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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3 09:42:41

며칠 뒤, 궁궐에 피바람을 몰고 올 거대한 사건이 터졌다.

조정의 사헌부와 의금부 관원들이 소유의 친정이자 이조판서인 설진목의 자택을 급습한 것이다. 죄명은 태후 마마의 건강을 해치기 위해 사술을 부리고, 외척들과 모반을 도모했다는 중죄였다.

그리고 그 음모의 중심에는 소유의 모친인 정경부인 한 씨가 적시되어 있었다.

"마마! 큰일 났사옵니다! 마마!"

향단이가 핏기를 잃은 얼굴로 영화전으로 달려 들어왔다.

"정경부인 마마께서 태후 마마를 저주하는 인형을 처소에 숨겨두었다는 혐의로 의금부 옥사에 투옥되셨사옵니다! 가문의 모든 재산이 압류되고 아버님 또한 의금부로 끌려가 추국을 받고 계신다 하옵니다!"

소유의 손에 들려있던 찻잔이 떨렸다.

전생의 비극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전생에서도 채령은 소유의 어머니에게 태후의 건강을 기원하는 불상을 선물한다는 핑계로 그 안에 저주 문서를 숨겨두어 가문을 모반죄로 몰아넣었었다.

이번 생에서는 소유가 자신에게 들어오는 독을 막아내자, 채령이 시기를 앞당겨 모친을 직접 타깃으로 삼은 것이었다.

'어머니...!'

소유의 가슴속에서 전생의 사약보다 더 지독한 고통이 몰려왔다. 차디찬 의금부 돌바닥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어머니의 모습이 환영처럼 스쳐 지나갔다.

'안 된다. 이번 생에서는 절대로 어머니와 아버님을 단형대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소유는 차갑게 식어가는 가슴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령의 목적은 명확했다. 소유가 당황하여 자신에게 찾아와 빌거나, 황제에게 찾아가 통곡하며 애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소유가 예전처럼 이혁의 바짓자락을 잡고 애원한다면, 이혁은 더욱 큰 실망감을 느끼고 가문을 완전히 쓸어버릴 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희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겠다.'

소유는 비단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었다. 화려한 장식은 모두 배제하고, 깔끔하고 단정한 소복 차림의 숙의 도포를 입었다.

"마마, 어디로 가시옵니까?"

향단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강녕전으로 간다. 황상 폐하를 뵈러."

소유의 목소리에는 단 한 치의 떨림도 없었다.

"예? 하지만 마마, 폐하께 가셔서 가문을 살려달라 애원하시면 폐하께서 더 노여워하실 텐데요?"

"애원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소유는 눈동자를 번뜩였다.

"거래를 하러 가는 것이다. 폐하께서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완벽한 거래를."

강녕전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조정의 대신들이 설 씨 가문의 모반 혐의를 두고 소리를 높이고 있었고, 황제 이혁은 황좌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며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내관의 목소리가 울려 파져 나갔다.

"숙의 설씨 마마께서 황상 폐하를 접견하고자 청하고 계시옵니다!"

대신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쪽으로 쏠렸다. 이조판서 설진목의 딸이자 모반죄로 고발당한 가문의 여인이 제 발로 황제의 처소를 찾아온 것이다. 분명 눈물바람으로 황제의 은혜를 구걸하러 왔으리라 모두가 생각했다.

이혁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

'결국 너도 별수 없는 여인이었단 말인가? 가문이 위기에 처하니 다시 내게 찾아와 눈물을 흘리려 하는가?'

이혁의 가슴속에서 섭섭함과 함께 깊은 환멸이 밀려왔다. 얼마 전 영화전에서 보여주었던 그 도도하고 차가운 태도 역시 그저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얄팍한 연극이었나 싶었던 것이다.

"들라하라."

이혁의 허락이 떨어지자, 강녕전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

단정한 흰 비단 도포를 입은 소유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 하나 없었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 당당한 걸음걸이, 그리고 조용히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품에 조정 대신들은 숨을 죽였다.

소유는 이혁의 앞에 서서 완벽하게 예법을 갖추어 절을 올렸다.

"소첩, 황상 폐하를 뵈옵니다.“

이혁은 좌정해 소유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태후 마마를 저주하고 모반을 꾀한 죄로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너 역시 그 죄인의 자식이어늘, 감히 어떤 염치로 이곳에 건너왔느냐? 내게 눈물로 가문의 목숨을 살려달라 비비고 싶어서 왔느냐?"

