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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즉위

Penulis: 지호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1-01 08:07:54

새벽부터 정전 앞뜰에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닷새 동안 궁 안은 쉴 틈이 없었다. 복식을 짜고, 식순을 맞추고, 전각마다 새 현판을 거는 손길이 밤낮으로 이어졌다. 그 모든 준비가 오늘 하루를 위한 것이었다.

동이 트기 전부터 상궁 셋이 채원의 처소에 들어와 적의를 입혔다. 겹겹이 두른 옷고름을 하나씩 매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머리에 화관을 올릴 때는 설이가 곁에서 비녀를 하나씩 건네며 순서를 짚어줬다.

"무겁지 않으셔요?"

설이가 물었다.

"견딜 만해."

채원은 짧게 답하고 거울 속 자신을 봤다. 십 년을 다른 사람의 몸짓으로 살았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자신이 선택한 자리에 서려 하고 있었다. 화관의 구슬이 이마 위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채비가 끝나자 상궁들이 물러났다. 채원은 가마에 올라 정전으로 향했다. 가마가 지나는 길마다 내관들이 고개를 숙이고 비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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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171. 은밀한 공조

    다음 날 아침, 중궁전 마루에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은 채였다. 채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도 갈게요.""위험해."이운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서령이 보낸 장부를 제가 직접 봐야 해요. 현장에서 확인해야 할 표식이 있을 수도 있고요.""그 일은 재경에게 맡겨도 된다.""알아요. 하지만 이상한 걸 봤을 때 바로 판단할 사람이 필요해요. 위험해지면 백건의 지시를 따를게요."이운이 한동안 채원을 바라봤다. 말릴 틈을 주지 않는 눈빛이었다. 결국 그가 먼저 눈을 돌렸다."백건도 함께 간다. 금군 몇도 붙일 것이다.""그 정도면 됐어요."채원이 짧게 웃었다. 이운은 끝내 말리지 않았지만, 배웅하는 손끝에는 평소보다 힘이 더 들어가 있었다.걱정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도, 그 나름의 신뢰 표현이었다.그 무렵 백건이 또 다른 서찰을 들고 왔다. 이번에도 조규현을 통해 들어온 것이었다.겉봉에는 어제보다 훨씬 많은 글자가 담긴 듯, 두께가 눈에 띄게 두툼했다."서령이 보낸 것인데, 전과는 결이 다릅니다. 어제는 자리만 급히 알리려 짧게 적은 것이었고, 이번 것은 오래전부터 따로 모아 둔 자료를 옮겨 적은 듯합니다."채원이 서찰을 펼쳤다. 이번에는 지명 하나만이 아니었다.서령이 가문을 다시 일으키는 과정에서 모아 둔 인적 장부의 일부가 함께 적혀 있었다.창고를 드나든 자들의 이름과 소속, 그들이 거쳐 간 상단의 흐름까지 촘촘히 정리되어 있었다.유배지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조사라기엔 지나치게 방대했다.몇 해에 걸쳐 쌓아 온 것이 분명했다. 백건도 그 분량을 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창고를 드나든 자 중에 광산 일을 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희귀 금속이나 무기와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170. 대국의 고개를 숙이게 하다

    조공 중단과 조사 명이 떨어진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정풍이 다시 알현을 청했다.문밖에서 내관의 목소리가 울렸다."대연국 사신단 정사 정풍, 알현을 청하옵니다.""들라."문이 열리고 정풍이 들어섰다. 아침보다 한층 수그러든 걸음이었다. 수행원도 데려오지 않은 채 혼자였다."명단은 다 제출했는가."이운이 물었다."예. ……다만 그 전에, 따로 아뢸 말씀이 있어 다시 청을 올렸습니다.""말씀하시기 전에, 한 가지는 미리 알아 두시오."이운이 말을 끊었다."오늘 중으로 대연국 조정에 보낼 보고서를 꾸릴 것이오. 호위무사가 중전을 위협한 경위와, 그 몸에서 나온 문건의 사본을 함께 적어서. 정사께서 이 문건을 모른다 하셨으니, 대연국 조정에 직접 확인을 청하는 수밖에 없겠지."정풍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도, 함께 적어야 할 것이오.""전하, 잠시……""이 자리에서 정사가 풀 수 있는 일과, 본국에 물어야 할 일을 구분하자는 것이오."정풍이 잠시 숨을 골랐다. 편전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조공을 두 배로 올리라던 말씀, 아직도 유효하오?"이운의 물음에 정풍의 고개가 더 깊이 떨어졌다."……거두겠습니다."대신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그 소리만으로도 분위기가 확연히 바뀐 걸 알 수 있었다."즉위 승인을 미루겠다던 말씀도.""그, 그 또한 거두겠습니다."정풍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또렷이 흔들렸다.이운이 백건을 향해 눈짓했다. 백건이 미리 준비해 둔 종이를 정풍 앞에 내밀었다.먹과 벼루도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 안에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169. 국왕 부부의 환상 플레이

