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4화: 맞선 자리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서이현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지만,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고요한 서재 위에 묵직하게 드리워졌다.
"윤 행수."
그가 눈을 들어, 칠흑처럼 깊은 눈동자로 얼굴이 창백해진 여자를 붙들듯 바라보았다.
"본관에게 숨기는 일이 있는 건가?"
윤서린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등줄기가 서늘하게 식어 내렸다.
장명쇠에 새겨진 '서' 자가 어두운 촛불 아래에서 눈이 아프도록 따갑게 타올랐다.
서우를 가졌을 때, 캄캄한 밤마다 한 땀 한 땀 도안을 그리고, 금세공사에게 부탁해 망치질 한 번 한 번으로 두드려 만든 것이었다.
그 글자뿐만 아니라, 뒷면에는 아이의 생시까지 새겨져 있었다!
절대 뒤집어 보게 해서는 안 돼!
"사또."
윤서린은 거세게 들끓는 숨을 억지로 눌렀다.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대답했다.
"소녀는 비단 장사를 하는 몸입니다. 운금골목에는 관외에서 흘러들어 온 물건이 많습니다. 이 장명쇠는 소녀가 전에 잘못 보고 거두어 둔 흔한 헌 물건일 뿐이고, 금해각에 맡겨 다시 녹이려던 참이었습니다. 무슨 일로 사또의 심기를 거슬렀는지요?"
서이현은 말이 없었다.
길고 힘 있는 손가락이 천천히 뻗어 나와, 차가운 장명쇠 위에 닿았다. 끝으로 살짝 들어 올려 뒤집으려던 순간.
"사또!"
윤서린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거의 본능적으로 달려들었다. 장명쇠를 낚아채 가슴께에 꽉 끌어안았다!
동작이 너무 급했던 탓에, 단정히 여며 두었던 깃이 확 잡아당겨져 옷섶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눈처럼 하얗고 보드라운 살결과 아찔한 속곳의 곡선이 한 뼘 드러났다.
귀밑머리도 몇 가닥 흐트러졌다. 눈동자에는 숨기지 못한 당황과 경계가 일렁였다.
서이현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깊은 시선이 불시에 그 눈부신 흰빛을 스치고 지나가자, 그의 목울대가 세게 한 번 꿀꺽 움직였다.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얼굴에 알아채기 힘든 당혹과 어색함이 스쳤지만, 그는 주변의 온도를 억지로 얼음장 아래까지 떨어뜨려 걷잡을 수 없이 뛰는 심장을 감추었다.
"녹여 버릴 흔한 헌 물건에 윤 행수가 이렇게까지 긴장하나?"
그가 차갑게 비웃었다.
"소, 소녀는 그저 사사로운 물건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게 익숙지 않을 뿐입니다!"
윤서린은 이를 악물고 장명쇠를 소매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그의 시선을 맞받았다.
"사또께서 공무 순찰을 마치셨다면, 소녀는 이만 물러가 장부를 살피겠습니다!"
서이현은 그녀를 깊이 살폈다. 눈 속에서는 집채만 한 파도 같은 의심과 냉기가 일렁였다.
한참 뒤에야 그는 손을 거두고 태사의에 앉았다. 담담한 목소리 속에 소름 끼치는 위험이 숨어 있었다.
"가 보아라. 본관이 두 시진을 주겠다. 오류 하나 찾아내지 못한다면, 오늘 밤 관아 문턱 하나 넘을 생각은 마라."
……
윤서린은 이를 악물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품은 채 장부를 처음부터 두 번이나 다시 대조했다. 밤이 깊고 등잔 기름이 거의 다 닳아 가는 술시 말까지 계산을 이어 갔다.
전체 세부 장부에는 털끝만 한 오차도 없었다.
그녀는 속에서 치미는 울화와 가시지 않은 놀람을 눌러 삼키고, 장부를 받쳐 들고 다시 뒤뜰 서재로 들어가 탁자 위에 쾅 내려놓았다.
서이현은 책상 뒤 높은 자리에서 눈꺼풀 한 번 들지 않은 채, 구름처럼 가볍게 한마디를 흘렸다.
