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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날, 신부가 도망쳤다

Auteur: 유월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10-13 07:21:24

산신을 눈앞에 두고도!

연화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발밑의 땅이 사라졌다.

“어?”

몸이 허공으로 기울었다.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절벽이었다.

연화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잡히는 것은 허공뿐이었다.

“아아악!”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죽는다.

정말 죽는다.

연화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예상했던 충격은 오지 않았다.

대신 허리 아래로 단단한 팔이 감겼다.

누군가 그녀를 공중에서 받아 든 것이다.

연화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바로 눈앞에 금빛 눈동자가 있었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남자는 연화를 품에 안은 채 절벽 위에 서 있었다.

검은 도포 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연화는 자신이 어떻게 절벽 위로 돌아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허리를 받친 팔이 생각보다 단단하다는 사실과, 남자의 얼굴이 지나치게 가깝다는 사실만 선명하게 느껴졌다.

“……산신님.”

“그래.”

“저…….”

“또 도망갈 것이냐?”

연화는 입술을 달싹였다.

남자의 얼굴에는 다시 희미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화가 난 기색은 없었다.

하지만 금빛 눈동자 깊은 곳에는 방금 전까지 없던 무언가가 어려 있었다.

두려움.

연화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자신이 떨어지는 순간 남자가 얼마나 놀랐는지도, 그가 자신을 받아 든 팔에 얼마나 조심스럽게 힘을 주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한 가지 사실만 생각했다.

이 산신에게 잡혔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연화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놓아주시면 안 돼요?”

남자의 눈썹이 올라갔다.

“왜?”

“다시 도망가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남자가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연화는 황당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그래.”

“제가 도망간다잖아요!”

“들었다.”

“그런데 왜 웃으세요?”

남자는 한참 동안 연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살아 있으니까.”

연화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남자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연화의 발목을 살피더니 그녀를 조금 더 편안하게 안아 들었다.

“가자.”

“어디를요?”

“집으로.”

“누구 집이요?”

“내 집.”

연화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싫어요!”

“알고 있다.”

“저 안 갈 거예요!”

“그것도 알고 있다.”

“그럼 내려놓으세요!”

남자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느긋하게 웃었다.

“내려놓으면 또 절벽으로 뛰어갈 것 같아서.”

“이번에는 안 그럴 거거든요!”

“그 말도 믿기 어렵구나.”

연화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산신은 그런 그녀를 한참 바라보았다.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손에 넣은 사람처럼.

그러다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연화가 고개를 들었다.

“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어깨 위로 자신의 겉옷을 덮어 주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막혔다.

이상하게도 겉옷에서는 은은한 솔잎 향이 났다.

연화는 그 향기를 맡는 순간 잠시 눈을 깜빡였다.

처음 맡는 향기일 텐데.

어쩐지 아주 오래전에도 맡아 본 것 같았다.

그녀가 의아해하는 사이 남자는 몸을 돌렸다.

산 위쪽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연화는 그의 품에서 발버둥 쳤다.

“산신님! 잠깐만요!”

“왜 그러느냐.”

“저 정말 신부 안 할 거예요!”

“그래.”

“혼례도 안 치를 거고요!”

“그러거라.”

“그리고 기회만 생기면 또 도망갈 거예요!”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연화는 긴장했다.

드디어 화를 내려나 싶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저 고개를 숙여 그녀와 눈을 맞췄다.

달빛 아래 금빛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었다.

“그래.”

그리고 말했다.

“그럼 또 잡으러 가마.”

연화는 입을 벌렸다.

“……네?”

“네가 어디까지 도망가든.”

남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찾아내마.”

그 말이 어쩐지 약속처럼 들렸다.

연화는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다.

그녀는 몰랐다.

자신을 안고 산길을 오르는 남자가 수백 년 동안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을.

붉은 혼례복을 입은 여자가 도망치는 꿈.

아무리 달려도 붙잡지 못하는 꿈.

그리고 마침내 여자의 손끝이 자신의 손에서 미끄러져 사라지는 꿈.

그 꿈의 끝에서 남자는 언제나 혼자 남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의 품에는 따뜻한 체온이 있었다.

살아 있는 숨결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투덜거리는 여자가 있었다.

“산신님, 제 말 듣고 계세요?”

“듣고 있다.”

“저 내려놓으시라니까요!”

“발목이 나으면.”

“그럼 나으면 도망가도 돼요?”

남자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래.”

연화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다만.”

“다만?”

그가 웃었다.

“도망갈 때는 밥부터 먹고 가거라.”

연화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산신은 그런 그녀를 품에 안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연화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그의 얼굴에 떠올랐던 웃음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 연화가 떨어질 뻔했던 절벽 너머.

검은 안개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 아주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금빛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직은 아니다.”

그가 낮게 말했다.

“이번에는 네게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검은 안개가 일순 멈췄다.

그리고 이내 숲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무현은 품에 안긴 연화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곳에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저 언제쯤 도망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애틋했다.

무현은 그녀의 어깨를 감싼 겉옷을 조금 더 여며 주었다.