    다음 날 아침, 중궁전에 재경과 백건이 나란히 섰다. 둘 다 밤을 꼬박 새운 얼굴이었다.마루에는 아직 지난밤의 냉기가 가시지 않고 남아 있었다.탁자 위에는 어제 호위무사의 몸에서 나온 그 문건이 조심스레 펼쳐져 있었다.아침 햇살 아래서 보니, 어젯밤 등불로는 보이지 않던 작은 얼룩과 접힌 흔적까지 눈에 들어왔다.채원도 몸을 기울여 숫자와 기호가 줄지어 선 모양을 한참 들여다봤다.촬영장에서 소품 목록이나 안전 점검표를 수없이 넘겨 본 눈에는, 줄과 간격을 맞춰 적은 것 자체가 누군가의 익숙한 습관처럼 보였다."숫자의 배열이 눈에 익습니다."재경이 문건을 손끝으로 짚으며 말했다."변경 저잣거리에서 상인들이 물건을 몰래 옮길 때 쓰는 표식과 닮았습니다. 숫자는 수량이고, 그 옆의 기호들은 물건의 종류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다만 어떤 물건인지까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재경은 전에 창고 수직군을 탐문하며 비슷한 표식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끝까지 캐묻지 못하고 넘긴 일이었다."지도는요."채원이 물었다."도성 밖 삼십 리쯤, 버려진 창고로 보이는 자리입니다. 그 외에는 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백건이 뒤를 이었다. 밤새 들여다본 흔적인지, 눈 밑이 거무스름했다."누가 이걸 썼는지, 그 무사가 왜 지니고 있었는지는 아직 불명확하옵니다. 섣불리 결론을 내릴 때가 아닌 듯하옵니다."정석대로라면 시간을 두고 더 캐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사신단은 내일모레면 도성을 떠난다. 지금 쓰지 않으면 기회가 없었다.이운이 고개를 끄덕였다."원본은 다시 봉해 두어라. 회담에는 베껴 둔 것으로 족하다."백건이 밤새 떠 둔 필사본을 내밀었다. 이운이 그것을 접어 소매에 넣는 손끝에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다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168. 한 손으로 꺾은 기세

    무사의 손끝이 칼자루에서 서서히 떨어졌다. 그러나 눈빛은 거두지 않았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그가 채원 쪽으로 다가왔다. 조선이 이 무례를 어디까지 참아 낼지 가늠하는 걸음이었다.상 주변의 금군들은 그 걸음에 맞춰 조금씩 거리를 좁혔지만, 선뜩 손을 쓰지는 못했다.왕과 중전이 보는 자리에서 섣불리 칼을 맞댔다간, 그 자체로 외교적 구실이 될 수 있었다.악공들도 이미 손을 멈춘 채였다. 연회장 전체가 그 느린 걸음 하나에 숨을 죄고 있었다.이운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그보다 먼저, 채원이 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전하, 가만히 계세요. 이건 제가 처리할게요."낮지만 더없이 분명한 목소리였다. 이운의 몸이 그 말에 멈췄다. 믿고 물러서는 것과 겁먹고 물러서는 것은 달랐다. 그의 눈빛은 분명 전자였다.채원은 무사의 발걸음과 체중이 쏠리는 쪽을 눈으로 가늠했다. 어느 쪽으로 넘어뜨릴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금군들이 달려드는 순간, 채원이 먼저 무사의 손목을 낚아챘다.뻗어 오던 손의 힘을 그대로 받아, 손목을 꺾어 당겼다. 무사의 몸이 그대로 균형을 잃고 바닥에 메쳐졌다.둔탁한 소리가 연회장 전체에 울렸다. 가까이 놓여 있던 상 하나가 그 충격에 밀려 술병이 쓰러졌다. 흘러나온 술이 바닥을 타고 넓게 퍼졌다.10년 동안 몸에 새겨 둔 움직임이었다. 상대가 힘을 싣고 뻗어 오는 순간, 그 힘의 방향만 비틀면 됐다.무거운 정적이 연회장 전체로 내려앉았다.대신들 사이에서 숨 삼키는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종친 하나는 아예 자리에서 반쯤 일어난 채로 굳어 있었다.사신단 수행원들도 하나같이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정풍의 얼굴에서도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멀찍이 서 있던 백건의 눈이 커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167. 국빈 연회의 균열

