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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Author: 금소
하도진은 천천히 시선을 거뒀다.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얼굴이라 속을 도무지 읽을 수 없었다.

고은율은 고개를 떨군 채, 눈치껏 하도진의 팔에서 손을 뗐다. 입가에는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도진아,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잖아. 넌 나한테 뭐든 맞춰 줬고... 우리 사이가 너무 완벽해서 다들 부러워했어. 우리는 교복에서 웨딩드레스까지 갈 커플이라고, 명원시에서 한동안은 전설처럼 떠돌기도 했어.”

‘정말 그랬었나?’

너무 오래전의 일이었다. 어림잡아도 7~8년은 지난 것 같았다. 솔직히 하도진은 고은율과 어떻게 시작했는지조차 선명하지 않았다.

하도진의 시선이 창밖으로 멀어졌다. 굳게 다듬어진 턱선 위로 미세하게 미간이 찌푸려졌고 생각은 열일곱, 열여덟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국제 고등학교 옥상.

노을보다 더 붉게 달아오른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열여덟의 하도진은 집안 사람 몰래 담배를 배웠다. 매일 저녁, 옥상으로 올라가 혼자 있는 시간을 챙겼다. 짙푸른 하늘 끝에서 구름이 풀렸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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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587화

    민하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에 올라타자 버스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훤칠하고 마른 모습의 임형섭이 점점 멀어지더니 끝내 작은 검은 점처럼 보이지 않게 됐다.서용우는 생수병 뚜껑을 정성스럽게 따서 민하윤에게 건네며 말했다.“민 부장님은 임 행장님이랑 아주 친하세요? 사실 저는 임 행장님이 좀 무서워요. 3명의 은행장님 중에 제일 젊으신데도 이상하게 앞에만 가면 긴장된다니까요.”민하윤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미안한데 저 혼자 좀 있고 싶어요.”서용우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방을 메고 앞쪽 빈자리로 옮겨 앉았다.그러고는 뒤돌아보며 사람까지 기분 좋아지게 하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저 빵이랑 초콜릿도 있어요. 배고프시면 말씀하세요. 이제 방해 안 할게요.”서용우는 마치 작은 태양 같은 사람이었다. 따뜻하고 활기차면서도 눈치까지 빨랐다.서용우는 정말 그 뒤로 민하윤을 건드리지 않았다.민하윤은 창가에 기대앉아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버스 두 대가 호텔 로비 앞에 나란히 멈췄을 땐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바다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긴 이동으로 쌓인 피로를 한순간에 씻어 주는 것 같았다.직원들은 로비에 모여 체크인 순서를 기다렸다.멀리서 민하윤을 발견한 이남주가 거의 날아오다시피 달려왔다.그러자 민하윤은 반사적으로 아랫배를 감쌌다.다행히 털털한 이남주는 민하윤의 작은 동작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우리 회사는 너무 짜요. 두 명이 한 방이라니요. 출장비는 대체 어디다 쓰는 거예요? 하윤 언니, 우리 둘이 같은 방 써요. 네?”민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주머니 속 카드키가 손끝에 닿는 순간 황급히 다시 고개를 저었다.오늘 밤에 민하윤은 자기 방에서 자지 않을 수도 있었다.아무리 사람들의 눈을 피해 움직인다고 해도 같은 방을 쓰는 사람까지 속이기는 어려웠다.그러니 아무래도 혼자 방을 쓰는 편이 가장 안전했다.이남주는 순식간에 울상이 됐다.“뭐예요? 된다는 거예요? 안 된다는 거예요?”그때 이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586화

    서 비서는 잠시 멈칫하더니 하도진의 말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했다.“한번 안 와 보시랍니다.”민하윤은 깊게 숨을 들이켰지만 말이 목에 걸린 듯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그 순간, 손에 쥔 카드키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또 다른 할 말이 있나요?”“대표님께서 휴대폰 전원을 켜 두라고 하셨습니다. 연락이 안 돼서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이동하세요.”서 비서는 민하윤이 카드키를 도로 떠넘길까 봐 겁이라도 난 듯 서둘러 자리를 떴다.그때 마침 은행에서 준비한 버스도 도착했다.직원들은 줄을 맞춰 차례로 올라탔고 서용우는 민하윤의 캐리어를 끌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민하윤을 찾고 있었다.민하윤은 카드키를 가방에 넣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밖으로 걸어 나갔다.검은 차는 여전히 길가에 서 있었고 짙은 갈색 선팅 너머로는 안에 앉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민 부장님, 괜찮으세요? 아까 그 사람은 왜 찾아온 거예요?”서용우는 무슨 위험한 일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민하윤을 위아래로 살피며 물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 차 왔으니까 가요.”민하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서용우를 안심시켰다.“하윤아.”그때 S급 고객들과 함께 비즈니스 차를 타고 떠나야 했을 임형섭이 갑자기 나타났다.“네? 임 행장님, 무슨 일이세요?”임형섭은 잠시 굳었다가 입을 열었다.“앞쪽 비즈니스 차량에 자리가 남았어. 같이 타고 갈래?”“아니에요.”...서 비서는 백미러로 뒤를 재빨리 훔쳐봤다.하도진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얼굴이 서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대표님, 호텔로 출발할까요?”그 순간, 하도진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하도진은 조금 전부터 멀리서 벌어지는 상황을 전부 보고 있었다.임형섭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으로 금속 난간을 짚은 채 몸을 숙여 민하윤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서로 물러서지 않고 대치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옆에는 또 다른 젊은 남자도 서 있었다.기껏해야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585화

