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진묵의 목 안쪽에서 뛰는 맥이 온보요의 손을 먼저 데웠다.그는 그녀의 젖은 장옷을 벗겨 화로 곁에 걸었다. 연회색 천에서는 빗물과 쪽물 냄새가 났다. 속치마 끝도 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진묵은 무릎을 굽혀 젖은 신을 벗기고, 차가워진 발을 마른 이불 위에 올렸다."신첩이 할 수 있습니다.""알아."알면서 하는 손이었다. 비단 버선을 벗길 때 발목을 감싼 손바닥이 오래 머물렀다. 거친 엄지가 복사뼈의 젖은 물기를 쓸었다. 온보요의 발끝이 저절로 오그라들었다.진묵이 화로에 젖은 장작을 넣었다. 불은 붙지 않고 흰 연기만 냈다. 그는 짜증스럽게 장작을 꺼내고, 제 속옷 위에 마른 겉이불을 둘렀다. 온보요까지 끌어 같은 이불 안에 넣었다.두 사람의 젖은 중의가 맞닿았다. 차갑던 옷감 사이로 체온이 천천히 번졌다.진묵의 머리칼에서도 물이 떨어졌다. 한 방울이 목선을 타고 벌어진 중의 안으로 사라졌다. 온보요는 손가락으로 그 길을 따라갔다. 차가운 물끝 아래 살은 뜨거웠다. 손이 가슴 위에서 멎자 진묵의 숨이 깊어졌다."왕야도 추우시잖습니까.""네 손이 차서 그렇다."그는 언제나 제 몸의 일까지 그녀 탓으로 돌리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내일 황상께 소 공자를 바치겠습니다."진묵의 팔이 멎었다."지금 해야 하나.""지금 아니면 말하지 못할 듯해서요.""그럼 하지 마."입술이 내려왔다. 젖은 머리칼 사이 이마, 눈꺼풀, 차가운 뺨. 반박할 곳마다 먼저 입술이 닿았다."황제의 죄수로 만들면 태후가 함부로 죽이지 못합니다. 왕실 혈통의 진위를 가릴 권한은 황제에게 있으니까요.""그놈이 동의했나.""할 것입니다.""둘은 말이 없어도 잘 아나 보지."가시가 입술 끝에 묻어 있었다. 온보요가 그의 젖은 옷깃을 잡았다."왕야께서는 말이 있어도 자꾸 딴소리를 하시고요.""딴짓도 하지."이불 안의 손이 허리 뒤로 돌아왔다. 젖은 중의 고름이 손가락에 감겼다. 당기자 매듭이 빗물 먹은 실처럼 쉽게 풀렸다.온보요가 그의 중의 끈도 잡아당겼다. 젖
쏟아진 비는 배 위의 피와 소금을 한꺼번에 씻었다.좁은 짐배에는 구해 낸 사람 열셋이 몸을 붙이고 앉았다. 류묘는 젖은 머리끈으로 부은 눈을 가렸고, 늙은 회계는 품 안 장부가 젖지 않게 제 겉옷부터 벗어 감쌌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노 젓는 소리와 빗방울이 천막을 때리는 소리만 수로를 채웠다.배 바닥에는 녹지 않은 소금이 모래처럼 깔렸다. 상처 난 발이 닿을 때마다 따끔한지 사람들의 발가락이 움츠러들었다. 앵무는 찢은 치맛단으로 한 사람씩 발을 감쌌다. 마지막 천을 류묘에게 주고 나자 제 발에는 감을 것이 없었다. 류묘가 말없이 머리끈 절반을 풀어 아이 발목에 묶었다.온보요는 진묵의 겉옷 안에 있었다. 능원에서와 같은 먹빛 옷인데 이번에는 빗물에 흠뻑 젖어 더 무거웠다. 진묵은 한 팔로 그녀를 감고 다른 손으로 배 난간을 잡았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손바닥이 배 앞을 피하여 허리 뒤를 받쳤다."춥습니까.""아니다.""