‘이번에는.’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반드시 살려 낼 것이다.’

그것이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약속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는 아직 연화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날 밤.

청운산의 산신은 도망친 신부를 찾아냈다.

그리고 산신의 신부 연화는—

다음 탈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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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는 한 걸음 다가갔다. “너 아까부터 이상한 말을 자꾸 해.” “…….” “나를 처음 봤다면서 왜 돌아왔다고 했어? 그리고 이번에도라니, 그건 무슨 뜻이야?” 백령은 입술을 깨물었다. 소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연화는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이곳에는 자신과 관련된 비밀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비밀이. “백령아.” 연화가 조용히 불렀다. “너 나를 알아?” 백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화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나를 예전에도 본 적 있어?” 백령의 눈가가 붉어졌다. “마님…….” 그때였다. 궁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낮은 종소리가 울렸다. 댕—. 백령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안 됩니다.” 연화는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뭐가?” “지금은 나가시면 안 됩니다.” “왜?” 백령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늘 밤은…….” 그 순간 연화의 손목이 뜨거워졌다. “아!” 그녀는 반사적으로 소매를 걷었다. 꽃잎 모양의 붉은 반점이 다시 빛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선명했다. 금빛 선이 피부 위로 퍼지더니 작은 연꽃 문양을 이루었다. 그리고 눈앞의 문이 다시 움직였다. 끼이이익. 문이 활짝 열렸다. 그 너머에는 산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연화는 숨을 삼켰다. ‘열렸어.’ 정말 열렸다. 이제 저 길로 달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백령은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그녀의 손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이.” 소년이 중얼거렸다. “마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연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슨 뜻이야?” 백령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산신궁의 문은…….” 그때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백령.” 연화는 돌아보았다. 무현이었다. 그는 언제 나타났는지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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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는 살면서 잘생긴 사내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마을에 약재를 사러 내려오던 젊은 의원도 제법 준수한 얼굴이었고, 봄마다 장터에 나타나는 비단 상인 역시 처녀들이 뒤를 돌아볼 만큼 훤칠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안고 산길을 오르는 남자와 비교하자면, 그들은 그저 평범한 사내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 지나치게 아름다운 남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산신님.” “말하거라.” “저 무겁지 않으세요?” “아니.” “그럼 팔은 안 아프세요?” “아프지 않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안고 가실 수는 없잖아요.” “그렇겠지.” 연화는 그제야 조금 희망을 품었다. 아무리 산신이라도 사람을 품에 안고 산길을 오르는 일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당한 곳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테고, 그때 다시 도망칠 기회를 엿보면 되었다. 그러나 이어진 대답은 그녀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도착하면 내려놓으마.” “……어디에 도착하는데요?” “내 처소.” “그게 어디인데요?” “산 위에 있다.” 연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진심으로 물었다. “산신님, 혹시 제 말귀를 일부러 못 알아들으시는 거예요?” 무현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그는 대답 대신 그녀를 받쳐 든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연화는 반사적으로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가 곧바로 손을 떼었다. 얇은 옷깃 너머로 전해진 체온이 생각보다 따뜻했기 때문이다. 산신의 몸은 얼음처럼 차갑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달랐다. 그녀의 등을 받친 손바닥에서는 온기가 느껴졌고,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에서는 은은한 솔잎 향이 났다. 가까이서 보니 금빛 눈동자에는 아주 가느다란 검은 테가 둘러져 있었다. 인간의 눈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기묘할 만큼 아름다운 눈이었다.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그 눈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정신 차려, 연화야.’ 얼굴이 잘생겼다고 목숨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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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신을 눈앞에 두고도! 연화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발밑의 땅이 사라졌다. “어?” 몸이 허공으로 기울었다.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절벽이었다. 연화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잡히는 것은 허공뿐이었다. “아아악!”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죽는다. 정말 죽는다. 연화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예상했던 충격은 오지 않았다. 대신 허리 아래로 단단한 팔이 감겼다. 누군가 그녀를 공중에서 받아 든 것이다. 연화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바로 눈앞에 금빛 눈동자가 있었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남자는 연화를 품에 안은 채 절벽 위에 서 있었다. 검은 도포 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연화는 자신이 어떻게 절벽 위로 돌아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허리를 받친 팔이 생각보다 단단하다는 사실과, 남자의 얼굴이 지나치게 가깝다는 사실만 선명하게 느껴졌다. “……산신님.” “그래.” “저…….” “또 도망갈 것이냐?” 연화는 입술을 달싹였다. 남자의 얼굴에는 다시 희미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화가 난 기색은 없었다. 하지만 금빛 눈동자 깊은 곳에는 방금 전까지 없던 무언가가 어려 있었다. 두려움. 연화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자신이 떨어지는 순간 남자가 얼마나 놀랐는지도, 그가 자신을 받아 든 팔에 얼마나 조심스럽게 힘을 주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한 가지 사실만 생각했다. 이 산신에게 잡혔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연화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놓아주시면 안 돼요?” 남자의 눈썹이 올라갔다. “왜?” “다시 도망가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남자가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연화는 황당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그래.” “제가 도망간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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