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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돌아온 사람

Autor: 지호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10-22 07:42:38

동궁 처소, 늦은 저녁이었다. 탁자 위 찻잔에서 김이 느릿하게 올라왔다. 바깥은 이미 어둑했다.

채원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진원군 대감 댁, 요 며칠 너무 잠잠해요. 뭔가 이상해."

이운이 고개를 들었다.

"나도 그 점이 마음에 걸린다. 숙부께서 이리 잠잠하실 분은 아니지."

"구체적으로 뭐가 이상한데요?"

"혼례 준비로 분주할 때인데, 정작 숙부의 집안에서는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숙부는 원래 일을 꾸밀 때일수록 흔적을 감추는 사람이다."

채원이 피식 웃었다.

"저도 감으로 먹고 살았던 사람이에요. 그 감, 믿어볼게요."

이운이 잠시 채원을 보다가 말했다.

"요 며칠 안색이 좋지 않구나."

"저하도 마찬가지거든요?"

이운이 대답 대신 짧게 웃고는 백건을 불렀다.

"숙부와 인연이 깊었던 자들을 은밀히 알아보거라. 특히 변방 군영에서 함께했던 자들부터 살펴라."

백건이 고개를 숙였다.

"예, 저하."

"허나 누구의 눈에도 띄어서는 아니 된다. 숙부의 귀에 들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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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134. 불안한 승리

    전하의 환후가 깊어진 뒤로, 조정은 하루가 다르게 날카로워지고 있었다.종친들의 발길이 늘었고, 대신들 사이에서도 말이 늘었다. 그 틈에서 채원을 향한 소문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동궁 안은 아침보다 더 조용했다. 조용한 것치고는 이상한 조용함이었다.한낮이 가까운 시각인데도 처소 밖은 한산했다. 며칠째 이어진 불안 탓에, 채원은 간밤에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그 기운이 방 안 공기까지 무겁게 가라앉혀 놓은 듯했다.설이가 다과상을 내려놓으며 낮게 말했다. 얼굴에는 아직 걱정이 남아 있었다.찻잔을 놓는 손끝도 평소보다 분주했다."대전 앞 일은 벌써 궐 안에 다 퍼졌습니다. 다들 마마께서 그 자리에서 그 둘을 완전히 꺾으셨다고 합니다."그 말이 벌써 처소마다 한 바퀴를 돈 모양이었다."그런데 네 얼굴은 왜 그렇게 안 풀렸느냐.""이겼다고 해서 소문이 꺼지는 건 아니니까요. 증명할 길이 없는 말이라, 오히려 더 오래갈까 걱정입니다."오늘 아침 대전 앞에서 겪은 일 때문인지, 다리에 아직 힘이 덜 풀린 것도 같았다.채원도 그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상궁과 대신의 기세는 꺾었지만, 정작 소문의 뿌리는 그대로였다.증명할 수 없는 말은, 반박해도 사라지지 않고 그냥 옆으로 비켜서 있을 뿐이었다.게다가 지금은 전하의 환후로 조정 전체가 뒤숭숭한 때였다.이런 때에 도는 소문은 평소보다 훨씬 멀리, 훨씬 빠르게 퍼졌다.누군가 작정하고 키운 말이라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먼저 손을 써야 할 때였다.오늘 아침의 승리는, 그래서 더 불안했다. 이긴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었다.설이가 물러간 뒤, 채원은 한참을 창가에 앉아 있었다.바깥은 아직도 조용했다. 상궁들의 눈빛과 대신의 흔들린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 뭔가 더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운이 들어섰다. 평소라면 서궤 앞에 앉아 보고부터 받았을 시각이었다.걸음에 평소와 다른 급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뒤따르던 상선이 미처 전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133. 정체 재의심

