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6화

Author: 임공
병실 안.

우주는 환자복을 입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이미 국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카락과 얼굴에도 밥반찬과 국물이 묻어 이목구비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중년의 간병인이 숟가락을 들어 우주의 입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먹어! 빨리 먹으라니까?! X신 같은 놈, 입도 못 벌리다니! 이 개돼지만도 못한 X! 아...”

갑자기 머리카락이 힘껏 뒤로 당겨진 그녀가 돼지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내었다.

그녀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어떤 정신 나간 새X야?! 너, 내가 누구인지 알아?!”

“허, 당신이 누군데요?!”

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시연은 온몸에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당신이 뭔데 내 동생을 때려?! 입만 열면 천박한 말을 내뱉는 주제에 왜 어린아이를 괴롭히냐고! 이 아이의 가족이 다 죽고 없는 줄 아는 거야?!”

시연이 더욱 팽팽하게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자, 그 간병인은 두피가 벗겨질 것 같았다.

“아파, 아프다고! 이거 놔!”

간병인은 전형적으로 약자를 업신여기고 강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벌벌 떨며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그래요,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고요!”

시연은 손을 놓으며 간병인을 바닥에 내동댕이쳤고, 닥치는 대로 도시락을 들고 간병인의 입에 음식을 쑤셔 넣었다.

“당신, 이렇게 억지로 먹이는 거 좋아하잖아? 당신도 당해봐!”

“아, 아...”

철제 숟가락은 간병인의 입을 거의 베어버릴 지경이었다.

간병인은 말하지 못하고 손짓으로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연이 어떻게 그녀를 가만히 둘 수 있겠는가.

찰싹!

시연이 손을 들어 간병인의 뺨을 한 대 때렸다.

“방금 내 동생을 이렇게 때렸지? 때리니까 속이 시원했니? 그런데 어쩌지? 이제 내가 배로 돌려줄 건데!”

찰싹, 찰싹, 찰싹!

몇 번의 따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간병인이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시연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가자, 당장 병원장님을 만나야겠으니까!”

“안 돼요, 제발!”

간병인이 부은 얼굴로 용서를 빌었다.

“아가씨, 이번만 용서해 주세요!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큰돈을 준다고 해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요!”

이 말을 들은 시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사주한 거야?”

“장... 장미리 씨요.”

‘그 여자였어!’

시연은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내가 도망쳤기 때문에, 몸을 팔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거야... 장미리의 보복이 이렇게 빨리 시작될 줄이야!’

‘하지만 보복하려면 나한테 해야 하는 거잖아?’

‘우리 우주는 왜 괴롭히느냐고! 우주는 겨우 14살이고 자폐증을 앓는 아이란 말이야!”

“당장 여기서 꺼져!”

“아이고!”

간병인이 줄행랑을 쳤다.

엉망진창이던 방을 하나하나 정리한 시연이 지우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주야, 누나랑 씻을까? 응?”

하지만 우주는 예전과 같이 대답하지 않았다.

시연이 익숙하다는 듯 우주의 손을 잡으려 하자, 그가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주야!”

시연이 기뻐했다.

“이제 네가 먼저 누나 손을 잡네? 누나를 알아보는 거야?”

하지만 우주는 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연은 여전히 매우 기뻤다.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드디어 반응을 보이는구나! 비록 작은 반응이긴 하지만...’

‘이번 치료가 효과가 있는 게 분명해!’

우주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간 시연은 그제야 흩뿌려진 음식과 국물 이외에도, 그의 바지가 소변으로 완전히 젖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간병인은 이걸 보고도 갈아 입혀주지 않고, 매정하게 무시했던 거구나!’

“우주야, 누나가 잘못했어.”

시연이 눈물을 참으며 목욕을 마친 우주의 옷을 갈아 입혀 줬다. 그러자 소년은 시원스럽고 준수한 이목구비를 뽐내기 시작했다.

소년이 조용히 의자에 앉자, 시연은 다시 밥을 지어 먹였다.

우주는 순순히 입을 벌리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시연의 옷을 잡아당겼다.

이 아이는 겁에 질려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글썽이던 시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주야, 무서워할 거 없어, 누나가 너를 지켜줄 거니까.”

시연은 요양병원을 떠나기 전에 그 간병인을 고발했는데, 돈을 받으며 사람을 해치는 사람을 남겨두면 다른 환자에게도 해를 끼칠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곧이어 시연은 차를 타고 지씨 저택으로 향했다.

