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통화 사흘 뒤, 대니얼에게서 메일이 왔다.이번엔 제목이 없었다. 본문도 길지 않았다.I can't stop thinking about the girl.그 아이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요.When I was there, I would have given anything for someone to tell me the way out. Anything. I cried every night for the first month. Nobody came. Nobody told me.거기 있을 때, 누가 나가는 길을 알려 준다면 뭐든 줬을 거예요. 뭐든. 첫 달엔 매일 밤 울었어요. 아무도 안 왔어요. 아무도 안 알려 줬어요.You know the way. You went through it. Why don't you tell her?당신은 길을 알잖아요. 지나왔잖아요. 왜 알려 주지 않아요?I'm not angry. I just don't understand.화내는 게 아니에요. 그냥 이해가 안 돼서요.나는 그 메일을 서재에서 읽었다. 해인이 옆 의자에서 소설을 읽고 있었다. 이번엔 책장이 넘어갔다. 해인은 요즘 책을 끝까지 읽었다.Why don't you tell her?나는 답장 창을 열었다.Because.거기서 멈췄다.왜냐하면. 공책에 그렇게 적었으니까. 나가는 법은 가르쳐 주지 못한다. 너의 법은 너의 것이다. 붉은 비단의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흰 옷의 수학자도.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으니까.그건 이유가 아니었다. 그건 규칙이었다. 누가 그렇게 했으니까, 나도 그렇게 한다.가을이 공책을 베낀 것과 뭐가 다르지.나는 다시 적었다.Because I can't put it into words
일주일 동안 나는 물어볼 것을 적었다.검은 수첩 뒤쪽 빈 장에. 번호를 매겨서.1. 거기서 며칠이었는지.2. 무엇을 보았는지. 방문자.3. 그것을 어떻게 불렀는지. 몇 걸음까지 왔는지.4. 돌아와서 무엇이 남았는지. 스페인어, 프랑스어. 그다음.5. 아내에게 어디까지 말했는지.6. 나가던 날. 무엇을.여섯 번째에서 펜이 멈췄다.나가던 날 무엇을 알았는지. 그건 묻지 않을 것이다. 대니얼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나처럼. 말로 옮길 수 없는 것이니까. I can't explain it. It's not something you can write. You just know.여섯 번째 줄에 줄을 그었다.그리고 한참 그 목록을 보았다. 번호가 매겨진 다섯 줄. 반듯하게.오답노트 같았다.가을이 교문 앞에서 처음 나를 만났을 때 펼쳤던. 첫째, 나가는 법. 둘째, 여기가 뭔지. 셋째, 며칠째 나갔는지. 나는 그 질문들 앞에서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다. 가을은 실망했다. 그게 다예요?나는 대니얼에게 무엇을 원하는 걸까. 대답일까. 확인일까.나는 그 장을 넘겼다. 찢지는 않았다. 넘겨 두었다.새 장에 한 줄만 적었다.— 얼굴 보기.토요일. 서아는 아홉 시에 잠들었다. 곰 세 마리를 다 부르기도 전에. 낮에 놀이터에서 너무 뛰어서.해인이 서재를 정리했다. 책상 위의 이면지를 한쪽으로 모으고, 한 교수의 복사본을 서랍에 넣고, 벽의 서아 그림들을 반듯하게 다시 붙였다. 많이, 와 우리 집 코 자."화면에 나오잖아. 뒤에."해인이 말했다. 그리고 옆 의자를 들어 문밖 복도로 내놓았다."당신 혼자 해.""……같이 안 있
사흘 동안 나는 메일함을 열었다.출근 버스에서. 측정실에서 샘플을 재다가. 점심시간 옥상에서. 화장실에서. 퇴근 버스에서. 자기 전에.받은 편지함. 회사 공지. 카드 명세서. 쇼핑몰 광고. TF 회의 일정.없었다."대리님, 요즘 휴대폰 엄청 보세요."오민재가 측정실에서 말했다. 가로 표를 그리다가. 색연필을 든 채로."……그런가.""아까 캘리퍼스 영점 안 맞추시고 재셨어요. 제가 말씀드리려다가……"나는 캘리퍼스를 내려다보았다. 영점이 0.02 틀어져 있었다. 방금 잰 샘플 다섯 개의 값이 전부 0.02씩 컸다.삼 년 동안, 그리고 사 년 동안. 한 번도 안 한 실수였다."……고마워. 다시 잴게."오민재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일 있으세요?""답장 기다려.""누구한테요?"나는 캘리퍼스를 영점에 맞췄다. 0.00."멀리 사는 사람."오민재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내 샘플 다섯 개를 자기 쪽으로 가져가서, 한 번 더 쟀다. 부품을 뒤집어서. 안쪽까지.해인은 밤마다 물었다. 서재 옆 의자에서."왔어?""아니.""시차가 있잖아. 거긴 이제 일어날 때야.""알아.""아니면 스팸함."해인이 내 노트북을 가져가 스팸함을 열었다. 영어 광고 수십 통. 해인이 하나씩 제목을 훑었다. 없었다."이 년 동안 가짜를 봤을 거라며. 당신이 가짜인지 보는 중일 거야.""……응.""아니면 무서운 거고."해인이 노트북을 돌려주었다."당신도 택시에