왕야 말고 신첩이요."그제야 진묵의 입이 다물렸다. 그는 젖은 소매로 그녀의 뺨을 문질렀다가 더 차갑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거뒀다.소월백은 뱃머리에 서서 뒤를 보았다. 빗속 횃불 셋이 수로를 따라오고 있었다. 금군의 작은 쾌선이었다."반각이면 붙어.""앞 갈림에서 오른쪽."온보요가 말했다."오른쪽은 막힌 염색골입니다."뱃사공이 놀라 돌아봤다."그래서 갑니다."왼쪽 물길은 넓고 빨랐으나 성문 수문으로 이어졌다. 오른쪽은 죽은 물이라 냄새가 났고, 오래된 쪽물이 비에 풀려 수면을 푸르게 물들였다. 금군은 빠른 길을 먼저 막을 터였다. 배는 노를 거꾸로 저어 푸른 물속으로 미끄러졌다.좁은 다리 아래를 지날 때 천막이 돌에 걸려 찢어졌다. 빗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진묵은 몸을 숙여 온보요의 머리를 가렸고, 소월백은 뱃머리에서 찢어진 천을 검으로 잘라 냈다. 누구도 멈추자 말하지 않았다.짐배는 오른쪽으로 꺾었다. 물길 끝에는 버려진 쪽빛 염색장이 있었다. 막다른 담 앞에서 배를 세우자 류축과 류인이 지붕 위에서 밧
첫 길의 연기는 동문 바람을 타고 금군 초소로 흘렀다.포목전에서 불이 났다는 외침이 먼저, 약재 창고에서 황자 사칭범을 봤다는 외침이 뒤따랐다. 금군 절반이 남쪽으로 달렸다. 남은 군졸들은 운수 상단 겨울 창고의 문을 부수러 갔다.소금창고 옆 세곡소는 갑자기 조용해졌다.진묵이 죄수 수레를 몰고 정문으로 들어갔다. 금군 갑옷 위에 검은 두건을 둘러 얼굴을 가렸다. 수레 안에는 일영과 빈 포승뿐이었다. 문지기가 수레를 세우자 진묵은 허 도위의 위조 군패를 내밀었다."새 죄수다. 안에서 살펴."짧은 말과 어깨만으로 문이 열렸다.그 시각 온보요는 세곡소 장부방의 작은 창으로 들어갔다. 류진이 안에서 걸쇠를 풀어 두었다. 방에는 압수한 상단 장부와 고변 문서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등잔 하나가 켜져 있었고, 먹 갈던 서리는 의자에 묶여 입이 막혀 있었다.온보요가 천을 풀어 주었다."수결을 베낀 자가 누구입니까."서리는 겁에 질려 문을 보았다."소인이 쓰지 않았습니다. 예부의 고 주부가······. 태후전 상궁이 온 대인의 옛 문서를 가져와 얇은 종이를 대고 베끼게 했습니다.""원본은."서리가 가장 아래 궤를 발로 가리켰다. 온보요가 열자 아버지의 스무 해 전 능원 부본과 반투명한 기름종이, 연습한 수결 열두 장이 나왔다. 위조자의 손과 방법이 한 궤에 들어 있었다.밖에서 쇠가 부딪혔다.진묵의 수레가 죄수방 문을 부쉈다. 금군 둘이 돌바닥을 굴렀고, 포박된 류묘와 상단 회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류묘는 한쪽 눈이 부어 감겼으나 걸을 수 있었다.죄수방 문턱에는 피가 말라 검은 줄을 만들고 있었다. 안쪽 벽에는 이름 아홉이 손톱으로 긁혀 있었다. 끌려온 사람들이 서로 잊지 않으려 남긴 것이었다. 류묘는 풀린 손으로 마지막 이름 아래 짧은 획 하나를 더 그었다. 전부 살아 나간다는 표였다.진묵이 포승을 잘랐다. 칼날은 한 번씩만 움직였고, 밧줄은 사람 살을 건드리지 않고 떨어졌다. 늙은 회계가 일어서지 못하자 등에 업었다. 북강의 왕이 상단 늙은
