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진짜예요?”그 한마디에 지하가 어떻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심장이 순식간에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숨까지 가빠졌다. 그는 두세 걸음에 진아 앞까지 다가가 손을 들었다가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멈춰 섰다.“지금, 내가 뭘 하면 돼요?”“주철민 교수님을 불러야죠!”시연은 울 듯 웃으며 말했다.“주치의부터 불러요!”“아, 알겠어요!”지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걸음은 빠르고 급했지만, 방향 감각은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지하!”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건이 급히 불렀다.“그쪽 아니야, 거긴 식당이야!”“아, 아!”지하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방향을 바꿨고, 겨우 병실 밖으로 나갔다.“정말...”시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다가, 문득 떠오른 듯 눈을 크게 떴다.“아, 맞다! 진아 부모님께 전화해야겠다!”‘혹시라도 정말로 진아가 깨어난 거라면...’...“어떻게 됐어?” 임병지와 채숙희가 거의 뛰다시피 도착했다. 주말이어서 임태권도 회사에 가지 않고 함께 왔다.“시연!”채숙희는 시연의 손을 꽉 붙잡았다.“진아 깬 거야? 정말이야?”“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시연은 채숙희의 손을 토닥였다.“주철민 교수님이 안에 계세요. 조금만 있으면 나오실 거예요.”“그래, 그래...”채숙희는 눈가가 붉어진 채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병실 복도가 조용해졌다. 진아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그 자리에 모여 있었다.시간은 느리게 흘렀다.기다리는 매 순간, 초 단위마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그때, 안쪽 병실 문이 열렸다.“나오셨어요!”지하는 눈꺼풀을 번쩍 들며 앞으로 나가려다가 이상하게도 발걸음을 멈췄다. 단 한 순간의 망설임 사이, 임병지가 채숙희를 부축하며 이미 주철민 교수 앞에 서 있었다.“교수님, 제 딸은 어떻습니까?”주철민 교수는 마스크를 벗으며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끄덕인 뒤 시연을 한 번 바라보았다.“지 선생님, 판단이 맞
다음 날 아침 일찍, 지하가 막 진아의 세면과 정리를 끝내고 나왔을 때 시연이 도착했다. 유건도 시연과 함께였다.“왔어?”지하는 두 사람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시연 씨, 마침 잘 왔네요. 시연 씨가 잠깐 진아 좀 봐 주세요. 저는 그사이에 아침 좀 먹을게요.”“네, 알았어요.”시연은 안으로 들어가 진아 곁에 앉았고, 유건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지하와 함께 밖에 남았다. 지하는 간단히 아침을 먹었고, 유건은 커피를 마셨다.“조이는?”지하가 물었다.“집에서 자고 있어.”유건이 말했다.“애들은 잠이 많잖아. 조금 있으면 깰 거야. 오후에 데리고 나가서 놀 생각이고.”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벌써 1년인데, 두 사람 결혼식은 안 할 생각이야?”“나는 하고 싶지. 하지만...”유건은 병실 안쪽을 한 번 흘끗 보며 말했다.“시연 말로는 예전에 했던 결혼식도 너무 힘들었대. 다시 한번 하는 건 너무 지친다고 하더라고.”“그럴 만도 하지.”지하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었다.“진아도 예전에 결혼식은 정말 힘들다고 했어. 특히 신부는 화장만 해도 몇 시간이잖아.” “그래서 조금 더 기다리려고.”유건이 고개를 끄덕였다.“지난 1년은 진아 씨 일 때문에 시연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병원에 복귀하느라 정신도 없었으니까.”유건은 시연과 이미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식을 다시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한 번은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을 모아 재혼했다는 사실을 알릴 생각이었다. 지금도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소문으로만 전해지는 것과 공식적으로 알리는 건 의미가 달랐다.한편 병실 안에서는 시연이 진아 곁을 지키고 있었다.뭔가 도와줄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지하는 정말 빈틈을 남겨 두지 않았다. 진아는 머리카락 한 올까지 말끔했고, 은은한 향까지 남아 있어 굳이 손댈 곳이 없을 정도였다.시연은 귤 하나를 집어 들고 천천히 껍질을 벗겼다. 껍질이 갈라지자 상큼한 향이 퍼졌다.시연과 진아는 둘 다 귤을 좋아했다.시연은 진아를 바라보며