    아침부터 대전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문안을 청하러 온 종친과 대신들로 붐볐다.전하의 환후가 깊어진 뒤로, 그 발길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었다.채원도 전하의 안부를 여쭙기 위해 대전으로 향하던 참이었다. 평소보다 사람이 더 많이 모인 날이었다.요 며칠 궐 안에 돈 말 때문인지, 다들 채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대전으로 드는 길목에 상궁 둘이 서 있었다. 낯이 익지 않은 얼굴들이었다. 동궁 소속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중 하나가 채원을 발견하고 다가왔다."세자빈마마, 송구하오나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주변의 걸음이 일제히 멈췄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이들도 고개를 돌렸다. 길 끝에 서 있던 궁녀들까지도 숨을 죽였다.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채원이 고개를 들었다."말씀하세요.""마마의 근래 언행이 예전과 사뭇 다르시다는 말이 있사온데, 혹 몸이 불편하신 것은 아니신지 염려되어 여쭙습니다."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 다들 못 들은 척하면서도 귀는 세우고 있었다.채원이 잠시 상궁을 바라봤다. 동요하는 기색은 없었다.상궁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 뒤를 봐주고 있었다.여기서 화를 내거나 매섭게 몰아붙이면, 그 모습부터 다음 소문의 증거가 될 판이었다."내가 변했다면, 그건 겪은 일이 사람을 바꾸기 때문이겠지요. 그만한 일을 겪고도 그대로인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쪽이 더 이상해 보일 겁니다."상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쉽게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하오나 예전 아기씨께서는 이리 당당히 말씀하시는 성정이 아니셨다 들었습니다."채원의 눈이 상궁을 똑바로 향했다."내가 겪은 일을 알고도, 예전과 똑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말씀, 다시 한번 듣고 싶습니다."상궁의 얼굴이 굳었다.상궁이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소맷자락을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런 뜻이 아니옵니다.""그런 뜻이 아니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상궁은 대답하지 못했다.상궁이 말을 잃자마자,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132. 낯선 눈

    아침 일찍부터 처소 안이 분주했다. 설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제 채원이 그 여인의 생김새를 일러 둔 참이었다."알아내고 말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마마께서 말씀하신 생김새만 듣고도 바로 알았습니다.""누구냐.""분이라고, 윤가에 있을 때 소인과 함께 지냈던 침모입니다. 소인보다 몇 해 위였는데, 어릴 적 마마의 옷도 여러 벌 지었습니다."설이의 목소리가 평소와 조금 달랐다.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이에게는 낯익은 얼굴이지만, 채원 자신에게는 처음부터 낯선 얼굴이었다. 윤서아로서의 기억이 없는 채원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생각은 설이 앞에서 티 내지 않았다."그 집이 그리된 뒤로는 못 봤던 사람이냐.""예. 다들 흩어진 뒤로 소식도 몰랐습니다. 이런 데서 다시 볼 줄은 몰랐습니다.""지금은 어디 소속이냐.""그것까지는 아직 모릅니다. 더 알아보겠습니다.""수고했다."설이가 몸을 낮추고 물러갔다. 발걸음이 평소보다 조심스러웠다. 문이 닫히는 소리도 작았다.채원이 창밖을 내다봤다. 햇살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밝았다. 겉으로는 어제와 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하지만 분이가 왜 지금, 이 시점에 나타났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그날 오후, 회랑 한쪽에서 나인들이 모여 있었다. 빨랫감을 나르다 잠시 멈춰 선 자리였다. 설이도 지나던 길에 그 틈에 섞여 있었다. 분이도 그 자리에 섞여 있었다. 손에는 전과 같은 보퉁이를 들고 있었다."마마는 제가 알던 그 아기씨가 아니신 듯합니다."분이의 목소리가 낮았지만, 주변에 다 들릴 만큼은 됐다.나인 하나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쓰러지신 뒤로 많이 달라지셨다고들 하지 않습니까."다른 나인이 조심스럽게 거들었다."그야 큰일을 겪으셨으니 그러실 수도 있지요.""그럴 수도 있지요. 다만 제가 아는 아기씨는, 이런 걸음걸이가 아니셨습니다."분이가 짧게 덧붙였다."그냥, 제 느낌이 그렇다는 겁니다."분이는 더 묻기도 전에 보퉁이를 고쳐 들고 자리를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131. 중전의 선택

    대전 앞뜰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중전의 말이 허공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뜰에 모인 누구도 섣불리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대신들 중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방금까지 고개를 들었던 자들도 하나둘 시선을 떨궜다.이운은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방금 그 한마디로 조정의 분위기가 통째로 뒤집힌 참이었다.그때 뒤쪽에서 걸어 나온 이가 있었다. 진원군이었다. 방금 당도한 듯, 걸음에 서두름이 없었다.대신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오나 마마, 신들은 그저……""더 들을 말은 없습니다."중전의 목소리가 그 말을 끊었다. 대신이 입을 다물었다."중전마마의 말씀, 지당하십니다."진원군이 허리를 숙였다. 목소리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신들이 공연한 걱정을 입에 담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진원군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방금 전 오간 말들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태연했다.중전이 그를 바라봤다."대감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다만 염려라는 것도, 한번 입 밖에 내면 돌이키기 어려운 법이지요.""중전마마께서 이리 나서 주시니, 저도 한시름 놓았습니다. 전하의 보령이 염려스러운 때일수록, 왕실이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야지요."말은 더없이 공손했다. 하지만 진원군의 눈빛은 잠시도 중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는 각도마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대감의 뜻도 그러하시다니 다행입니다.""저야 늘 중전마마와 저하의 뒤를 든든히 받치고자 할 뿐입니다.""그 뜻, 전하께도 그대로 전해 드리고 싶군요. 지금 가장 듣고 싶어 하실 말씀일 테니."진원군의 입꼬리가 아주 잠깐 멈췄다."그리하지요. 중전마마의 뜻을 전하께 그대로 전해 올리겠습니다."이운은 그 짧은 멈춤을 놓치지 않았다. 겉으로는 승복이었지만, 속내까지 그러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중전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걸렸다. 눈은 웃지 않았다."그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진원군이 다시 허리를 숙이고 물러났다. 대신들도 뒤따라 흩어졌다.자리를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130. 위독

