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소개받지 않아도 돼. 게임 버그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계속 연기나 하면서 게임 투자 손실을 메꿔도 상관은 없어. 돌려막기만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건지고 다 잃으면 송민준 놀림거리나 되겠지.”한열: ...그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제 뒷조사하셨어요?”강한서는 그의 분노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품에 안긴 사람을 위로 끌어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내 여자친구 옆에 대체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그냥 쓸데없는 말 했다고 생각해.”그러더니 그는 유현진을 안고 몸을 돌렸다. 잠시 망설이던 한열이 그를 불러세웠다. “많은 사람을 고용해 봤지만 한 명도 최적화에 성공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 친구라는 분, 뭐 하는 사람이에요? 정말 할 수 있어요?”강한서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걸으면서 물었다. “네가 보기에 ‘정상에서’ 이 게임, 어떤 것 같아?”한열이 그 나이다운 대답을 했다. “쩔죠!”강한서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 게임 최적화를 계속 걔가 하고 있었어. 그 정도 수준이면, 합격인가?”한열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런 거라면 너무 합격이지.’하지만 곧 이성이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강한서를 바라보았다. “굳이 절 도와주려는 목적이 뭐죠?”“문 열어줘.”두 사람은 이미 차에 도착했고 강한서가 한열에게 눈짓했다. 한열이 차 문을 열자 강한서가 조심스럽게 유현진의 머리를 감싸며 천천히 그녀를 뒷좌석에 내려놓았다. 차 문이 닫힌 뒤, 강한서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한열을 쳐다보았다. “현진이가 널 동생으로 대하면, 넌 걔 가족이나 다름없어. 내가 널 도우면 그건 현진이를 돕는 게 되는 거지.”한열은 그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설마 저랑 경쟁해서 우위가 없을까 봐 절 매수하려는 거 아니죠?”강한서: ...그는 순간, 송민준이 한열을 쳐다보는 표정이, 지금 자신이 그를 바라보는 표정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열이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형이 저 인간한테 전화했어요?”매니저는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다. “한성 그룹의 도련님을, 내가 무슨 수로 연락해?”한열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팔이 밖으로 굽는 이 매니저 말고는, 그가 여신과 “데이트”한다는 사실을 발설할 사람은 없었다. “그럼 저 인간이 어떻게 온 건데요?”매니저가 말했다. “네가 그 사람 전 와이프를 보는 눈빛을 그 사람이 모를 것 같아? 눈이 먼 것도 아니고. 계속 널 경계하고 있었어. 네가 전에 현진 씨랑 배드신 찍을 때, 현진 씨가 왜 계속 NG를 냈는지 알아?”그의 말에 한열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를 모르는 것이 분명한 얼굴이었다. 그의 매니저는 안쓰럽다는 말투로 말했다. “전남편이 두 사람 머리 위에서 반사판을 들고 서 있었잖아! 정말 전남편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왜 그 사람 앞에서 너한테 다가가지 못했겠어?”멍해진 한열은 어렴풋이 마스크를 쓰고 있던 남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남자의 눈이 천천히 강한서의 눈과 겹쳐 보였다. 한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그제야 그날의 유현진이 왜 그렇게 어색하게 행동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젠장! 개 같네!’차 안. 유현진은 진정하지 못하고 몸을 뒤척였다. 강한서가 그녀의 어깨를 누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대답했다. “목 아래에 뭐가 있어.”강한서는 이상하다는 듯 손을 뻗어 만져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더니 그는 유현진을 달래며 말했다.“꺼냈어. 누워.”유현진은 그제야 다시 누웠다. 하지만 곧 다시 튀어 오르듯 일어나 앉아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도 있어.”강한서는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찾아보았다. 하지만 뭐가 있다는 것인지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유현진이 세 번째로 목 아래에 뭔가가 있다고 말했을 때, 강한서는 문득 뭔가를 떠올리고는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만지더니 그 안에서 반지 하나를 꺼냈다.바로 이것이 유현진이 계