‘장미리가 이렇게 잔인하게 우주를 괴롭히다니,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어!’

...

어둠이 내린 시각.

고유건은 차를 몰고 지씨 저택으로 가는 길에 장소미의 전화를 받았다.

[유건 씨, 어디까지 왔어요?]

유건이 말했다.

“차가 막혀서 좀 늦을 것 같아요.”

[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알겠어요.”

...

“시연 아가씨, 오셨어요?”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가 문을 열었으나, 시연은 가정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연은 부엌에서 물 주전자를 들고 다시 거실로 갔다.

그때, 장미리와 장소미는 서로의 손을 잡은 채 계단 입구에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흥.’

옅은 미소를 지은 지시연이 빠른 걸음으로 두 사람을 향해 돌진했다.

“지시연.”

장미리가 잠시 멈칫했다.

“낯짝이 참 두껍구나.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다니...”

순간, 비명이 울려 퍼졌다!

시연이 물 주전자를 기울여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끼얹은 것이었다.

소미가 놀라서 소리쳤다.

“아! 지시연, 너 미쳤어?!”

시연은 악랄한 눈빛으로 둘을 노려보며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미쳤냐고? 아니, 이건 고작 물일 뿐이잖아? 너희들이 간병인을 사서 우리 우주에게 끼얹은 건 뜨거운 음식과 국이었고!! 게다가 너희는 우주를 소변에 찌들어 냄새나게 했잖아!”

“엄마...”

장미리가 소미를 밀어내며 말했다.

“너는 상관할 거 없어. 시간이 늦었으니, 어서 올라가서 옷부터 갈아입어!”

“아, 알겠어요, 엄마.”

소미는 중요한 약속이 있는 듯 급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장미리는 시연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 역겨운 듯했다.

“그래! 내가 간병인더러 네 X신 같은 동생을 좀 괴롭히라고 했다, 왜?! 진 사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도망가는 큰 사고를 저지르면서도, 네 동생이 보복당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던 거니?!”

장미리는 시연이 우주의 치료비를 지불했다는 사실도 간병인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가 시연을 보는 눈빛은 경멸과 욕설로 가득 차 있었다.

“돈은 어디서 구한 거야? 대체 어떻게 구한 거냐고! 아, 몸이라도 판 건가? 어차피 몸을 팔고 있었으면서, 집에 도움이 되기는 싫었던 거니? 천박한 X, 양심은 지나가던 개한테 먹이로 준 거야?!”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시연은 오히려 미소를 지은 채 장미리를 거세게 때렸다.

“당신은 그 입이 문제야, 그런 입은 없애 버려야 한다고!”

“허?”

장미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박한 X, 네가 감히 나를 때려?!”

그녀는 곧바로 일어나 시연을 때렸다.

순간, 두 사람은 뒤엉켜 몸싸움을 벌였으나, 시연은 곧 장미리를 눌러서 자신의 몸 아래에 두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좌우로 폭행하니, 장미리는 당해낼 힘이 없었다.

“장미리, 내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알아?! 네가 때리고 욕해도 가만히 있는 어린애인 줄 아냐고!”

지난 십여 년 동안, 시연은 단 한 번도 반항한 적이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이 너무 어렸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동생 우주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연은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

시연이 눈시울을 붉히며 노발대발했다.

“나는 이제 다 컸지만, 당신은 늙었어! 한 번만 더 우리 우주를 괴롭히면, 우주가 당한 그대로 갚아줄 거야! 알겠어?!”

“아아...”

장미리가 소리를 치며 울부짖었다.

“살려줘!”

그녀가 구석에 숨어 있는 가정부를 한 번 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뭐 하고 있어? 당장 신고하지 않고! 이러다 죽겠어! 큰일 나겠다고!”

“무슨 일이야?”

가정부가 경찰에 신고하기도 전에 지동성이 돌아왔고, 급히 달려들어 시연을 잡아당겨 바닥에 넘어뜨렸다.

“지시연! 어디서 못 배워먹은 짓이야? 새엄마는 네 윗사람이야! 그런데 감히 어른한테 손찌검을 해?!”

장미리 미소를 지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

“저 정신 나간 X, 때려죽여 버려요!”

“해볼 테면 해봐!”

