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린 정왕이 형수님에게 집착한다

나를 버린 정왕이 형수님에게 집착한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By:  설월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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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왕 이태윤을 사랑한 대가는 참혹했다. 윤소하는 남편의 배신으로 기루에 팔려가 죽음을 맞는다. 눈을 뜨자 혼례 한 달 전, 열일곱의 자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번 생에는 절대 그 남자의 아내가 되지 않으리라. 소하는 정왕과의 혼인을 깨고 증오하는 이복형, 폐세자 이현겸에게 청혼한다. 버림받은 왕자와 여자의 위험한 혼인. 소하를 하찮게 여기던 정왕은 그녀가 형님의 아내가 된 순간부터 무너진다. 밤마다 문밖을 서성이고, 형수라는 호칭조차 입에 담지 못한 채 그녀를 되찾으려 한다. 그러나 소하는 그의 손을 놓았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빼앗긴 삶을 되찾는 일. 폐세자는 소하에게 선택할 권리를 준다. 과거의 죄가 드러나고 왕실의 권력이 흔들리는 가운데, 정왕의 집착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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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Chapters
1화
윤소하가 정왕부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남편의 이별 통보가 아니었다.“발목부터 묶어라. 저 여자가 달아나면 너희 목이 달아날 줄 알아.”마차 안으로 밀려 들어간 소하는 호위들이 자신의 발목에 새끼줄을 감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사흘 동안 갇혀 있던 별채에서 끌려 나오는 동안에도 남편 이태윤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정왕비의 신분을 증명하던 옥패와 혼례 때 받은 가락지는 이미 빼앗긴 뒤였다.“전하께서 저를 어디로 보내라고 하셨습니까?”맞은편에 앉은 호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하가 다시 물으려는 순간 마차가 출발했고, 발목에 감긴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그녀의 몸이 좌석 아래로 기울었다.소하는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며 호위에게 간청했다.“친정으로 보내시는 것이라면 제 발로 가겠습니다. 그러니 이것만 풀어 주십시오.”“도착하면 알게 되실 겁니다.”“전하께서 직접 내리신 명입니까?”호위는 대답 대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고, 소하는 더 묻지 않은 채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았다. 정왕부의 하인들은 남편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았으며, 자신이 아무리 애원해도 그들의 입을 열 수 없다는 사실을 지난 오 년 동안 충분히 배웠기 때문이다.그래도 친정으로 가는 길이기를 바랐다.아버지 윤상필이 자신을 반기지 않더라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혼수 장부만은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청운상단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지분을 정리할 수만 있다면, 남편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갈 방법도 마련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그러나 마차는 윤씨 가문의 대문이 있는 동쪽 길로 가지 않았다.사람들이 오가는 큰길을 벗어나자 바퀴 아래에서 진흙이 튀었고, 창틈으로 썩은 생선과 오물 냄새가 밀려들었다. 술 취한 사내들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와 노름판에서 돈을 잃은 사람의 욕설이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마차가 저잣거리 뒤편의 좁은 골목에서 멈춰 섰다.창밖을 내다본 소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도랑에는 썩은 채소와 짐승의 내장이 쌓여 있었고, 막힌 하수구에서 넘친 검은 물이 길바닥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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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금옥이 문서를 받아 펼치는 순간 소하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부분을 발견하고 손을 뻗었으나, 금옥은 종이를 재빨리 접어 품에 넣었다.