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원체 수능 당일이란 한파가 몰려오는 게 유구한 역사라더니 올해는 눈발 하나 날리지 않고 청아한 푸른색의 하늘만이 전부였다.아니, 어쩌면 그날의 긴장감이 매서운 체감 온도를 잡아먹었다고 표현하는 게 정답이려나.아무튼 전국의 수험생들은 동일한 시간대에 동일한 시험지를 받고 모든 사활을 걸었다니 요즘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막바지 시기였다.물론 우리의 아기 토끼들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단숨에 손에 넣고 만다는 존재로서 제 명성을 자랑한지도 벌써 수일이 흘렀고 말이다.“안녕하세요~ 계란빵 만 원만 하고 싶어요.”“네. 만 원 받았고요. 지금 새로 굽고 있어요. 오 분 정도 걸리니까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네~”겨울 바람결에 바스락거리는 가판대 저 멀리에서부터 솔솔 풍겨온 달콤한 냄새.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오는 계란빵 트럭이 아니란 걸 감지했으니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잠시 우회하기로 한 건 어쩔 수 없었다는 거지.아무래도 남들과 다른 리짱의 선구안이란 지갑에 지폐 두어 장쯤은 꼭꼭 넣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쉽게 증명될 때가 많다니 말이다.“뒤에 계신 손님은 뭐로 하시겠어요?”“아, 죄송합니다. 저희 이렇게 동행이었어요.”아니, 누군데 함부로 동행을 자처하는 거지.여기 리짱 말고 다른 손님이 어디 있다고.하지만 사람의 생각이란 익숙한 향이며 익숙한 촉감을 마주하는 순간 그새 또 다른 방향으로 꺾일 수 있다는 걸 간과한 거다.“설마… 설마 리짱을 마중 나온 휘안이일까? 정말이지 리짱은 잠깐만 딴 길로 새기로 한 건데. 그새를 못 참고 리짱에게로 온 거라고?”계란빵 트럭 앞에 자리 잡고 손난로 하나에 의존해 입김 좀 호호 분 게 얼마나 지났다고 뒤에서부터 포근히도 감싸오는 품.이건 정말이지 리짱의 탐정 모드가 발동되기 최적의 상황이었다니 말이다.“응~ 알면 뒤 좀 돌아봐 주지? 막 대답만 응이라고 하고 내가 휘안이가 아니면 어떡해. 율혜도 모르는 외간 남자 품일 수도 있어.”“그럴 리가. 리짱은 냄새 감별사야. 그니까 저 멀리서도 계란빵
“맞아. 성향이 안 맞는데 억지로 어울리는 건 진짜 못할 일이야. 게다가 이런 상황이 한두 번 반복되겠어? 수없이 반복되는 쪽일 테지.”“응. 앞으로 예린이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걸? 그때마다 예린이게게 맞는 사람만을 만날 수는 없어.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가 도움이 된다는 거지.”“율혜 넌 정말 허투루 사회생활을 했던 거 아니구나. 어쩜 모든 말마다 다 주옥같아.”“치잇~ 아무튼 휘안이한테도 직접 물어보기 어렵다면 상황을 좀 더 지켜보는 것도 좋겠어. 그 둘이 어떤 관계든 우린 관계자가 아니니까.”이젠 정말이지 고3 수험생 생활의 막바지.그러니 괜한 관심을 돌릴 때가 아니다.한때 저를 좋아했던 거 치고는 저에게 별 같잖은 애로 낙인이 찍혀버린 남자애?한때 제 남자 친구와 제 사이를 부정하려 애쓰고 저에게 못된 말만을 퍼부은 여자애?제 목표에 모든 걸 쏟아 부어도 모자랄 판이니 만큼 그 둘의 발전된 관계란 좀 더 나중에 알은체해도 그만이라니 말이다.***같이 왔다면 꺄르르 웃고 마음껏 좋아했겠지.예쁜 구도를 잡겠다며 카메라를 매만지고 조막만한 얼굴이 렌즈에 가려지든 말든 마음에 든 풍경부터 바로 담아냈을 우리 율혜.아직까지는 남의 대학이 확실한 캠퍼스 호수 근처에 서서 핸드폰 배경 화면을 쓰다듬기.왠지 그 어느 때보다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눈사람과 키를 재고 있는 아기 리짱인 거 같다.글쎄, 남들이 들으면 허무맹랑한 추측일 테지만 저는 그 착각만으로도 다 좋다니까.“보고 싶네. 얼른 가서 꼭 하고 안아줘야지.”마지막 실기 면접을 응원하겠다며 주말 아침 댓바람부터 저희 집 앞을 찾아온 상황 하나.지하철 입구에 다 와서는 미묘하게 달라진 울망울망한 눈꼬리에 웅얼거리는 말주변 둘.뭔가 일찍이 떨어지는 게 아쉽고 그렇다고 속없이 따라가는 건 더 싫다는 속삭임 셋.뭐가 이렇게 투명한 마음씨인지 까딱하면 웃음이 흩어질 뻔 했지만 율혜 나름대로는 진지한 고민인지라 입꼬리를 바로 단속했다.날도 추운데 밖에 오래 있으
