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런던에서의 첫 공연은 예정대로 시작됐다.
관광을 다닐 때와 달리 공연이 있는 날의 줄리안은 아침부터 바빴다.
공연장으로 이동해 리허설을 했고, 스태프들과 몇 차례 동선을 확인했다.
애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줄리안이 일을 하는 동안 호텔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근처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면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그런 생활도 애리에게는 새로웠다.
보스턴에서 한 번 봤던 공연이었지만 장소가 달라지자 분위기도 전혀 달랐다.
객석을 채운 사람들의 말투부터 달랐고, 같은 노래에도 반응하는 순간이 조금씩 달랐다.
무대 위의 줄리안은 뉴욕에 있을 때와도, 둘이 함께 있을 때와도 다른 사람이었다.
애리는 객석 한쪽에서 공연을 끝까지 지켜봤다.
런던 공연을 마친 후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한 건 오후였다.공항을 나서자 런던이나 파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한겨울인데도 햇빛이 제법 선명했다.차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애리는 계속 창밖을 바라봤다.멀리 바다가 보였고, 길은 해안을 따라 이어졌다.노트북으로 봤던 사진보다 실제 풍경이 훨씬 밝았다.호텔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자 애리는 곧바로 창가로 갔다.창밖으로 아드리아해가 펼쳐져 있었다.겨울이라 해변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짙은 푸른색의 바다는 멀리까지 이어졌다.애리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창밖을 몇 장 찍은 뒤 이번에는 창문 가까이 다가갔다.줄리안이 뒤에서 물었다.“또 찍어?”“응.”“아까 차에서도 계속 찍었잖아.”“여기는 다르잖아.”“뭐가?”애리는 카메라 화면을 확인했다.“바다가 보여.”줄리안이 창밖을 한번 바라봤다.“그러네.”“감흥 없어?”“있어.”“전혀 없어 보이는데.”줄리안이 웃었다.애리는 다시 창밖으로 카메라를 향했다.사진 몇 장을 더 찍고 나서야 만족한 듯 카메라를 내려놓았다.“나 이거 아빠한테 보내야겠다.”“지금?”“응.”애리는 노트북을 켰다.조금 전 찍은 사진들을 옮긴 뒤 그중 몇 장을 골랐다.바다가 가장 잘 나온 사진과 공항에서 호텔로 오는 길에 찍은 사진이었다.메일에 사진을 첨부하고 짧게 적었다.[두브로브니크 도착했어. 여기 진짜 예뻐.]전송 버튼을 누른 애리는 노트북을 닫았다.답장을 기다리지는 않았다.뉴저지는 아직
런던에서의 첫 공연은 예정대로 시작됐다.관광을 다닐 때와 달리 공연이 있는 날의 줄리안은 아침부터 바빴다.공연장으로 이동해 리허설을 했고, 스태프들과 몇 차례 동선을 확인했다.애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줄리안이 일을 하는 동안 호텔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근처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공연 시간이 가까워지면 공연장으로 돌아왔다.그런 생활도 애리에게는 새로웠다.보스턴에서 한 번 봤던 공연이었지만 장소가 달라지자 분위기도 전혀 달랐다.객석을 채운 사람들의 말투부터 달랐고, 같은 노래에도 반응하는 순간이 조금씩 달랐다.무대 위의 줄리안은 뉴욕에 있을 때와도, 둘이 함께 있을 때와도 다른 사람이었다.애리는 객석 한쪽에서 공연을 끝까지 지켜봤다. 런던 공연을 마친 후에는 다시 이동이 시작됐다.다음은 파리였다.도시에 도착하면 호텔에 짐을 풀었고, 줄리안은 공연장으로 향했다.애리는 그동안 도시를 돌아다녔다.파리에서는 센강을 따라 걸었고, 에펠탑을 올려다봤다.샹젤리제 거리의 상점들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해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혼자 움직이는 것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지도를 들고 길을 찾았고, 모르는 곳에서는 사람들에게 물었다.영어가 잘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원하는 곳에는 도착했다.저녁이 되면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갔다.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며칠 뒤에는 또 다른 도시였다.처음에는 캐리어를 풀었다가 다시 싸는 것도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졌다.호텔이 바뀌고 창밖의 풍경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곳에 왔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1월이 되자 출국 날짜는 금방 다가왔다.애리는 공항 한가운데 서서 전광판을 올려다봤다.런던.목적지 옆에 적힌 도시 이름을 보고 있으니 그제야 정말 가는 것 같았다.“여권 잘 챙겼어?”엄마의 말에 애리가 가방을 열어 확인했다.“응.”“지갑은?”“있어.”“핸드폰 충전기는?”“있어.”옆에 있던 아빠가 말했다.“아까 집에서도 다 확인했잖아.”엄마가 아빠를 봤다.“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애가 열아홉이야.”