“제 이름이 적힌 문서입니다. 읽게 해 주십시오.”“나중에.”“지금 확인해야 합니다.”금옥은 소하의 어깨를 거칠게 밀쳤다.“여긴 네가 명령하는 곳이 아니야.”소하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고 호위의 앞을 가로막았다.“한 번만 전해 주십시오. 전하께서 저를 내쫓으신 것이라면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곳에 팔아넘기는 일만은 거두어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호위가 그녀의 손을 떼어 내며 말했다.“이미 끝난 일입니다.”“오 년입니다. 제가 전하의 아내로 산 세월이 오 년입니다.”소하는 다시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그동안 정왕부를 위해 제 혼수까지 내놓았습니다. 아무리 저를 미워하셔도 이렇게까지 하실 분은 아닙니다. 그러니 한 번만 더 여쭈어 주십시오.”“그만하십시오.”호위는 소하의 손을 떼어 낸 뒤 그녀의 머리에 남아 있던 은비녀까지 뽑아 갔다.“그것은 어머니의 유품입니다!”소하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지만 호위는 비녀를 소매에 넣었다.“달아날 때 팔아 쓸 물건을 남겨 둘 수 없습니다.”그가 마차로 돌아서자 소하는 다친 다리를 끌고 뒤따라 달렸다.“이태윤!”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는 더욱 다급하게 외쳤다.“정왕 전하! 저를 버리셔도 좋으니 여기에는 두지 마십시오!”소하가 바퀴를 붙잡으려 하자 금옥의 하인들이 양팔을 움켜쥐었다.“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적어도 그 이유만은 알려 주십시오!”그러나 마차는 끝내 멈추지 않았다.금옥이 소하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진흙 바닥으로 끌어내렸다.“왕비였든 황후였든 여기 들어오면 다 똑같아. 돈 못 벌어 오면 밥도 못 먹는 년들이라고.”소하는 흙탕물에 무릎을 꿇은 채 멀어지는 마차를 바라보았다. 남편이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더욱 두려운 것은 자신을 사들인 여자가 이미 돈을 돌려받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그날 윤소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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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제가 길어 오겠습니다.”하녀는 잠시 소하의 얼굴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달아나려다 잡히면 우리까지 맞아요.”소하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이자 하녀는 더러운 헝겊으로 그녀의 얼굴을 닦아 주다가 다친 무릎을 발견했다.“피가 나는데요.”“약을 구할 수 있습니까?”“금옥 마님이 허락해야 해요.”“그렇다면 의원을…….”“여긴 의원을 함부로 부르지 못해요.”하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복도에서 금옥의 고함이 들려왔다.“뭘 꾸물거려!”소하는 더 묻지 못하고 차가운 물을 몸에 끼얹었다.왕비로 살던 시절에는 물이 차가우면 하녀가 따뜻한 물을 더 가져왔고, 손끝에 작은 상처만 생겨도 의원이 약을 발라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피가 흐르는 무릎을 씻을 물조차 마음대로 고를 수 없었다.그럼에도 소하는 자신이 이곳에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남편이 모든 사정을 알지는 못했을 것이며, 누군가 중간에서 잘못된 명을 전달했을지도 몰랐다.그 가능성이 남아 있는 한, 소하는 포기할 수 없었다.***첫날밤의 손님은 막일꾼과 짐꾼, 노름판에서 돈을 땄다는 술장수까지 모두 세 사람이었다.술에 취한 사내들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소하를 둘러싸고 얼굴을 살피며 정왕비였다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떠들어 댔다.“이년이 정왕비였다고?”“금옥이 우리를 속인 거 아냐?”“정왕이 버린 마누라라잖아. 한번 물어보자고.”방은 어른 셋이 제대로 누울 수도 없을 만큼 비좁았고, 한쪽에는 누렇게 변색된 짚자리가 깔려 있었다. 벽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는 가운데 한쪽 다리가 짧은 술상이 위태롭게 흔들렸으며, 천장에는 오래된 누수 자국이 검게 번져 있었다.소하는 방문 옆에 선 채 사내들에게 말했다.“돈을 돌려받고 나가십시오. 저는 이곳에 제 뜻으로 온 사람이 아닙니다.”