오늘만 해도 문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는지 덕분에 어느 면접장이든 노크는 문제없겠다.솔직히 일개 학생이 직접 노크까지 하고 면접장에 들어설 일이 얼마나 될까 싶다.하지만 상황 극이란 뭘 따질 겨를도 없이 몰입부터 하는 게 올바른 시작이라고 하지.덕분에 뜻 모를 자신감이 잔뜩 생겨서는 실전은 이것보다도 낫겠지 하는 바른 판단이 서기도 했고.“후... 율혜야. 내 지금 심정을 말해볼까? 난 말이야. 내 면접이 내일 당장이라고 해도 다 받아들일 수 있어. 긴장? 아니, 긴장이라는 게 뭐지? 닥치면 다 하게 된다는데. 안 그래?”“치잇~ 그렇다면 오늘 하루는 성공이야. 대학 입시 면접이란 틀이 정해져있고 많이 겪어보면 겪어볼수록 더 잘 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그런 의미에서 모두에게 도움이 됐다는 거지.”“그니까 말이야. 근데 우리가 뽑아온 각종 질문도 질문이지만 율혜 네가 진짜 최고였어. 생각해온 캐릭터들 전부 다 빌런 그 자체였어.”괴짜 교수님 역할을 위해서는 제가 가진 선글라스를 꺼내놓고 하나씩 다 써보았단다.시니컬한 경쟁자 역할을 위해서는 허공에 무언가를 집는지 저조차도 모른다는 손짓으로 전날 러닝머신 위에서 뜀박질을 다해봤단다.그러니 그 말을 듣고 감탄하지 않을 수 있나.율혜의 노력이란 인정받아야만 마땅하다는데.“그리고 다른 애들은 또 어땠는데. 초장에 꼬리 질문을 무기로 모든 기선을 제압하려는 교수님부터 미지의 교포까지. 글쎄, 나 빼고 너희 셋이서 리허설이라도 한 줄 알았다니까.”“에이, 예린이는 또 어땠는데. 자기 연구에만 관심이 있고 학생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교수님. 그러다 면접 중에 마음에 드는 학생을 만나면 그때부터 태도가 돌변하는 게 포인트였잖아.”“맞아. 운명이라는 듯 고개를 빡! 그리고 준비된 질문 말고 자기 마음 가는대로 질문을 퍼붓는 거야. 훗날 대학원생으로 잡아가려고.”“정말이지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이야기겠어. 웃음으로 소비될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 말이야. 역시 예린이도 안 그런 척 해도 진심이었던 거지. 그
좋은 면접관이 되기 위한 첫 걸음.우선 면접관 본인의 기분이 좋아야 합니다.따라서 다채로운 면접이 펼쳐질 결전의 장소로 가기 직전, 팝 업 형식의 소품 숍에 들러 뭐라도 하나 건지겠다는 마음가짐을 내비치는 건 정답이라는 뜻입니다.“휘안아. 이게 예뻐~ 아니면 이게 예뻐?”“글쎄~ 여기 율혜 말고 또 예쁜 게 있나. 나는 잘 모르겠어. 예쁜 건 율혜뿐이잖아.”“이런, 틈만 났다 하면 리짱을 설레게 만들고 말 거라는 휘안이. 하지만 더는 리짱의 의도를 오해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 리짱 말고 이 둘 중에서 더 예쁜 걸 골라달라는 뜻이었으니까.”“헤헤. 그럼 난 이거? 마침 또 오늘 우리 율혜가 빨강색 카디건 색을 입고 있으니까요.”누가 봐도 주인이 확실해 보이던 머리핀들.사실 구매한 그 자리에서 바로 장착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머리핀 이외에도 눈길이 가는 예쁜 액세서리들이 좀 많았어야지.그러니 눈요기를 마치고 사진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긴 지금에서야 빨강색 하트 머리핀과 하얀색 하트 머리핀 중에서 추가적인 고민에 대한 답변을 내보이겠다는 율혜였던 거다.“옳지. 누구 안목 덕분에 이렇게 찰떡인지 몰라. 이러면 면접 프리패스 아니야? 율혜도 봐봐.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압박 면접을 해.”“치잇~ 이렇게 완벽한 준비를 마친 때라면 승리의 여신을 부르는 주문도 빼놓을 수 없지. 리짱은 승리한다! 리짱은 반드시 합격한다!”“아니, 승리의 여신이라는 말도 알아? 이걸 어떡하면 좋지. 요 근래 율혜가 말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게 한 두 번이 아니야.”“응. 하지만 말이야. 리짱은 백과사전 암기 빵을 먹지 않고도 정정당당하게 외웠다는 거야. 그니까 휘안이는 걱정이란 걸 넣어둬도 돼.”나날이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율혜의 어휘력.덕분에 휘안은 제 면접도 면접이지만 율혜가 지엄하신 대학 교수님들을 앞에 두고 어떤 답변을 선보일지 그게 더 궁금한 입장이었다.“또한 휘안이가 실기 면접을 보러가는 날에는 바쁜 휘안이를 대신해서 승리의 여신도 부를 예정인걸.
