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여인의 어깨가 떨렸다.가연은 문을 더 열어젖혔다."연지야."방 안에서 기다리던 연지가 곧장 다가왔다."예, 아씨.""사랑채에 사람을 보내거라. 궁에서 왔다는 여인이 있으니 아버님께서 직접 신분을 확인하셔야겠다고 전해."복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큰아씨, 그럴 것까지는……."가연은 복련을 바라보았다."왜 그러느냐? 정말 궁에서 온 분이라면 아버님께서도 정중히 맞이하실 텐데."복련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대답하지 못했다.그 순간 궁녀 차림의 여인이 갑자기 몸을 돌렸다."저는…… 잘못 찾아온 것 같습니다."여인은 등잔을 피해 복도 끝으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마당에서 순찰하던 하인들이 소란을 듣고 다가오자 걸음을 멈췄다.가연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말했다."붙잡아라."하인들이 여인의 앞을 막아섰다.복련은 그제야 무릎을 꿇었다."큰아씨,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그저 작은아씨께서 시키시는 대로……."가연은 복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그녀는 하인들에게 여인을 사랑채로 데려가도록 지시한 뒤, 복련을 내려다보았다."네가 누구의 명을 받았는지는 아버님 앞에서 말하거라."복련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가연은 방문을 닫지 않은 채 마당을 바라보았다.멀리 소화의 처소에는 아직 등불이 켜져 있었다.***같은 시각, 소화는 거울 앞에 앉아 머리의 진주 비녀를 빼고 있었다.복련이 돌아오지 않자 그녀는 점점 초조해졌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복련이 데려간 여인이 궁에서 왔다고 속여 봉황 금비녀를 확인하고, 잠시 가져가 수리해야 한다는 핑계로 빼돌릴 예정이었다.그 뒤에는 비녀가 궁으로 들어갔다고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혼례를 앞둔 가연이 소란을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소화는 손에 쥔 진주 비녀를 내려놓았다."어찌 이렇게 늦는 것이야?"그때 방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소화는 급히 표정을 바꾸고 다정하게 물었다."복련이니?"그러나 돌아온 목소리는 복련의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복련이 커다란 비단 보자기를 들고 뒤따르고 있었다."언니, 아까는 제가 철없이 굴었어요."소화는 방 안으로 들어서며 고개를 숙였다."사과하는 뜻으로 내일 혼례에 쓰실 향낭을 만들어 왔어요."복련이 보자기를 풀자 붉은 비단으로 만든 향낭 여러 개가 드러났다. 소화는 그중 가장 화려한 것을 골라 가연에게 내밀었다."언니께서 좋아하시는 매화 향을 넣었어요. 직접 밤새 수를 놓았답니다."가연은 향낭을 받아 들었다.비단에는 금실로 봉황이 수놓아져 있었고, 안에서는 달콤한 향이 풍겼다. 소화는 가연이 향낭을 살피는 동안 방 안을 둘러보았다.그녀의 시선이 침상 곁에 놓인 비단함에 잠시 머물렀다.가연은 그 눈길을 놓치지 않았다."정성이 대단하구나.""언니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니 다행이에요."소화는 환하게 웃었다."그런데 언니, 내일 새벽에 궁에서 머리 장식을 확인하러 온다고 들었어요. 혹시 비녀를 미리 꺼내 두셨나요?"가연은 향낭을 내려놓았다."아직 꺼내지 않았단다.""그럼 제가 연지와 함께 준비해 드릴까요? 언니께서 오늘 많이 피곤해 보이시던데요."소화는 자연스럽게 연지를 바라보았다."연지야, 너 혼자서는 혼례 준비가 힘들지 않겠니?"연지는 대답하려다 가연의 눈치를 살폈다.가연은 조용히 웃었다."괜찮단다. 내 물건은 내가 직접 챙기고 싶구나."소화의 눈빛이 잠시 굳었다.그러나 그녀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저는 이만 물러갈게요. 언니, 편히 쉬세요."소화가 방을 나서자 가연은 연지를 불렀다."향낭은 따로 보관하거라. 그리고 오늘 밤에는 누구도 내 방에 들이지 말고."연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작은아씨께서도 말입니까?""그래."가연은 침상 곁의 비단함을 바라보았다."특히 소화가 보낸 사람은 더 조심하거라."연지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가연은 비단함을 열어 봉황 금비녀를 꺼냈다. 어머니가 남긴 금비녀는 등잔불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났다.전생에서 소화는 이 비녀를 빌려 간 뒤 끝내