"미안하군, 윤 행수. 아까는 본관이 잘못 본 모양이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반쯤 열린 창 너머의 깊은 밤빛을 바라보았다.
"날이 저물었으니, 가는 길에 본관이 집까지 데려다주지."
"사또께서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소녀가 마차를 따로 불러 두었으니,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윤서린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이 질문은 아무 예고도 없이 날아왔다.윤서린은 멍해졌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강 총관은 연봉이 천 냥인 데다 인물도 훤칠한데, 어떤 여자가 안 좋아하겠어요?"농담처럼 들렸지만, 도발의 기색은 분명했다.서이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본관이 꼼꼼히 비교해 봤다."그가 몹시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그자는 본관보다 키도 작고, 인물도 못하고, 권세는 더더욱 못하다."윤서린: “……”이 사람은 대체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오는 걸까?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물론 당신처럼 억지를 부리지도 않고요.얼굴에는 오히려 더 환한 웃음을 지었다."그야 당연하지요. 서 사또는 지금 강남에서 권세가 으뜸인 명문 귀공자시니, 강 총관이 어찌 감히 견줄 수 있겠어요."더없이 가식적인 아첨이었다.서이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윤 수행원, 눈을 본관 쪽으로 돌려 보는 게 어떠냐."윤서린은 멈칫하더니 이내 실소했다."사또도 참, 소녀가 어찌 감히요.""해 보지도 않고 감히 못 하는지 어찌 아느냐?"서이현이 몸을 일으켜 한
서 사또가 왜 또 내려왔지?설마 천하의 관리란 관리는 다들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게 취미인가?"예, 서 사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소소가가 황급히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다방으로 달려갔다.서이현이 의미심장하게 윤서린을 훑어보았다.윤서린은 영문도 모른 채 마주 노려보았다.뭘 봐?또 시비 걸 거리를 찾는 거야?"본관이 듣기로, 이달 말에 상인회가 나들이를 간다던데?"서이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예, 서 사또."윤서린이 사실대로 대답했다."본관도 간다."세 시녀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현령 나리가 직접 상인회 나들이에 간다고?그러면 누가 마음 편히 놀 수 있겠는가. 다들 메추라기처럼 잔뜩 움츠러들 텐데.서이현은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본관의 명을 전해라. 급한 공무가 없는 한, 누구도 휴가를 낼 수 없다."말을 마친 그의 입꼬리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차가운 웃음이 걸렸다. 그는 걸음을 옮겨 위층으로 올라갔다.얼마 뒤, 소소가가 우려낸 차를 들고 서재에 들어갔다.서이현은 찻잔을 받아 들고도 곧바로 마시지 않았다.
"그러니까요!"이수연의 두 눈이 반짝였다."근데 우리 상인회 제일가는 미남 자리도 주인이 바뀌었어. 다들 입을 모아 서 사또를 뽑았거든. 강 총관은 이제 어쩔 수 없이 이등으로 밀려났지."강사는 한때 상인회에서 이름난 고고한 꽃이었고, 지금은 상인회 제이사를 맡아 연봉이 천 냥에 이르렀다. 수많은 여자 관졸들이 몰래 흠모하는 상대였다.외모가 수려하고 일 처리도 수완이 좋았다.그가 눈여겨본 계약은 성사시키지 못한 적이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점심엔 우리 식당 위층에 가서 먹자. 우리 강 총관이 요즘 더 잘생겨졌는지 구경도 하고."이수연이 기대에 부푼 얼굴로 말했다.상인회 식당은 삼 층으로 나뉘어 있었다.일 층은 관원과 각 부서 책임자가 쓰고, 이 층은 일반 관리, 삼 층은 평범한 일꾼들이 식사했다.근접 수행원인 그녀들은 원래 일 층에 갈 수 있었지만, 평소에는 마음 편한 이 층에 머무르는 걸 더 좋아했다."나도 찬성."진열도 옆에서 웃으며 맞장구쳤다."밥은 못 먹어도 멀리서 두어 번 보면 눈요기는 되니까."여기까지 말하던 이수연