사흘의 첫날은 금 천 냥에 눈이 먼 경성 사람들이 서로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시작됐다.흰 도포를 태우는 연기가 골목마다 올랐다. 운수 상단과 거래한 집들은 장부를 우물에 던졌고, 상단 표가 붙은 수레는 성문에서 바퀴까지 뜯겼다. 어제까지 인사를 나누던 이웃이 오늘은 금군 초소에 이름을 적었다.금 천 냥을 받겠다고 모인 사람들은 초소 앞에서 서로를 밀쳤다. 같은 흰옷 사내를 세 집이 제각기 고발했고, 금군은 셋 다 잡아갔다. 한 여인은 빚쟁이 남편을 사칭범이라 신고했다가 그가 정말 끌려가자 창대를 붙잡고 울었다. 현상금은 아직 한 닢도 풀리지 않았는데 집들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사가 서안에는 붉은 점이 찍힌 지도가 펼쳐졌다. 드러난 접선처가 일곱, 붙잡힌 사람이 아홉. 그 가운데 류묘의 이름도 있었다.류묘는 은장이를 빼내다 잡혔다. 시신이 발견되지는 않았고, 대신 그의 가는 칼과 잘린 머리끈이 사가 담 안으로 던져졌다. 태후전에서 보내는 값표였다.칼날에는 손톱으로 긁은 점이 셋 있었다. 류묘가 잡힌 뒤에도 정신이 있었고, 세곡소라는 글자를 남길 틈은 없었으나 지키는 자가 셋씩 교대한다는 표였다. 피 묻은 머리끈도 끝이 두 번 묶여 있었다. 죄수는 둘 이상. 붙잡힌 몸으로도 그는 장부를 보내고 있었다.온보요는 머리끈을 손가락에 감았다. 검은 실 사이 피가 굳어 뻣뻣했다."살아 있습니다. 죽였다면 머리를 보냈겠지요."소월백이 지도 건너편에서 말했다. 그는 다시 검은 옷을 입었고 상처 난 팔도 움직일 수 있었다."류묘와 상단 사람을 한곳에 뒀을 겁니다. 나를 부르려고.""가면 잡힙니다.""안 가면 그들이 죽어.""공자가 가도 함께 죽습니다."진묵이 창가에서 돌아섰다."둘 다 입 다물어. 장소부터."일영이 금군 순찰표를 내놓았다. 동문 소금창고 옆 빈 세곡소. 밤마다 죄수 수레가 한 번 들어가고, 새벽에 빈 수레가 나온다. 주변 골목은 좁고 북쪽으로 물길 하나가 이어졌다.온보요는 지도 위 붉은 점 세 개를 손가락으로 지웠다. 류묘를 살
금 천 냥의 포고가 붙은 아침, 태후는 죽은 황자의 사망 문서를 조정에 내놓았다.편전 긴 상 위에는 누렇게 바랜 종이 세 장이 펼쳐져 있었다. 산실 어의가 적은 사망 시각, 예부의 장례 기록, 능원 감독의 수결. 마지막 종이 아래 온가의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온보요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 쓴 이름도 있었다.태후는 주렴 뒤에서 염주를 굴렸다."죽은 아이를 살았다 꾸미는 자들이 있다 들었다. 다행히 충직한 온 대인이 그 장례 문서를 직접 살펴 두었구나."온보요는 상 앞에 앉은 아버지를 보았다. 밤새 불려온 사람의 도포에는 접힌 자국이 깊었다. 그는 문서를 한 장씩 읽고 마지막 수결에서 손을 멈췄다."신의 글씨가 아니옵니다."조정이 술렁였다.허 승상이 혀를 찼다."스무 해 전 글씨를 어찌 정확히 기억한단 말인가. 나라의 기록을 부정하여 사칭범을 감싸려는 것이오?"아버지는 대답 대신 소매에서 작은 묵죽 한 장을 꺼냈다. 금부에 갇히기 전날 그린 대나무였다. 수결의 마지막 삐침과 묵죽 줄기의 꺾임이 같은 손에서 나오는 버릇을 보여 주려는 듯 나란히 놓았다.