아무래도 머리를 한 번 감기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편이었다.“번거롭지 않아요.”지하는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제가 있잖아요, 힘도 있으니까요. 이따가 제가 진아 안아서 욕실로 옮기고 머리랑 씻는 거 한 번에 다 할게요.”목소리는 무의식적으로 한층 낮아졌다.“진아는 원래 깔끔한 편이었잖아요. 예전에는 매일 샤워했고, 머리는 이틀에 한 번씩 꼭 감았고요.”진아가 멀쩡했을 때는 늘 그랬다. 지금은 아프니까, 그 몫을 지하가 대신하는 것뿐이었다.“아휴...”그 한마디에 채숙희의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그럼 내가 남아서 좀 도와줄까?”“아니에요.”지하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저 혼자서도 괜찮아요, 요 며칠 진아가 살이 조금 붙긴 했어도 아직은 충분히 안아 올릴 수 있어요.”그 말에 채숙희와 임병지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게.”채숙희가 웃으며 맞장구쳤다.“진아 볼살이 좀 올라왔더라.”“간호사분들이 잘 돌봐주셔서 그래요.”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조만간 제가 간식이랑 과일 좀 챙겨서 또 드리려고요. 늘 고생 많으시니까요.”“그래.”채숙희는 만족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물었다.“그런데 자네 저녁은 먹었나?”원래라면 두 사람은 지하의 저녁까지 챙겨 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하가 오늘은 일이 있다고 했던 탓에 이번에는 준비하지 않았다.“먹었습니다.”지하는 괜히 걱정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사실을 숨겼다. 채숙희와 임병지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 배달을 시켜 먹으면 그만이었다.“그래, 다행이다.”채숙희는 식탁을 정리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먼저 갈게.”“네.”지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인과 장모를 배웅했다.“조심히 가세요. 장인어른 운전 조심하시고요. 집에 도착하시면 꼭 연락 주세요.”“알았어. 자네도 들어가.”“네.”문이 닫히자 병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지하는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물을 받아 두었다. 온도를 몇 번이나 확인한 뒤, 다시 나와 이불을 걷고 진아를 조심스럽게 안아
본가를 나온 뒤, 지하는 직접 운전해 병원으로 향했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주 주말마다 이곳을 찾았다. G시에 없을 때나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식 일정이 있을 때를 제외하면, 병원에 오는 일은 지하의 생활이 되어 있었다.진아는 지금 VIP 병동 안쪽에 있는 가장 조용한 병실에 머물고 있었다. 병동 전체가 한산했고, 공기에는 병원 특유의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간호사 스테이션 앞을 지날 때, 간호사들이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부 대표님,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지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고,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간호사 스테이션 위에 올려두었다.“드세요.”“감사합니다. 부 대표님.”간호사들은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오늘은 뭐 가져오셨어요?”“‘레드’에서 나온 디저트요.”“과일도 있네요. 어머! 두리안도 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요!”“...”간호사들이 소곤거리며 웃는 사이, 지하는 이미 미소를 지운 채 병동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지난 1년 동안 그는 간호사 스테이션에 수없이 간식과 과일을 가져다주었다. 처음에는 젊고 잘생긴 데다 인심까지 좋은 지하를 보고, 간호사들 역시 쉽게 마음이 흔들렸다. 아내가 병실에 누워 있기는 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고, 앞으로 깨어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대를 가져도 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조심스럽게 오가기도 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간호사들은 깨닫게 되었다. 지하가 물건을 가져다주는 이유는 결코 가벼운 호의나 성격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정반대였다. 지하의 아내가 이 병동에 머무르고 있었고, 그는 아내를 잘 돌봐 달라는 뜻으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물론 이곳은 입원비도 비쌌고, VIP 병실의 비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형식적으로 돌보는 것과 마음을 다해 살피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듯,
