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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작가: 지추새
식탁 앞에서.

주다현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물었다.

“지안 씨, 어젯밤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았어요?”

김지안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피부는 여자마저도 시선을 빼앗길 만큼 눈부셨다.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지?’

그녀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며 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다현 언니. 어젯밤에는 그럭저럭 잘 잤어요.”

사실 그녀는 자신의 방이 오빠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화가 나서 잠을 설쳤고 속으로 주다현을 수백 번도 더 욕했다.

그녀는 이 여자가 일부러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낯선 곳에 갓 도착한 데다 얹혀사는 처지였기에 속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주다현은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참, 나를 새언니라고 부르면 돼요.”

김지안은 일부러 순진한 척하며 말했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언니랑 준기 오빠는 아직 혼인신고를 안 했다고 하던데요. 결혼도 안 했는데 새언니라고 부르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김지안의 표정이 너무나 순진하고 꾸밈이 없어서 그녀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주다현은 스스로가 여우 같은 여자였기에, 이 어린 아가씨의 속셈을 간파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비웃었지만 얼굴에는 상처받은 표정을 지으며 윗자리에 앉은 남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배준기는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안아, 다현 씨는 네 새언니가 맞아.”

주다현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김지안은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곧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요, 오빠 말대로 할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주다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새언니, 안녕하세요. 이제 됐죠?”

주다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안 씨, 새언니라는 호칭이 어색하면 계속 언니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그냥 부르는 것뿐이니까.”

김지안은 할 말을 잃었다.

‘뭐지? 분명히 처음부터 호칭에 대해 따지고 든 건 그녀였는데 이제 와서 오히려 대범한 척한다고?’

김지안이 다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입을 열려고 찰나, 식당 밖에서 다급하게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보모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형주 도련님, 너무 빨리 뛰지 마세요. 넘어지면 어쩌려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작은 그림자가 식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품에는 소중한 듯 종이 한 장을 꼭 쥐고 있었다.

“아빠!”

배형주는 눈을 반짝이며 작은 총알처럼 달려가 아빠 품에 와락 안겼고 배준기는 재빨리 몸을 숙여 달려오는 아이를 품에 안아 올렸다.

배형주는 그림을 건네주려다 앞에 서 있는 낯선 누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빠, 이 누나는 누구예요?”

배준기가 말했다.

“아빠 친구분이야. 지안 누나라고 불러.”

배형주는 앙증맞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지안 누나, 안녕하세요.”

김지안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말했다.

“아니야. 그렇게 부르면 안 돼. 난 네 아빠의 동생이니까 고모라고 불러야 해. 알겠지?”

“네?”

배형주는 어리둥절해서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아빠, 누나예요, 고모예요?”

배준기는 김지안을 힐끗 보며 말했다.

“그럼 지안 고모라고 불러.”

“네.”

배형주는 다시 한번 인사했다.

“지안 고모, 안녕하세요.”

“그래.”

김지안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주야, 안녕.”

아이는 임무를 완수한 듯 그림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빠, 엄마, 보세요.”

“이거 형주가 그린 거야?”

배준기는 그림을 받아 들고 조용히 물었다.

그림에는 크레파스로 그린 세 개의 간단한 인물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크고 작은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활짝 웃고 있었고 배경으로는 초록색 잔디밭과 눈 부신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배형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해맑게 말했다.

“네, 제가 그린 가족 그림이에요.”

“이건 아빠, 이건 엄마, 이건 형주예요!”

그는 그림 속의 사람을 가리키며 신나게 설명했다.

배준기는 문득 가슴이 뭉클하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이는 고개를 젖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까만 포도알 같은 눈망울에는 기쁨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아빠, 내가 그린 그림, 예뻐요?”

배준기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형주야, 정말 잘 그렸네.”

주다현은 그런 부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김지안은 배준기와 붕어빵처럼 닮은 아기를 보자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기인가. 내가 낳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빠, 이거 먹고 싶어요.”

배형주는 아빠 품에 안겨 테이블 위의 샌드위치를 가리켰다.

“그래.”

배준기는 다정한 목소리로 샌드위치를 작게 잘라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다.

주다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보, 너무 오냐오냐하지 마세요. 이제 혼자 먹을 수 있어요.”

“한두 번은 괜찮아요.”

배준기는 아들 먹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김지안은 가슴이 쿡쿡 쑤셨다. 손가락은 칼과 포크를 꽉 쥐고 있었고 위에서는 신물이 올라왔다.

‘쯧, 여보라고 부르는 소리가 살갑기도 해라. 정말로 행복한 가족이네. 하지만 저 호칭도, 저런 행복한 모습도 전부 내 것이었어야 했는데. 오빠가 가족을 찾은 것뿐인데 왜 이렇게 꼬여버린 걸까?’

김지안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배준기에게로 향했다.

그는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옆모습은 조각처럼 완벽했고 눈썹과 눈매 사이에는 부드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김지안의 뇌리에는 3년 전 오빠를 처음 만났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날, 그녀는 아버지와 여느 때처럼 작은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

“오늘은 저쪽 해역으로 가 보자.”

김덕길은 거친 손으로 동남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제 저기서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하더라.”

김지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능숙하게 방향을 틀었고 디젤 엔진은 규칙적인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열아홉 살의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10년 동안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해 왔기에 이 해역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그녀는 뱃머리에 서서 해수면을 샅샅이 훑으며 물고기 떼를 찾던 중 멀리 떠다니는 물체를 발견했다.

“아빠, 저기 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김덕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바라보더니 얼굴색이 굳어졌다.

“큰일 났다. 사람 같은데!”

“정말요?”

김지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방향을 조절해 물체에 가까이 다가갔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그녀는 그것이 정말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게다가 젊은 남자였고 구명조끼를 입은 채 하늘을 향해 떠다니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종이처럼 창백했고 두 눈은 굳게 감겨 있었지만 희미하게 오르내리는 가슴팍이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아빠, 아직 살아 있어요! 빨리 구해야 해요!”

김지안은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보며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덕길은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사람이 누군지 어떻게 알고 함부로 돕냐? 혹시 불법체류자나 밀입국자면 우리만 곤란해질 수 있어.”

김지안은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핏기없이 창백하고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잘생긴 외모는 가려지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19년 동안 살아오면서 본 가장 잘생긴 남자였다. 티비에 나오는 영화배우보다 훨씬 더 멋있었다.

“아빠!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좀 도와줘요.”

김지안은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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