온보요는 문서의 글씨보다 종이를 보았다. 가장자리는 누렇게 늙었으나 접힌 골은 희었다. 오래 접어 둔 종이는 골부터 어두워져야 했다. 먹에는 벌레 먹은 구멍이 있었는데, 획은 끊기지 않았다. 구멍 난 옛 종이에 나중 글씨를 얹은 것이었다."종이를 물에 비춰 보아도 되겠습니까."허 승상이 손을 뻗어 막았다."국가 문서를 아이 장난처럼 적실 수는 없소.""젖으면 드러나는 것이 있나 보군요."그 말에 허 승상의 손가락이 문서 귀퉁이를 더 세게 눌렀다. 종이가 작게 구겨졌다.온보요는 상 곁의 찻잔을 들었다. 물을 쏟으려는 듯 손목을 기울이자 허 도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진묵도 동시에 움직였다. 두 사내의 어깨가 상 양쪽에서 맞섰다.찻물 한 방울이 잔 가장자리를 넘어 문서 옆에 떨어졌다. 종이에 닿지도 않았는데 허 승상은 가짜 수결부터 들어 소매 안으로 피했다. 지키려는 손이 어느 문
검은 열쇠가 선황의 봉고를 연 것은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편전 뒤 작은 석실. 문에는 전 황제의 어새가 밀랍으로 찍혀 있었다. 장 내관이 밀랍 가장자리를 칼로 떼고 열쇠를 넣었다. 쇠가 안에서 세 번 맞물린 뒤 문이 열렸다.안에는 화려한 보물이 없었다. 낡은 장계, 전쟁 지도, 아이 옷 한 벌, 봉하지 않은 편지들이 나무 선반을 채웠다. 죽은 황제가 옥좌보다 오래 붙잡았던 것들이었다.아이 옷은 푸른 비단 배냇저고리였다. 소매 한쪽이 완성되지 못했고, 깃 안에는 달 모양 자수가 놓여 있었다. 소월백은 손을 뻗다가 멈췄다. 노궁인이 대신 옷을 들어 그의 어깨 앞에 대 보았다. 손바닥만 하던 옷과 다 자란 사내 사이로 스무 해가 한꺼번에 벌어졌다.선반 아래에는 나무 말 한 마리와 금이 간 북이 있었다. 첫 황자의 장난감인지 둘째의 것인지 이름표가 없었다. 황제는 나무 말을 집었다가 제자리에 놓았다. 두 형제가 함께 가졌을 유년은 물건에조차 주인이 남지 않았다.온보요는 낮은 상 위에 네 자리를 만들었다. 향갑 비단, 백옥 패 탁본, 노궁인의 옻합. 마지막 자리에 검은 열쇠를 놓았다.장 내관은 출생 기록 궤를 가져왔다. 첫 황자와 둘째 황자의 태어난 시각, 몸무게, 산실에 든 사람을 적은 문서였다. 둘째 황자 장에는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사흘 뒤 훙서.그 아래 얇은 종이가 한 장 더 붙어 있었다. 온보요가 김을 쐰 칼로 풀을 녹여 떼었다. 겉장 아래 숨은 글이 나타났다.황자 무탈. 북문으로 출궁. 진규 호송. 운수 상단에 맡김.전 황제의 친필이었다. 끝에는 작은 어새가 온전히 찍혀 있었다. 향갑 비단에 남은 절반 인장과 맞추자 용의 발톱과 구름이 하나로 이어졌다.소월백이 너울을 벗었다.봉고의 푸른 새벽빛이 얼굴을 비췄다. 황제는 두 걸음 뒤에 서 있었다. 스무 해 전 피 묻은 입술을 막았던 아이와, 그 손에 살아남은 동생이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둘의 눈매는 닮지 않았다. 코끝과 귀의 모양도 달랐다. 다만 웃지 않을 때 입술 한쪽이 아주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