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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작가: 지추새
3년 전, 배준기는 개인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하던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추락했다.

추락 지점은 바다였다.

구조대는 반 달 넘게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헬기 잔해와 일부 승무원의 시신만 건져 올렸을 뿐이었다.

비록 배준기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지만 광활한 바다에서 생존 가능성은 희박했다.

결국 배씨 가문은 배준기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

사실 추락당일, 중상을 입은 배준기는 고기잡이하던 김 씨 부녀에게 구조되었던 것이었고 부녀는 그를 월영도로 데려갔다.

월영도는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외딴 섬이라 통신과 교통이 극히 불편하여 외부 소식이 늦게 전달되는 곳이었다.

김지안의 아버지 김덕길은 배준기를 극진히 간호하며 섬마을 의원을 불러 치료를 받게 했다.

다행히 배준기는 몸이 튼튼하여 반 달 넘게 휴식을 취한 후 완전히 회복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잊은 채 매일 김씨 집안 일을 도우며 그들의 가족처럼 지냈다.

김덕길은 그의 모습에 매우 만족하며 김민천이라는 새 이름까지 지어주며 거의 사위처럼 여겼다.

그는 배준기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했을 뿐만 아니라 목공 기술과 어업 기술을 전수하며 섬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6개월 전, 김덕길은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배준기의 손을 꼭 잡고 그의 딸 지안을 잘 보살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몇 달 후. 배준기는 육지로 나가 장사를 하던 중 우연히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 정체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주다현이 배준기의 말을 토대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을 발휘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배준기의 설명은 그저 김 씨 부녀가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도왔다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김 씨 부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배준기가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다현은 김지안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지안 씨, 우리 준기 씨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두 분은 준기 씨의 생명의 은인일 뿐만 아니라, 내 아이와 배씨 가문 전체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예요.”

‘아이'라는 말에 김지안은 가슴 한쪽이 바늘로 콕 찌르는 듯했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빼며 딱 잘라 말했다.

“고마워하실 필요 없어요. 저는 누구 때문에 준기 오빠를 구한 게 아니니까요.”

주다현은 손을 뻗은 채 입술을 살짝 깨물며 천천히 손을 내렸다.

서경희가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

“다현이 말이 맞아. 지안이는 우리 배씨 가문의 은인이야.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 우리 배씨 가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할게.”

김지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제 아빠도 돌아가시고 준기 오빠도 가족을 찾았으니 이제 전 혼자예요. 그러니 더 이상 바라는 건 없어요.”

“그렇다면 지안이는 당분간 우리 집에서 머무르는 게 어떻겠니? 앞으로의 일은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자.”

말을 마친 서경희는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지시했다.

“집사, 가정부에게 지안 씨 방을 깨끗하게 정리해 두라고 하세요.”

김지안은 다급하게 말했다.

“아주머니, 저는 여기서 안 살아요! 저는... 준기 오빠랑 같이 있고 싶어요.”

사람들의 대화에서 배준기가 이곳에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그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촉촉한 눈망울로 배준기를 바라봤다.

“오빠, 저도 오빠랑 같이 살면 안 돼요?”

배준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엄마, 이제 덕길 삼촌도 안 계시고 지안이도 처음으로 이렇게 먼 곳에 왔으니 낯선 환경이 두려울 거예요. 일단은 제 곁에 두고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볼게요.”

“그건...”

서경희는 아들과 주다현을 번갈아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주다현은 잠시 기다리다 적당한 타이밍에 눈치 있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준기 씨 말이 맞아요. 지안 씨가 우리 집에 잠시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게다가 저도 지안 씨가 꽤 마음에 들고요.”

그녀가 정말로 관대한 건 아니었다. 거절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서경희는 겉으로는 그녀 편을 드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그녀가 먼저 흔쾌히 승낙하길 바라고 있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순순히 따르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배준기에게 좋은 점수를 딸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말이 끝나자 배준기는 고마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경희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해 주니 정말 다행이구나.”

‘흥, 역시나.’

주다현은 속으로 비웃었다.

...

주경시 중심부에 위치한 호화로운 단독 별장.

주다현은 마치 안주인이라도 된 듯한 태도로 말했다.

“집사님, 지안 씨를 동쪽 객실로 안내해 주세요.”

그곳은 주인 생활 공간과는 거리가 멀어 걸어서 최소 10분은 가야 했다.

그녀는 일부러 가장 먼 방으로 사람을 배치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집사는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인 뒤, 김지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지안 씨, 저를 따라오세요.”

그는 정중하게 손짓했다.

김지안은 화려하고 웅장한 저택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배준기를 바라보며 도움을 청했다.

“오빠...”

배준기는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가서 푹 쉬어, 오늘 하루 종일 힘들었잖아.”

김지안은 그 말에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럼 저 갈게요. 오빠, 안녕.”

그녀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아쉬운 듯 손을 흔들고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주다현은 곁에 서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 그림자가 복도 끝으로 사라지자 천천히 다가가 자연스럽게 남자의 팔을 감쌌다.

“준기 씨, 우리 아들 보러 가요. 정말 예쁘고 당신을 많이 닮았어요.”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의 온몸에서 부드러운 분위기가 풍겨져 나왔다.

배준기는 잠시 뻣뻣해졌지만 망설임 없이 팔을 빼냈고 심지어 약간의 바람까지 일었다.

주다현의 손은 공중에 멈춰 섰다가 천천히 거둬졌다.

벌써 두 번째였다.

아까 김지안에게 거절당한 데 이어 이번에는 배준기에게 거절당한 것이다.

‘내가 뭐 전염병이라도 돼?’

속으로는 투덜거렸지만 연기는 계속해야 했다.

주다현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너무 갑작스러웠나요?”

“아니요, 단지 낯선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게 익숙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으며 뚜렷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낯선 사람?”

주다현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상처받은 기색을 드러냈다.

배준기는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아까 아들 보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주다현은 그가 자신을 위로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빠르게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

“네, 가요.”

가는 내내 두 사람은 반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아기방 앞에 도착했다.

주다현은 살며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모가 아기를 달래는 소리와 아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형주야, 엄마 왔어.”

주다현은 부드럽게 속삭였다.

아기의 이름은 배형주, 올해 두 살 반이었다.

“엄마!”

아기는 고개를 번쩍 들며 맑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배형주는 두 팔을 벌리고 앙증맞은 발로 아장아장 달려왔고 보모는 그런 아기가 넘어질세라 재빨리 뒤따라왔다.

주다현은 환하게 웃으며 몸을 굽혀 달려오는 아들을 품에 가득 안고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형주야, 엄마 보고 싶었어?”

배형주는 뽀얀 얼굴을 앙증맞게 쳐들며 쫑알거렸다.

“네. 엄마가 엄청 보고 싶었어요!”

배준기는 뒤에 서서 그 훈훈한 광경을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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