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북문 종이 세 번 울리자 우물 두레박부터 사라졌다.관졸들이 줄을 풀어 수레에 싣고, 우물 가장자리에 붉은 끈을 둘렀다. 물을 막겠다는 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아낙들은 빈 동이를 든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황실 사자는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약방 앞에 이르렀다. 말 열두 필과 검은 가마 하나, 봉한 공문을 받든 아전 둘이 뒤따랐다.붙잡아 둔 추적자는 그를 보자 무릎을 꿇었다. 혀 아래 용문이 드러난 사내를 보고도 사자는 놀라지 않았다.“수고했다.”“저자가 장터에서 칼을 뽑았소.”선우현이 말하자 사자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달아난 병인을 잡는 중 생긴 일이니 관가에서 다스리겠소.”“누구 관가요?”사자의 입가가 굳었다. 선우현은 길을 막지 않았다. 약방 문 한쪽에 기대어 지팡이의 갈라진 끝만 손으로 쓸었다.아전이 공문을 펼쳤다.“북로감찰사 고윤 대감의 명이다. 관에 매인 병인 고명주는 황실의 약전과 수정관을 훔쳐 달아났으며, 그 몸에 든 물길은 북방 토벌에서 얻은 전리다. 이를 감춘 자는 같은 죄로 다스린다.”문 앞 사람들의 시선이 약재방으로 쏠렸다.명주는 스스로 걸어 나왔다. 포승은 손에 들었으나 몸에 감지 않았다. 맨발 상처에는 운설이 감은 흰 천이 둘러져 있었다.사자가 가마 문을 열었다.“아씨, 돌아가시지요. 대감께서 기다리십니다.”“제가 훔친 약전의 이름을 말해 보세요.”“그것은 수뢰에 돌아가서 밝히시면 됩니다.”“수정관은 몇 개였지요?”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명주의 입에서 짧은 웃음이 새었다가 곧 다른 사람의 기침으로 바뀌었다.운설이 공문을 받아 들었다. 종이 아래쪽에는 백로진이 명주를 내주지 않을 경우 우물 셋과 북쪽 상로를 봉한다는 줄이 있었다.길수가 욕을 삼켰다. 상로가 막히면 짚신을 팔 수 없었다. 약재를 실어 오는 수레도, 곡식을 나르는 말도 같은 길을 썼다.“이 여인이 관에 매인 까닭은 무엇입니까?”운설이 물었다.“황실 약재와 의원의 손으로 목숨을 이었기 때문이오.”“약값을 갚지 못해서요?”
장터의 소리가 세 번 비었다.첫 번째는 생선 장수가 칼을 씻으러 갔을 때였다. 두 번째는 북문 수레가 약방 앞에서 바퀴를 고쳐 끼울 때였고, 세 번째는 국밥집 솥뚜껑이 닫힌 뒤였다.선우현은 빈 소리 사이에 남은 발을 들었다.짐꾼 차림 사내 하나가 같은 자리에서 짚신만 비볐다. 엿장수는 아이들이 달려들어도 가위질을 하지 않았다. 약방 맞은편 베 장수는 오전 내내 천 한 필을 펼친 채 손님 얼굴보다 문을 보았다.“다섯이오.”선우현이 왕철에게 말했다.“무엇이 다섯이오?”“우리를 보지 않는 척하는 자들.”예전 검신대가 집 한 채를 에워쌀 때 쓰던 자리였다. 수레로 달아날 길을 막고, 장사치로 출입을 세며, 가장 늦게 사라지는 행인이 문을 확인했다. 검신이라 불리던 때 선우현이 직접 짠 포위였다.그때는 집 안 사람을 지킨 적이 없었다. 세 방향을 막고 한 방향만 비워 두면 쫓기는 자는 스스로 열린 길을 골랐다. 그 끝에 활잡이를 숨겨 두는 식이었다.