손님이 가게로 들어오는 소리에 그는 그제야 리모컨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물건 보러 오셨어요, 아니면 픽업하러 오셨어요?”유현진이 말했다. “악세서리 보러 왔어요. 사장님, 가게에 있는 금반지 다 보여주세요. 저희 반지 좀 보려고요.”알겠다고 대답한 가게 사장이 유리 뚜껑이 있는 악세서리 함을 두 사람 앞에 하나씩 꺼냈다. 한번 쓱 훑어보던 강한서는 이 가게의 스타일이 의외로 괜찮다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디자인은 시중에 없는 것들이었다. 심플한 디자인도 있고 빈티지 스타일도 있었다. 아무리 간단한 무늬라도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유현진은 카운터에 엎드려 꼼꼼하게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디자인이 그녀는 실망스러운 것 같았다. 사장님이 물었다. “두 분 어떤 디자인 원하세요. 저한테 말씀해 주시면 제가 찾아드릴게요. 만약 원하는 디자인이 없으면 저희가 제작도 해드리거든요. 사지만 보여주시면 할 수 있어요.”유현진이 말했다. “깔끔하고 심플한 커플링이요.”유현진의 말에 사장님이 세 가지 디자인을 꺼내 유현진에게 건넸다. “이건 어떠세요?”고개를 숙여 반지를 확인하던 유현진의 눈에 반쪽은 광택을 내고 다른 반쪽은 스크럽이 있는 반지가 들어왔다. 반지의 가운데는 구름 모양으로 조각을 내었다. 간단하면서도 느낌 있는 디자인이었다. 그녀가 급히 사장님에게 물었다. “남자 반지도 있나요?”“있어요.”사장님은 대답하며 한 쌍의 반지를 모두 꺼냈다. “만약 반지 사이즈가 맞지 않으시면 제가 손님 사이즈에 맞게 제작해 드릴게요.”유현진은 남자 반지를 꺼내더니 강한서의 손을 끌어와 그의 손가락에 끼워보았다. 공교롭게도 그의 손가락에 꼭 들어맞았다. 고개를 숙여 반지를 보던 강한서가 막 입을 열려는데, 유현진이 다른 한 쌍을 자기 손가락에 끼웠다. 강한서: ...‘이렇게 무드가 없다고?’‘약혼반지를 그냥 이렇게 대충 낀다고?’“얼마예요?”유현진이 카운터에 몸을 기대며 사장님에게 물었다. 사장님은 반지 무게를 재더니 가
그는 TV를 보다 다시 유현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놀란 표정을 짓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정말... 닮았네.”“그렇지?”유현진은 눈웃음을 예쁘게 지으며 말했다.“이건 나랑 친구가 같이 찍은 사진이야. 그 친구가 그때 우리 둘이 함께 찍으면 누구도 못 알아볼 거라고 했었거든.”“...”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술 취한 거 아니었나? 왜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거지? 얼굴도 발그레하지 않고 정신도 말짱한 것 같은데, 착각인가?'그러나 사장님은 이미 그녀의 장난에 속아 넘어간 것 같았다.“정말이네요. 눈은 아주 똑 닮았는데 입이 살짝 다른 것 같네요.”유현진은 바로 드라마를 찢고 나온 중전의 표정을 지으며 다시 사장님에게 물었다.“이러면은요?”사장님은 바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너무 닮았네요.”유현진은 가까이 다가가 사장님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사장님, 좀 싸게 해주세요. 1g에 1500원이라도 깎아주세요. 그럼 제가 같이 사진 찍어드릴게요. 나중에라도 만약 저 여배우가 뜨기라도 한다면 저와 함께 찍은 사진은 대문짝만하게 내걸면 되잖아요. 그러면 분명 많은 사람이 연예인 다녀갔다던 가게라면서 사진 찍으러 올 거예요. 손님도 많아지고 직접 다른 사람에게 광고 홍보를 의뢰하는 것보다 더 나을걸요? 심지어 광고비도 한 푼도 안 쓰게 되잖아요.”사장님은 눈썹을 꿈틀거렸다.“나를 속이는 거라면 그만둬요. 내가 정말로 연예인 이름을 걸고 사진을 내걸면 그 연예인이 날 초상권 침해로 고소하면 벌금만 광고비보다 더 나갈 거예요.”“에이, 사장님은 저랑 사진을 찍으시는 거잖아요. 사진에 이름도 안 써뒀는데 어떻게 알고 고소를 하겠어요? 그럼 전 그 배우랑 닮았으니까 저도 초상권을 침해한 거네요, 아닌가요? 이 얼굴이 저 배우만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무리 배우 측에서 끝까지 고소한다고 해도 사람들의 관심만 더 받게 될 뿐 초상권 침해로 판결받을 수 없을 거예요.”너무나도 기세등등하게 말하는 유현진에 사장님은 완벽하게
“그래도 금이 더 가치가 있잖아. 네가 전에 사준 결혼반지도 작년에 금은방으로 가서 물어봤더니 2억 좀 넘게 쳐주더라고. 그때 우리가 6억 주고 산 거잖아. 가격 차이가 너무 나. 그리고 네가 결혼식 때 선물한 금팔찌는 이번 해 금값이 오르면서 전보다 200만 원이나 올랐어! 그래도 금이 다이아보다 더 안전하잖아. 만약 네가 어느 날 갑자기 파산이라도 하게 되면 우린 그 금으로 그래도 생활할 정도는 될 거야.”“...”역시 그녀였다.그는 유현진에게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는 줄 알았지만 결국은 현실적인 이유였다.유현진의 마음속에는 역시 돈이 일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그럼 왜 하필 저 가게로 온 건데?”강한서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걸으면서 물었다.