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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게시일: 2026-09-13 07:18:36

"나도 갈 거야. 그들이 원하는 대로 걸어 들어갈게."

"이현아!"

"걱정하지 마, 엄마. 예전의 강이현은 죽었어. 이번엔 내가 그 사람들의 목을 쥘 차례야."

이현은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다.

휴대전화가 꺼지기가 무섭게, 강 회장의 비서실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강이현 씨. 오늘 저녁 7시, 성북동 본가에서 회장님과의 식사 자리가 있습니다. 차도혁 대표님도 참석하시니 늦지 않게 참석하십시오.]

초대장의 탈을 쓴 위협이자 명령이었다. 이현을 저택으로 끌어내어 무릎을 꿇리고, 어머니의 생계를 인질로 삼아 다시 차도혁의 충실한 인형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거대한 함정.

이현은 오피스텔로 돌아와 옷장 문을 열었다.

전생에 차도혁의 취향에 맞추어 입었던 파스텔톤의 순종적인 원피스들은 이미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진 뒤였다.

옷장 안에는 얼마 전 새로 구입한 딥 네이비 컬러의 깔끔한 정장이 걸려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핏과 날카로운 카라. 그것은 파티에 참석하는 여인의 옷이 아니라, 법정에 서는 변호사의 갑옷과도 같았다.

이현은 수트를 갖춰 입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사생아라는 낙인에 짓눌려 눈치를 보던 연약한 여자는 없었다. 차갑게 빛나는 눈동자, 단단하게 다물린 입술, 그리고 어떤 압박에도 굴하지 않을 결의로 가득 찬 변호사 강이현이 서 있었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가죽 가방 안에 몇 가지 서류를 챙겨 넣었다. 강씨 가문의 재단 회계 자료 사본과,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정리해 둔 강 회장의 비리 정황 메모였다.

'덤벼봐, 차도혁. 그리고 강 회장.'

이현은 가방을 움켜쥐고 오피스텔을 나섰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서울의 야경 속으로, 그녀는 호랑이의 굴을 향해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오후 6시 50분, 성북동 강씨 가문의 대저택 앞.

웅장한 철문이 열리고 이현이 탄 택시가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잘 정돈된 정원과 수억 원을 호가하는 소나무들, 그리고 고풍스러운 대저택의 외관은 여전했다.

전생의 이현에게 이곳은 들어설 때마다 숨이 막히고 손발이 떨리던 공포의 공간이었다. 자신이 사생아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며, 이선희와 유라의 악의적인 눈빛을 견뎌내야 했던 지옥.

하지만 택시에서 내린 이현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대문 앞에 서 있던 집사가 이현을 보고 스쳐 지나가듯 목인사를 건넸다. 사생아인 그녀를 평소처럼 하대하는 태도였다. 이현은 집사를 향해 차가운 눈길을 한번 던지고는 망설임 없이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화려한 대리석 타일이 깔린 거실 중앙, 웅장한 식탁에는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상석에는 강씨 가문의 수장이자 오만한 권력자인 강 회장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승리감에 도취된 미소를 짓고 있는 이선희와 강유라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강 회장의 맞은편, 차분하면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풍기는 사내, 차도혁이 수트를 입고 앉아 있었다.

도혁은 이현이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현이 입고 온 옷차림 때문이었다. 과거 자신과의 식사 자리에 올 때면 언제나 그가 좋아하던 화사한 원피스를 입고, 눈치를 보며 수줍게 웃던 그 여자가 아니었다. 시크하고 날카로운 네이비 수트를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묶어 올린 이현의 모습은 마치 싸우러 온 투사와 같았다.

"왔냐."

강 회장이 숟가락을 놓으며 낮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거실 전체를 압도하는 권위적인 어조였다.

"사생아 주제에 제법 도도해졌더구나. 도혁이와의 약혼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파티룸에서 그따위 난동을 피우고, 네 동생에게 폭언을 퍼부어?"

강 회장의 호통에 유라는 불쌍한 척 눈시울을 붉히며 도혁의 눈치를 살폈고, 이선희는 비웃음을 머금은 채 차를 홀짝였다.

그러나 이현은 식탁 앞으로 걸어가 서서, 강 회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고개를 숙이지도, 주춤거리지도 않았다.

"난동을 피운 적 없습니다. 그저 불필요한 심부름을 거절했을 뿐입니다."

"뭐라?"

강 회장의 눈썹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감히 자신의 말을 받아치는 이현의 태도에 거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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