선우현은 북쪽 골목을 보았다. 다섯 중 누구도 그쪽에 서지 않았다.“열린 길 끝에도 둘이 더 있을 거요.”“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압니까?”“내가 그렇게 했으니까.”왕철의 얼굴이 굳었다. 선우현은 지난 솜씨를 자랑하지 않았다. 자기가 만든 나쁜 길을 알아보는 사람처럼 장터 바닥만 훑었다.운설은 약재방의 명주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포승을 푼 뒤에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손목에는 선우현과 같은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사람들을 돌려보낼까요?”“그러면 저들이 원하는 대로 길이 비오.”선우현은 장터 사람을 몰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왕철에게 오늘 외상 약값을 받지 말라고 했다. 복례의 며느리에게 떡판을 약방 앞에 펴게 하고, 서문 마부에게는 바퀴 빠진 수레를 골목 한가운데 세우게 했다.“싸움판을 만들 셈이오?”왕철이 물었다.“장사판을 지킬 셈이오.”사람이 늘자 숨어 있던 다섯은 서로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선우현은 장꾼들에게 빈 놋그릇을 나눠 주고 수레 주위에서 차례로 부딪치게
“묶으세요.”고명주가 세 번째 청했을 때 선우현은 포승 한쪽을 자기 손목에 감았다.다른 끝은 명주의 오른손에 느슨하게 둘렀다. 여자가 몸을 일으키면 그의 팔이 먼저 당겨지고, 주저앉으면 매듭이 풀리게 만든 묶음이었다.“저를 기둥에 묶어야 합니다.”“기둥은 네가 쓰러져도 따라 움직이지 않지.”“당신은 움직일 수 있고요?”선우현이 지팡이를 발끝으로 밀어 벽에 세웠다.“그만큼은.”운설은 포승 아래 손가락 하나가 드나드는지 확인했다. 명주의 맥 넷이 서로 다른 속도로 뛰었다. 가장 가느다란 박동은 선우현이 가까이 있을 때 오히려 또렷해졌다.담우가 침상 끝에 앉아 두 사람을 보았다.“제가 반을 주었습니다.”“흑요의 걸쇠를?”“누이 심장이 멎었을 때요. 설산 관에서 꺼낸 세 물길만으로는 몸이 버티지 못했습니다.”명주의 얼굴이 굳었다.“내가 달라고 했어.”“제가 녹였습니다.”“내가 살고 싶다고 했으니까.”말이 겹치지 않았다. 서로 죄를 빼앗으려는 사람들처럼 한 줄씩 이어졌다.운설이 물었다.“나머지 절반을 삼키면 명주에게 간 물을 붙들 수 있다고 누가 말했지?”담우는 품에서 무진의 낡은 방울을 꺼냈다. 소리는 나지 않았으나 안쪽에 가느다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나눈 물은 가까운 그릇을 찾는다.’“스승님 글씨가 아닙니다. 지하 방에 먼저 있었습니다.”그 순간 포승이 팽팽해졌다.명주의 몸이 담우 쪽으로 튀었다. 오른손이 약상 위 작은 침칼을 낚아챘고 왼손은 제 오른팔을 막으려 했다. 서로 다른 두 걸음이 한 몸에서 부딪쳐 무릎이 꺾였다.선우현은 명주를 끌어당기지 않았다. 자기 손목을 포승 아래로 틀어 침칼을 든 팔만 바닥에 눌렀다. 내공이 없는 팔뚝이 떨렸지만 매듭은 풀리지 않았다.“담우, 물러서.”소년이 움직이지 않았다.“누이 안의 누군가가 제 조각을 원합니다.”“알면 더 물러서.”“제가 준 겁니다.”“그러니 네가 죽을 권리까지 준 것은 아니야.”운설이 담우 가슴 앞에 물그릇을 놓았다. 침칼 끝이 소년에게 가까워질수