    그 순간, 씁쓸한 미소가 민하윤의 입가에 번졌다.그때 수화기 너머로 백누리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렸다.“근데 대표님은 왜 일등석에 계세요?”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심하다는 듯 백누리를 바라보며 되물었다.“제가 일등석에 안 타면 조종석에 타야 하나요?”“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요. 두 분이 왜 따로 앉았나 해서요. 설마 또 싸우셨어요?”하도진은 ‘또’라는 말에 제대로 찔렸고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백누리를 바라봤다.“그렇게 한가해요? 궁금한 게 왜 이렇게 많아요? 그냥 하윤한테 직접 물어보지 그래.”그러자 백누리는 콧방귀를 뀌고 고개를 돌렸고 속으로 하도진을 신나게 욕해 댔다.마침 기내 방송에서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꿔 달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백누리는 전화를 끊으려다 손이 미끄러져 그만 스피커폰을 눌러 버렸다.“민 부장님, 정말 우연이네요. 우리 좌석이 바로 붙어 있네요. 이것도 인연인가 봐요.”한 젊은 남자의 들뜬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일등석 전체에 울려 퍼졌다.그러자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백누리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백누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 얼굴이 잔뜩 굳은 하도진과 눈이 마주쳤다....“민 부장님, 저 기억 안 나세요?”젊은 남자는 조금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고 민하윤은 잠깐 멈칫하다가 눈앞의 인턴을 알아봤다.2년 전 서북 지역 실사에 함께 갔던 프로젝트팀의 막내였던 서용우였다.“기억나요. 서...”“서용우예요.”서용우가 재빨리 자기소개를 덧붙여 민하윤의 난처함을 자연스럽게 덮어 줬다.“저 이제 정직원이 됐어요. 지금은 마케팅 부서로 옮겼고요.”서용우는 먼저 자신의 근황을 풀어놓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어느새 비행 내내 이야기를 나눴다.비행기가 진도국제공항에 도착할 무렵, 민하윤은 원치 않게도 서용우가 골든 브리티시 쇼트헤어 두 마리와 랙돌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운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서용우는 예전처럼 활기차고 친화력이 좋았다.민하윤의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584화

    그러자 이남주는 눈을 흘기며 작게 투덜거렸다.“차라리 전부 버리지 악마한테는 절대 안 줘요. 제가 힘들게 번 돈인데 아깝게 왜 그러겠어요!”민하윤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송 부장님은 명문대 출신에 매너도 좋으시잖아요. 부서 간의 협업으로 몇 번 같이 일해 봤는데 성격도 괜찮으시던데요?”이남주는 눈을 거의 천장까지 굴리더니 민하윤의 옆에 바짝 붙어 억울함을 쏟아 냈다.“그건 하윤 씨 앞에서만 그런 거예요. 그 사람은 진짜 인간미가 없다니까요. 제가 말씀드리는데요...”임형섭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그 순간, 유난히 쓰게 느껴졌다.임형섭은 민하윤이 일부러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3명의 은행장과 S급 고객들은 일등석을 이용했고 나머지 직원들은 모두 일반석에 탔다.일행이 탑승구로 향하던 중 공항 한쪽이 갑자기 술렁였다.많은 사람이 휴대폰을 든 채 한 사람을 둘러싸고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누구예요?”“그 역사극에서 송낙 공주 맡았던 배우 있잖아요. 얼마 전에 엄청 핫한 드라마 말이에요.”“아, 기억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청춘 드라마에도 나왔죠? 연기 잘하던데요.”“요즘 진짜 잘나가잖아요. 전에는 연기는 잘해도 작품 운이 없어서 잘 못 떴는데.”“작년에 영화제에서 주연상도 받고 몇 년째 연말 특집 무대에도 나오더라고요.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뜨는 건 좋은 일이죠.”민하윤은 동료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VIP 탑승구 앞에서 팬들에게 인사하는 눈부신 여배우를 바라봤다.백누리가 마침내 빛을 보기 시작했다.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커리어의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민하윤이 탑승구를 통과하자 휴대폰이 진동했다.백누리였다.[야, 너 공항이야?]민하윤은 조금 놀랐다.이 정도면 정말 통하는 게 있는 건가 싶었다.민하윤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응, 나 방금 널 봤어. 이제 완전 연예인 포스 나더라.]백누리가 연달아 메시지를 보냈다.[매니저가 탑승구에서 널 봤대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583화