시연이 지동성을 노려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신은 결혼 생활 중에 바람을 피운 걸로도 모자라, 애인에게 재정적인 도움까지 주면서 친자식은 돌보지도 않았어! 그리고 당신! 당신은 내연녀인 주제에 남의 자리를 차지했고, 어린아이를 학대했지!”

“당신들은 절대 좋은 말로를 맞이할 수 없을 거야!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당신들은 벌을 받지 않는 게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야!”

할 말을 마친 시연은 붉어진 눈으로 몸을 돌려 뛰어나갔다.

지씨 저택의 대문을 나서자, 검은색 벤틀리 뮬산 시연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두 걸음 나아가던 시연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방금 지나간 그 차, 왜 이렇게 눈에 익지?’

‘최근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40화

    의심이 한 번 싹트고 나자, 진아는 태권에게 자연스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의식적으로 더 주의 깊게 보게 됐고, 그러다 보니 이상한 점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몇 번이나 태권이 전화받을 때 유난히 사람을 피해 다니는 모습을 봤다.회사에 직접 찾아간 적도 있었는데, 정상적인 근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허탕을 쳤다.이상했다.그것도 아주 많이.진아는 여러 번 태권에게 직접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태권은 얼버무리기만 했고,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끝내 하지 않았다.그러다 결국 진아는 결정적인 단서를 붙잡게 됐다.그날은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은 날이었다.식사가 끝나자 태권은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받으러 갔다.진아는 무심한 척하면서도 은근히 신경을 곤두세웠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태권의 뒤를 따라갔다.태권은 베란다에 서 있었다.동생이 바로 뒤에 있는 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였다.“왜 또 전화하는 거야? 돈은 이미 줬잖아!”전화기 너머에서 누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태권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 갔다.눈에 띄게 당황했고, 분노도 감추지 못했다.“뭐? 또 달라고? 너희 진짜 끝이 없네?”잠시 침묵이 흘렀다.태권은 상대의 말을 듣고 있었다.“하아... 알았어.”결국 체념한 듯, 태권이 입을 열었다.“이번엔 얼마야?”이를 악물듯 말하더니, 곧바로 덧붙였다.“좋아, 알겠어. 그런데 이번엔 반드시 원본이랑 모든 백업 파일 다 넘겨줘야 해.”전화를 끊는 순간, 태권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렸다.그때 바로 뒤에 서 있던 진아와 눈이 마주쳤다.태권은 온몸이 굳은 채, 흠칫 놀랐다.“진아?!”“오빠.”진아는 미간을 깊게 찌푸린 채, 돌려 말하지 않았다.“누구 전화야?”“아니야...”태권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고개를 저었다.“그냥 친구야.”“친구?”진아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내가 듣기엔 아니던데.”잠시 그를 똑바로 바라보던 진아가 조심스럽게, 그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39화

    채숙희의 중재와 정리 덕분에, 태권은 직접 집을 찾아가 중매자와 약속을 어겼던 여자 양쪽에 모두 사과했다.그런데 뜻밖에도, 며칠 지나지 않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중매자가 전화를 걸어왔다.여자 쪽에서 태권의 사과를 받아들였고, 그에 대한 인상도 꽤 괜찮았다는 이야기였다.[여자분 말씀이요, 태권 씨랑 한 번 만나 보면서 교제해 보고 싶다고 하시네요. 사모님, 아드님한테도 그럴 생각이 있는지 한 번 물어보시겠어요?]채숙희는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얼굴에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곧바로 그 뜻을 태권에게 전했다.“아들, 네 생각은 어때? 그 여자분 직접 봤잖아. 느낌은 어땠어?”태권은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입을 열려는 듯하더니,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말 좀 해!”채숙희는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사람 애간장 좀 태우지 마! 내가 돌덩이를 낳았나?”“풉...”진아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하하...”진아는 어머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뒤, 얼굴이 발그레한 오빠를 바라봤다.“엄마, 아직도 모르겠어요? 오빠 얼굴 저렇게 빨개진 거, 본 적 있으세요?”태권을 향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오빠, 그 여자분 마음에 들었지? 맞지?”‘마음에 들었던 게 분명해! 딱 보면 알지.’남매라서 더 그런 걸까?젊은 사람의 마음은 젊은 사람이 더 잘 아는 법이었다.사실 태권에게도 이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사과하러 찾아갔을 뿐인데, 여자분을 처음 본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마음이 생겼어도, 내가 무슨 낯으로 그런 말을 해.’약속을 어긴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찾아간 목적도 사과였지, 소개팅이나 감정 표현이 아니었다.사과하러 간 자리에서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래서 태권은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여자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왔다.그런데, 그걸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엄마...”태권은 얼굴을 붉힌 채 고개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38화

