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적금으로 만든 비녀에는 겹겹의 금련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삼 년 전 장공주 연회에서 활쏘기로 따낸 것이었지만 끝내 건네지 못한 물건이었다. 그녀가 다리를 다쳐 혼절했을 때, 그는 그 비녀를 조용히 베개 곁에 두고 나왔었다.그리고 삼 년이 흐른 지금, 그것이 마침내 그녀의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과거 가을 사냥터.하늘을 찢는 듯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말들은 콧김을 뿜으며 이미 겨루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전 내관이 높은 단상 위에 서서 외쳤다.“이번 추렵은 무게로 승부를 가른다! 갑, 을, 병 각 한 명을 선발하여 어전행주로 삼고 갑등은 금위군 좌지휘사에 임명한다!”출발을 기다리던 젊은이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건 허울 좋은 자리 따위가 아닌 실권이 따르는 직책이었다.주종현은 말을 몰아 황제의 곁을 따랐다.잠시 후,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활을 공손히 황제에게 건넸다.모두가 고삐를 움켜쥐고 황제의 손에 들린 활을 숨죽여 바라보았다. 그는 활시위를 끝까지 당겨 높은 단상 위 붉은 비단을 겨누었다.화살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갔다. 붉은 천이 떨어지자마자 만마가 일제히 달려 나갔고 숲속의 새들은 놀라 날아올랐다.황제는 활을 어깨에 비스듬히 둘러메었다.“모처럼의 추렵인데 짐이 어찌 뒤처질 수 있겠느냐? 가자!”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은 화살처럼 튀어나갔다.“폐하!”전 내관의 심장이 내려앉을 듯 뛰었다.“빨리! 뒤를 따르거라!”주종현은 십여 명의 금위군을 이끌고 곧장 뒤를 쫓았다.이번 추렵에는 인원이 많았다. 오품 이상 각 가문과 부에서 한 사람씩 참가했다.대부분 젊은 사내들이었다. 특히 음서로 겨우 작은 벼슬을 얻은 세가 자제들에겐이 자리가 정당하게 승진할 수 있는 기회이자 천자의 측근이 될 수 있는 자리였다.발 빠른 자들은 토끼와 새 같은 작은 짐승을 먼저 사냥했다.그러나 황제는 고삐를 단단히 잡은 채, 토끼가 눈앞을 스쳐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곧장 숲 깊은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숲이 깊어질수록 사람의 기척
밤이 깊어지자 사냥터는 고요에 잠겼다. 순찰을 도는 금위군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이미 잠자리에 들었다.맹시은은 막 장난치던 두 소녀를 재워 놓은 참이었다. 그때 춘행이 조심스레 들어왔다.“아가씨, 영국공부 세자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맹시은은 부채를 춘행에게 건네며 말했다.“잠시 다녀올게.”밖으로 나오자 주종현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하늘가에는 가느다란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지금 이 순간, 그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다.황제의 말을 듣기 전이었다면 그는 맹시은을 데리고 붉게 물든 산을 보러 가고 싶었다.“이 밤중에 쉬지도 않고.”맹시은이 다가서자 그의 뒷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그 어깨에 옅은 쓸쓸함이 스며 있는 듯했다.“내일 사냥이라 모두 기세가 대단하겠지요. 폐하 앞에서 솜씨를 보이겠다며 말입니다. 당신은 금위군 통령인데 수확이 없으면 체면이 서겠어요?”주종현이 돌아섰다. 그녀의 눈꼬리에 얇게 번진 웃음이 보였다.그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잠이 오질 않아 그런다. 좀 걷자꾸나.”“무슨 일입니까?”그는 낮에 황제와 대화를 나누었던 숲 가까이까지, 한참이나 걸어왔다.그 말들이 아직도 가슴을 내려찍고 있는 듯했다.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그녀를 돌아보았다.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맹시은. 내가 모든 걸 버린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함께 떠나겠느냐?”그의 눈빛은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감추지 못한 채 끓어오르고 있었다.그러나 맹시은의 눈썹은 미세하게 찌푸려졌다.주종현의 성정상, 이런 말을 꺼낼 사람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이상했다.“폐하께서 곤란하게 하셨습니까?”그녀가 질문에 답하지 않자 그는 격해진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맹시은, 삼 년이다! 내가 한 게 아직도 부족한 것이냐?”눈꼬리가 붉게 물들고 목소리도 떨렸다.맹시은은 그의 눈 속 고통을 바라보았다.“하늘 아래 왕토가 아닌 곳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겠어요?”“하늘도 넓고 땅도 넓다. 못 갈 곳이 어디 있