    하도진은 잠시 멍해 있다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소파에 털썩 드러누웠다.헝클어진 머리까지 더해지자 하도진은 온몸에서 축 처진 기운이 흘렀다.“싸웠어?”김옥자는 단번에 하도진의 속내를 알아챘다.그러자 하도진은 고개를 저었다.“할머니, 예전에 제가 다시 시작하자고 했을 때 하윤이가 거절했잖아요. 그때 하윤의 말이 맞았을지도 몰라요. 다시 만나 봤자 결국 예전과 똑같은 길을 걷게 될 거라고요.”김옥자는 찻잔을 내려놓고 홀로 풀이 죽어 있는 하도진을 바라봤다.“후회하는 거야?”“후회는 안 해요. 그런데 자꾸 싸우고 생각이 부딪치니까 지쳐요.”“도진아, 넌 성격부터 고쳐야 해. 우리가 너를 너무 귀하게만 키웠어. 세상 모든 사람이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니야.”김옥자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서로 사랑할 때야 뭐든 좋고 마음도 넘치지. 그렇다고 사랑을 믿고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건 아니야. 칼처럼 날카로운 말이 계속 쌓이면 아무리 깊은 사이도 견디지 못해.”하도진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저는 그냥 하윤이가 저랑 좀 더 함께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매일 일만 하니까 제 옆에 있는 시간이 손에 꼽힐 정도예요.”“정말 그것뿐이야?”김옥자는 새로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끓는 산샘물이 찻잎 위로 부어지자 집 안에는 은은하고 달콤한 차향이 퍼졌다.“그게 전부는 아니에요.”하도진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하윤이는 너무 좋은 사람이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넘볼까 봐 겁나요. 너무 좋아서... 제 곁에만 붙잡아 두고 싶을 정도로요.”“도진아, 하윤이는 네가 기르는 새가 아니야. 연못 속에 키우는 잉어도 아니고 별장에 심어 놓고 구경하는 꽃도 아니야.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란 말이지.”김옥자는 하도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하윤이는 자기 삶을 가진 독립된 사람이야. 넌 하윤이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너 자신을 못 믿는 거야. 사랑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582화

    민하윤은 잠시 멈칫하다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그 얘기는 지난번에 했잖아요. 제가 나중에 은퇴하면 그때 한가한 사모님이나 할게요.”그러자 하도진은 입꼬리를 비틀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민하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알겠어. 결국 넌 그 답답한 직장을 못 떠나겠다는 거잖아. 그럼 더 얘기할 것도 없네. 계속 아침부터 저녁까지 출근해. 편하게 살 수 있는데도 굳이 고생을 사서 하겠다니...”하도진은 말하며 그대로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또 대화가 틀어질 것 같자 민하윤은 다급히 하도진의 소매를 붙잡았다.민하윤의 목소리는 몹시 초조했다.“우리 이 일로 또 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저는 지금 하는 일이 좋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고요. 그런데 도진 씨는 왜 자꾸 저를 집 안에만 가둬 두려고 해요?”“안 돼.”하도진은 차갑게 민하윤을 보았고 눈빛에는 조금 전까지의 다정함이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네가 좋아하는 게 일이야? 아니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야? 민하윤, 오늘까지도 넌 밖에서 미혼인 척하고 있잖아.”“아니라고요!”민하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반사적으로 부정했다.하도진은 갑자기 민하윤의 손목을 움켜쥐고 위로 들어 올렸다.아무것도 끼지 않은 민하윤의 약지는 희고 매끈했다.“아니라고? 그럼 결혼반지는? 왜 안 끼고 다녀? 네가 결혼한 걸 남들이 아는 게 그렇게 싫어?”민하윤은 억울하고 화가 났다.“제가 미혼인 척한 게 아니에요. 반지 다이아가 너무 커서 눈에 띄고 괜히 말이 나올까 봐 그런 거예요. 남들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은 게 제 잘못이에요?”하도진은 차갑게 웃더니 민하윤의 턱을 잡아 들었다.“잘못이 아니지. 네가 뭘 하든 네 자유니까. 예전에는 내가 너한테 해 준 게 없다고 생각했어. 반지도 결혼식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해 주고 싶었어. 그런데 넌 결혼식도 싫다고 하고 반지도 안 끼고 다니네. 결국 그냥 나 혼자서 들떠 있었던 거잖아.”하도진은 손을 거칠게 놓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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