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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ulis: 슈퍼라이온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07 07:59:12

이현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전화기 너머의 한서영은 딸의 완전히 달라진 어조에 말을 잃었다.

"조만간 찾아갈게. 그동안은 강 회장 집안 사람들 전화 오면 받지 마. 알았지?"

전화를 끊은 이현은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창밖에는 여전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현은 책상에 앉아 두꺼운 법학 책을 펼쳤다. 형법 총론, 민법 및 판례집. 전생에 훑어보았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정리되어 떠올랐다.

형사소송법 제1조, 민법 제103조...

법조문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는 이현의 눈빛에 차가운 불꽃이 피어올랐다.

'차도혁, 강유라, 그리고 강 회장.'

너희가 만든 신분이라는 감옥에서 날 짓밟으려 했던 모든 것들을,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인 법으로 전부 부숴줄 테니까.

밤이 깊어가는 동안, 서초동의 작고 어두운 방에는 불빛만이 환하게 꺼지지 않았다. 강이현의 두 번째 인생이 비로소 제대로 된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비치던 거친 장대비가 비로소 줄어들었지만, 펜트하우스 내부를 감싼 서늘한 정적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차도혁은 한참 동안이나 문가를 노려보고 서 있었다. 구두 굽 소리가 멀어지고 완벽한 침묵이 파티룸에 떨어졌을 때야 비로소 그는 바닥에 구겨진 채 뒹굴고 있는 서류 봉투를 집어 들었다.

강유라가 요청했던 명품 장신구와 가방의 품번이 적힌 종이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것을 강이현의 손에 쥐여 주는 것은 당연한 일상의 일부였다. 이현은 언제나 그 서류를 조용히 받아 들었고, 도혁의 무심한 눈길 한 자락에도 감지덕지하며 강유라의 온갖 억지와 심부름을 군소리 없이 감내했었다.

사생아라는 비참한 굴레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차도혁이라는 거대한 온실의 그늘 아래 머물기 위해 그녀가 선택했던 비굴한 생존 방식이었다.

'그런데 방금 그 여자는 이걸 툭 차 버렸다.'

도혁은 서류 봉투를 집어 든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빳빳한 종이가 비틀어지며 자작거리는 소리를 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강한 악력이 가해졌다.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 이현이 내뱉었던 건조하고도 서늘한 음성이 환청처럼 맴돌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버리는 일은 없어."

"내 삶은 내가 결정해."

그것은 단순히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려 떼를 쓰는 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자신의 완벽한 통제 아래 놓여 있던 정교한 인형이, 갑자기 제 의지로 줄을 끊어 내고 칼날을 세운 듯한 극심한 이질감이었다.

차도혁은 평생 자신이 설계한 궤도 안에서만 살아왔다. 태성그룹의 일원이자 후계자로서, 그의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상황은 완벽하게 예측 가능해야 했다. 하지만 강이현이라는 존재가 보여 준 이상 행동은 그가 구축해 놓은 정갈한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균열은 불쾌함과 동시에, 설명하기 힘든 자극을 안겨 주었다. 매번 두려움과 눈치를 담고 자신을 올려다보던 그 짙은 눈동자 속에서, 방금 전 도혁이 목격한 것은 완전한 무관심이었다. 마치 그를 한낱 가치 없는 타인으로 치부하는 듯한 그 차가운 시선.

"도혁 씨?"

조용한 침묵을 깨고 파티룸 문이 열렸다. 세련된 실크 드레스를 차려입은 강유라가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내부를 살피다가, 바닥에 떨어진 서류 봉투를 움켜쥐고 있는 도혁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이현 언니 정말 그냥 가 버린 거예요? 아까 언니가 도혁 씨한테 너무 버릇없이 구는 것 같아서 제가 다 가슴이 철렁했어요. 사생아로 자라나서 교양이 부족한 건 알았지만, 도혁 씨 앞에서까지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굴 줄은 몰랐는데..."

유라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도혁의 소매 끝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평소라면 완벽한 명문가 영애의 품격을 갖춘 이복동생이라 여겼을 유라의 가련한 연기가, 오늘따라 도혁의 눈에는 지독하게 유치하고 조잡해 보였다.

도혁은 몸을 돌려 유라의 손길을 자연스럽게 피했다. 그의 서늘한 눈동자가 유라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유라야."

"네, 도혁 씨."

"네 물건 챙기는 일은 앞으로 네가 직접 해라."

"네? 그게 무슨...?"

유라의 얼굴에서 가짜 걱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이현이가 네 하수인인가? 네가 사교 모임에서 쓸 장신구와 가방을 왜 그 애가 일일이 챙겨야 하지?"

"도, 도혁 씨... 전 그냥 언니가 어차피 집에서 한가하게 있으니까 부탁한 것뿐이에요. 도혁 씨도 그동안 언니한테 그런 심부름 시키는 거 당연하게 생각하셨잖아요?"

유라는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지만, 도혁의 시선은 조금도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이전에는 내가 관여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불필요한 일로 이현이를 부르지 마라. 그리고 이 파티룸도 정리가 끝나는 대로 치우고 나가도록 해."

도혁은 구겨진 서류 봉투를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고는 차가운 걸음으로 파티룸을 나섰다.

등 뒤에서 유라가 도혁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빗물이 개어 가는 밤공기 속에서도, 가슴 한구석을 답답하게 짓누르는 이현의 눈빛은 잔상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서초동 외곽의 오래된 오피스텔. 작고 낡은 방 안에는 은은한 스탠드 불빛만이 책상을 밝히고 있었다.