이혜영은 아들을 노려보며 다급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럼 너는 어쩌겠다는 거니? 만약 진아가 지금 깨어 있기만 했으면, 병이 아무리 심해도 이런 말 안 했을 거야...”잠시 숨을 고른 뒤, 솔직한 마음을 토해냈다.“너도 알잖아. 엄마가 진아를 얼마나 좋아했는지...”이혜영은 미간을 깊게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지하야, 너도 현실은 알고 있잖니. 진아는... 깨어나지 못할 거야.”“어머니!”지하는 날카롭게 외치며 어머니의 말을 끊었다.그는 이 말을 가장 견딜 수 없었다.“의사는 그렇게 말 안 했어요! 진아가 백 퍼센티지 깨어나지 못한다고 말한 적 없어요!”“지하야...”이혜영은 아들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아프고 또 불안했다.“현실을 봐야 해. 진아는 벌써 1년 넘게 병원에 누워 있어. 깨어날 수 있었으면, 진작 깨어났겠지.”지난 1년 동안, 이혜영이 알아본 게 얼마나 많았던가.의학적으로 보아도... 진아 같은 경우는 깨어날 가능성이 극히 낮았다.“어머니가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진아가 안 깨어난다고 장담하실 수 있느냐고요!”지하의 어두운 눈동자에 핏기가 번졌다.“노은범도 3년 동안 혼수상태였다가 깨어났잖아요!”이혜영은 그 말에 잠시 말을 잃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지하야, 그게 얼마나 희박한 확률인지 알잖니? 만 명 중에 한 명 나올까 말까야. 노은범은 정말 운이 좋았던 거고...”“어머니가 어떻게 알아요?”지하가 말을 자르며 되물었다.“진아에게는 그런 운이 없을 거란 뜻인가요?”“그건...”이혜영은 말문이 막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그럼 너는 언제까지 이럴 건데? 진아가 하루 안 깨어나면, 하루 더 지킬 거니? 평생 이렇게 살 거야?”“모르겠어요.”지하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잠시 후, 낮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평생은 너무 길어서 아직 생각 못 했어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제 마음이 아직 진아한테 있어요. 저는 다른 사람을 받아들
주말이었다.퇴근 시간.지하는 책상을 정리하고 차 키와 핸드폰을 집어 들며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이혜영이었다.“여보세요, 어머니.”[아들, 오늘 저녁 집에 와서 밥 먹어. 잊지 말고.]“알아요.”지하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오늘만 벌써 몇 번을 말씀하세요. 제가 설마 잊겠어요?”[아니, 네가 갑자기 또 일이 생길까 봐 그렇지.]“일 없어요.”지하는 통화하며 걸음을 옮겼다.“다 정리됐고, 지금 바로 들어갈게요.”[그래, 기다리고 있을게.]“네.”전화를 끊은 지하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 후, 차를 몰아 부씨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그는 집에 도착했는데,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거실로 들어선 지하는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내가 너무 일찍 왔나?’형들도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뭔가 이상했다.형들이 바쁘다고 해도, 형수들이나 조카들까지 아무도 안 보일 리가 없었다.그때 발소리가 들렸다.이혜영이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지하, 왔니?”“어머니.”지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왜 저만 있어요? 형들과 형수님들은요? 아직 안 왔어요?”이혜영은 미묘하게 웃었다.“오늘은 안 와.”‘안 온다?’지하는 잠시 멈칫했다.‘이게 무슨 말이지?’농담조로 말했다.“설마 오늘 저 혼자만 초대하신 거예요?”“응.”이혜영도 웃으며 맞장구쳤다.“왜? 형들과 형수님들이 없으니까 집에 오기 싫은 거야?”“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거 아니에요.”모자가 가볍게 웃으며 말하는 사이... 다른 사람이 거실로 들어왔다.아주 젊은 여자애였다.여자애는 키가 크고, 피부가 유난히 하얬으며, 이목구비가 단정했다.걸어오며 손을 비비는 걸 보니, 화장실에서 나와 핸드크림을 바르는 중인 듯했다.그녀는 지하를 보고는 잠시 멈췄다가 조금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이혜영이 돌아보더니 여자애를 불렀다.“인희야, 이리 와.”“이모.”인희는 웃으며 다가왔다.이혜영은 인희의 손을 잡아 지하 앞으로 이끌었다.“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