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로스테 전술실에는 현장의 소리가 실시간으로 들어왔다.아이 울음과 말 울음, 나무문이 닫히는 소리 사이로 지역 경비대장의 목소리가 섞였다.“첫 마차 출발합니다. 보행 가능한 주민 마흔둘은 남쪽 길로 이동 중이고, 침상환자 여섯 명은 두 번째 마차에 싣습니다. 북쪽 축사 구역은 포기합니다.”하겐이 물었다. “병력은 몇 남았습니까?”“열여덟입니다.”“성 안쪽으로 물러날 공간은?”“마을 중앙까지 들어오면 없습니다.”“그러면 축사 앞에서 막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유생이 창고 쪽으로 가면 물건은 버리고 남쪽으로 붙으세요.”지역 경비대장이 잠깐 침묵하다 대답했다. “가축도 포기합니까?”“사람이 다 빠지기 전에는 그렇습니다.”그 판단이 떨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각수 첫 무리가 마을 북쪽 울타리를 부쉈다.놈들은 사람을 향해 달려들지 않았다.오래된 중계석 주변을 파기 시작했고, 그 안에 남아 있던 왕핵 정제분이 드러나는 순간 뒤따르던 개체들까지 한꺼번에 몰렸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축사 벽이 무너졌다.놀란 말과 염소들이 남쪽 길로 튀어나왔고, 주민 대피행렬이 잠시 멈췄다. 한 마차의 바퀴가 길가 도랑에 빠지면서 침상환자 둘을 다른 마차로 옮겨야 했고, 그 사이 지역 경비병 한 명이 달아나는 말을 피하다 어깨를 다쳤다.전투 피해가 아니라 대피 피해였다.그래도 피해였다.엘리시아는 치료소에 그 정보를 넘기면서 환자 이송경로를 남쪽 공회당까지 미리 열어두게 했다.성녀가 벨른 계곡으로 달려가 치료하는 대신, 다친 사람이 로스테나 가까운 치료거점에 도착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먼저 만들었다.하겐은 현장 보고를 들으며 이를 악물었지만 병력을 보내겠다고 하지 않았다.벨른 계곡은 자체 경비대가 아직 유지되고 있었고, 로스테 병력이 도착하려면 유생보다 늦었다.지금 보내면 마을을 구하는 병력이 아니라, 이미 이동 중인 주민과 같은 길을 쓰는 또 하나의 대열이 될 뿐이었다.“지원마차만 계속 보냅니다. 무장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몇
북부 산맥에 묻혀 있던 가짜 왕핵 스물세 개가 동시에 최대 반응으로 올라간 순간부터, 로스테의 전쟁은 더 이상 성벽 하나를 지키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됐다. 며칠 동안 느리게 먹이점을 확인하고 왕핵 잔류를 지우던 흰 뿔의 왕은 처음으로 전력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였고, 그 움직임에 자극받은 백각수 유생들은 폐병원과 백각 관측지, 오래된 지맥로 곳곳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쏟아져 나왔다. 회각충 역시 왕이 지나간 자리와 가짜 왕핵이 새로 켜진 곳을 따라 지하에서 깨어났으며, 북부 관측판은 짧은 시간 안에 생체 반응과 왕핵 유사반응이 겹치면서 어느 점이 장치이고 어느 점이 실제 마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워졌다.하겐은 경계종이 울리는 동안 북벽 위로 올라가지 않고 전술실 한가운데에 남아 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장 먼저 보이는 마물에게 병력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스물세 개의 가짜 왕핵 가운데 어떤 것이 실제 주민지와 연결돼 있는지부터 가르는 일이었다. 그는 지도 위에 로스테와 외곽 취락, 겨울 목축지, 황실 수송로를 표시한 뒤 베른하르트에게 말했다.“성벽 가까운 놈부터 막는다고 생각하면 틀릴 것 같습니다. 저 고정점 하나 때문에 왕이 방향을 바꾸면 다음 마을이 먼저 맞을 수도 있어요. 사람 사는 곳과 겹치는 점부터 번호를 붙이죠.”베른하르트는 이미 주민등록과 겨울 이동기록을 불러오고 있었다. 스물세 지점 가운데 여섯 곳은 완전 폐지대였고, 다섯 곳은 왕핵국이 버린 시설 주변이라 상주 인구가 없었다. 그러나 나머지 열두 곳은 사냥촌, 목축지, 소규모 광산 취락, 북부 수송로와 가까웠으며, 그중 세 곳에는 아직 겨울을 나고 있는 주민이 있었다.“가장 위험한 곳은 벨른 계곡입니다. 주민 백열세 명이 있고, 남쪽 길 하나밖에 없습니다.”“두 번째는?”“아르벤 목축지. 상주 쉰아홉, 겨울 가축이 많습니다. 세 번째는 옛 은광촌인데 주민은 스물일곱 명이고 대부분 노인입니다.”하겐은 곧바로 로스테 병력을 세
7번 관측틀은 단순히 유생의 상태를 보는 장치가 아니었다.흑갑 7번 회수자가 없을 때는 목의 금속틀이 스스로 활성화돼 7번 생체를 이동 중심으로 바꾸고, 같은 계통의 백각수들이 그 개체를 따라 지정 시설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구조였다.목적지는 어디인가.테사가 귀환좌표를 복원했다.백각 관측지.지금은 회각충이 깨어나고 소거 부산물이 남아 있으며, 흰 뿔의 왕이 여러 번 왕핵 흔적을 지운 장소.에드문트의 얼굴이 굳었다.“거기로 가면 안 됩니다.”법무관이 물었다.“왜죠?”“유생들이 관측지로 들어가면 회각충 군체하고 섞입니다.”“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누가 당신에게 열이틀 전에 직무를 다시 인수하라고 했는지 물어보세요.”법무관이 그대로 질문했다.에드문트 파울러는 이번에는 진술거부권을 선택하지 않았다.“문서가 왔습니다.”“누구에게서?”“발신자는 없었습니다.”“봉인?”남자의 시선이 처음으로 흔들렸다.아주 작게.“검은 해가 뜨기 전의 새벽문.”테사의 손이 멈췄다.하겐이 북벽 통신석 너머에서 낮게 욕설을 삼켰다.그 문양은 이미 다른 사건에서 본 적이 있었다.