막일꾼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여기 있는 여자 중에 제 발로 들어온 년이 몇이나 되겠어?”짐꾼이 다가와 그녀의 팔을 붙잡자 소하는 즉시 손을 뿌리쳤다.“손대지 마십시오.”“말투가 아직도 왕비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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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자 차가운 비가 얼굴을 때렸다.골목에는 짐을 나르는 사내와 장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소하는 그중 지게를 진 사내에게 달려가 소매를 붙잡았다.“살려 주십시오!”사내가 놀라 지게를 내려놓았다.“무슨 일이오?”“저는 정왕비 윤소하입니다. 강제로 기루에 팔려 왔으니 관아에 가서 제 신분을 확인해 주십시오.”소하는 피 묻은 손으로 그의 소매를 붙잡은 채 거듭 애원했다.“한 번만 도와주십시오.”사내가 망설이는 사이 금옥이 대문 밖으로 나와 고함을 질렀다.“그 여자 건드리지 마시오! 정왕부에서 직접 넘긴 죄인이오!”정왕부라는 말을 듣자 사내의 표정이 굳었다.“정왕부에서?”“왕실 일에 끼어들었다가 화를 당하고 싶으면 도와주든가!”소하는 그의 소매를 더욱 단단히 붙잡았다.“거짓말입니다. 저는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그러나 사내는 그녀의 손을 떼어 내며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중얼거렸다. 소하가 다시 매달리려 했지만 그는 이미 지게를 짊어지고 돌아섰고, 그녀는 한 걸음 따라가다가 다친 무릎이 꺾여 바닥에 넘어졌다.그때까지 구경하던 사람들도 하나둘 등을 돌렸다.소하는 골목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마지막 힘을 다해 외쳤다.“누구든 관아에 알려 주십시오! 제가 살아 있다고, 윤소하가 여기 있다고 전해 주십시오!”금옥이 다가와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아직도 네가 왕비인 줄 알아?”“놓으십시오! 저는 여기서 죽을 수 없습니다!”소하는 흙탕물에 손을 짚고 버텼지만, 하인 둘이 양팔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대문 문턱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저항하자 하인 하나가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냈고, 마지막 손가락마저 문턱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녀는 골목 끝을 바라보았다.조금 전 도움을 청했던 사내가 멀어지고 있었다.그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대문이 닫히고 금옥이 빗장을 걸자, 소하는 자신이 다시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제 알겠느냐? 네가 아무리 소리 질러도 여기선 아무도 널 구해 주지 않아.”***다시 끌려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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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손바닥의 상처에서는 피가 굳어 있었고, 포승에 쓸린 손목은 부어올랐다. 젖은 옷에서 올라오는 술 냄새가 역겨웠지만 갈아입을 옷도, 몸을 씻을 물도 없었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들어온 사람은 금옥이었다.금옥은 소하의 얼굴이나 상처를 살피는 대신 방바닥부터 훑어보았다.“술병 두 개, 잔 네 개, 부서진 의자 하나.”하인에게 장부를 가져오라고 명한 금옥은 손님에게 돌려준 술값까지 적으라고 했다.소하는 벽을 붙잡고 일어서며 항의했다.“저 사람들이 저를…….”“네가 얌전히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금옥은 그녀의 말을 끊고 붓을 들었다.“오늘부터 네가 깨뜨린 물건값은 전부 빚이다.”“저를 팔아넘기면서 오백 냥을 받지 않았습니까?”“그건 내가 낸 돈을 회수해야 할 밑천이지.”“그렇다면 저는 언제 나갈 수 있습니까?”금옥은 장부를 덮으며 냉정하게 대답했다.“빚을 다 갚으면.”소하는 피 묻은 손바닥을 움켜쥐었다.자신이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밤이 금옥의 장부에서는 갚아야 할 빚으로 바뀌어 있었다.***이튿날 아침, 소하는 공동 뒷간으로 끌려갔다.나무판자가 썩어 발을 디딜 때마다 흔들렸고, 구덩이에는 오물이 넘쳐 있었다. 문짝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마당에서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으며, 바닥에는 벌레가 기어 다녔다.금옥은 삽과 낡은 바가지를 내밀었다.“이거부터 퍼내.”