약재방의 황련 꾸러미가 안에서 한 번 들썩였다.선우현은 등잔을 왕철에게 넘기고 지팡이를 짧게 잡았다. 문에는 바깥 빗장만 있었다. 밤새 누구도 열지 않았고, 창은 사람 머리 하나 빠져나가기 어려울 만큼 좁았다.운설이 재 위 발자국을 살폈다. 왼발 뒤꿈치는 깊고 오른발 앞쪽에는 피가 묻었다. 자국 사이의 너비가 일정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다친 걸음으로 걷다가 중간중간 다른 사람의 보폭을 흉내 낸 듯했다.“문을 엽니다.”선우현이 지팡이 끝으로 빗장을 밀었다.마른 약초 냄새 사이로 젖은 흙내가 쏟아졌다. 황련과 당귀 꾸러미가 무너진 구석에 젊은 여자가 웅크리고 있었다. 흰 속옷은 무릎까지 젖었고 두 발은 돌길에 찢겨 피투성이였다.양손에는 포승이 들려 있었다.여자는 지팡이 끝이 목에 닿자 천천히 손바닥을 폈다.“저부터 묶으세요.”“이 문으로 들어왔소?”“모릅니다.”“모르는 자의 손에 포승은 왜 있지?”“제가 깨어 있을 때 챙겼으니까요.”“마지막으로 깨어 있던 곳은?”“서문 밖 돌다리.”왕철이 고개를 저었다. 돌다리에서 약방까지는 마른 길이었다. 피 묻은 발로 걸었다면 골목 전체에 자국이 남아야 했다.명주는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다리 아래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눈을 뜨니 여기였고요. 그 사이에 누가 제 발을 썼는지는 모릅니다.”선우현이 좁은 창살을 만졌다. 흙도 피도 묻지 않았다. 문 위 들보에는 손자국 하나 없었다.“물소리가 문을 열지는 않소.”“그러니 묶으라는 겁니다. 다음에는 제가 어디서 눈을 뜰지 모르니까.”여자의 목소리는 젊었으나 마지막 말의 끝이 늙은 사내처럼 갈라졌다.담우가 침상에서 굴러 떨어지듯 내려왔다.“명주 누이.”여자의 눈이 소년을 향했다. 반가움이 먼저 비쳤다가 곧 공포처럼 굳었다. 오른손이 저절로 포승을 쥐어뜯자 왼손이 그 손목을 눌렀다.“가까이 오지 마.”“제가 가져간 물을 돌려드리려고…….”“네 것이 되었으면 네 거야. 돌려주지 마.”운설은 두 사람 사이에 앉았다. 손목부터 잡지 않
“복례 할멈은 떡 반죽도 왼손으로 먼저 누릅니다.”며느리의 말이 끝나자 운설은 복례의 왼손에 쌀가루 한 줌을 쥐여 주었다. 굽은 손가락이 저절로 오므라졌다. 여섯 사람의 맥은 이제 한꺼번에 뛰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이 눈을 뜨려 하면 나머지 다섯의 숨이 얕아졌다.윤석은 다시 잠들어 있었다. 방금 운설을 설야라 부른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운설은 장부 한가운데 줄을 그었다. 왼쪽에는 그들이 제 몸으로 보인 버릇, 오른쪽에는 잠든 입이 뱉은 이름을 적었다. 두 줄을 섞지 않았다. 복례의 엄지와 노칠이라는 이름이 같은 사람에게서 나왔어도 아직 하나의 뜻으로 묶을 수 없었다.“저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문밖에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왕철이 오래 산 노인 셋을 더 불러왔으나 서련과 노칠, 정무를 들었다는 사람은 없었다. 