맹 가의 아가씨는 반평생을 고단하게 살아왔다. 이제야 겨우 편안한 날을 맞았고 주 대인의 변함없는 마음도 곁에 있었다. 머지않아 당당히 영국공부로 시집갈 수 있으리라 여겼건만 하필 이때 이런 일이 터지고 말았다.“폐하, 맹 아가씨는 이제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맹 장군께서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이고, 폐하 또한 그러하십니다. 여인이 혼인을 통해 바라는 것은 결국 한 줄기 기댈 곳일 뿐입니다. 설령 주 대인이 아니더라도, 맹 아가씨에게는 이미 부족함이 없습니다.”“기댈 곳이라…”황제는 이미 잘 보이지도 않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짐이… 무엇을 기댈 곳이라 할 수 있겠느냐?”그의 음성은 낮고 가늘었다. 전생에서 진 황후는 죽지 않았고 장 황후는 그저 장비에 머물러 있었다. 황지영은 낮은 위분의 영 미인이었으나 끝내 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들어왔다.그가 얻은 두 아이는 모두 황지영의 소생이었다. 진 황후가 두 아이를 해치려 했을 때, 장비가 나서 막아 주었으나 그 대가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그는 지키지 못했다. 사랑하는 여인도, 어린 자식도. 망국의 순간, 어린 아들마저 끝내 지켜내지 못했다.그러나 이번 생은 다르다.진 황후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마음이 곧은 장비는 황후가 되었다. 황지영처럼 눈부신 사람은 궁궐에 갇힐 이가 아니다. 하늘도 넓고 땅도 넓으니 그곳이야말로 그녀의 자리였다.“가자.”황제는 시선을 거두고 곧장 어장으로 향했다.밤이 내려앉자, 사냥터 한가운데 커다란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누군가는 불가에 고구마와 땅콩을 묻어 두었고 달궈진 모래가 익혀 주기를 기다렸다. 아직 정식 사냥은 시작되지 않았으나 이미 토끼와 사슴을 잡은 이들도 있었다. 배를 가르고 씻어 불 위에 올려놓은 고기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주연아! 이건 본왕이 잡은 토끼다!”어린아이 둘이 서로 우기며 다투고 있었다. 소림은 모닥불 곁에서 고기가 잔뜩 구워지는 걸 보며 자신 몫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소년다운 승부욕이 치밀어 올랐다. 열몇 개의
“폐하…”주종현은 무관이었으나 전선에 나가 지휘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에 진짜 전쟁이 어떤 것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연기가 뒤섞인 현장을 직접 보지 못한다면 이 나라가 어디까지 몰려 있는지 알지 못할 것이고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시야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황제는 그저 자신이 더 일찍 돌아오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대성조는 마치 금이 가기 직전의 달걀 같았다. 그가 권력을 거머쥐고 개혁을 밀어붙인 것은, 썩은 살을 도려내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칼을 들고 부패를 잘라냈지만 상처가 아물 시간을 주지 못했다.우륵은 대성조와 달랐다. 한때 육십이 개의 부락이 각자 주인을 모시며 흩어져 있었고 십수 년간의 격전 속에서 갈라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했다. 그 끝에 열일곱 맹기와 서른일곱 부락이 남았고 각 부락의 수장들은 맹약을 지키며 가장 강성한 자를 추대해 한주(汗主)로 삼았다.그러나 세월은 바뀌었다. 한때의 강자는 이미 기울었고 다른 맹기들은 수십 년간 숨을 고르며 병력과 기세를 키워 왔다.우륵 사람들은 싸움을 즐겼고 강자를 왕으로 받들었다. 그래서 전생에 불찰친왕이 그토록 빠르게 우륵을 통합하고 대성조를 향해 역습할 수 있었던 것이다.황제는 즉위한 이래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옮겨 왔다. 그 과정에서 마음은 이미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다. 그의 눈에 지금의 형세는 분명했다. 개인의 감정이 어찌 나라의 존망보다 앞설 수 있겠는가?“주 경. 그대는 짐을 대신해 수많은 지방을 다니며 수많은 관리들을 만났지. 과거로 선발된 인재들도 적지 않다. 말해 보거라. 짐의 관리들은 어떤 자들인가?”주종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천천히 답했다.“모두 학식은 깊습니다. 다만… 한 모퉁이에서 편안히 머물기를 원할 뿐입니다.”어떤 지방관은 조세를 채우겠다며 지주들이 가난한 백성의 토지를 마구 빼앗는 것을 묵인했다. 그렇게,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졌으며 백성의 어깨 위에는 세금이 쌓이고 또