    임병지는 진아를 한 번 흘끗 보더니 말했다.“당신이 안 쉬면 진아도 못 쉬잖아. 진아는 밤새우면 안 돼.”채숙희는 딸이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이만 잡시다. 진아, 너도 얼른 자.”‘임태권 이놈, 잠깐은 도망칠 수 있어도 평생 집에 안 들어올 수는 없지.’모두는 각자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 가장 먼저 눈을 뜬 사람은 진아였다.계단을 내려가던 중, 현관 쪽에서 뭔가 인기척이 들려왔다.가서 보니 밤새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태권이었다.“오빠?”진아는 눈을 크게 뜨고 태권을 바라봤다.“이제야 들어와? 분명히 말하는데, 오빠는 완전히 끝났어!”진아는 태권의 팔을 잡아끌어 거실 소파에 앉혔다.“어제 소개팅은 왜 안 갔어?”“나...”태권은 잠시 멈칫했다가 말했다.“갔어.”안 갔으면, 밤새 집에 안 들어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됐거든!”진아는 오빠를 노려봤다.“거짓말까지 해? 소개해 준 분한테 전화 왔어. 오빠가 여자분과의 약속 펑크 냈다고!”태권의 표정이 굳었다. 얇은 입술이 살짝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다.“진짜 오빠는...”진아는 태권의 이마를 콕 찔렀다.“배짱도 좋다, 진짜. 처음부터 말했잖아. 그냥 밥 한번 먹는 거라고. 당장 결혼하라는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나...”그때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곧이어 채숙희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태권이야? 태권 돌아온 거야?”말이 끝나기도 전에 채숙희는 거실로 뛰어 내려왔고, 한눈에 태권을 발견했다.“엄마...”태권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래, 그래.”채숙희는 비웃듯 웃었다.“집에 올 줄은 아네? 너 거기 가만있어.”그녀는 몸을 돌려 창고로 향하더니, 이미 사용한 지 오래된 닭털 먼지떨이를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태권을 향해 그대로 휘둘렀다.“아!”한 대가 내려꽂히자 태권은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움츠렸다.“엄마! 아파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37화

    임씨 집안에서 채숙희의 말은 곧 ‘따라야 하는 명령’이었다.태권은 투덜투덜 불만을 늘어놓다가도 결국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오빠.”진아가 슬쩍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목소리를 낮춰 말했다.“그렇게 죽을상 하지 마. 맞선이잖아, 꼭 잘돼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가서 보고,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밥 한 끼 잘 사 주고 예의 차리면 되잖아. 그렇지?”“응...”태권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수밖에 없지.”어쨌든 그날 밤, 태권은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얌전히 맞선 자리에 나갔다.태권에게는 첫 번째였다.여자와 단둘이 만나는 것도, 게다가 ‘교제’나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도.그래서 집안 전체가 괜히 긴장했다.그중에서도 가장 긴장한 사람은 단연 채숙희였다.채숙희는 밤이 새도록 수시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묻고 싶었다.잘 진행되고 있는지.여자분은 어떤지.태권이 마음에 들어 하는지.“엄마.”진아가 그 낌새를 눈치채고 재빨리 말렸다.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지금 전화하면 안 돼요. 참으세요, 제발.”“왜?”“오빠 맞선 중이잖아요.”진아는 진지하게 말했다.“이때 부모가 끼어들면, 상대방이 싫어해요. 잘못하면 오빠한테 ‘마마보이’ 딱지 붙는다고요.”“그렇게까지?”채숙희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그렇다니까요.”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나 같아도 싫어요. 미래 시어머니가 아들의 일거수일투족 다 챙기는 거요.”“아, 맞다 맞다.”채숙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원래 아들에게 집착하는 타입은 아니었다.다만 오늘만큼은 너무 긴장됐을 뿐이었다.“네가 말해 줘서 다행이다.”채숙희는 한숨을 쉬었다.“괜히 전화할 뻔했네. 에휴... 난 그냥 걱정이야. 네 오빠는 정말 백지장 같은 애잖아. 말도 잘 못 하고, 여자한테 점수 따는 스타일도 아니고.”“우리 오빠가 뭐가 그렇게 못났다고 그래요...”진아가 바로 반박했다.“네 오빠니까 네 눈엔 멋있어 보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36화