묵은 호적과 무덤 이름을 읽어 온 복례조차 잠든 채 말했을 뿐, 깨어 있는 얼굴에는 낯섦만 남았다.“한 명씩 집으로 데려가면 안 됩니까?”윤석의 아내가 물었다.“문턱을 넘길 때 맥이 다시 맞물릴 수 있어요. 자기 발로 깨어서 나갈 때까지는 여기 둬야 해요.”약방 바닥에 자리를 여섯 개 폈다. 가족들은 머리맡에 앉아 그들만 아는 이야기를 했다. 길수가 어릴 때 훔친 밤톨, 마부가 말에게 붙여 준 우스운 이름, 윤석이 대패날을 거꾸로 끼워 손바닥을 벤 날이 방 안에 흘렀다.선우현은 말이 나올 때마다 잠든 이의 손발을 보았다.“이름보다 버릇에 먼저 돌아오는군.”“이름은 빌릴 수 있어도 살아 온 몸까지 빌리기는 어려운가 봐.”담우가 이불 끝을 움켜쥐었다.“그 여자가 가까이 있습니다.”가족들의 눈이 한꺼번에 소년에게 향했다. 길수의 아우가 먼저 멱살을 잡았다.“네가 오고 나서 이리됐잖아.”담우는 저항하지 않았다. 맥 없는 목에서 숨만 가쁘게 새었다.선우현이 사내의 손목을 떼어 냈다.“먼저 온 것은 물자국이오. 소년은 그 뒤에 왔고.”“저놈 몸에도 그 물이 있다면서요.”“그래서 묻고 있소. 때리면 입이 닫히고.”
젖은 발 여섯 쌍이 문턱 앞에서 동시에 멎었다.선우현이 문고리를 당겼다. 비 냄새도 없는 밤이었다. 골목에는 떡집 노파 복례와 짚신장이 길수, 서문 마부, 우물가에서 채소를 다듬던 두 여인, 목수 윤석이 나란히 서 있었다.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발밑에서만 물이 흘렀다. 여섯 줄의 물자국은 저마다 선 자리 한 걸음 뒤에서 시작됐다. 골목 어귀에는 젖은 자국 하나 없었다.“깨우지 마시오.”선우현이 뒤따라온 사람들을 막았다.복례의 며느리가 시어머니 이름을 부르려다 입을 틀어막았다. 운설은 가장 가까운 길수의 손목을 짚었다. 맥이 한 번 뛴 뒤, 옆 사람 맥이 뒤따랐다. 여섯 심장이 제 몸이 아닌 한 물결에 맞춰 차례로 뛰고 있었다.“한꺼번에 놀라면 함께 멎을 수 있어.”운설은 왕철에게 색실 여섯 가닥을 가져오게 했다. 사람마다 손목에 다른 색을 묶고 맥이 뛸 때마다 매듭 아래를 눌렀다. 월하를 몸 밖으로 내밀지는 않았다. 대신 눈꺼풀 떨림과 젖은 발가락이 오므라드는 차이를 살폈다.손끝 아래에서 얕은 강이 저절로 솟으려 했다. 예전 같으면 운설의 기운이 닿는 순간 여섯 맥을 한 줄에 놓고 밀어냈을 것이다. 가장 빠르고 익숙한 길이었다.운설은 손을 거두어 자기 치맛자락에 눌렀다.“왜 멈췄소?”“내 물을 알아보고 따라온 거라면, 내가 만지는 순간 더 깊이 들어올 수 있어.”담우가 마른 입술을 축였다.“의원님 강은 빈 곳을 채웁니다. 저 사람들 안에서 무엇이 비었는지 모르면, 밀어 넣은 물이 누구 자리가 될지 몰라요.”복례의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끌어안으려 했다. 운설은 막지 않고 어디를 평소처럼 만지는지 보았다. 며느리는 갈라진 손등부터 감쌌다. 새벽마다 떡시루를 들다 데인 곳이었다.“그대로 말씀하세요. 오늘 아침 무엇을 했고, 누구와 다퉜는지도.”“외상값 안 갚은 사람 이름을 읽어 달라 하셨어요. 세 번이나.”“그 사람 이름은?”며느리가 답하자 복례의 검지가 한 번 움직였다. 빌린 이름에 잠겨 있어도 오늘 아침의 성질은 몸 어딘가에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