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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해빙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2 17:01:46

시위 소리보다 강이 먼저 왔다.

물은 등뼈를 타고 올라와 정수리에서 터졌다. 귀가 열렸다. 세상의 소리가 갑자기 낱낱이 굵어져서, 운설은 눈을 뜬 채로 어둠 속에 든 사람처럼 잠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대신 들렸다. 지붕에 얹힌 눈의 무게가 서까래를 누르는 소리. 세 사내의 심장이 제각기 다른 박자로 뛰는 소리. 그리고 시위를 떠난 살 두 대가 눈발을 가르며 우는, 가늘고 긴 휘파람.

느렸다. 모든 것이 터무니없이 느렸다.

살이 오는 길이 눈에 보였다. 길이 보이니 비켜설 자리도 보였다. 몸은 이미 그 자리에 가 있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운설은 법당 계단 아래, 처음 섰던 곳에서 세 걸음 비낀 자리에 서 있었다. 쇠뇌 살 한 대는 산문 기둥에 박혀 부르르 떨고 있었다. 또 한 대는 — 그녀의 오른손에 쥐여 있었다. 살깃까지 성한 채로, 날아오던 것을 허공에서 붙든 모양새 그대로.

눈이 내렸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요술이다." 젊은 사냥꾼의 목에서 쉰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막내가 쇠뇌를 떨어뜨렸다. 쇠붙이가 돌계단에 부딪는 소리가 골짜기에 오래 울렸다. 셋째가 뒷걸음질을 치다 눈에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형님, 저거, 북막 것들 이야기 못 들었소. 어미 배 속에서부터 달의 힘을 마신다고, 그래서 맹이 씨를 말렸다고 —"

"닥쳐라."

우두머리만이 자리를 지켰다. 그 눈이 그녀의 손에 들린 화살과 그녀의 낯을 오갔다. 놀람이 지나간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서는 것을 운설은 보았다. 사냥꾼이 값을 다시 매기는 눈. 범인 줄 알고 쫓았더니 그보다 큰 것이 나왔을 때, 달아나는 자와 그물을 새로 짜는 자가 갈린다. 이 사내는 뒤쪽이었다.

운설은 제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다섯 개가 화살대를 감아쥐고 있는데, 그 손이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었다. 손바닥 안에서 화살은 아직 파닥거렸다, 잡힌 새처럼. 심장이 두 방망이질 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에는, 그녀가 건너온 세 걸음이 너무 멀었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겨를을 강은 주지 않았다. 물소리는 여전히 차오르는 중이었다. 둑을 넘은 물이 논으로 번지듯, 힘이 팔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가슴으로 번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다만 거대한 흐름. 열여덟 해 동안 이 몸 어디에 이런 강이 숨어 있었단 말인가.

문 앞에 쓰러졌던 노인이 떠올랐다. 죽어 가던 밤, 마른 손이 그녀의 손목을 끌어다 제 가슴에 얹고 무어라 웅얼거리던 것. 그때는 헛소리로 들었다. 강을 부탁한다, 하던 말. 열이 오른 병자의 잠꼬대라 여기고 이불깃만 여며 주었는데, 그 밤 그 손이 정말로 무언가를 옮겨 부었던 것이라면 — 지금 이 몸속에서 둑을 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면.

"쏘지 마라." 우두머리가 낮게 말했다. 겁먹은 목소리가 아니어서 오히려 무서웠다. 그는 방 종이를 접어 품에 넣고, 허리의 칼을 천천히 뽑았다. "살 값이 아깝다. 요술이든 무엇이든, 계집은 계집이지."

칼을 든 걸음이 눈을 밟으며 다가왔다. 서두르지도 멈칫거리지도 않는, 셈이 끝난 자의 걸음이었다.

"처음 힘을 쓴 짐승은 제 힘에 잡아먹힌다." 우두머리가 걸으며 말했다. 그녀에게 하는 말인지 아우들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어조였다. "새끼 범이 그렇다. 첫 사냥에 제 발을 문다. 지금 잡아야 값이 헐하다."

물러서야 한다고 머리가 말했다. 뒤는 바위벽이니 물러설 데가 없다고도 말했다. 머리가 그 두 마디를 겨우 잇는 동안—

몸이 앞으로 나갔다.