    이운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림이 없었다."중전의 가문은 누명을 벗은 지 오래요. 그 일을 다시 입에 올리는 건 사신의 소관이 아니오."정풍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더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입가의 웃음은 거두지 않았다.조회는 그렇게 끝났다. 대신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고, 편전 안에는 가라앉은 긴장만 남았다. 백건이 뒤늦게 다가와 작게 아뢰었다."전하, 오늘 저녁 연회는 예정대로 치르시겠사옵니까.""미룰 수 없다. 저쪽에서 먼저 흠을 잡을 구실을 줄 뿐이다."이운의 대답은 짧았다. 사신단을 맞는 국빈 연회를 그 자리에서 취소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약점이 될 수 있었다.중궁전으로 돌아온 채원은 잠시 창가에 앉아 숨을 돌렸다. 이운이 뒤따라 들어왔다."괜찮으냐.""괜찮아요. 저런 말, 한두 번 듣는 것도 아니고요.""오늘 밤 연회에서는 또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알아요. 그래도 피할 생각은 없어요."이운은 더 말리지 않았다. 그 대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채원의 손을 잠시 잡았다가 놓았다.그날 저녁, 사신단을 위한 환영 연회가 대전 앞뜰에 마련됐다.등불이 겹겹이 걸려 뜰 전체를 밝혔고, 악공들이 거문고와 장고로 느린 가락을 깔았다.상마다 산해진미가 올랐지만, 자리에 앉은 대신들의 얼굴에는 낮의 긴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종친들과 대신들이 품계에 따라 좌우로 늘어앉았고, 이운과 채원이 상석에, 정풍과 그 수행원들이 맞은편에 자리했다.대연국 사신단은 호위무사의 무장 해제를 거부했고, 이운은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려 정풍의 곁에 두 명만 칼을 차고 서 있도록 허락했다.설이와 다른 궁녀들이 상 사이를 오가며 술과 음식을 날랐다.정풍의 수행원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166. 도성에 드리운 거만한 그림자

    전날 밤, 예고 없이 도성에 들어온 대연국 사신단은 궐문 앞에서 발이 묶였다.이운이 한밤의 알현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동이 트자마자 사신단은 다시 행렬을 갖춰 도성 대로로 들어섰다.수십 명의 호위가 앞장서고, 뒤를 따르는 가마와 짐수레가 긴 줄을 이뤘다.짐수레에 실린 궤짝만 수십 개였다. 말발굽 소리와 북소리가 번갈아 울리며 거리를 메웠다.깃발의 그림자가 이른 아침 햇살을 가리며 거리를 가로질렀다.지난번 사행보다 규모가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저잣거리의 상인들이 하나둘 가게 문을 닫고 행렬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아이를 안은 아낙 몇은 서둘러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구경 나온 백성들이 고개를 숙였지만, 행렬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누구 하나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궐 앞에 이르러서야 행렬이 멈췄다.호위들이 좌우로 넓게 벌려 서며 자리를 잡았다. 수문장들이 평소보다 배는 많은 인원으로 둘러섰다.사신단의 수가 예상보다 많았던 탓이었다.편전 안, 이운과 채원이 나란히 자리했다. 채원은 그 자리에서 이런 광경을 지켜보는 것이 아직도 낯설었다.몇 달 전까지는 생각도 못 했던 자리였다. 오늘은 그 자리에 앉아, 처음으로 외국 사신을 맞는 날이었다.대신들이 양옆으로 늘어선 채 숨죽이고 있었다.문밖에서 내관의 목소리가 울렸다."대연국 사신단 정사 정풍, 알현을 청하옵니다.""들라."이운의 짧은 명이 떨어지자 문이 열렸다. 사신단 정사 정풍이 안으로 들어섰다.비단옷에 금실로 두른 띠, 걸음마다 묵직한 소리가 났다.허리에 찬 패옥마저 화려해, 사신이라기보다 황족에 가까운 차림이었다.뒤따르는 수행원 몇이 그 뒤로 조용히 늘어섰다. 수행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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