소하는 바가지를 내려다보며 다친 손을 보여 주었다.“제 손이 다쳤습니다.”“손이 다쳤으면 발로 하든가. 일 못 하면 밥도 없어.”금옥이 등을 밀치자 소하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헝겊으로 손바닥을 감은 뒤 바가지를 들었다.오물을 퍼내는 동안 악취 때문에 몇 번이나 헛구역질이 났고, 다친 무릎은 쪼그려 앉을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을 멈추면 금옥이 마당으로 나와 욕설을 퍼부었고, 하인들은 그녀가 쉬지 못하도록 감시했다.한참 뒤 소하는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물 한 그릇을 청했다.하인은 우물에서 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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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새벽 무렵 잠깐 잠들었다가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고, 빨랫감을 가져가라고 말하려던 하녀가 놀라 물러섰다.소하는 숨을 고르지 못한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하녀는 더 묻지 않았다.그녀도 이곳에서 어떤 밤들이 지나가는지 알고 있었다.***닷새째 되는 날, 소하는 뒷문이 열리는 시간을 알아냈다.새벽마다 장작을 실은 수레가 들어왔고, 하인들은 그때 잠시 마당의 감시를 소홀히 했다. 소하는 빨랫감을 널면서 문과 우물 사이의 거리를 재고, 하인들이 교대하는 순서를 외웠다.다친 무릎 때문에 빨리 달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달리는 대신 장작 수레 뒤에 숨어 나가기로 했다.그날 새벽 소하는 부엌에서 장작을 나르는 일을 자청했다.금옥은 별다른 의심 없이 그 정도 일이라도 해야 밥값을 한다며 허락했고, 소하는 수레가 마당에 들어오자 장작을 옮기는 척하며 뒤편으로 돌아갔다.열린 대문 너머에는 새벽 장사꾼들이 움직이고 있었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수레 뒤에 몸을 숨겼다.조금만 더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그때 누군가 어깨를 붙잡았다.“어딜 가려고?”뒤돌아보니 하인이었다.소하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장작을 옮기고 있었다고 둘러댔지만, 하인은 장작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금옥을 불렀다.그녀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열린 대문을 향해 달렸다.그러나 두 걸음도 가지 못해 다친 무릎이 꺾였고, 뒤따라온 하인이 허리를 붙잡았다.금옥은 소하를 마당 한가운데 끌어다 앉혔다.“아직도 도망칠 생각이 남아 있었어?”소하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고개를 들었다.“저는 여기서 죽을 수 없습니다.”“누가 죽으래? 돈이나 벌라는 거지.”금옥은 하인들에게 소하의 발목을 묶어 두라고 명했고, 그날부터 그녀가 마당 밖으로 나갈 때마다 감시를 붙였다.식사는 하루 한 끼로 줄었으며, 금옥은 감시 인력을 늘린 비용까지 장부에 적었다.소하는 장부를 보며 항의했다.“이렇게 하면 제가 어떻게 돈을 갚습니까?”금옥은 태연하게 대답했다.“그러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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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그 대답에 소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그렇다면…….”집사는 품에서 그녀가 쓴 헝겊을 꺼내더니 두 손으로 찢었다.“전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소하는 바닥에 떨어진 헝겊을 바라보며 되물었다.“무엇을요?”“마님께서 이곳에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그렇다면 왜…….”“더는 정왕부로 서신을 보내지 마십시오. 전하께서는 마님을 다시 들일 뜻이 없으십니다.”소하는 바닥에 떨어진 헝겊을 주워 들었다.“전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까?”“그렇습니다.”“제 죄가 무엇인지는 알려 주셨습니까?”집사는 대답하지 않았다.소하는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만이라도 알려 달라고 애원했다.그러나 집사는 그녀의 손을 떼어 내며 냉정하게 말했다.“이제 정왕부와 관계없는 분입니다.”그가 마차에 올라타자 소하는 뒤따라가려 했지만 금옥의 하인이 길을 막았고, 결국 마차가 떠난 뒤에도 찢어진 헝겊만 손에 쥔 채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남편이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구하러 오지 않았다.