이혁의 독설이 강녕전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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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생에서 소유의 가문인 설 씨 가문은 문벌 귀족으로서 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것이 이혁에게는 늘 눈의 가시거리이자 경계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채령의 음모가 터졌을 때 이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유의 아버지를 모반죄로 몰아 처형했던 것이다.'이번 생에서는 아버님을 조정의 비바람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그러려면 내궁의 은밀한 간자들부터 정리해야겠지?'소유의 시선이 영화전 문밖을 향했다.영화전에는 채령이 심어둔 궁녀들과 상궁들이 수두룩했다. 주인이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그들은 채령에게 영화전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 왔었다.다음 날 아침, 소유는 영화전의 모든 나인들과 궁녀들을 뜰에 불러 모았다.마당에 모여든 삼십여 명의 궁녀들은 평소 온순하기만 했던 숙의 설씨의 눈빛이 전과 다르게 매서워진 것을 느끼고 웅성거렸다. 그중에서도 채령의 수하인 선임 나인 묘향은 턱을 높이 들고 은근히 소유를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마마, 몸도 완쾌되지 않으셨는데 어찌 이 아침부터 사람들을 모으셨나이까?"묘향이 기어오르는 말투로 물었다.소유는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묘향을 내려다보았다."내가 아픈 동안 영화전의 기강이 엉망이 되었더구나. 주인에게 아뢰지도 않고 영화전의 물품을 바깥으로 유출하고, 허락 없이 다른 전각을 드나든 자가 있다 들었다."묘향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마, 마마!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소인들은 모두 마마를 위해 충성을 다하였사옵니다!""충성?"소유는 비단 주머니에서 지난밤 향로에서 긁어모은 자설향의 재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이 독 향을 태후 마마의 하사품이라 속여 내 침실에 매일 피운 자가 누구냐? 또한 내가 폐하를 찾으며 울부짖는다는 거짓 소문을 외전에 퍼뜨린 자가 누구이더냐?"소유의 서리 내린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다."소, 소인은 모르는 일이옵니다!"묘향이 당황하여 소리쳤다.소유는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네 방 장롱 밑에서 채령 마마로부터 받은 금가락지와 비단이 나왔다더구나. 향단이가 이미 의금부 호위대를 불러 네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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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나를 찾아 매일 밤 울부짖었다 들었다. 병을 핑계로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이려 한 것이 아니냐?"이혁의 독설 같은 질문에도 소유의 표정에는 단 한 조각의 경련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소유는 오히려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따스함이 아닌, 완벽한 거절의 미소였다."폐하. 소첩은 폐하를 불러달라 청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나이다. 소첩의 가벼운 질환으로 정사에 바쁘신 폐하의 걸음을 어지럽힐까 저어하여, 오히려 내관들에게 소식을 전하지 말라 당부하였사옵니다."소유는 말을 마치며 채령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누군가 중간에서 말을 와전시키고, 소첩의 이름을 팔아 폐하를 이곳까지 걸음 하게 만든 모양입니다. 소첩의 불찰이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채령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자신이 이혁에게 했던 거짓말이 소유의 담담한 한마디에 그대로 드러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언, 언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가 폐하께 거짓을 아뢰었다는 뜻인가요?""내가 언제 너라 하였느냐?"소유가 나지막하게 받아쳤다."그저 말이 와전되었다 하였을 뿐인데, 어찌 그리 과민하게 반응하느냐?""큭..."채령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이혁은 두 여인 사이의 기류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설소유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자신을 향해 구걸하듯 뿜어대던 그 맹목적인 사랑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같았다."너... 진정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는 뜻이냐?"이혁이 한 걸음 다가서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례적으로 혼란스러움이 섞여 있었다.소유는 도도하게 고개를 들고 이혁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예, 폐하. 소첩은 더 이상 폐하의 눈길이나 온정을 기대하지 않나이다.""뭐라고?""소첩은 이제 깨달았습니다. 후궁의 본분은 폐하의 사랑을 구걸하여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제 몸을 보전하고 내궁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것임을 말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소첩의 영화전에는 걸음을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방 안의 모든 공기가 순간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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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유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거역할 수 없는 위엄과 서늘함이 서려 있었다. 평소 온순하고 다정하던 주인의 전혀 다른 모습에 향단이는 흠칫 놀라며 서둘러 찻주전자를 들어 향로에 물을 부었다.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며 독 향이 사라졌다."그리고 저 향로에 남은 재를 모두 긁어모아 아무도 모르게 내 비단 주머니에 담아두어라. 절대로 누설해서는 안 된다.""예, 예! 마마!"향단이는 겁에 질린 채 고개를 조아렸다.소유는 침상에서 내려와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구리거울 속에는 앳되고 맑은 얼굴의 여인이 서 있었다. 눈가는 핼쑥했으나, 그 안에 담긴 눈빛만큼은 전생의 어리석었던 여인이 아니었다.'이혁. 설채령.'소유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서늘하게 중얼거렸다.'너희가 나를 비참하게 짓밟았던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 이번 생에서는 절대 사랑을 구걸하는 가련한 희생양이 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그토록 갈망하는 그 모든 것을, 내가 의술과 지략으로 하나씩 빼앗아 줄 테니.* 황제 이혁과의 재회 및 기싸움바로 그때였다. 영화전 마당에서 거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내관의 높은 목소리가 귓전을 찢었다."황상 폐하 하차시오!"향단이가 흠칫 놀라며 바닥에 엎드렸다."마, 마마! 폐하께서 오셨사옵니다! 어찌합니까? 어서 침상에 누우셔야..."소유는 단호하게 손을 들어 향단이를 제지했다.'이혁이 왔다고?'전생에서 이 시기에 이혁이 영화전을 찾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채령이 중간에서 소유의 병세를 과장하고, 소유가 폐하를 찾아 떼를 썼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려 이혁의 발길을 끊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왜 지금 이혁이 직접 이곳에 나타난 것인가?역사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유의 심장은 단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었다.‘쾅’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칠흑 같은 묵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선명한 턱선, 날카로운 매의 눈매, 그리고 보는 이의 숨을 막히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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