"저하께서 직접 고르신 옥패입니다. 혼례 당일 몸에 지니시기를 바라셨습니다."내관은 비단 주머니를 열어 푸른 옥패를 내보였다.가연은 그 옥패를 보는 순간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전생에서 태겸은 혼례 첫해에 같은 옥패를 자신에게 주었다. 가연은 그것을 남편이 아끼는 물건이라 믿고 오래도록 간직했지만, 훗날 태겸은 그 옥패를 자신의 허리에 달고 지하 감옥에 나타났다.가연은 눈앞의 옥패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물었다."저하께서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까?"내관은 잠시 망설였다."마마께서 요즘 몸이 편치 않으시다는 소문을 들으셨습니다. 혹여 혼례를 앞두고 마음이 달라지신 것은 아닌지 걱정하셨습니다."가연은 내관을 바라보았다.아침에 아버지에게 혼례를 원치 않는다면 어찌하시겠느냐고 물었던 일이 떠올랐다.그 말이 벌써 동궁에 들어간 것일까."누가 그런 소문을 전했습니까?"내관은 곤란한 듯 시선을 내렸다."소인은 자세한 사정까지 알지 못합니다."가연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옥패를 받아 들고 비단 주머니를 다시 묶었다."저하께는 제가 혼례를 앞두고 몸을 추스르고 있다고 전해 주십시오. 다른 뜻은 없다고도 말씀드리시고요."내관은 고개를 숙였다."분부대로 전하겠습니다."그가 물러난 뒤 가연은 옥패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태겸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가연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사람을 보내 확인하려 하고 있었다.그것은 전생에서도 익숙했던 태겸의 방식이었다.그는 가연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기보다, 자신의 뜻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했다.가연은 옥패를 비단 주머니에 넣었다."연지야, 오늘부터 내 말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조심해야겠다."연지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아씨,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가연은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마당 저편에서 누군가 급히 사랑채로 향하고 있었다.소화의 시비 복련이었다.***그날 저녁, 윤 대감이 가연을 사랑채로 불렀다.가연이 들어서자 아버지는 평소보다 무
***오후가 되자 윤도현이 돌아왔다.도현은 혼례 예물 상자들을 확인한 뒤 가연의 방으로 들어섰다. 평소라면 동생의 혼례를 축하하며 농담부터 건넸을 그였지만, 장부에 빼곡하게 적힌 표시를 보자 눈썹을 찌푸렸다."가연아, 네가 이 장부를 살핀 것이냐?"가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라버니를 맞았다. 살아 있는 도현의 얼굴을 마주하자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지만, 아침처럼 감정에 휩쓸리지는 않았다."예. 오라버니께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가연은 장부를 펼쳐 특정 항목을 가리켰다."여기에 적힌 은자는 혼례 예물입니까, 아니면 동궁에서 따로 요청한 것입니까?"도현은 장부를 살피다가 표정이 굳었다."이 금액을 네가 어찌 알았느냐?""장부에 적혀 있으니까요.""이것은 혼례 예물이 아니다."도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문밖을 살폈다. 복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목소리를 낮췄다."동궁에서 별도로 부탁한 자금이다. 세자 저하께서 급히 쓸 곳이 있다고 하셨다."가연은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전생에서 아버지는 태겸을 돕기 위해 전답을 처분했고, 그 돈이 훗날 윤씨 가문을 역모에 연루시키는 구실이 되었다. 가연은 그때 어떤 문서가 오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누가 요청했습니까?""동궁의 내관이 서찰을 가져왔다. 아버님께서 직접 확인하셨고.""서찰은 어디에 있습니까?"도현은 동생을 바라보았다."가연아,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가연은 장부를 덮지 않았다."제 혼례를 명분으로 우리 집안의 재물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적어도 누가 무엇을 요청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도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장부를 끌어당겨 해당 항목을 다시 살폈다."네 말이 틀리지는 않구나."그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서찰은 아버님께서 보관하고 계신다. 내가 따로 확인해 보마.""원본은 그대로 두시고, 내용만 적어 두십시오. 날짜와 전달한 사람의 이름도 빠뜨리지 마시고요."도현은 놀란 눈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너는 언제부터 이런 일
"어머니의 비단함을 가져오너라."연지가 비단함을 가져오자 가연은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봉황 금비녀가 고운 명주에 싸여 있었다.