연한 파란 배경이었다.화면 맨 위에 블로그 이름. 흰 글씨. Lunchbox Dad. 도시락 아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한 줄 소개. 딸 도시락 싸는 아빠의 기록. 가끔 다른 얘기도.방문자 카운터. 숫자가 네 자리였다. 몇 년 동안 쌓인 게 네 자리.옆 칸에 사진 몇 장. 도시락 통 안의 샌드위치. 별 모양으로 자른. 그리고 여자아이의 뒷모습.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금발을 하나로 높이 묶은. 학교 가방을 멘. 사진 아래 한 줄. My boss.그리고 글 하나.The Four Minutes.날짜는 삼 년 전 봄이었다.해인이 스크롤을 천천히 내렸다. 나는 옆에서 읽었다. 해인은 영어로, 나는 영어를 읽고 속으로 우리말로. 둘이 같은 속도로.Last Tuesday I passed out at a red light. Four minutes, the paramedic said.지난 화요일, 빨간불 앞에서 정신을 잃었다. 사 분이었다고 구급대원이 말했다.Emma was in the back seat. She was seven. She had just lost her front tooth and wouldn't stop showing it to me in the mirror.엠마가 뒷자리에 있었다. 일곱 살이었다. 막 앞니가 빠져서, 거울로 나한테 계속 보여 주고 있었다.해인의 손이 멈췄다.나는 숨을 쉬지 않았다.앞니. 거울.엠마네 공책 첫 장보다 조금 뒤. 엠마는 앞니 빠진 걸 자랑했다. 차에 타기 전에도, 타고 나서도. 백미러로 보여 주면서 웃었다.해인이 다시 스크롤을 내렸다.I don't remember the light turning red. I remember a sound. Like thunder, but insi
검색 결과는 수억 개였다.Emma. 그 한 단어로.배우, 가수, 소설 속 주인공, 태풍 이름, 가게 이름, 아기 이름 순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짓는 여자아이 이름 중 하나라고 했다. 몇 년 동안 일등이었다고.나는 화면을 내렸다. 한참. 끝이 없었다.해인이 옆 의자에서 책 너머로 화면을 보았다."엠마?""응.""그 영어 공책 주인 딸?""응. 엠마네. 내가 그렇게 불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몰라서. 엠마의 엄마인지 아빠인지."해인이 책을 덮었다."그 사람 찾으려고?""……응."해인이 나를 보았다. 무언가 물으려다 말고, 의자를 당겨 화면 가까이 앉았다."엠마만 쳐서 어떻게 찾아. 세상에 엠마가 몇 명인데. 아는 거 다 말해 봐. 그 공책에 뭐가 있었는지."나는 기억나는 대로 말했다. 해인이 휴대폰 메모장에 받아 적었다. 번호를 매겨서.시카고 근처. 운전 중이었다. 머릿속에 천둥. 돌아보니 뒷자리 카 시트의 엠마가 없었다. 엠마는 예닐곱 살. 앞니가 빠졌다고 자랑하던. 처음 며칠은 차 안에서 기다렸다. 나흘째 주유소 편의점에서 과자를 먹고 5달러를 놓았다. 매일 아침 엠마 사진을 봤다. 시카고에서 가장 높은 빌딩 계단을 사흘 동안 올랐다. 미시간 호수가 유리처럼 굳어 있었다. 백사십이 일째부터 스페인어를 배웠다. 엠마가 선생님이었다. 엠마 없는 엠마 선생님."스페인어."해인이 그 줄에 밑줄을 그었다."깨어나서 스페인어를 했을 수도 있잖아. 당신처럼. 당신은 깨어나서 외국어 중얼거렸다며. 원장 선생님이.""응.""그럼 그 사람도 깨어나서 이상한 말을 했을 거야. 누가 봤을 거고. 차 안이었으면 구급대원이라도."해인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나는 처음부터 말했다. 천천히.목욕탕 탈의실. 평상 위의 오답노트. 이건 베끼는 거 아님. 철컥, 하는 소리. 두 팔을 벌리고 선 가을. 회색 외투. 이음매가 없는. 허리의 열쇠 꾸러미. 사슬. 자물쇠 세 개. 입만 웃는 얼굴. 이우진 씨, 하고 내 이름을 되뇌던 목소리. 곧 여기가 제 이름이 될 테니까요.해인은 중간에 한 번도 끊지 않았다. 불량 보고서를 듣는 사람처럼. 다 듣고 나서야 물었다."그 애는. 괜찮아?""괜찮대. 그 사람 짧대. 자기 입으로 그랬대.""짧다는 게 뭔데.""오래 못 있는다는 거야. 아마. 삼 분쯤 있다가 갔어. 자꾸 손목을 봤어. 시계도 없는데."해인이 스톱워치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이 초에서 멈춘 숫자를."당신은 그 사람보다 오래 있었어?""응. 십오 분쯤.""그럼 당신이 막아 줄 수는 없어? 다음에 또 오면."나는 대답을 찾았다. 오래."……나는 막힐 때만 가. 언제 갈지 나도 몰라. 그 사람은 또 올 거야. 내가 없는 날에. 가을이 쪽 시간으로 몇 달에 한 번 가는 사람이 뭘 막아.""……""그리고 거기 있어도. 나는 그 애 대신 뭘 해 줄 수가 없어. 오늘도 그랬어. 가을이가 막아섰어. 나는 옆에 섰어. 그게 다였어."해인이 한참 나를 보았다."옆에 섰네.""응.""그럼 된 거 아니야?"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된 건지 몰랐다. 그 사람은 사라졌다. 자물쇠도. 그런데 내가 막아서가 아니었다. 그 사람 시간이 짧아서였다.해인이 책을 집었다. 펴지 않았다."그 사람도 당신처럼 어딘가에서 쓰러졌다 깨는 사람일까. 이 초씩.""……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