다음 줄에는 소형 개체 다섯 마리 성벽 접근, 3번 보수구획 반응 확인, 황실 방어지원 자동권한 활성 여부 관측이라는 항목이 이어져 있었다.검은 화살은 우연히 날아온 것이 아니었다.누군가 백각수 유생을 상처 입혀 로스테 쪽으로 밀었고, 그 과정에서 오래된 보수석과 방어권한이 여전히 반응하는지를 시험했다.법무관은 즉시 체포혐의에 고의 위험유발과 불법 마물 유도 항목을 추가했다.엘리시아는 보고서를 읽다가 손가락을 멈췄다.“사망 가능성도 알고 있었습니까?”오스카가 다음 장을 넘겼다.실험위험 항목이 있었다.경비병 사망 가능.민간인 대피 지연 가능.시설 파손 예상.그 아래에서 현장 검증관이 선택한 값은 ‘허용’.엘리시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이건 실수가 아니네요.”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에드문트 파울러는 오래된 장치를 모르고 건드린 사람이 아니었다.사람이 다칠 가능성을 계산했고, 그래도 실행했다.남자는 로스테로 바로 들이지 않았다.수면이끼나 왕핵 잔류에 노출됐을 가능성을 검사하기 위해 북서쪽 임시 구금소에서 먼저 세척과 의료확인을 받았고, 법무관은 피의자 건강상태가 확인된 뒤에야 첫 신문을 시작했다. 엘리시아는 직접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겐 역시 북벽을 비우지 않았다. 신문은 영상으로 기록됐고, 변호인 역할을 맡을 국선 법무관도 같은 자리에 배석했다.“에드문트 파울러가 본명입니까?”남자는 입가에 굳은 피를 닦은 뒤 웃지도 않은 채 답했다. “아닙니다.”“현재 법적 이름은?”“없습니다.”“없다는 뜻을 설명하십시오.”“직무를 받으면서 이전 이름을 폐기했습니다.”“자발적으로?”남자는 처음으로 조금 오래 침묵했다.“그 질문이 중요합니까?”엘리시아는 화면 너머에서 그 반응을 봤지만 법무관의 질문을 대신하지 않았다.“중요합니다. 자발성이 있다면 그 사실 역시 책임 판단에 포함됩니다.”남자의 시선이 기록판을 향했다.“자발적이었습니다.”면책될 여지가 하나 줄었다.누가 억지로 이름을 빼앗은 것이 아니었다.그
의심되는 죄까지 미리 넣지 않았다.특별법원 지부는 긴급 체포영장과 폐중계소 수색영장을 발부했고, 현장팀에는 불을 지르거나 왕핵 장치를 작동시키는 상황에 대비한 차단막이 지급됐다. 현장 검증관이 흑갑 회수체계와 연결돼 있다면 사람이 들어오는 순간 장치를 활성화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살아 있는 채로 데려오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엘리시아가 영장 사본을 보며 말했다.베른하르트가 그녀를 봤다.“살아 있는 채로 데려오려고 경비병이 죽을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입을 막기 위해 죽일 이유도 없다는 뜻이에요. 영장대로 하세요.”“예.”누군가를 반드시 생포하라는 영웅적인 명령도, 위험하면 즉시 처형하라는 명령도 나오지 않았다.법이 정한 체포를 시도하고, 저항하면 필요한 범위에서 제압한다.그 정도면 됐다.체포조가 양치기 중계소에 도착했을 때 건물은 겉으로는 버려진 모습 그대로였다.지붕 절반은 눈에 눌려 내려앉았고, 담장은 오래전에 무너졌으며, 마당에는 최근 마차바퀴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찰병이 건물로 바로 접근하지 않고 골짜기 아래쪽을 돌아보자 눈으로 덮어둔 바퀴자국이 발견됐다. 누군가 마차를 중계소까지 직접 끌고 오지 않고 백여 걸음 떨어진 마른 개울에 숨긴 뒤 물건만 옮겼다.법무관 집행관은 영장을 읽고 문을 두드렸다.대답은 없었다.두 번째 고지 뒤에도 반응이 없자 잠금장치를 확인했고, 겉문은 안에서 걸려 있지 않았다.문을 여는 순간 첫 번째 함정이 작동했다.폭발물은 아니었다.문틀 위에 숨겨둔 작은 도자기병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회색 분말이 퍼졌고, 앞에 있던 집행관이 즉시 뒤로 물러났지만 외투 소매 일부에 정제분이 묻었다. 현장팀은 그대로 들어가지 않고 전부 바람 반대쪽으로 빠진 뒤 오염 여부를 검사했으며, 집행관 한 명의 외투를 밀봉하고 예비 방한복으로 갈아입히는 동안 수색은 중단됐다.그 지연이 상대에게 시간을 줬다.중계소 뒤쪽 창문이 깨졌고 검은 외투를 입은 사람이 눈밭으로 뛰어나왔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