강이 내디딘 걸음이었다. 발이 눈을 밟는 감촉은 분명 제 것인데, 옮기라고 명한 기억이 그녀에게 없었다. 오른손이 화살을 버리고 비었다. 빈손이 저 혼자 들려 올라갔다. 손바닥이 다가오는 칼을 향해 열렸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리해 온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멈춰, 하고 운설은 제 몸에게 말했다.

몸은 듣지 않았다. 강물 소리가 그녀의 목소리를 삼켰다. 우두머리의 칼이 눈발을 갈랐고, 열린 손바닥은 그 칼날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살과 쇠가 만나기까지 남은 것은 반 뼘.

의녀의 손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것밖에 배운 적 없는.

그 손이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그녀만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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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39화 — 왕이 없는 겨울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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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36화 — 혈비의 이름

    네 성문이 열린 뒤에도 혈비는 빈 문서 앞에 앉아 있었다.황실이 내민 종이에는 왕명을 찍을 자리만 남았다. 그녀는 붓을 들어 맨 위의 삭월왕 세 글자를 지웠다.대신들이 숨을 삼켰다.“무엇을 쓰시려는 겁니까?”“내가 한 일.”혈비는 첫 줄에 효월을 썼다. 왕호도 성도 없는 어린 이름이었다. 여덟 살에 야란을 고르고 하진을 두고 온 일, 기억을 잃었다는 말로 월계단을 열지 않은 일, 왕이 된 뒤 묵할멈 침묵을 충성으로 받은 일을 차례로 적었다.사백은 여덟 살 선택까지 죄로 적지 말라고 했다. 소맥의 아비는 반대로 아이였다는 말을 함께 쓰면 변명이 된다고 했다. 혈비는 둘의 말을 한 줄씩 여백에 붙였다.“어느 쪽이 맞는지 제가 정해야 합니까?” 성문을 연 궁녀가 물었다.“아니다. 내가 한 일과 그대들이 본 것을 함께 남겨라.”혈비의 고백은 깨끗한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았다. 죄라 부르는 사람과 강요받은 선택이라 부르는 사람의 글이 같은 종이 가장자리에서 부딪쳤다.“전하, 이 문서는 황실이 가져갑니다.”“그러니 더 적어야지.”“개인의 허물과 나라의 죄를 섞으시면 안 됩니다.”혈비가 붓을 멈췄다.“그 말로 왕들은 언제나 자기 손을 나라 뒤에 숨겼다.”그녀는 삭월왕이 된 뒤 우물 기록을 찾지 않은 일을 더했다. 무너진 나라를 세우느라 몰랐다는 까닭도 함께 적되 변명으로 앞세우지 않았다. 자기 선택과 알 수 없던 일을 다른 줄에 놓았다.하진은 두 걸음 밖에서 그 글을 지켜봤다. 야란 손바닥에 내 이름을 왕의 죄 아래에 쓰지 말라고 썼다. 혈비는 하진 이름을 지우고 빈칸을 남겼다. 당한 사람이 원할 때 자기 줄을 붙일 자리였다.황실 사자가 재촉했다.“수결 시각이 지났소. 왕인을 찍지 않으면 제안은 거둔다.”“거둬라.”혈비가 왕인을 집었다. 대신들이 막아서자 사백이 길을 열었다. 활 없이 두 팔만 벌리고 왕과 신하 사이에 섰다.“저분은 왕좌를 버리려는 것이 아니다.” 대신이 외쳤다. “나라를 버리려는 것이다!”혈비는 망치를 들었다.“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35화 — 한 치를 돌려주는 사람

