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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작가: 지추새
다음 날 아침 일찍.

주다현은 천천히 눈을 뜨고 옆자리를 더듬어 보았다. 손끝에 느껴지는 것은 차가운 공기뿐, 그는 이미 떠난 지 꽤 된 듯했다.

‘쳇, 역시 정나미 떨어지는 남자라니!’

그녀는 그저 살짝 그를 꼬드겨서 두 사람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같은 집에 그의 지안이라는 여동생도 있으니 배준기가 그녀를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의 욕망을 과소평가했다.

사랑과 육체적 관계는 별개의 문제였다.

어젯밤, 배준기는 마치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남자처럼 맹렬하게 그녀를 탐했다.

그녀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배준기가 마침 욕실에서 나왔다.

그는 허리에 수건 한 장만 두른 채 온몸에서 물기를 뚝뚝 흘리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주다현은 무심결에 그의 몸을 훑어보았다.

남자는 키가 크고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으며 넓은 어깨와 가는 허리를 가진 완벽한 체형이었다. 그의 모든 근육은 단단하고 힘이 넘쳐 보였고 강렬한 남성미를 풍기고 있었다.

예전의 그는 하얀 피부를 자랑했으며 탄탄한 복근을 가지고 있었지만 귀티가 흐르는 분위기를 풍겼다. 물론 냉정해 보이는 구석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뱃일을 많이 해서 햇볕에 그을린 탓인지 오히려 야성적인 매력이 더해졌다.

특히 그 부분에서 더욱 그랬다.

“침 닦아요.”

갑자기 남자의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준기는 말을 마치고 왠지 모를 낯선 기분에 휩싸여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저렇게 경박한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의아했다.

월영도에서 그는 답답이 김민천으로 통했으며 주변 사람들은 그를 답답하게 여겼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주다현만 만나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혹시 이것이 기억을 잃기 전의 나의 진정한 모습이었던 걸까?’

주다현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방금 그의 우람한 자태에 넋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수줍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보, 당신 지금 더 남자다워진 것 같아요.”

배준기는 헛기침하며 화제를 돌렸다.

“일어나서 아침 먹어요. 이따가 할머니 댁에도 가야 하니까.”

주다현은 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젖힌 채 입술을 삐죽 내밀며 애교를 부렸다.

“여보가 안아줘야 일어날 수 있는데~”

배준기는 눈 앞에 펼쳐진 매혹적인 얼굴에 홀린 듯 꼼짝도 하지 않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아앙~”

주다현은 성숙한 얼굴로 애교를 부렸다.

“준기 오빠~ 다리가 후들거려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단 말이에요~”

배준기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홀린 듯 발걸음을 떼 그녀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렸다.

주다현은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자연스럽게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여보 최고~”

배준기는 품에 안긴 여우 같은 여자를 내려다보며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그럼 이제 가...”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다현은 코끝으로 그의 목울대를 간지럽히고 고개를 들어 올려 살짝 내민 입술로 유혹했다.

“안아서 욕실에 데려다줘요.”

그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고 감미로웠다.

“알았어요.”

배준기는 홀린 듯 그녀의 말에 따르며 그녀를 안고 욕실로 향했다.

...

넓고 럭셔리한 드레스룸.

주다현은 실크 잠옷을 입고 허리띠를 느슨하게 묶어 깃 사이로 은은하게 속살을 드러냈다.

“이따가 어른들 뵈러 가야 하니까.”

그녀는 가냘프고 하얀 손가락으로 셔츠들을 훑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짙은 회색은 차분해 보이고 흰색은 얌전해 보이는데.”

고민 끝에 그녀는 셔츠 두 벌을 골라내 배준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여보, 뭐가 더 마음에 들어요?”

배준기는 색깔만 다를 뿐 디자인은 똑같은 두 개의 셔츠를 번갈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월영도에서는 러닝셔츠나 티셔츠를 입고 반바지를 입는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편안한 옷차림에 익숙했던 그는 고급스러운 소재로 만들어졌지만 어딘가 불편하고 격식을 차려야 할 것 같은 옷들을 보자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여보?”

주다현은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부드럽게 물었다.

“둘 다 마음에 안 들어요?”

배준기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부드럽고 섬세한 눈매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당신이 알아서 골라줘요.”

“음, 그럼 회색으로 하죠.”

주다현은 흰색 셔츠를 다시 걸어두고 다른 액세서리를 살펴보았다.

“넥타이는 음... 어차피 가까운 어른들 뵈러 가는 거니까 편하게 입는 게 좋겠지. 참, 어울리는 시계를 골라야지.”

그녀는 고급 시계가 진열된 유리 진열장 앞에 서서 몇 초간 고민하더니 파텍필립 시계를 골랐다.

“이걸로 하죠. 그리고 벨트는...”

배준기는 옆에 서서 그녀가 옷을 고르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정말이지 수다스러운 여자였다.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쉴 새 없이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평소에도 내 옷은 당신이 골라줬어요?”

주다현은 손을 멈추고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물론이죠.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후로는 제가 당신의 옷을 골라주는 게 일상이었어요. 당신은 제 패션 감각이 뛰어나다며 늘 칭찬했었는데.”

말하는 동안, 그녀의 눈에는 행복한 기색이 역력했다.

배준기는 그녀의 행복한 미소를 바라보았지만 가슴속에서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드레스룸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옷들은 전부 새것 같네요.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처럼 보여요.”

주다현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 옷들은 대부분 지난 3년 동안 새로 산 옷들이라 그래요. 실제로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도 많죠.”

배준기는 눈썹을 찌푸리며 의아한 듯 물었다.

“내가 없는데도 새 옷을 사들였다고요?”

주다현의 얼굴에 띤 미소가 약간 굳어지더니 점차 쓸쓸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저는 당신이 떠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계속 당신이 살아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 왔어요. 당신이 좋아했던 브랜드에서 신상품이 출시되면 늘 잊지 않고 주문해서 받았고요. 그러다 보니 이 옷방이 거의 가득 차 버렸네요.”

사실 그녀는 배씨 가문의 돈을 쓰면서 자신에게 고가의 명품을 사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배준기가 돌아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그 물건들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주다현의 마음은 쓰라렸다.

배준기는 화제를 돌리려고 했지만 주다현의 말 때문에 다시 그 이야기로 돌아오게 되었다.

“네.”

그는 짧게 대답하고 골라둔 옷을 들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전신 거울 앞에 서니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키가 크고 훤칠했으며 눈썹과 눈매에는 타고난 고귀함이 서려 있었다.

주다현은 그의 뒤쪽 반 미터 거리에 서서 거울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남자는 정말이지 완벽하게 잘생겼다. 뚜렷한 이목구비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고 비율 또한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여보, 이 옷차림 마음에 드세요?”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배준기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며 말했다.

“잘 어울리네요. 안목이 정말 좋군요.”

“당신이 좋아하니 다행이에요.”

주다현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가 옷매무시를 가다듬어 주었다.

배준기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진지한 옆모습을 바라보았고 콧속으로는 은은한 향기가 감돌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은밀하게 드러난 풍경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는 이 여자가 일부러 그러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왜 그토록 애를 써서 나를 유혹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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