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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너를 한여름에 묻었다
사랑했던 너를 한여름에 묻었다
Author: 복연

제1화

Author: 복연
서현아는 엔젤 웨딩플래닝 건물에서 나온 뒤, 휴대폰으로 A시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예매가 완료됐다는 알림이 막 뜬 순간, 강진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받자 강진혁의 다정하게 달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야, 우리 어머니가 너 보고 싶다고 하셨어. 오늘 저녁에 너랑 같이 집에 와서 같이 밥 먹자고 하시더라.]

[그리고 오늘 너한테 줄 게 있다고 하시는데, 뭔지 맞혀 볼래?]

A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진혁의 냉정한 성격을 알고 있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남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듯한 냉랭한 분위기가 묻어나는 사람이었다.

그런 강진혁에게 마음을 품고 달려드는 여자들은 끊이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는 오직 딱 한 사람 서현아에게만 다정했다.

적어도 오늘 전까지는 서현아도 그렇게 믿었다.

서현아의 어머니와 강진혁의 어머니는 서로 아끼는 친한 친구였다.

그 영향에 서현아와 강진혁 역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사이였다.

그런데 서현아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아버지인 서철국은 기다렸다는 듯 다른 여자를 집으로 들였다.

계모의 계략에 휘말린 서현아는 외진 시골로 보내졌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눈앞에는 술에 취한 남자가 자신에게 치근덕거리고 있었다.

당황한 서현아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술병을 집어 들고 그대로 술 취한 남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술 취한 남자는 바닥에 쓰러져 몇 번 몸을 경련하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그때, 삐걱거리는 문이 거칠게 열리며 강진혁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고 서현아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 순간 서현아에게 강진혁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자처럼 보였다.

위기에서 벗어난 뒤에도 그날의 일은 서현아에게 지울 수 없는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강진혁은 매일 서현아의 곁을 지켰다.

유명한 심리 상담사를 찾아 치료받게 했고, 어떻게든 서현아를 웃게 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인 끝에야 서현아는 조금씩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날마다 이어진 위로와 동행에 아무리 차가운 마음이라도 조금씩 열리면서 따뜻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현아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배신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뒤로 사랑을 대하는 데 더욱 신중해졌다.

강진혁과 연인이 되기로 마음먹기 전, 서현아는 강진혁에게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강진혁, 나는 무조건적이고 독점적인 사랑만 받아들일 수 있어. 네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꼭 말해. 우린 싸우지 않고도 헤어질 수 있어.”

“하지만 네가 나를 배신한다면, 나는 네가 영원히 나를 찾지 못하게 숨어버릴 거야.”

강진혁은 기쁘면서도 긴장한 얼굴로 손바닥을 보이며 맹세했다.

“현아야, 난 평생 너 하나만 바라볼 거야. 영원히 널 사랑하고 너만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할게. 시간이 지나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될 거야.”

그때 강진혁이 굳게 약속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맴도는 듯했다.

하지만 그 모든 말은 이제 시간 앞에서 서서히 답을 드러냈다.

강진혁은 서현아에게 아무것도 남김없이 사랑해 줄 수 없었고, 욕심을 버리지 못해 둘의 사랑을 배신했다.

바로 어젯밤, 서현아는 강진혁이 벗어 놓은 옷 주머니에서 강진혁과 백서연이 혼인신고를 했다는 증명서를 발견했다.

강씨 집안은 그동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적지 않게 후원해 왔고, 백서연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서현아가 백서연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백서연이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백서연은 속내를 잘 숨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서현아는 백서연이 강진혁에게 잘 보이려고 다가가며 직접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강진혁은 냉담한 얼굴로 백서연의 마음을 단칼에 거절했다.

“미안해. 나 여자친구 있어.”

백서연이 계속 매달리자 강진혁은 여자를 일말의 가치도 없는 사람처럼 깎아내리며 완전히 마음을 접게 했다.

그날 이후 백서연은 서현아 앞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한 달여 전, 강진혁은 갑자기 서현아에게 백서연의 어머니가 중병으로 위독해져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딸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백서연에게 한 번도 좋은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강진혁이 뜻밖에도 서현아에게 의견을 물으며 백서연의 이 부탁을 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서현아는 망설임 없이 거절했고, 강진혁에게 예전에 연인이 되기로 했을 때 했던 말을 한마디 한마디 다시 일깨워 주었다.

“나는 무조건적이고 독점적인 사랑만 받아들일 수 있어. 네가 그 사랑의 일부를 다른 여자에게 나눠 주고 싶다면,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야.”

그 말을 들은 순간 강진혁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곧 강진혁은 서둘러 절대 서현아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서현아는 그 황당한 일이 거기서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강진혁은 서현아 몰래 백서연과 혼인신고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별장에 백서연을 숨겨 두고 밤낮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아직 보름이나 남았다는 사실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서현아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걸렸다.

지금 서현아가 유일하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혼식이 열리기 전에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뿐이었다.

대답이 없자 강진혁의 목소리에 의문이 묻어났다.

[현아야, 듣고 있어?]

서현아는 가볍게 대답했다.

“나 지금 집에 없어. 이따가 혼자 그쪽으로 가면 되니까 데리러 오지 않아도 돼.”

강진혁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 나갔어? 왜 나한테 같이 가자고 안 했어?]

서현아는 전화 너머로 옷감이 스치는 소리와 여자의 희미한 숨소리를 들었다.

그러자 서현아의 표정이 한층 차갑게 굳었다.

“깜짝선물 준비했거든. 결혼식 날 너한테 주려고. 웨딩플래너한테 몇 가지 전달할 일이 있어서 잠깐 다녀온 것뿐이야.”

강진혁의 목소리에는 억누르지 못한 기쁨이 가득했다.

[무슨 선물인데?]

서현아는 입꼬리를 살짝 당겼다.

“지금 말해 주면 그게 무슨 깜짝선물이겠어? 결혼식 날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니까 기대해.”

강진혁은 들뜬 마음을 애써 누르며 다정하게 대답했다.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그 선물 기대하면서 기다릴게. 우리 저녁에 보자.]

전화가 끊기기 직전, 강진혁은 과장된 듯 몇 번이나 입을 맞추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서현아는 알고 있었다.

그 소리는 강진혁이 낸 것이 아니라 정말로 다른 여자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서현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끊긴 전화를 바라보는 얼굴은 평온했지만, 마음속은 이미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강진혁, 보름 뒤 결혼식장에서 모든 것을 마주했을 때, 네가 정말 깜짝 놀랐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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