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다음 쉬는 날.애리는 다시 부동산을 찾았다.지난번에 만났던 여자가 애리를 알아봤다.“돈은 준비했어요?”“네.”“얼마까지 볼 건데?”“보증금 500이요. 월세는 30 정도.”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몇 군데 봅시다.”처음 본 방은 부동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오래된 건물의 3층이었다.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자 현관 바로 앞에 작은 주방이 있었고, 그 너머로 방 하나가 보였다.“여기는 500에 28.”애리는 안으로 들어갔다.방 한쪽에 작은 창문이 있었다.욕실도 확인했다.혼자 살기에는 충분할 것 같았다.그런데 방을 둘러보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예전에 줄리안과 집을 보러 다녔던 날이 떠올랐다.뉴헤이븐에서 처음 집을 구하던 날이었다.마지막으로 본 주택은 욕실만 여섯 개였다.그때는 그런 집들을 차례로 둘러보면서 어디가 더 좋은지를 고민했다.애리는 눈앞에 있는 방을 다시 둘러봤다.여기는 이게 전부였다.작은 주방과 방 하나.그리고 욕실 하나.“어때요?”중개인의 목소리에 애리가 고개를 돌렸다.“괜찮아요.”“다른 데도 볼래요?”“네.”애리는 먼저 문밖으로 나왔다. 두 번째 방은 조금 더 넓었지만 반지하였다.창문을 여니 바로 앞에 도로가 보였다.애리는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세 번째 방은 편의점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건물은 오래됐지만 2층이었고, 앞에서 본 두 곳보다 햇빛이 잘 들어왔다.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뒤로 애리는 틈날 때마다 방을 찾아봤다.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알아봐야 하는지도 몰랐다.인터넷으로 근처 원룸을 검색해 보고, 쉬는 날에는 동네 부동산 앞에 붙어 있는 종이도 들여다봤다.생각했던 것보다 집은 많았다.문제는 돈이었다.월세만 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대부분 보증금이 필요했다.싼 곳도 몇백만 원은 있어야 했다.애리는 편의점에서 쉬는 시간마다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한 달에 들어오는 돈에서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머지를 전부 모은다고 해도 당장은 어림없었다.그렇다고 몇 달을 더 기다리고 싶지도 않았다.결국 쉬는 날 오후, 애리는 집 근처 부동산에 들어갔다.“어서 오세요.”책상에 앉아 있던 여자가 애리를 바라봤다.“방 좀 보려고요.”“어떤 방 찾으세요?”“혼자 살 거예요. 작은 방이면 돼요.”“이 근처로?”“네.”“그럼 원룸 보면 되겠네.”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제일 싼 게 어느 정도예요?”여자가 애리를 한번 바라봤다.“학생이에요?”“아니요.”“직장 다녀?”“아르바이트해요.”여자는 책상 위에 놓인 파일을 몇 장 넘겼다.“이 근처에서 혼자 살 거면 보증금 500 정도는 있어야 그나마 볼 만해요.”“500만 원이요?”“더 싼 것도 있기는 한데 상태가 별로고.”애리는 파일에 적힌 숫자를 내려다봤다.보증금 500만 원.월세는 30만 원 안팎이었다.“500이면 방 있어요?”“있죠. 좋은 데는 아니어도 혼자 살 만한 곳은 있어.”애리가 물었다.