이현은 젖은 머리를 타월로 털어 내며 책상 앞에 앉았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꺼낸 법학 기본서들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지만, 책장을 넘기는 그녀의 손길은 더없이 단호했다. 전생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선명한 조각으로 떠올랐다.

전생에 그녀는 로스쿨 진학을 꿈꾸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법학을 공부했었다. 그러나 사생아라는 이유로 강 회장 가문의 눈치를 봐야 했고, 여자가 너무 유난을 떨면 가문의 수치라는 강 회장의 호통과 조용히 내조나 하며 사는 것이 너에게도 좋을 거라는 차도혁의 방관 속에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짓밟았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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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생아에서 정점의 변호사까지   72

    "체포라고?"이현의 낮고 단정한 음성이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응! 한재신 전 법무부 장관이 주도하는 특검팀이야. 차도혁 대표에게 국가 핵심 기술 유출 교사 및 정관계 불법 자금 조성, 그리고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를 덮어씌웠어! 방금 태성그룹 긴급 이사회가 열려서 차도혁 대표의 대표이사직 해임안이 기습 상정되어 의결되었대!"민우는 노트북 화면을 이현의 앞으로 돌려놓았다.뉴스 화면 속에는 검은 수트 차림에 수갑을 찬 차도혁이 수십 명의 취재진과 수사관들에게 둘러싸여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구치소로 이송되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플래시 빛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는 와중에도, 도혁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그리고 인터뷰에 응한 한재신 특검팀 대변인의 독기 서린 발언이 이어졌다."피의자 차도혁은 거대한 자본을 동원해 법조계와 언론을 기만해 왔습니다. 특히 본 특검은 차도혁과 사적 관계에 있는 일부 여성 변호사 및 특정 법률사무소가 이번 불법 자금 세탁 과정에 깊이 공모한 정황을 포착하였으며, 조만간 해당 법률사무소에 대한 정밀 수사에 착수할 예정입니다."이현을 노골적으로 겨냥한 정치적 매장 공작이었다.민우가 이현의 어깨를 잡으며 다급하게 소리쳤다."이현아! 이건 완벽한 덫이야! 한재신 세력이 태성그룹을 삼키고 너를 매장시키기 위해 판을 짠 거라고! 게다가 방금 태성그룹 법무팀에서 통보가 왔어. 차도혁 대표가 체포되기 직전, 너와 '정점'의 모든 자문 계약을 전면 해지했고... 너와의 그 어떤 접촉도 거부하라는 지시를 내렸대!"

  • 사생아에서 정점의 변호사까지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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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생아에서 정점의 변호사까지   69

    "당신이 한국에서 제아무리 뛰어난 수석 변호사라 한들, 글로벌 자본과 국제 중재의 세계는 당신 같은 개인이 넘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오늘 우리가 제출한 10억 달러 ISDS 중재 의향서가 수용되는 순간, 당신의 의뢰인인 에코텍은 물론이고 당신이 속한 법률사무소 '정점' 역시 천문학적인 배상금에 짓눌려 파산하게 될 것입니다."미국 측 수석 변호사 역시 영어로 거들었다."강 변호사, 당사는 이미 ICSID 및 국제상공회의소(ICC)에 정식 중재를 신청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금융위원회 역시 당사의 요구를 받아들여 당신의 고소 건을 동결하도록 권고조치를 내릴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수임을 철회하고 합의서에 서명하는 것이 당신의 변호사 커리어를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거대 사모펀드와 해외 거대 로펌 변호사단의 노골적인 위협.하지만 이현의 표정에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현은 가방에서 정갈하게 제본된 'ISDS 관할권 부존재 및 긴급 기각 신청서' 서류를 내밀었다.스르륵.서류가 스치며 빅토르 폰의 찻잔 앞에 멈춰 섰다."10억 달러 ISDS 중재 의향서라..."이현의 낮고 맑은 음성이 회의실의 정적을 깼다.이현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수석 변호사이자 단죄자로서의 완벽한 아우라가 회의실 전체를 압도했다."빅토르 폰 회장님, 그리고 피고 측 대리인단 여러분. 한·유럽 FTA 제11조, 그리고 워싱턴 협약 제25조를 다시 한번 정독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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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생아에서 정점의 변호사까지   67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 VK 인베스트먼트의 실질적 수장인 빅토르 폰 회장이 직접 한국으로 건너와 정치권과 결탁하여 반격을 시도할 테니까."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도혁은 이현의 뺨을 다정하게 감싸 안으며 그녀의 입술에 차분하게 입을 맞추었다."빅토르 폰이 오든, 그 누구가 오든 상관없다."도혁의 짙은 눈동자 속에 오직 이현 한 사람만을 향한 영원한 헌신이 피어올랐다."네가 세운 정의와 너라는 정점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쳐 끝까지 함께 싸울 테니까."두 사람의 차분한 입맞춤과 함께, 서울의 화려한 야경 너머로 새로운 거대 포식자 빅토르 폰과의 치열한 전면전을 향한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가파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법정 밖의 공조김포국제공항 프라이빗 비행장 전용 터미널.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내린 최신형 전용기에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빳빳하게 각이 잡힌 고급 턱시도 코트를 걸치고 은테 안경을 쓴 사내, 글로벌 사모펀드 VK 인베스트먼트의 실질적 수장인 빅토르 폰 회장이었다.그의 뒤로는 수십 명의 해외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들과 경호원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며 정렬했다."회장님."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국 지사장 에릭 킴과 로펌 해일의 정구철 대표 변호사가 핏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조아렸다. 에릭 킴의 손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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