소하는 그날 저녁까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금옥은 정왕부에 서신을 보낸 비용을 장부에 적으며 심부름값뿐 아니라 마차를 기다리느라 일을 하지 못한 값까지 포함했다고 말했다.소하는 장부를 내려다보았다.마지막 희망을 보내기 위해 내놓은 어머니의 주머니는 이미 사라졌고, 그 대가로 남은 것은 더 커진 빚뿐이었다.***한 달째 되는 날, 소하는 금옥에게 청운상단의 이름을 꺼냈다.“제 어머니 한유정은 청운상단에 지분을 남겼습니다.”금옥은 처음으로 관심을 보이며 액수를 물었다.소하는 정확한 액수는 장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은자 오백 냥보다 적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그 돈을 네가 받을 수 있다고?”“제 이름으로 남겨진 재산입니다. 친정에 연락하게 해 주시면 그 돈으로 몸값을 치르겠습니다.”금옥은 잠시 생각하더니 하인에게 밥을 가져오라고 명했다.그날 소하는 이곳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따뜻한 밥을 받았고, 금옥은 그녀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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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어머니는 왼손 약지가 굽어 있어 매화꽃의 마지막 꽃잎을 늘 조금 짧게 수놓았다.소하는 그 자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 비단은 어머니가 혼수로 마련해 준 물건이었다.“이것을 어디서 구하셨습니까?”소하가 묻자 술에 취한 손님이 고개를 들었다.“왜?”“제 어머니의 물건입니다.”사내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정왕부에서 흘러나온 거야. 윤채린 아씨가 새 옷을 지으려고 가져갔다더군.”“윤채린이요?”“정왕이 그 여자에게 준 물건이라던데?”소하는 더 묻지 못하고 비단을 집어 들었다.그러자 손님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누가 가져가래?”“제 것입니다.”“돈 주고 산 내 물건이야.”“제 어머니가 남겨 주신 것입니다.”사내가 비단을 잡아당겼지만 소하는 놓지 않았다.어머니의 손길이 남은 마지막 물건이었기에, 그녀는 지금 돈이 없더라도 반드시 갚겠다며 비단만은 돌려 달라고 애원했다.그러나 사내는 비단을 거칠게 빼앗았고, 소하가 다시 손을 뻗자 금옥을 불러 손님 물건을 훔치려 했다고 소리쳤다.금옥은 소하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하인들에게 그녀를 우물가로 끌고 가라고 명했다.“손님 물건에 손댄 벌이다.”소하는 사내의 손에 들린 비단을 바라보며 버텼다.“제 어머니의 것입니다!”금옥이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여기서 네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소하는 우물가의 나무기둥에 묶였다.그날 밤에는 비가 내렸다.처음에는 가늘게 내리던 비가 밤이 깊어지면서 거세졌고, 처마에서 떨어진 물이 소하의 어깨와 등에 쏟아졌다.그녀는 묶인 손목을 비틀며 지나가는 하인에게 풀어 달라고 청했다.“금옥 마님이 아침까지 두랬어요.”“비가 너무 차갑습니다.”“나도 어쩔 수 없어요.”하인은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소하는 기둥에 이마를 기댄 채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 내려고 했지만, 두 손이 묶여 있어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조차 치울 수 없었다.어머니의 비단은 이미 사라졌다.그녀는 어머니가 그 비단을 수놓던 날을 떠올렸다.어린 소하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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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소하는 문을 두드리며 물 한 그릇만 달라고 청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약이 아니어도 좋으니 물만 달라고 몇 번이나 애원한 뒤에야 하녀가 작은 바가지에 물을 담아 왔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바가지를 받아 입술에 가져갔지만, 물을 마시던 중 기침이 터져 절반을 쏟고 말았다.하녀는 바닥을 닦으며 금옥이 이제 의원을 부르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을 전했다.“왜요?”소하가 묻자 하녀는 대답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돈을 못 벌면 소용없다고…….”소하는 바가지를 내려놓고 벽을 붙잡았다.