편의점은 집에서 걸어서 십오 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애리는 간판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계산대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어서 오세요.”“안녕하세요.”애리가 계산대 앞으로 다가갔다.“어제 전화드렸는데요. 아르바이트 때문에.”남자가 애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아, 열한 시.”“네.”“잠깐만요.”남자가 계산대 옆에 있던 의자를 가리켰다.애리가 앉자 몇 가지 질문이 이어졌다.“집은 어디예요?”애리가 근처 아파트 이름을 말했다.“가깝네.”“네.”“학교는?”“지금은 안 다녀요.”남자가 애리를 한번 바라봤다.“그럼 시간은 괜찮고?”“네.”“평일만 구하는 건 아니에요. 일주일에 하루 쉬고 주 6일인데 괜찮아요?”애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하루 여덟 시간.”“네.”“일은 처음이라고 했죠?”“네.”“처음에는 배울 게 좀 있을 거예요. 계산도 해야 되고, 물건 들어오면 정리도 해야 되고.”“배우면 돼요.”대답이 망설임 없이 돌아오자 남자가 웃었다.“오래 할 수 있어요?”그 질문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얼마나 한국에 있게 될지 애리도 알 수 없었다.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아직 몰랐다.“당분간은요.”남자는 더 묻지 않았다.“그럼 내일부터 나와요.”애리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저 된 거예요?”“그럼 면접을 또 볼 게 있나.”남자가 근무 시간을
한국에 도착한 건 오후였다.공항 밖으로 나오자 은영이 먼저 걸음을 멈췄다.“택시 타자.”“응.”애리는 캐리어를 끌고 엄마와 함께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짐은 많지 않았다.급하게 챙겨 나온 것도 있었지만, 미국에 있던 걸 전부 가져올 수도 없었다.뉴헤이븐 집에 남아 있는 짐은 줄리안이 정리하기로 했다.뉴저지에 있던 것들도 대부분 그대로였다.지금 가지고 있는 건 캐리어 두 개와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택시에 짐을 싣고 엄마와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다.차가 출발했다.애리는 창밖을 바라봤다.한국에 돌아온 건 4년 만이었다.그때는 다시 한국에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애리는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을 바라봤다.4년 전까지 살았던 곳인데도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다.“피곤하지?”은영이 물었다.“괜찮아.”“가서 좀 자.”“응.”대화는 거기서 끝났다.은영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한참을 달린 택시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애리는 창밖을 보다가 몸을 조금 일으켰다.“여기야?”“응.”은영이 짧게 대답했다.“외할머니 아직 여기 사셔.”택시가 한 동 앞에 멈췄다.두 사람은 짐을 내렸다.건물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그들을 발견하고 빠르게 걸어왔다.“은영아.”외할머니였다.은영이 그 자리에 멈췄다.“엄마.”외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딸을 끌어안았다.은영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애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공연이 끝난 뒤에도 줄리안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스태프들과 다음 일정을 확인했고, 멤버들과 함께 공연장을 빠져나왔다.호텔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내일 봐.”마커스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응.”줄리안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문이 닫혔다.그제야 움직임이 멈췄다.줄리안은 한동안 문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조금 전까지 들리던 소리가 전부 사라졌다.객석을 가득 채웠던 함성도.음악도.멤버들의 목소리도 없었다.줄리안은 천천히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휴대폰을 꺼냈다.아무것도 와 있지 않았다.알고 있었다.애리가 먼저 연락할 리 없었다.그렇게 해 달라고 한 것도 애리였다.줄리안은 침대 끝에 앉았다.한동안 화면을 보고 있다가 애리와 주고받았던 메시지를 열었다.마지막 메시지는 며칠 전 그대로였다.손가락을 움직여 위로 올렸다.별것 아닌 대화가 계속 나왔다.[뭐 해?][수업 끝났어.][오늘 와?][응.]줄리안의 손이 멈췄다.휴대폰을 내려놓았다.누웠지만 눈은 감기지 않았다.몇 번이나 몸을 뒤척이다가 다시 일어났다.물을 마시고.창가에 갔다가.다시 침대로 돌아왔다.새벽이 지나도록 잠은 오지 않았다.결국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애리의 번호를 띄웠다.통화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누르면 받을지도 몰랐다.아니면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어느 쪽이든 할 수 없었다.줄리안은 그대로 휴대폰을
애리는 눈을 감았다.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그래도 결국 입을 열었다.“지금은.”숨을 한번 삼켰다.“응.”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애리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기다렸다.통화가 끊어진 건 아니었다.줄리안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목소리가 들렸다.“알았어.”애리는 눈을 떴다.그 말을 듣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그런데 막상 듣고 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줄리안.”“네가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줄리안이 말을 멈췄다.“그렇게 해.”목소리는 생각보다 담담했다.그래서 더 힘들었다.“미안해.”“하지 마.”“….”“미안하다는 말.”애리는 입술을 다물었다.“응.”다시 침묵이 이어졌다.해야 할 말은 이미 다 한 것 같았다.그런데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애리도.줄리안도.얼마나 그렇게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줄리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언제 가?”애리는 출국 날짜를 말했다.“몇 시 비행기인데?”“오후.”“공항은 어머니랑 같이 가?”“응.”“그래.”평범한 대화였다.조금 전 헤어지자는 말을 주고받은 사람들 같지 않았다.줄리안이 물었다.“뉴헤이븐에 네 물건 남아 있지.”“응.”“어떻게 할까.”애리는 생각했다.“옷은 그냥 버려도 돼.”“책도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