“그녀에게 어떤 바람이 불면 신이 가장 먼저 알게 될 것입니다.”주종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아침부터 설명할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황제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그는 고개를 들고 멀지 않은 곳을 바라보았다. 내일 사냥을 앞두고 모두가 들떠 있었다. 적의 과녁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 대신, 흥분과 웃음이 가득한 풍경이었다.황제는 소매에서 작은 쪽지 하나를 꺼내 주온청에게 내밀었다.“아란이 전해온 것이다.”불찰친왕은 이미 우륵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러나 곧장 도성으로 향하지 않고 가장 변두리에 있는 한 맹기로 갔다고 했다. 그 맹기는 이미 앞장서 맹약을 찢어버리고 스스로 왕을 자처한 전적이 있다.그 소식에 황제의 음성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이건 신호다. 또 하나의 맹기가 맹약을 파기하면 다른 맹기들도 뒤따를 것이다.”그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짐은 이미 한 수를 잘못 두었다. 남은 수는 더는 틀려선 안 된다.”전생에서 모든 파국은 우륵 각 맹기 부락이 맹약을 찢어버리면서 시작되었다. 불찰친왕은 태후의 자금과 식량을 등에 업고 맹기들을 차례로 수습한 뒤 마지막에 대성조를 향해 되돌아왔다.우륵의 내란은 곧 시작될 터였다.태후도, 대성조의 재물과 곡식도 없는 지금, 불찰친왕이 전생처럼 거침없이 밀고 나갈지는 황제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도박할 수도 없는 노릇. 그는 이제 더 이상 눈 뜬 장님처럼 있을 수 없었다. 반드시 불찰친왕의 모든 움직임을 알아야 했다.그 길은 오직 하나. 송하윤이었다.황제는 돌아서서 주종현을 바라보았다.“짐은 송하윤을 떳떳하게 영국공부에 머물게 할 것이다.”“폐, 폐하?”주종현의 손에 들린 쪽지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놀란 얼굴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주 경의 난처함을 안다. 허나 대성조는 오래도록 병폐가 쌓였다. 몇몇 탐관오리를 갈아치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전쟁이 나면, 막대한 군비를 국고가 감당하지 못한다.”주종현은
“제 동생, 황지영이에요.”황수영이 먼저 장막 안으로 들어섰다.맹시은은 두 사람에게 차를 따르며 웃었다.“여긴 사람들이 한 번 더 쳐다보는 것도 꺼려 하는 곳인데 두 분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시네요.”황지영이 거침없이 받아쳤다.“다들 눈이 먼 것과 같죠, 뭐. 저는 경성 사람도 아니고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맹 아가씨 같은 기묘한 분을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황지영과 황수영 자매는 여섯 살 터울이었으나 무척 닮아 있었다.언니 황수영은 일찍 혼인해 열여섯에 동씨 집안의 공자에게 시집갔다. 부부는 십 년을 함께 유람하다가 집안 어른들의 재촉 끝에 경성으로 돌아와 장자를 낳았다.동생 황지영은 언니와 성정이 정반대였다. 스무 살을 훌쩍 넘겼지만 혼인에는 뜻이 없었다.끝없는 부모와 친척들의 성화에 못 이겨 짐을 꾸려 언니를 찾아 경성으로 올라온 참이었다.맹시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황 아가씨, 저를 너무 치켜세우시는군요.”“황 아가씨는 무슨. 그냥 지영이라 불러 주세요.”황수영이 부드럽게 웃었다.“맹 아가씨, 동생이 워낙 자유롭게 살아서 경성의 예법엔 서툽니다. 너그러이 봐 주세요.”그러자 맹시은이 고개를 끄덕였다.“경성의 규율은 털만큼 많다지요. 마침 저도 잘 모르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니 규칙은 잠시 접어두고 그냥 우리끼리 이야기합시다.”“자, 차 드세요.”수많은 초청장 중에서 동가를 골랐을 뿐인데 이렇게 황씨 자매를 알게 되다니.학문을 익히고, 강산을 두루 밟아 본 두 여자라 세상의 눈길에 매이지 않는 기개가 뿜어져 나왔다.맹시은은 늘 연아가 자란 모습을 그려보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황씨 자매를 보며 문득 떠올랐다.연아도 자라서 저들처럼 되면 좋으련만.“어머니!”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지던 중, 어느새 연아가 뛰어 들어왔다.황급히 세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장 맹시은의 손을 잡아끌었다.“어머니, 일곱 째 전하의 덫에 토끼가 잡혔어요! 근데 전하가 보이지 않아요. 어머니가 좀 꺼내 주세요!”작은 얼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