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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블루 다이아몬드에 담긴 침묵값

Author: pinecon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5 13:29:12

오후 1시 30분. S그룹 본사.

한이설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 오른손등의 거즈는 셔츠 소매에 가려져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오후에 예정된 프랑스 두마스 그룹과의 계약 자료를 정리했다. 그때 내선 전화가 울렸다.

“한 비서님, 대표님께서 돌아오신 걸 확인하시고 부회장실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알겠습니다.”

이설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회장실 안에서 권제하는 오후 이사회 안건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서자 만년필을 내려놓고 시선을 들었다.

그의 눈길이 이설의 얼굴을 지나 오른손등에 감긴 거즈에 머물렀다.

“손은 좀 어때?”

“병원에서 치료받았습니다. 가벼운 상처라 업무에는 문제없습니다.”

이설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권제하는 그녀의 태도에 미간을 살짝 좁혔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혼자 삼키는 모습이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

“따라와.”

부회장실 안쪽의 숨겨진 문을 열자 개인 휴게실이 나타났다. 권제하는 소파 옆 수납공간에서 남색 벨벳 보석함을 꺼냈다.

“와서 앉아.”

이설이 소파 끝에 앉자 그가 보석함을 열었다.

안에는 짙고 영롱한 푸른빛을 뿜는 블루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8캐럿의 희귀한 수레국화색 다이아몬드가 백금 장식에 세팅된 고급스러운 작품이었다.

이설이 잠시 목걸이를 바라보는 사이, 제하는 그것을 꺼내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

그가 몸을 숙여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잠금장치를 채우는 손길은 서툴지만 조심스러웠다. 차가운 펜던트가 쇄골에 닿았다.

그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아는 어릴 때부터 유씨 집안에서 귀하게 자랐어.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들어 본 적도 없고. 원래 좀 여린 애야. 지금 그룹과 유씨 메디컬이 3천억 원 규모의 인수합병을 추진 중이야. 그러니 오전 일은 그냥 넘어가 줘. 회사에서도 세아한테 웬만하면 맞춰 주고.”

이설은 쇄골 위에서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를 내려다봤다.

그래서 자신을 휴게실로 불러 목걸이까지 걸어 준 거였다.

자신을 다치게 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정작 피해자인 자신에게 참으라고 한다. 값비싼 보석으로 입을 다물게 하려는 셈이었다.

이설은 그동안 권제하가 냉정하고 오만해도 적어도 일에서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믿음마저 깨졌다.

그는 다른 여자를 감싸기 위해서라면 뻔히 보이는 사실조차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설은 오른손등의 거즈를 내려다봤다. 상처에서 배어 나온 피처럼 마음속에도 씁쓸함이 번졌다.

그녀는 목걸이에 손도 대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거리를 벌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럼 오후 계약 자료를 준비하러 가 보겠습니다.”

권제하는 소파 뒤에 선 채 잠시 손을 멈췄다.

차갑게 돌아선 그녀의 옆얼굴에 미간이 좁혀졌다.

사실 이 목걸이는 유세아에게 사과하기 위해 준비한 선물이 아니었다. 지난달 제네바 경매에서 이설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 거액을 주고 낙찰받은 물건이었다.

그는 그녀의 목에 걸린 다이아몬드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한테 잘 어울려. 지난달 일부러 경매에서 사 둔 거야.’

하지만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바깥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하 안에 있니? 오후 2시에 인수합병 사전 심사가 시작되잖아. 세아가 유럽 프로젝트 보고 순서를 맞춰 보려고 왔단다.”

박영숙과 유세아의 목소리였다.

권제하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 이설이 목걸이를 한 채 휴게실에서 나가는 모습을 두 사람이 본다면 또다시 시끄러워질 게 뻔했다.

그는 이설을 향해 목소리를 낮췄다.

“어머니와 세아가 왔어. 여기서 잠깐 기다려. 내가 나가 볼 테니까 나오지 말고.”

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휴게실을 나갔다. 숨겨진 문이 닫히고 잠금장치가 걸렸다.

문밖에서 유세아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제하 오빠.”

휴게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설은 소파에 앉아 맞은편 거울을 바라봤다.

창백한 얼굴과 단정한 비서 정장. 그리고 목에 걸린 8캐럿 블루 다이아몬드.

눈부시게 아름다운 목걸이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값비싼 전리품이자 치욕스러운 족쇄처럼 보였다.

지난 3년 동안 권제하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거나 업무에서 냉대하고 나면 값비싼 선물을 보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수석 보좌관을 통해 전달된 파텍 필립 여성용 시계는 어느새 열 개나 쌓여 있었다.

오늘은 블루 다이아몬드 목걸이까지 하나 더 늘었다.

이설은 왼손으로 펜던트를 가볍게 건드렸다. 안경 너머의 눈에는 감동도 미련도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을 비밀 결혼의 장식품에게 걸어 두다니. 아깝기도 하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녀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서랍에 모아 둔 시계 열 개는 조만간 명품 중고 매입업체에 팔아 스위스로 떠날 초기 자금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이 목걸이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에는 사람을 불러 시계와 함께 한꺼번에 팔아 버리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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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연회장이 술렁였다.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지고, 하객들 사이에서 놀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이설은 그 자리에 선 채 제하를 바라봤다. 약지에 끼워진 반지와 자신을 잡은 그의 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오랫동안 자신을 외면하고, 다른 여자를 위해 자신의 노력을 빼앗고, 상처를 입어도 모른 척했던 남자.그런 그가 지금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을 아내라고 선언했다.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만찬이 끝나기도 전에 서울의 경제계와 사교계는 발칵 뒤집혔다.‘S그룹 권제하 부회장,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결혼 3년 차 아내 최초 공개! 200억 원 상당의 핑크 다이아몬드로 아내의 정체 밝혀!’기사는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와 SNS를 장악했다.박영숙 이사장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그룹 원로들까지 그날 밤 권제하에게 해명을 요구했다.만찬이 끝나자 제하는 이설을 데리고 호텔 최고층 스위트룸으로 향했다.방에 들어선 그는 보타이를 풀며 이설을 돌아봤다.“오늘 오래 서 있었잖아. 먼저 씻고 쉬어. 아까 술도 두 잔이나 마셨으니 속이 불편할 거야. 북엇국도 준비해 뒀어.”“네.”“나는 복도 끝 전략실에서 당숙 어른들과 인수합병 문제를 논의하고 올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이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그녀는 침대에 앉아 왼손 약지의 핑크 다이아몬드를 내려다봤다.밤 11시 30분쯤, 직원이 북엇국과 따뜻한 홍삼차를 가져왔다. 홍삼차는 제하가 마실 것이었다.이설은 잠시 망설이다 쟁반을 들었다.그에게 직접 전해 주고 싶었다. 오늘 무대에서 자신을 아내라고 선언한 이유를, 짧게라도 듣고 싶었다.그녀는 복도 끝 전략실로 향했다.문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다. 좁은 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노크하려던 순간, 안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제하야, 솔직히 말해 봐라. 오늘 그 귀한 핑크 다이아몬드까지 한이설 손에 끼워 준 게 설마 진심이냐? 한진국 그 범죄자의 딸에게 마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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