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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묵묵연화
‘부탁받은 일?’

‘강성준인가?’

슬비의 펜끝이 잠시 멈췄다.

지난 1년 동안 슬비는 성준이 자신을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의사를 찾는 모습을 직접 봤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그러다 반년 전 주치의가 희천으로 바뀐 뒤, 슬비의 청력은 조금씩 좋아졌다.

그런데 왠지 마음 한쪽이 석연치 않았다.

‘강성준과 유 선생님은 그렇게 가까운 사이였나?’

‘하지만 평소 검사 받으러 올 때마다 유 선생님은 강성준에게 좋은 표정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는데...’

고개를 들고 희천을 보는 슬비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희천은 더 말하지 않았다.

“쉬는 데 방해하지 않을게요. 잘 회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문이 닫혔다.

병실에는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베개 옆 핸드폰이 몇 번 진동했다.

슬비가 핸드폰을 들어 훑어보니 대부분은 정여진이 보낸 메시지였다. 비행기 표를 끊었는지, 언제 호강시로 돌아오는지를 묻는 내용뿐이었다.

슬비는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3시에 보낸 메시지가 있었고, 가장 최근 것은 아침 7시였다.

곧장 답장을 입력했다.

[엄마, 이쪽에서 갑자기 일이 생겼어. 이틀 뒤에 갈게.]

전송하자마자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가장 아래에 있던 메시지는 성준의 메신저였다.

[어젯밤 많이 다쳤어? 조금 있다가 보러 갈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 갈게.]

슬비는 그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

고개를 숙여 대화창을 열고 딱 한 줄을 입력했다.

[오지 마, 우리 그냥 헤어져.]

전송한 뒤 곧장 번호를 차단하고 삭제했다. 모든 과정이 한 번에 끝났다.

슬비는 핸드폰을 침대 위에 엎어 놓고 눈을 감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표정은 담담했다.

...

같은 시각, 출근길 차량 흐름 속에서 검은 세단 한 대가 앞차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띵-

중앙 콘솔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다.

성준은 운전석에 앉아 한 손을 운전대에 걸고 있었다.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화면을 확인한 뒤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앞차의 브레이크등이 갑자기 켜졌다.

정신을 차린 성준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날카로운 제동음과 함께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안전벨트에 눌리면서 낮게 신음했다. 손에 들고 있던 커피도 쏟을 뻔했다.

“야, 성준아! 뭐 해?”

심우찬이 몸을 바로 세우며 성준을 봤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성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며 미간을 더 깊게 접었다.

조수석의 우찬은 성준의 어릴 적 친구였다. 전날 밤 룸에도 함께 있었다.

성준의 표정을 본 우찬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슬비가 보낸 메시지야?”

성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콘솔 위로 던지고 다시 차를 움직였다.

우찬은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고 짐작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시트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슬비가 화난 거 탓하지 마. 어젯밤 같은 상황이면 누구라도 속상하지.”

운전대를 쥔 성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찬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슬비는 성격도 순하고 너를 너무 좋아하잖아. 이따 병원 가서 잘 달래. 꽃 사 가고 좋은 말 몇 마디 하면 끝날 일이야.”

성준은 여전히 침묵했다.

우찬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혼자 떠들었다.

“생각해 보면 슬비도 참 불쌍하지. 남자 하나 믿고 호강시에서 북명시까지 혼자 왔잖아. 아는 사람도 없고, 귀도 못 듣고, 억울해도 참아야 하고.”

“예전에 시연이가 얼마나 괴롭혔는데? 그래도 참았잖아. 왜겠어? 널 사랑하니까. 그런 여자는 달래기 어렵지 않아.”

성준이 문득 입을 열었다.

“헤어지자고 했어.”

“뭐?”

우찬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앞쪽 차량들을 보고 있던 성준의 목젖이 움직이면서 낮게 다시 말했다.

“나한테 메시지 보냈어. 헤어지자고.”

“헤어져?”

우찬은 멍하니 있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치지 마. 슬비가 너랑 헤어진다고? 말이 돼?”