방금 그 가게의 위치는 보통 사람이라면 찾기 힘든 곳에 있었다. 유현진이 그런 가게를 단번에 찾아갔다는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소리였다.역시 그의 예상대로 유현진이 말했다.“학교 다닐 때 미주가 아주머니한테 어버이날 선물을 사드리려고 했거든. 근데 걔가 유명한 주얼리 가게들은 브랜드값이라고 추가한다 하더라고. 그래서 나를 데리고 이리저리 쏘다니면서 가격을 비교해 보고 결국 아까 우리가 갔던 그 주얼리 가게를 선택하게 된 거야. 그리고 거기서 귀걸이 한 세트를 샀지.”“사실 나도 예전에 그 가게에서 목걸이 하나를 눈여겨보고 있었거든. 줄은 얇고 약간 미니 뱀 같은 디자인이었나? 하여튼 반짝반짝 빛도 나고 예뻤어. 엄마한테 선물하고 싶었지. 하지만 그때는 나한테 돈이 없었거든. 아빠한테... 아니 유상수한테 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어. 달라고 하면 주지도 않을 거면서 엄청 뭐라 하거든.”“여하간에 그 사람은 식물인간이 된 사람한테 드는 병원비만으로도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가 되었으니 당연히 더는 선물 같은 것도 엄마한테 선물하지 않았거든. 난 돈이 없으니 아르바이트로 쇼핑몰 모델 일을 하면서 하루에 10만 원씩 받았었어. 레이싱 모델은 하루에 20만 원에서 25만 원 정도 버는데 난 운 좋게
강한서는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슬프게 우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그녀는 울음소리를 최대한 참으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그 덕에 울음소리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흐느낄수록 더욱 세게 떨리는 어깨에 보는 사람도 가슴이 아프게 만들었다.그를 배웅하던 담당자가 그에게 그녀가 겪은 일을 말해주었다.그녀가 바로 방금 어떤 남자에게 성추행을 당한 레이싱 모델이었고 상대에게 뺨까지 맞았다는 것이었다.그녀의 보호자를 불러오긴 했지만, 그녀의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녀가 창피하다며 급여도 못 받게 했다고 했다. 그래서 아마 많이 속상한 듯했다.강한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모며 물었다.“알바비가 얼마죠?”옆에 있던 담당자가 솔직하게 말해주었다.6날 전부 채우면 160만 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오늘 사건으로 주최 측에 영향을 주게 되어 배상금만 160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알바비를 못 받을 확률이 훨씬 더 높았고 그녀에게 배상금을 요구하지 않은 것만 해도 이미 많이 봐줬다는 뜻으로 말했다. 여하간에 사람은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에 책임을 져야 했으니까.담당자의 말을 들은 강한서는 그저 한 가지 궁금한 점만 물었다.“만약 담당자님이 이곳처럼 뻥 뚫린 환경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담당자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내 황당하기 그지없는 회사의 규정만을 줄줄이 읊었고, 결론은 회사의 이미지를 지키겠다는 뜻이었다.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갑자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여자였던 담당자는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면서 그를 밀어내려는 태세를 보였다.강한서는 그녀의 몸에 손을 대기도 전에 허공에서 손을 멈추었다. 이내 의아한 눈길로 여담당자를 보면서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여자가 자신을 보호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우선으로 고려하지 않았다면 회사의 이미지도 그럼 그저 우스갯소리가 되겠네요.”강한서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VIP 고객
유현진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내가 취해 있을 때, 나한테 어떤 형언할 수 없는 짓이라도 하려고?”강한서는 직설적으로 말했다.“난 네가 맨정신일 때 너랑 형언할 수 없는 짓을 하는 걸 더 좋아해.”“... 10점 감점이야.”“...”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렸다.“왜 아직도 점수가 감점되는 거야? 그거 나랑 정식으로 사귀게 되면 없어지는 거 아니었어?”“내가 언제부터 너랑 정식으로 사귀고 있었는데?”유현진은 한 입으로 두말하기 시작했다.“넌 아직 인턴 기간이라고. 정직원으로 승급하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너한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감정해야지.”“...”‘아니, 내가 지금 연애도 회사 출근하는 형식으로 해야 하는 거야?'강한서는 순간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유현진은 그의 손을 잡으며 앞으로 먼저 걸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입을 열었다.