 멀어서 너 같은 쓰레기를 좋아했던 거지! 누나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넌 여기서 이 년이나 챙기고 있어? 누나가 억울해서 어떻게 눈을 감아!”허준서는 윤민재를 그 자리에서 죽여버릴 기세로 눈이 돌아 덤벼들었고 윤민재 역시 순순히 맞아주지 않고 맞받아쳤다.두 사람의 난투극은 의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강제로 떼어놓은 후에야 겨우 끝이 났다.“허준서, 너 미쳤어? 입 함부로 놀리지 마. 감히 어디서 욕설이야? 그리고 허소율이 죽어? 다들 유치하게 단체로 약이라도 먹었어? 그따위 조잡한 거짓말에 내가 속아 넘어갈 줄 알고?”윤민재는 몹시 불쾌하다는 듯 솟구치는 혐오감을 숨기지 않은 채, 허준서를 차갑게 노려보며 일어섰다.“가서 똑똑히 전해. 직접 기어 와서 하나 앞에 무릎 꿇고 빌면 용서해 줄 테니까, 이딴 무식하고 저급한 연극은 당장 치우라고. 이럴수록 정만 더 털릴 뿐이니까.”“개만도 못한 새끼가! 우리 누나는 진짜 죽었는데 죽은 누나더러 이 천하의 죽일 년한테 와서 사과하라고? 네놈이 그러고도 사람 새끼냐!”허준서는 제지당하는 와중에도 윤민재를 때리려고 악을 썼다.윤민재는 코웃음을 치며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았다. 이 모든 게 그저 내가 꾸며낸 자작극
내 시신은 이틀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참혹하게 발견된 내 몸과 얼굴은 온통 긁히고 찢긴 상처투성이였지만, 내 두 손만은 마지막 순간까지 배 속의 아이를 지켜내려는 듯 굳게 감싸 쥐고 있었다.구조대원은 즉시 내 남편에게 연락을 취하려 했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고 결국 소식은 우리 엄마와 시어머니에게 전해졌다.현장에 도착해 참혹하게 식어버린 내 시신을 확인한 엄마는 그 자리에서 오열하다 기절하셨고, 시어머니 역시 피눈물을 흘리며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두 분은 겨우 정신을 차린 뒤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아 내 시신을 황망히 장례식장으로 옮겼다.시어머니와 엄마는 윤민재에게 거듭 전화를 걸어 이 참혹한 소식을 전하려 했지만 윤민재는 매번 전화를 끊어버렸다.장례식장 안치실에 싸늘하게 누워 있는 나를 마주한 내 동생 허준서는 180cm가 넘는 거구의 사내답지 않게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누나, 그때 내가 어떻게든 뜯어말렸어야 했는데... 그 짐승 같은 놈한테 시집보내지 말았어야 했어.”“빨리 이혼하라고 더 세게 다그칠걸, 그랬으면 이렇게 허망하게 죽진 않았을 텐데.”허준서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가슴을 쥐어짜며 울부짖었다.나는 엉망진창으로 오열하는 허준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소용없었다고. 때의 나는 윤민재라는 남자에 미쳐 있어서, 그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노라고.나는 그를 사랑해서 스스로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내 모든 것을 내던지며 그와의 결혼을 강행했었다. 그가 나를 윤하나의 유산 범인으로 몰아세우며 이혼을 요구할 때조차, 나는 미련하게 그 손을 놓지 못했었다.돌이켜보면 이 결혼은 오롯이 나의 맹목적인 집착이 만들어낸 것이었다.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니, 그 모든 게 참으로 가소롭고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었는데, 내 남편이라는 작자는 여전히 그 여자 곁을 지키며 내 생사조차 물으려 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시어머니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눈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