    “고마워.”진아는 거절하지 않고 커피를 받아 들었다.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당신 돈 없는 사람도 아니잖아. 그럼 나도 사양 안 할게... 잘 가!”진아는 커피 봉투를 들고 돌아섰다.지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녀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걸 바라봤다.그러다 문득 진아는 그가 아직 거기 서 있다는 걸 아는 듯, 뒤돌아보지 않은 채 팔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나 간다!”“하...”지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리고 불현듯 떠올랐다.그해, 바로 이 자리에서 그가 처음으로 진아를 봤던 날이.커피숍 앞에 서서 무슨 맛을 고를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던 얼굴.이제는... 같은 장소에서 작별하고 있다.지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햇빛이 눈꺼풀 위로 쏟아지며 따끔할 정도로 뜨겁게 느껴졌다....그날 밤, 지하는 곧바로 제남도를 떠나 G시로 돌아왔다.“이렇게... 끝난 거야?”강석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유건과 정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만 지하를 바라보는 눈빛에 숨길 수 없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그럼 어쩌겠어?”지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쓴웃음이 스쳤다.“그 사람이 친구로 돌아가겠다고 하는데... 난 그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지. 아니면... 또 억지로 붙잡을까?”그는 강제로 붙잡는 일을, 이미 한 번 해봤다. 두 번은... 감히 할 수 없었다.더구나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유건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지하와 잔을 부딪쳤다....같은 시각, 시연도 소식을 들었다.조금 놀란 얼굴로 말했다.[지난 1년 동안의 일을 다 알게 됐는데도... 결국 헤어진 거야?]“응.”진아는 침대에 엎드린 채 턱을 괴고 있었다.“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알고, 고맙기도 해. 근데...”잠시 말을 고른 뒤, 조용히 덧붙였다.“나랑 그 사람은 시작이 너무 불순했어.” [그 말은...]시연은 곧바로 이해했다. 지하가 진아에게 관심을 가졌던 첫 이유가... 오설아와 닮은 얼굴이었으니까.하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35화

    지하의 긴장한 얼굴을 보며 진아는 잠시 멍해졌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괜히 한두 마디 놀려 주고 싶은 마음이 스쳤지만, 말이 입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삼켜졌다.진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용서할게.”지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그토록 기다렸고, 심지어 꿈속에서도 수없이 되뇌던 대답이... 이렇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너무 쉽게 나와 버렸다.지하는 현실감이 없었다. 꿈보다도 더 비현실적이었다.목울대가 크게 한 번 움직였다.지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진아야... 그 말, 진짜야?”“응.”진아는 손에 든 커피잔을 천천히 돌리며 웃었다.“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 용서 안 할 거였으면 그냥 당신이랑 또 싸웠겠지. 우리... 싸워 본 적 없었던 것도 아니잖아?”그 말은 섬에서의 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 진아는 마음과 말이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솔직했고, 단순했고, 감정에 정직했다.하지만 지하는 바보가 아니었다.그는 진아의 표정에서 그녀 마음의 일부를 읽어 냈다.결국 지하는 시선을 천천히 내려갔다가 마치 한숨처럼 말이 흘러나왔다.“나를 용서하기만 한 거지... 다시 나랑 엮일 생각은 없는 거지?”진아는 잠시 멈칫했다. 미소가 아주 조금 굳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응.”그 고개 끄덕임 하나에 지하의 가슴이 찌르듯 아팠다.“진아야, 나...”“다 지난 일이야.”진아는 강하지도, 차갑지도 않게 그를 끊었다.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눈빛도 온화했다.그런데 그 부드러움이 오히려 더 단단해 보였다.“나도 알아. 다 지난 일이야.”지하는 알고 있었다.오설아와의 일도, 그 후의 모든 것도... 이미 완전히 과거가 되었다는 걸.진아는 밝게 웃었다.“그러니까... 당신도... 나를 과거로 보내 줘.”지하는 말을 잃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진아의 흔들림 없는 눈을 마주하자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자...”진아는 이미 비어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