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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eur: 삼계절
소태란은 분해서 몸을 떨었지만 핸드폰 화면을 보고는 손을 내리지 못했다.

이라를 노려보는 눈은 불이 붙은 듯했다.

“그만해!”

서건오가 소리쳤다.

“이라야, 오늘 밤 보운정에서 식사 자리를 잡았다. 내가 얼마나 사정해서 최씨 집안 사람들을 모신 줄 알아?”

서건오는 굳은 얼굴로 이라를 보았다.

“가서 잘해. 그 자리에서 지범에게 제대로 사과해. 네가 지범이와 무사히 결혼만 하면, 내가 약속한 물건을 넘기겠다. 그 다음에 지범과 잘살든 못살든 나머지는 다 네 할 탓이다.”

간단히 말해, 결혼만 하면 서씨 집안과 최씨 집안의 거래가 성사된다.

그 뒤 이라는 서씨 집안과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

이라도 바라던 일이었다.

“좋아요.”

이라는 가볍게 웃고 이 집을 나왔다.

멀리 걸어 나온 뒤에야 깊게 숨을 들이켰다.

민채를 때린 손바닥이 저릿했다.

이라는 예전에 누군가 가르쳐 준 말을 떠올렸다. 맞으면 돌려줘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면, 내가 받쳐 주면 그뿐이다.

은후가 있으면 경울시의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보운정은 고씨 집안의 영역이었다.

오늘 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했다.

이라는 아픈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하늘에 빌었다.

오늘 밤만은 은후와 마주치지 않게 해 달라고.

...

저녁 7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택시는 보운정 본관 입구 앞에 멈춰 섰다.

이라는 뒷좌석에 앉아 창밖의 누각을 바라보았다.

경울시 외곽 산허리에 자리한 보운정은 흰 벽과 회색 기와가 어우러진 한식 건물이었다.

숲과 산이 둘러싼 덕분에 고요하고 고풍스러웠다.

바람이 스치자 나뭇잎이 잘게 흔들렸다.

따뜻한 노란 불빛들이 곳곳에 걸려 독특한 운치를 만들었다.

이곳은 보통 경울시에서 이름 있는 사람들이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쓰는 곳이었다.

여기 룸을 잡으려면 돈만으로는 부족했고, 꽤 많은 인맥이 필요했다.

서건오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최씨 집안에게 사과하려는 건... 그만큼 이 혼사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최씨 집안이 서씨 집안에게 가져다줄 이익이 꽤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라는 고개를 숙였다. 하얗고 가는 손가락이 핸드폰 화면 위에 몇 글자를 찍었다.

[보운정, 망산채 룸]

화면을 끈 뒤 이라는 정중히 감사 인사를 하고 요금을 내고, 택시에서 내렸다.

직원을 따라 숲길을 지나 망산채 룸 앞에 닿자, 안에서 술잔 부딪히는 소리와 서건오의 비굴한 웃음이 들렸다.

“회장님, 사모님, 저희 이라가 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희가 너무 오냐오냐 버릇없이 키웠습니다. 이번에 제가 제대로 말해 두었으니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이따가 애가 오면 마음껏 꾸짖으십시오. 회장님과 도련님 앞에서 감히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겁니다.”

“흥. 아직 우리 집에 들어오기도 전인데 벌써 사람들 앞에서 내 아들에게 술을 끼얹어?”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집이라도 오면 내가 앉은 자리를 넘겨 달라고 하려나? 맹랑한 것.”

한쪽에 앉은 지범은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친구들 단톡방에 글을 남겼다.

[누가 몰래 나 술 싸대기 맞는 사진 찍었냐? 강이라 그 여자 기 살리고 내 얼굴 팔려고 작정했어?]

“사모님, 그런 말씀은 너무 과하십니다.”

소태란이 바로 끼어들었다. 말투에는 아부가 섞였다.

“이라가 제 조카딸이긴 하지만, 앞으로 사모님 며느리가 되면 최씨 집안 법을 따라야지요.”

“예의에 어긋난 일을 하면 사모님께서 알아서 가르치시면 됩니다. 때리든 꾸짖든 벌을 주든 저희 부부는 절대 나서지 않겠습니다.”

소태란과 서건오는 꽤 오랫동안 사과한 듯했다. 좋은 말도 많이 했을 것이다.

룸 밖에 서 있던 이라는 그 말에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쌀쌀했다.

이라는 손을 들어 문을 열었다.

룸 안의 시선이 동시에 이라를 향했다.

서건오 부부와 최 회장 부부, 지범도 있었다.

‘마침 잘됐네.’

‘오늘의 연극에서 최지범이 남주잖아.’

‘주인공이 빠지면 재미없지.’

이라가 문 안으로 들어서자 서건오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

그가 꾸짖기 전에 이라가 먼저 붉은 입술을 달게 휘었다.

“죄송해요, 회장님, 사모님. 이 시간에는 차가 잘 안 잡혀서 늦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어 웃자 눈이 휘고 보조개가 작게 피었다.

목소리도 달콤했다. 어젯밤 사람들 앞에서 지범에게 술을 끼얹은 사람이 눈앞의 부드러운 여자라고는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지범도 멍하니 보았다. 시선이 저절로 이라의 가느다란 몸매로 갔다.

허리가 잡힌 흰 원피스, 균형 잡힌 몸, 눈처럼 흰 피부.