소화의 시선이 곧장 비녀로 향했다.가연은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연지야, 이 비녀는 오늘부터 네가 직접 보관하거라. 내 허락 없이 누구에게도 내주지 말고.""예, 아씨."연지는 비단함을 받아 들었다.소화는 황급히 웃음을 지었다."언니, 제가 설마 훔쳐 가기라도 하겠어요?"가연은 소화를 바라보았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란다. 내게 소중한 물건이니 잘 보관하라는 것이지."소화는 더는 웃지 못했다.잠시 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제가 괜한 부탁을 드렸나 봐요. 언니께서 불편하셨다면 용서해 주세요."가연은 소화의 손목에 달린 작은 진주 팔찌를 바라보았다. 소화는 눈물을 닦는 척하며 소매를 끌어 올렸고, 그 아래로 반짝이는 팔찌를 은근히 드러냈다.그것은 가연이 전에 선물한 것이었다.소화는 언제나 자신이 받은 것을 남에게 보여 주는 데 능숙했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을 때면 이미 가진 것은 아무렇지 않게 잊었다."소화야."방을 나서려던 소화가 돌아보았다."예, 언니?""내일 혼례에 입을 옷은 준비했니?"소화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물론이지요. 언니께서 전에 주신 비단으로 새 옷을 지었어요.""그렇구나."가연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덧붙였다."그 옷은 네게 잘 어울릴 거야. 그러니 남의 물건을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울 테지."소화는 대답하지 못했다.가연은 미소를 지었다."이제 가 보렴. 나도 준비할 일이 많구나."소화는 억지로 웃으며 방을 나갔다.문이 닫히자 연지가 가연에게 다가왔다."아씨, 작은아씨께서 많이 서운하신 모양입니다."가연은 비단함을 바라보았다."서운하겠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으니까."그녀는 장부를 다시 펼쳤지만, 조금 전 소화가 비녀를 바라보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그 눈빛에는 단순한 부러움보다 훨씬 집요한 욕심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그 칼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부터 알아낼 생각이었다.***가연이 예물 장부를 살피고 있을 때 방문 밖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 소화예요. 들어가도 될까요?"붓을 쥔 가연의 손이 멈췄다.윤소화.지하 감옥에서 어머니의 금비녀를 꽂고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소화는 자신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치맛자락에 피가 묻을까 걱정하던 여자였다.가연은 붓을 내려놓았다."들어오렴."문이 열리자 연노랑 비단 치마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소화는 분홍빛 저고리 위에 흰 털을 덧댄 배자를 걸치고 있었다. 머리에는 작은 진주 장식이 달린 비녀를 꽂았고, 뺨에는 은은한 연지를 발라 어린 얼굴을 더욱 사랑스럽게 꾸몄다.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방 안으로 들어오다가 가연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호홋홋, 언니. 내일이면 세자빈 마마가 되시는데 아직도 장부를 보고 계세요?"소화는 가연의 곁으로 다가와 장부를 힐끗 내려다보았다."이런 일은 하인들에게 맡기셔도 되잖아요. 언니께서는 곱게 단장하시고 세자 저하만 기다리시면 되는데요."가연은 장부를 덮지 않았다."내 이름으로 나가는 물건이라 직접 확인하고 있단다.""언니는 참 꼼꼼하세요."소화는 웃으며 가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그런데 언니, 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가연은 고개를 들었다."무슨 부탁이니?"소화는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내일 언니 혼례에 저도 예쁘게 꾸미고 싶어요. 언니가 가지고 계신 봉황 금비녀를 하루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가연은 소화를 바라보았다.어머니의 금비녀.전생에서 소화가 지하 감옥까지 꽂고 왔던 바로 그 비녀였다.가연은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그 비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가연에게 남긴 유품이었다. 어머니는 언젠가 가연이 혼례를 올릴 때 꽂으라며 직접 비단함에 넣어 두었다.그런데 소화는 혼례를 하루 앞둔 오늘, 그 비녀를 빌려 달라고 하고 있었다."그 비녀를 왜 네가 꽂으려 하니?"소화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