이튿날.현아 뒤뜰, 서재 안.서이현은 조각이 새겨진 큰 의자에 꼿꼿이 앉아, 잘생긴 얼굴을 굳힌 채 온몸에서 소름 끼치는 한기를 뿜고 있었다.곁에서 시중을 들던 관졸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자칫 사또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그 자신도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툭하면 말대꾸를 하던 그 작은 독초가 오늘은 출근하지 않았다. 서재가 고요해지자 오히려 온몸이 불편했다.뭔가가 빠진 것 같았다.그 여자가 어젯밤 그렇게 취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좀 깨어났는지도 모르겠다.시중드는 몸종 소소가가 문서 책자를 받쳐 들고 조마조마하게 오늘 상인회 일정을 보고했다."진시 말, 과영 상단의 성 행수가 수로 계약 건으로 찾아오십니다…….""오시 이각, 상인회 쪽은……."그녀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서이현이 불쑥 눈을 들어 차갑게 말을 끊었다."며칠 전 상인회 사무처 회랑에 놓여 있던 그 값비싼 꽃들은 누가 보낸 것이냐?"소소가는 멈칫했다.사또가 갑자기 그걸 물어볼 줄은 몰랐기에 서둘러 대답했다."그건 윤 수행원을 쫓아다니는 상욱 도련님이 보내신 겁니다."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소인의 정인이
동부 명원.하주는 마차를 세우자마자 서둘러 저택의 여집사를 불렀다. 두 사람은 힘을 있는 대로 써서 만취해 곤죽이 된 윤서린을 겨우 집 안으로 부축해 들였다.어렵사리 객방 푹신한 침상에 눕히고 나니, 하주는 허리를 짚고 지칠 대로 지쳐 길게 숨을 내쉬었다.침상 위의 사람이 불쑥 몸을 뒤척였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욕을 했다."서이현……. 이 나쁜 놈…….""나는……우리 서우를……당신한테 안 줄 거야…….""그때……왜 나를 배신했어……."하주는 곁에 서서 한숨만 나왔다.취한 윤서린은 그야말로 닫히지 않는 취중 진담 기계였다. 아까 죽을힘을 다해 막지 않았다면, 서이현이 이 사람을 데려갔을 것이다.그랬다면 결과는 생각하기도 싫었다.그녀는 서둘러 몸을 돌려 부엌으로 가서 따뜻한 꿀물 한 사발을 떠 왔다.그런데 사발을 들고 돌아와 보니, 침상 위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하주는 가슴이 철렁해 병풍 뒤로 돌아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깥이 마침내 조용해졌다.서이현이 목욕을 마치고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허리에는 깨끗한 수건 한 장만 느슨하게 둘렀고, 흠뻑 젖은 머리칼 끝에서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물방울은 날렵한 턱선을 타고 흘러내려, 살짝 벌어진 옷깃 속으로 스며들었다.사내는 곁방 문 앞으로 가서 손을 들어 문고리를 돌려 보았다.역시 잠겨 있었다.그는 눈썹을 슬쩍 치켜올렸다. 문틀 위쪽을 쓱 훑어보더니, 손을 뻗어 대들보 위 비밀 칸에서 여분 열쇠를 더듬어 꺼냈다."딸깍."자물쇠가 순순히 열렸다.그는 발소리를 죽이고 안으로 들어갔다.창밖에서 스며드는 달빛 아래, 침상 위에 크고 작은 두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었다.윤서린이 서우를 끌어안은 채, 모자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서이현은 침상 곁에 오래도록 서 있다가, 결국 몸을 숙여 잠든 윤서린을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그녀는 말도 안 되게 가벼웠다.그는 그녀를 안고 안방으로 돌아와, 큰 침상 위에 살며시 눕혔다.달빛이 그녀의 평온한 잠든 얼굴에 내려앉았다. 눈매는 부드럽고 입술은 살짝 다물려 있어, 낮에 이를 세우고 덤비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서이현의 눈빛이 조금씩 가라앉았다.그는 홀린 듯 몸을 숙여, 그녀의 뺨에 아주 가볍게 입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