“열아홉이면 여권 안 잃어버려?”애리가 웃었다.“안 잃어버려.”아빠가 캐리어 손잡이를 애리에게 넘겼다.“가서 연락 잘하고.”“응.”“도착하면 바로 전화해.”“응.”“줄리안 만났다고 연락 끊지 말고.”애리가 아빠를 쳐다봤다.“나 원래 연락 잘하거든?”“그래. 잘하니까 계속 잘해.”엄마가 물었다.“몇 시간 걸린다고 했지?”“일곱 시간 정도.”“가서 바로 공연 보러 가는 건 아니지?”“아니. 공연은 이틀 뒤야.”아빠가 말했다.“그럼 가서 좀 쉬어.”“알았어.”탑승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애리는 캐리어 손잡이를 잡았다.“나 이제 들어갈게.”엄마가 먼저 애리를 안아줬다.“재밌게 놀다 와.”“응.”“조심하고.”“알았어.”엄마에게서 떨어진 애리가 아빠를 봤다.“아빠도.”“내가 뭘.”“회사에서 너무 늦게까지 있지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애리는 뉴헤이븐을 떠났다.당분간 학교에 올 일이 없어서 기숙사에 있던 물건도 몇 가지 챙겼다.대부분은 뉴저지로 가져갔고, 일부는 뉴헤이븐 집에 그대로 두었다.어느 쪽에도 애리의 물건이 있었다.처음에는 기숙사 방 하나로 충분했는데 어느새 짐이 세 군데로 나뉘어 있었다.애리는 트렁크를 닫으며 한숨을 쉬었다.“이걸 언제 다 정리하지.”당장 정리할 생각은 없었다.어차피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다시 뉴헤이븐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차에 올라타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줄리안이었다.“응.”“뭐 해?”“집 가려고.”“뉴저지?”“응. 지금 출발하려고.”“그럼 뉴욕 와.”애리가 차 문을 열다 말고 물었다.“왜?”“나 뉴욕이야.”“언제 왔어?”“오늘.”“공연은?”“며칠 쉬어.”애리가 웃었다.“진짜 크리스마스에 왔네.”“온다고 했잖아.”“아마라고 했거든?”“왔으면 됐지.”애리는 운전석에 올라탔다.“근데 나 집 가야 돼.”“왜.”“방학 시작했으니까.”“내일 가.”“싫어.”“왜.”“엄마한테 오늘 간다고 했어.”전화기 너머로 줄리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애리가 시동을 걸며 물었다.“왜.”“그럼 내가 갈게.”“어디를?”“뉴저지.”“우리 집?”“응.”애리가 바로 웃었다.“미쳤어?”“왜.”“갑자
12월이 시작되고도 류정호의 퇴근 시간은 좀처럼 빨라지지 않았다.그날도 사무실에 남아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류정호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다시 넘겼다.이미 여러 번 확인한 내용이었다.문제는 거래 자체보다 그 이후였다.며칠 전부터 당시 승인 과정에 대한 자료를 다시 제출하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었다.노크 소리가 들렸다.“들어와.”문이 열리고 직원 한 명이 들어왔다.“부장님.”“응.”직원이 서류 한 묶음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요청하신 자료입니다.”류정호가 맨 위에 놓인 문서를 확인했다.“이게 전부야?”“네. 당시 결재 올라갔던 자료까지 다 넣었습니다.”“본사 쪽에서는?”직원이 조금 망설였다.“추가로 확인해 달라는 게 있습니다.”류정호가 고개를 들었다.“뭔데?”“최종 승인 전에 부장님께서 검토하셨던 내용이요.”“그것도 지난번에 보냈잖아.”“저도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다시 달라고 합니다.”류정호는 아무 말 없이 직원을 바라봤다.“알았어.”직원은 그대로 서 있었다.류정호가 물었다.“왜?”“괜찮으십니까?”“뭐가.”“계속 같은 자료를 요구하니까요.”류정호가 서류를 덮었다.“확인할 게 있나 보지.”“그래도….”“달라는 거 다 줘.”“네.”“우리가 문제될 거 한 것도 없잖아.”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문이 닫히고 사무실이 다시 조용해졌다.류정호는 의자에 기대앉았다.
추수감사절 연휴가 끝나고 애리는 뉴헤이븐으로 돌아왔다. 며칠 비워둔 집은 조용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켜자 거실은 떠날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소파 위에는 교재가 놓여 있었고, 테이블 한쪽에는 줄리안이 두고 간 잡지 몇 권이 쌓여 있었다. 애리는 가방을 내려놓고 코트를 벗었다. 혼자 들어오니 집이 더 크게 느껴졌다. 기숙사로 갈까 생각했지만 금방 마음을 바꿨다. 룸메이트와 좁은 방을 나눠 쓰는 것보다는 여기가 나았다. 애리는 가져온 옷을 위층에 가져다 놓고 다시 내려왔다. 저녁을 먹고 과제를 시작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줄리안이었다. “응.” “뭐 해?” “과제.” “또?” “학생이 과제하지 그럼 뭐 해.” “나랑 통화해.” 애리가 웃었다. “하고 있잖아.” “과제 말고.” “오빠는 뭐 하는데?” “호텔.” “공연 끝났어?” “응.” 애리는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둔 채 물었다. “오늘 어디였지?” “디트로이트.” “내일은?” “시카고.” “또 이동해?” “아침에.” 애리는 펜을 내려놓았다. “힘들겠다.” “괜찮아.” “잠은?”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애리가 바로 물었다. “또 못 잤어?” “좀.” “얼마나?” “세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