원체 가을 하늘은 다른 계절 속 하늘보다 높게만 느껴지고, 길가에 떨어진 낙엽들은 가을 계절 특유의 삭막한 분위기를 더해준다고 한다.근데 또 우리의 아기 토끼란 그리 쉽게 계절을 쉽게 타는 존재가 아니라며 길가에 떨어진 낙엽들의 자취를 따라 이리도 꺄르르 저리도 꺄르르 신이 난 모습을 보여준다.그러다 고약한 은행이라도 밟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저들에게는 귓등으로도 안 들릴 게 분명하다는 거고.“예린아. 쟤들은 또 왜 저렇게 신난 거야? 오늘따라 텐션이 말도 안 되게 높아 보이는데.”“그래. 재이 넌 이제야 의아해 하겠지만 난 저 장면을 아침부터 봐왔다는 거야.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까. 그저 동네 꼬마로 보면 그만인걸. 저 둘은 뭉치면 끝도 없이 강해져.”“왜? 셋이서 하는 밸런스 게임이 쉽게 안 끝났어? 그래서 아침부터 기가 빨렸던 거야?”“정확해. 내가 한 명씩은 컨트롤 해보겠지만 두 명 다 컨트롤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거든. 저 둘은 나이를 허투루 먹은 애들이라고 보면 돼.”사람의 엉덩이는 한 쪽인가, 두 쪽인가.오전 내내 이 둘 사이에 껴서 한 마디씩 보탠 결과 두 쪽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냈다.근데 그게 시작이었던 걸까.점심시간 이후 매 쉬는 시간마다 이상한 주제를 가져와서는 다양한 토론이 이어졌다.“아까 뭐랬더라. 모르는 사람이랑 토크하기. 모르는 토끼랑 사랑하기. 이 둘 중에 뭐가 더 낫냐고 물어보던데. 아니, 이게 내일 당장 대학 면접을 앞둔 고3들끼리 주고받을 대화냐고.”“와우~ 라임 한 번 끝내주는데?”“그러게. 라임은 끝내줬어. 라디안 작사가로 데뷔한 경력 여전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결론 내기가 어려웠지만 말이야.”분명 어이가 없고 시답잖은 질문이 확실한데 그 말도 안 되는 질문 속 가정에 한해 고민에 고민을 더해보게 만들기.그러다 어느 순간에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만 이 토론에서 빠져보겠다는 의사를 전달할까도 싶었지만 그마저도 어려웠다.초롱초롱하니 저만을 바라보는 두 시선
앞에서야 꽤나 담담한 척이었지만 혼자 있을 때만 되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마감이 된 원서 접수 페이지를 들락거리기 바쁘다.이미 그 경쟁률이야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다 외웠지만 불안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니까.어느 순간에서야 정신을 차리고 나름 신경을 쓴다고는 했어도 많이도 모자랐을 생기부.특히나 내신 성적 관련해서는 뭐라 꾸며낼 수도 없는 입장이니 믿을 건 연극부 활동에 관한 양치기 서술이 전부였다.“소연아! 너 이거 떨어트렸어.”“아, 고마워. 떨어트린 줄도 몰랐네.”잃어버려도 딱히 별 상관이 없는 유인물.그래도 맨 위에 제 이름을 적어놓은 게 헛된 건 아니었는지 빨리도 저에게로 돌아왔다.“우리 되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 요즘 예체능 실기 준비하는 애들은 많이들 조퇴하는 거 같던데. 소연이 넌 학원 안 가 봐도 돼?”“응. 난 하교 후에 수업 있는 연기 학원으로 다녀. 결정적으로 우리 담임은 학교 조퇴하는 거 잘 안 받아주시거든. 실기 준비든 뭐든.”“그래? 우리 반은 다 괜찮다는 주의시던데. 예체능은 실기가 중요하다며. 그래서 그런가. 애들 조퇴 같은 부분은 잘 받아주시더라고.”깐깐할 줄로만 알았던 김미영 선생님의 반전.올해는 작년과는 달리 전체의 단합보다는 개개인의 선택을 지지하는 지도력을 보이셨다.덕분에 예체능 실기를 준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저도 김미영 선생님이 담임으로 계신 반에 속하고 싶다는 말이 돌았다.더욱이 그 반에는 비주얼로 유명한 아기 토끼 커플이 자리해서는 시도 때도 없이 눈요기란 눈요기도 가능했다니 말이다.“다행이네. 알아서 잘 하겠지만 휘안이 걘 걱정 덜었겠지 싶어. 실기 면접 잡힌 주간에 자기만 편의 봐달라고 말 안 꺼내도 되니까.”“차휘안? 음... 소연이 너 여전하구나?”“나? 내가 여전하다고?”“아! 나쁜 의미로 말한 건 아니야. 요즘 한참 제 밥그릇만 챙기기만 해도 정신없을 때잖아. 근데 차휘안까지 신경 써주는 게 신기해서.”한때 소연의 별명이었던 휘안 맘.이제 와 생각해보면 휘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