“유상수가 결혼식 올린대.”강한서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유현진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아까 만나기 전에 이미 나한테 연락이 왔었거든. 시간과 날짜를 이미 다 정해뒀다고 하더라. 다음 주 주말에 할거래.”강한서는 순간 정신이 들었다. 어쩐지 오늘 밤의 유현진은 평소보다 더 감성적이었고 말끝마다 유상수를 언급하고 있었다.“가려고?”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가야지. 그렇게 직접 연락까지 했는데 가야지. 난 내 두 눈으로 직접 그 두 사람이 망하는 꼴을 볼 거야.”강한서는 입술을 틀어 물더니 몇 초 뒤에야 나직하게 말했다.“너 혹시 네가 어머님이랑 안 닮았다는 생각 해본 적 있어?”“난 외할아버지를 닮았어.”유현진은 자신 있게 답했다.“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우리 외할아버지께서 젊었을 때 아주 미남이셨다고 했어. 그러니 분명 한 세대를 뛰어넘고 미모가 유전된 거지.”“... 난 네가 외할아버님이랑도... 안 닮았다고 생각해.”“넌 전에 나랑 송가람 씨도 헷갈렸잖아. 괜찮아, 정상이야 너.”강한서의 입가가 바르르 떨렸다.“내가 말했잖아. 잘못 본 게 아니라고.”유현진은
유현진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뻔뻔한 얼굴로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코어 힘을 좀 더 키우면 되겠어. 다른 건 그래도 봐줄 만해.”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도망치려 했다.그러나 강한서는 그녀를 도망치게 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녀의 허리를 꽈악 끌어안더니 이내 세면대 위에 그녀를 앉혔다.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나온 덕에 욕실 안은 수증기로 가득 찼고 유현진의 등 뒤에 있던 거울도 뽀얗게 수증기가 한층 생기게 되었다. 강한서는 팔을 거울로 턱 받치고 고개를 떨군 채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선생님,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예전에 그런 죄도 있었거든요, 음란죄라고.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 그런 죄를 저지르죠. 플러팅은 시도 때도 없이 해놓고 도망가 버리는 무책임한 사람 말이에요. 가볍게는 3년, 심하게는 10년 징역이라고 하더군요.”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고 샤워기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섞여 아주 섹시하게 들려왔다.유현진은 원래 고개를 돌려 그의 뜨거운 시선을 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순간 강한서가 알몸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시 고개를 드니 뜨거운 그의 시선과 마주하게 되었다. 유현진은 순간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평소와 같은 어투로 말했다.“헛소리야. 그거 네가 만들어 낸 거지? 나도 알아,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한쪽이 거부하면 성추행이라는 거.”강한서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더 바짝 다가가 그녀의 귀를 살짝 깨물었고 한 글자씩 느릿하게 말했다.“97년 때 음란죄가 취소되었어. 그때의 선생님은 나이가 아직 어렸으니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하지만 난 법을 지키는 착한 시민으로서 선생님이 이렇게 자꾸 플러팅해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지. 그러니까... 벌을 받아야지...”그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고 그의 입술이 곧 그녀의 얼굴에 닿을 정도였다.강한서는 평소처럼 진지하게 말했지만, 유현진은 다소 낯 뜨거운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매력을 모두 꺼내 보여주고 있었기에 유현진은 안 넘
어두운 표정으로 이번 일의 경위를 할 번 곱씹은 홍혜림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해금은 항상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 번도 어긋난 적조차 없었다. 조금만 먼저 얘기를 꺼냈다면 의심을 살 수 있었고 조금만 늦으면 도와줄 기회를 놓칠 수 있었다. 서해금은 늘 홍혜림이 더는 손 쓸 방법이 없는 타이밍에 나타났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 당연히 홍혜림은 평소처럼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손길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서해금이 어떤 인간인데?’