매끈한 미역 같은 긴 웨이브 머리가 내려와 단정한 얼굴을 더 순하게 보이게 했다.

지범은 겉모습만 보면 지금까지 만난 여자들보다 이라가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이라야, 어서 와서 회장님과 사모님께 사과드려.”

서건오는 얼굴에 가짜 웃음을 붙이고 손짓했다.

이라는 웃으며 다가가 술잔을 들었다.

“회장님, 사모님, 어제 일은 작은 오해였어요.”

말하는 동안 이라는 자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지범을 바라보며 손끝으로 테이블 위의 핸드폰을 두드렸다.

그리고 눈썹을 살짝 올렸다.

지범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보았다.

이라의 핸드폰에는 지범과 아영이 키스하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지범은 여자가 많았지만 최씨 집안은 늘 스캔들을 돈으로 덮었다.

그런데 그 영상이 퍼지면 집안이 뒤집힐 것이다.

지범은 서둘러 말했다.

“아버지, 엄마. 어제 일은 이라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넘어가요.”

최 회장은 누군가 아들에게 사람들 앞에서 술을 끼얹어서 체면을 구긴 일이 못마땅했다고, 서씨 집안에게 설명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서건오 부부는 충분히 사과했고, 아직 사업상 서건오를 쓸 일이 남아 있었다.

아들도 물러설 길을 만들어 주었으니, 최 회장의 굳은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렇다면 앞으로 강이라 양은 성질을 좀 죽이면 좋겠네. 우리 집안 체면을 해치는 일은 없어야지.”

서건오가 바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회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평소 지범에게 붙는 여자들은 알아서 비위를 맞췄다. 먼저 ‘넘어가자’라고 말하게 만든 여자는 이라가 처음이었다.

유명희는 이라를 몇 번 더 바라보았다.

이라는 이목구비가 정교하고 외모도 분명 뛰어났다.

남자라면 누구나 눈이 갈 얼굴이었다.

하지만 겉보기처럼 말랑하고 착해 보이는 여자는 아닌 듯했다.

“이 술은 제가 먼저 마실게요. 너그러이 봐 주세요.”

이라는 술잔을 들고 고개를 젖혀 모두 비웠다.

성의를 보인 셈이라 최 회장과 유명희도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체면은 세워준 것이다.

소태란은 눈치가 빨랐다. 최 회장 부부도 더 따지지 않자 이라를 끌어 지범 옆에 앉혔다.

“이라야, 지범 도련님께도 술 한잔 올려야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라의 잔에는 술이 반쯤 채워졌다.

이라는 옅게 웃었다.

“지범 씨, 넓은 마음으로 넘어가 줘서 고마워요. 이 잔 받아요.”

이라는 잔을 들어 또 한 번 비웠다.

지범은 이라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내 눈앞의 얌전한 강이라와 어제의 오만한 강이라는 전혀 다르네?’

‘어젯밤 술을 끼얹고 오늘은 우리 부모 앞에서 영상으로 협박한다?’

‘별 배경도 없는 여자치고는 강이라... 제법 머리가 좋네.’

하얗고 눈에 띄는 목을 드러낸 이라를 보며... 지범의 눈에 교활한 빛이 스쳤다.

‘여자는 길들이면 말을 듣게 되어 있잖아.’

이라가 순하게 구는 모습에 서건오와 소태란은 크게 만족했다.

두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약혼 날짜 이야기를 꺼냈다.

대화가 오가며 이라는 대강 알아들었다.

서씨 집안과 최씨 집안이 혼인을 맺으면, 최 회장은 60억 원대 일감을 서건오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혼수라고 할 만한 명목이었다.

게다가 경울시 상류의 큰 인물들과도 연결해 주기로 했다.

서건오가 이라를 지범에게 보내려고 개처럼 달려드는 이유를 알 만했다.

술 몇 잔이 지나간 뒤, 두 집안은 약혼 날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라는 심심하다는 듯 핸드폰을 돌리다가 옆자리의 최지범을 흘끗 보았다. 입가를 올리고 조용히 물었다.

“어제 내 제안은 생각해 봤어?”

술을 꽤 마신 탓에 흰 피부가 발그레했다.

지범은 이라가 핸드폰을 들어 협박하던 말을 떠올렸다.

파혼할래, 공개 망신 당할래.

지범은 속으로 비웃었다.

‘서씨 집안 부부의 태도를 보니 강이라를 그리 아끼는 것 같지도 않은 것 같아.’

“파혼하면 너한테 좋을 게 없잖아?”

지범이 낮게 물었다.

이라의 눈에는 웃음이 있었다.

“그건 최지범 씨가 걱정할 일이 아니고.”

지범은 술을 따라 주었다.

“이 자리에서 내가 파혼하자고 하면 어른들 흥이 깨지지 않겠어?”

지범의 손이 자연스럽게 의자 등받이에 올라갔다. 어깨를 감싸려는 기색이었다.

이라는 그 팔을 흘끗 보고 웃으며 일어났다.

“화장실 다녀올게.”

하이힐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열리는 동시에 맑고 차가운 우드 향기가 정면으로 밀려왔다.

그 향기는 강하고 또렷했다.

술기운에 흔들렸던 이라의 생각을 단숨에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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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촌이라 부르지 마   제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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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촌이라 부르지 마   제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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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촌이라 부르지 마   제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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