“슬비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예전에 시연이 그렇게 괴롭혀도 네 곁을 안 떠났잖아. 이 정도 일로 헤어질 리가 없어. 말도 안 돼.”

성준은 입을 닫았다.

우찬이 성준의 어깨를 툭 쳤다.

“걱정 마. 그냥 화가 나서 성질 좀 부린 거야. 병원 가서 달래면 바로 풀릴 걸.”

잠깐 말을 멈춘 뒤, 우찬은 덧붙였다.

“게다가 슬비는 귀도 못 듣고 북명시에 의지할 사람도 없잖아. 너 말고 누구한테 기대겠어?”

성준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은 앞쪽 차량 사이에 머물렀고, 눈동자 깊은 곳에 뭔가 스쳐갔다.

...

30분 뒤, 차는 병원 앞에 멈췄다.

성준이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열려 할 때, 붉은 그림자가 옆에서 뛰어나오면서 차문 앞을 막았다.

“오빠!”

시연이 차 밖에 서 있었다. 정성 들여 화장을 한 얼굴이었다. 넉넉한 니트에 짧은 치마를 입고, 드러난 하얀 종아리 아래 발목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가련해 보이도록 꾸민 모습이었다.

“왜 나왔어?”

성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발 안 아파?”

“아파...”

시연이 입술을 깨물고 막 말을 하려는데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시연은 곧장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빠야! 어떡해? 또 나 혼낼 거야. 오빠가 받아 줘...”

성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지만, 결국 핸드폰을 받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아버지...”

[성준이냐?]

전화 너머에서 잠시 말이 멎더니, 곧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연이는? 다친 곳은 어떠냐?]

성준은 아버지가 벌써 소식을 들었다는 사실에 입술을 다물었다.

“괜찮아요. 피부만 조금 긁혔고 심하지 않습니다.”

[심하지 않다니 됐다.]

강제선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어젯밤 일 들었다. 슬비가 시연이를 밀고, 뺨까지 두 대 때렸다지?]

성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버지, 그런 게 아닙니다.”

[나는 과정은 따지지 않는다.]

강제선이 말을 잘랐다.

[시연이는 네 동생이야. 오 회장이 예전에 내 목숨을 구해 줬고, 시연이는 그 집의 하나뿐인 딸이다. 시연이를 괴롭히지 못하게 해라.]

아버지가 또 같은 말을 꺼내자 성준의 눈썹이 접혔다. 얼굴에는 짜증이 떠올랐다.

[또, 시연이가 어렵게 돌아왔는데 자꾸 데리고 돌아다니지 말고 집으로 데려와라. 나랑 네 엄마도 시연이를 보고 싶어 한다.]

성준이 막 뭐라고 하려는 사이에 전화는 이미 끊어졌다.

핸드폰 화면을 노려보면서 성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시연이 성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오빠, 나한테 화내지 마. 내가 잘못했어...”

성준이 계속 굳은 표정을 짓고 있자, 시연은 얼른 세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앞으로는 오빠 말 잘 들을게. 오빠가 하라는 대로 전부 할게.”

성준은 입술을 다물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다시는 슬비 괴롭히지 마. 슬비는 네 미래의 올케야.”

입을 삐죽거리던 시연은 곧 웃으면서 성준의 팔을 붙잡고 말을 돌렸다.

“아빠랑 엄마가 나 보고 싶어 한다며? 우리 집에 가자.”

성준은 병원 쪽을 한 번 바라봤다. 방금 슬비가 보낸 이별 메시지가 떠올랐다.

‘됐어. 잠깐 이대로 내버려 두자.’

‘그래야 제멋대로 화내는 버릇도 고치겠지.’

성준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핸드폰을 시연에게 돌려줬다.

“가자.”

시연은 눈을 반짝이면서 얌전히 성준을 따라 차에 올랐다.

차문이 닫혔다.

성준은 고개를 숙여 메시지를 보냈다.

[아버지가 급히 찾으셔서 늦게 갈게. 잘 쉬고 있어.]

전송 버튼을 누른 성준은 곧바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메시지가 전송되지 않았다는 표시가 떠오른 것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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