“저는 아직 일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일어서려는 순간 다리가 떨렸고, 하녀가 부축하려 하자 그녀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만지지 마십시오!”하녀가 놀라 물러서자 소하는 숨을 몰아쉬다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미안합니다.”그녀는 다시 벽을 붙잡으며 간청했다.“내일은 일하겠습니다. 그러니 금옥에게 의원을 불러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하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석 달째 되는 날, 소하는 자신의 발소리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다.열이 오르내리는 동안 귀가 먹먹해졌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몸을 일으키면 어지러웠지만, 골방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금옥은 식비와 방값을 장부에 적었다.소하는 더는 빚을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래도 죽을 생각은 없었다.그녀는 손바닥에 남은 흉터를 내려다보다가 벽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방문까지는 열 걸음도 되지 않았고, 그곳을 나가기만 하면 마당이 있었다. 마당을 지나면 대문이 있었으며, 대문 밖에는 사람들이 있었다.어쩌면 이번에는 누군가 도와줄지도 몰랐다.소하는 그 가능성을 되새기며 문으로 다가갔다.그녀가 손을 뻗으려는 순간 빗장이 풀리더니 금옥이 들어왔다.금옥의 손에는 작은 약사발이 들려 있었고, 뒤에는 하인 둘이 서 있었다.소하는 약사발을 바라보며 물었다.“의원을 부르셨습니까?”“이제 의원은 필요 없어.”금옥은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소하는 하인들의 얼굴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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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무슨 약입니까?”“네 병을 끝내 줄 약이지.”“먹지 않겠습니다.”그녀가 약사발을 밀어내자 금옥의 얼굴이 굳었다.“이년이 마지막까지 말썽이네.”소하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다.“저를 보내 주십시오.”하인들이 앞을 막아서자 소하는 그들의 팔을 밀어내며 소리쳤다.“비키십시오!”몸이 휘청거렸지만 그녀는 다시 문으로 달려갔다.하인이 팔을 붙잡자 손목을 비틀어 빠져나왔고, 다른 하인이 길을 막자 그의 어깨를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다.문턱이 보였다.소하는 손을 뻗었지만, 다친 무릎이 꺾이면서 바닥에 넘어졌다.금옥이 뒤에서 다가왔다.“어디까지 가려고?”소하는 바닥을 짚고 다시 일어서려 했다.“살려 주십시오.”그녀는 처음으로 금옥에게 그렇게 말했다.“돈을 갚겠습니다. 청운상단의 장부를 찾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금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소하는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애원했다.“죽고 싶지 않습니다.”그러나 금옥은 하인들에게 눈짓했고, 소하는 그 손길을 피하려 했지만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약사발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입을 다물었으나, 강제로 먹인 약이 입안으로 흘러들었다.소하는 거칠게 기침하며 약사발을 밀어냈다.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금옥은 깨진 그릇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끝까지 물건을 깨뜨리는구나.”소하가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는 사이 금옥과 하인들은 방을 나갔다.문이 닫히고 빗장이 걸렸다.소하는 팔꿈치로 바닥을 밀며 문을 향해 기어갔다.손바닥의 오래된 상처가 다시 아팠고 숨이 가빠졌지만, 그녀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문턱에 닿기만 하면 누군가 문을 열어 줄지도 몰랐다.그 희망을 붙잡고 문짝을 두드렸다.“열어 주십시오.”목소리가 너무 작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소하는 다시 힘을 모아 문을 두드렸다.“제발…….”복도에서는 사내들이 웃고 있었다.누군가는 술값을 두고 다투었고, 다른 누군가는 노름판에서 돈을 잃었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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