    성문 안쪽 빗장을 뽑은 것은 수레꾼들이었다.밤새 서쪽 길을 달려온 공동 소금길 수레가 문 앞에 늘어서 있었다. 설로상단 깃발은 없었다. 흑마장, 약재 창고, 길 식솔 모임의 작은 표식들이 수레마다 따로 걸렸다.연도하가 맨 앞 수레에서 내렸다. 왼손에는 장부, 불편한 오른손에는 고삐 한 줄만 들려 있었다. 하란주가 검은 말 위에서 그를 내려다봤다.“저 사람에게 지휘를 맡긴 적 없습니다.”문지기가 물었다.“그럼 누가 수레를 움직입니까?”“각 수레 주인이요.”연도하는 겨울 궁까지 오는 길과 황실군 빈틈을 설명했을 뿐, 어느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지 않았다. 수레꾼들은 네 성문 앞에서 스스로 멈췄다.황실 장수가 성 밖에서 소리쳤다.“군량을 들이면 반역에 가담한 것으로 친다!”첫 수레의 늙은 마부가 소금자루를 열었다.“팔러 왔소.”“누구 허락으로?”“내 물건 파는 데 누구 허락이 필요하오?”수레에는 군량만 있지 않았다. 왕가 명부 사본과 황실 열여덟 이름이 소금자루 사이에 들어 있었다. 한 대를 붙잡으면 다른 문으로 세 대가 움직였다.혈비가 연도하를 왕좌 앞으로 부르려 했다. 그는 가지 않았다.“길 식솔들과 계산부터 끝내야 하오.”“왕명이면?”“그 말로 부르면 문밖에 있겠소.”혈비는 왕명을 거두고 장터 빈 상으로 내려왔다. 왕과 전 상단주가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장부를 들여다봤다.연도하는 성 안 창고 열쇠를 요구하지 않았다. 수레 주인들이 어느 집에 얼마를 내릴지 정하게 했다. 황실군에 가족이 징집된 사람에게도 곡식을 팔았다. 적군 가족이라는 까닭으로 굶기면 열린 성의 뜻이 첫날부터 거짓이 될 터였다.운설은 장터에서 그를 만났다. 연도하의 얼굴은 사흘 잠을 못 잔 사람처럼 거칠었다.“왔네요.”“내 길이 여기까지 닿았소.”“당신 길이요?”“벌써 틀렸군. 내가 함께 낸 길.”그가 웃었다. 오래전이면 운설이 웃어 준 한 번을 마음의 빚으로 적었을 사람이었다. 이제는 웃음이 지나가도록 두었다.“그대에게 남겨 달라던 한 치를 기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34화 — 닫히기 전의 밤

    닫힌 문 너머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밤새 갈라졌다.운설은 그 문밖에서 돌아섰다.문 안에서는 대신들과 우물 유족이 밤새 다투고 있었다. 자신이 들어가 어느 한쪽 손을 잡으면 혈비가 그 온기를 답으로 삼을 것 같았다.선우현은 빈 겨울 처소에서 창문을 막고 있었다. 찬바람이 종이를 들썩일 때마다 못 대신 부러진 화살대를 끼웠다.“언니한테 안 갔어요.”“보았다.”“잘한 건지 모르겠어요.”“나도 모른다.”운설은 그의 등 뒤로 다가가 허리를 안았다. 선우현의 손이 창틀에서 멎었다.“도망가고 싶어요.”“나도 그렇다.”“같이 갈까요?”선우현은 뒤돌아 그녀 얼굴을 보았다.“지금 나가면 새벽 전에 산길에 닿을 수 있어.”운설은 그가 말뿐인 위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원하면 함께 갈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오래 망설였다.“단이 있는 집까지?”“그보다 멀리도.”“그리고 언니 소식은 평생 묻지 않고?”“네가 할 수 있다면.”운설이 이마를 그의 가슴에 댔다.“못 해요.”“나도 네가 못 할 줄 알았다.”“그런데 왜 끝까지 물어봐요?”“네가 남는 일이 내 명령이 되지 않게.”“당신이 가자고 했으면 잠깐은 원망했을 거예요.”“평생은?”“아마 따라가 놓고 매년 겨울마다 언니 탓을 했겠죠.”“그러면 나는 그 탓까지 들었을 거다.”“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마요.”“아무렇지 않지 않아.”선우현은 운설의 손을 자기 목에 댔다. 긴장할 때마다 굳는 맥이 손가락 아래에서 뛰었다. 그 역시 도망치자는 대답을 바라고 있었다.운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그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내일 성문이 닫히거나 황실 화살이 날아들 수 있었다. 마지막 밤처럼 굴지 않기로 했지만, 살아 있는 지금을 아껴 두고 싶지도 않았다.“오늘도 물어봐요.”“나와 함께 있겠느냐.”“오늘은 끝까지.”운설이 입맞춤으로 답했다. 선우현은 한 번 받아들인 뒤 그녀 뒷목을 감싸 더 깊이 끌어당겼다. 추위에 굳은 입술이 금세 뜨거워졌다.“하아…….”숨을 빼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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