    침전 안은 숨소리마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의가 밤새 맥을 짚고 또 짚었다. 손끝에 닿는 맥이 자꾸만 가늘어졌다.어의가 상선 앞에 무릎을 꿇었다."맥이 아침보다도 약해지셨습니다."상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 말씀은……""오늘 내일을 넘기시기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어의의 목소리가 떨렸다. 입 밖에 낸 말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이 일은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 중전마마께만 먼저 아뢰어라.""예. 다른 이들에게는 전하께서 그저 기력이 쇠하셨다고만 하겠습니다."상선이 황급히 물러났다. 발걸음 소리마저 조심스러웠다.그 소식은 그날 오후, 조정에 가장 먼저 닿았다.누군가 먼저 흘린 말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신들 사이에 수군거림이 번지는 데는 한식경이면 충분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던 말이었다.병세가 깊다는 말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오늘 내일을 넘기기 어렵다는 말이었다."전하께서 며칠을 넘기기 어려우시다는 말이 사실입니까.""전하의 환후가 그리 깊으시다니……""국본께서 아직 조정을 온전히 장악하지 못하신 터에, 이런 때일수록 종친 중 누군가가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그 말씀이 틀리지 않습니다. 국정에 공백이 생겨서는 아니 됩니다.""종친 중에서도 그만한 그릇을 지니신 분이 몇이나 되겠습니까."누구도 이름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향은 분명했다.전에도, 또 얼마 전에도 똑같은 말이 나왔던 자리였다. 다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때마다 이름은 하나로 모였고, 그때마다 모든 게 그 이름 쪽으로 기울었다.대전 한쪽에서 백건이 그 소문을 전했다."저하, 조정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알고 있다.""저하, 지금 침전에 드시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상관없다.""종친이라는 말, 결국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 아니겠습니까."이운의 얼굴이 굳었다. 백건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를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129. 패를 쥔 신부

    아침 햇살이 처소 안으로 길게 들어왔다. 서령은 그 빛을 등지고 홀로 앉아 있었다. 어젯밤의 그림자도, 종이에 적혀 있던 날짜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래도 아침이 되자 몸은 평소처럼 움직였다.겁을 먹을 시간은 없었다. 저쪽이 서령을 지켜보고 있다면, 서령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 할 일은 따로 있었다.서령이 문갑을 열어 하객 명단을 꺼냈다. 직접 초대한 이름들이 줄지어 있었다. 몇몇 이름 옆에는 작은 점이 찍혀 있었다. 혼례 명목으로 꾸몄지만, 실은 서령이 고른 사람들이었다. 얼굴만 비출 이름과, 쓸모가 남은 이름을 서령이 직접 가려낸 결과였다.명단을 넘기는 손끝이 익숙했다. 누가 누구에게 신세를 졌는지, 누가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 서령은 전부 머릿속에 넣어 두고 있었다.서령의 손가락이 한 이름 위에서 멈췄다.조명환. 호조의 낭관. 몇 해 전 진원군의 도움으로 자리를 지킨 자였다. 그때 받은 도움을 잊지 못해, 서령의 초대에도 두말없이 응한 사람이었다.서령이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다.한식경 뒤, 조명환이 처소 밖에서 기척을 냈다. 걸음을 서둘러 온 기색이 역력했다. 서령이 들라 일렀다."아씨께서 소인을 부르실 줄은 몰랐습니다.""앉으세요. 긴 얘기는 아닙니다."조명환이 자리에 앉으면서도 눈치를 살폈다."무슨 일이신지요.""몇 해 전 대감께서 도와주신 일, 기억하고 계시지요."조명환의 얼굴이 굳었다."잊을 리가 있겠습니까.""그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대감께 누가 될 일이라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조명환이 눈을 들었다."무슨 말씀이신지……"서령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거래 날짜와 수량만 적혀 있고, 받는 이의 이름이 비어 있는 기록이었다."이 거래, 대감의 이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더 커지기 전에, 어느 상단이 맡았는지 조용히 알아봐 주세요."조명환이 종이를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봤다."대감 이름이…… 말씀이십니까.""아직은 확실치 않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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