서해금은 이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거지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었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친아버지도 아버지라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와줄 리가 없어.’‘애초부터 이 모든 것이 서해금이 꾸민 짓이라면 말이 되긴 하지.’‘하지만 대체 왜?’홍혜림은 순간 자신에게도 조향대회의 투표권이 있다는 사실을 또 올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서해금 의도를 파악하게 된 홍혜림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가식적인 X. 감히 날 두고 수작을 부려?’생각에 잠긴 홍혜림이 인상을 폈다 찌푸렸다를 반복하며 가끔은 이를 악무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윤이 걱정스레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홍혜림이 감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역겨운 일이 떠올라서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아직 어린 나이라 홍혜림 말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한 진윤이 말했다. “엄마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전 부정행위도 하지 않았잖아요. 지금은 제가 신고까지 했으니 저희가 여기저기 부탁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저희에게 사정을 해야겠죠. 엄마도 이젠 회사로 나가 보세요. 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 회사에는 네 아빠와 형이 있어. 내가 할 일은 널 지키는 거야.”그 말에 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떠올렸다.“너한텐 좋은 부
진윤: ...진윤이 흥, 콧방귀를 꼈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성 그룹 대표지?”진윤이 머리가 떨어질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엄마,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변이 장난이 아녜요. 게다가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요. 전엔 우리 형이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도 그 형님 앞에선 꼬마에 불과한 것 같아요.”진윤의 뒤통수를 툭 치려던 홍혜림은 그의 머리에 감싸진 붕대를 보고는 시선을 내려 엉덩이를 차버렸다. “형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어?”진윤이 바지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은 건 당연히 형이 더 좋죠.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형님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강한서를 향한 콩깍지가 두껍게 쓰인 진윤의 모습에 홍혜림은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상대방이 강한서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인월이 직접 교육한 아이였으니 성품이 우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진수 그룹과 한성 그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탓에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어 연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윤은 한성 그룹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IT 업계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진윤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홍혜림은 강한서가 아무 이유 없이 진윤을 도울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서가 여자친구 대신 자신에게서 서해금의 일을 알아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홍혜림은 그 일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한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적도 없어 오히려 홍혜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 대표에게 우리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은근슬쩍 오 교수님을 귀띔하게 한 것도 너의 그 스승님 생각인 거야?”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와주겠다고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