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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님, 제 집은 산 아래인데요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9 22:57:59

연화는 살면서 잘생긴 사내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마을에 약재를 사러 내려오던 젊은 의원도 제법 준수한 얼굴이었고, 봄마다 장터에 나타나는 비단 상인 역시 처녀들이 뒤를 돌아볼 만큼 훤칠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안고 산길을 오르는 남자와 비교하자면, 그들은 그저 평범한 사내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 지나치게 아름다운 남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산신님.”

“말하거라.”

“저 무겁지 않으세요?”

“아니.”

“그럼 팔은 안 아프세요?”

“아프지 않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안고 가실 수는 없잖아요.”

“그렇겠지.”

연화는 그제야 조금 희망을 품었다. 아무리 산신이라도 사람을 품에 안고 산길을 오르는 일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당한 곳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테고, 그때 다시 도망칠 기회를 엿보면 되었다.

그러나 이어진 대답은 그녀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도착하면 내려놓으마.”

“……어디에 도착하는데요?”

“내 처소.”

“그게 어디인데요?”

“산 위에 있다.”

연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진심으로 물었다.

“산신님, 혹시 제 말귀를 일부러 못 알아들으시는 거예요?”

무현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그는 대답 대신 그녀를 받쳐 든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연화는 반사적으로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가 곧바로 손을 떼었다. 얇은 옷깃 너머로 전해진 체온이 생각보다 따뜻했기 때문이다.

산신의 몸은 얼음처럼 차갑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달랐다.

그녀의 등을 받친 손바닥에서는 온기가 느껴졌고,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에서는 은은한 솔잎 향이 났다. 가까이서 보니 금빛 눈동자에는 아주 가느다란 검은 테가 둘러져 있었다. 인간의 눈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기묘할 만큼 아름다운 눈이었다.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그 눈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정신 차려, 연화야.’

얼굴이 잘생겼다고 목숨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생각이라면 소용없었다.

“그런데 산신님.”

“이번에는 또 무엇이 궁금하냐?”

“신부를 왜 맞이하시는 거예요?”

무현의 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

“그것이 궁금하더냐.”

“당연하죠. 산신님 정도면 굳이 인간 신부가 필요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어째서?”

“산신님이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예쁜 선녀든 요괴든 얼마든지 만나실 수 있을 텐데요.”

연화는 말을 하다가 문득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혹시 성격에 문제가 있으세요?”

무현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무엇?”

“아니, 얼굴은 이렇게 멀쩡하신데 백 년에 한 번씩 인간 신부를 바쳐야 한다는 게 좀 이상해서요. 혹시 성격이 너무 까다로우셔서 아무도 혼인하려고 하지 않는 건가 싶어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연화는 그 침묵이 조금 불안해졌다. 아무래도 신에게 너무 무례한 말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무현이 웃었다.

처음에는 입꼬리만 조금 올라가더니, 이내 낮고 깊은 웃음소리가 그의 가슴에서 흘러나왔다. 연화는 바로 곁에서 울리는 그 소리에 묘하게 귀가 간지러워졌다.

“그런 말을 듣기는 처음이구나.”

“……죄송합니다.”

“아니다. 제법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정말요?”

“다만 틀렸다.”

무현은 고개를 숙여 그녀와 눈을 맞췄다.

“내가 기다리는 여자는 하나뿐이니.”

연화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전과 달랐다. 장난스러운 웃음기가 사라진 자리에 오래 묵은 감정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여자가 누군데요?”

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뺨에 붙은 작은 나뭇잎을 떼어 냈다. 길고 반듯한 손가락이 뺨을 아주 가볍게 스쳤을 뿐인데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그는 그 반응을 보고 곧바로 손을 거두었다.

“곧 알게 될 것이다.”

연화는 그 말을 듣고도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이 아니라면 조금 기분이 나쁠 것 같기도 했다.

‘미쳤나 봐.’

연화는 속으로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것도 자신을 강제로 산에 데려가는 남자에게.

산신궁은 연화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그녀는 산신의 거처라면 어둡고 음산한 동굴이거나, 짐승의 뼈가 여기저기 널린 무시무시한 사당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으면 오래된 기와집 정도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궁이었다.

높은 돌담 너머로 검푸른 기와지붕이 겹겹이 이어졌고, 처마 끝에는 작은 금종들이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종소리가 맑게 울렸다. 궁의 정문 양옆에는 호랑이 형상의 석상이 서 있었는데, 그 눈에는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돌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궁 전체에 흐르는 빛이었다.

달빛이 닿지 않는 곳까지 은은하게 밝았다. 돌길 사이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었고, 작은 연못 위에는 가을밤인데도 연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연화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와.”

무현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마음에 드느냐?”

“엄청나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이런 곳을 혼자 쓰세요?”

“그렇다.”

연화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빈방도 많겠네요?”

“많지.”

“곳간에는 먹을 것도 많고요?”

“네가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마련할 수 있다.”

“금은보화도요?”

무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것도 필요하냐?”

연화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망가서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까요.”

무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다시 웃었다.

“필요한 만큼 가져가거라.”

“……네?”

“금도 은도 네가 원하는 만큼.”

연화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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