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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아이의 종이 한 장

Author: 이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4 10:31:57

“저희 아버지를 살려 주십시오!”

아이의 외침에 행렬이 멈췄다.

금군이 달려가 아이를 붙잡았다. 아이는 땅에 넘어지면서도 손에 든 종이를 놓지 않았다.

“전하의 행차를 막다니, 당장 물러나지 못하겠느냐!”

“잠깐.”

이헌이 금군을 제지했다.

연화는 말에서 내려 아이에게 다가갔다. 열 살도 되지 않아 보이는 아이였다. 짚신 앞부분이 터져 발가락이 드러나 있었다.

“다친 곳은 없느냐?”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느냐?”

“온궁 근처 창고에 갇혀 있습니다.”

“무슨 죄를 지으셨는데?”

“품삯을 달라고 했습니다.”

연화가 이헌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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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은 대신 업어치기를 했습니다   111화. 왕이 아닌 밤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냐?”이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연화는 그의 가슴을 밀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그러나 밀어내지는 않았다.“당근을 드리면 안 됩니까?”“싫다.”“약과는요?”“그것도 싫다.”“전하께서는 입맛이 까다로우십니다.”“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뿐이니까.”이헌의 시선이 연화의 입술에 머물렀다.연화의 손끝이 움찔했다.그가 입을 맞추려는 순간, 문밖에서 상궁의 목소리가 들렸다.“전하, 숙의마마. 온천물이 준비되었사옵니다.”연화는 기다렸다는 듯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물부터 식겠습니다.”“나는 이미 기다리다 식을 것 같다.”“전하께서는 조금 식으셔도 됩니다.”연화가 도망치듯 문 쪽으로 걸어갔다.등 뒤로 이헌의 웃음소리가 따라왔다.온궁의 온천은 침전 뒤편에 있었다.돌을 쌓아 만든 탕 위로 따뜻한 김이 피어올랐다. 연화는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몸을 씻은 뒤 물에 들어갔다.따뜻한 기운이 피로를 풀어 주었다.말을 타고 오느라 뻐근했던 허벅지까지 편안해졌다.“이래서 온궁에 오는 것입니까?”“전하께서는 국정을 돌보느라 몸이 자주 굳으시니 온천이 도움이 되옵니다.”상궁이 답했다.연화는 물 위에 턱을 괴었다.“전하께서도 지금 들어가 계십니까?”“전하의 탕은 맞은편에 있사옵니다.”연화의 시선이 돌담 너머로 향했다.탕은 나뉘어 있었지만 흐르는 물은 이어져 있었다.그 사실을 의식한 순간, 조금 전 이헌이 가까이 다가왔던 장면이 떠올랐다.연화는 더운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물이 너무 뜨겁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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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아버지를 살려 주십시오!”아이의 외침에 행렬이 멈췄다.금군이 달려가 아이를 붙잡았다. 아이는 땅에 넘어지면서도 손에 든 종이를 놓지 않았다.“전하의 행차를 막다니, 당장 물러나지 못하겠느냐!”“잠깐.”이헌이 금군을 제지했다.연화는 말에서 내려 아이에게 다가갔다. 열 살도 되지 않아 보이는 아이였다. 짚신 앞부분이 터져 발가락이 드러나 있었다.“다친 곳은 없느냐?”아이가 고개를 저었다.“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느냐?”“온궁 근처 창고에 갇혀 있습니다.”“무슨 죄를 지으셨는데?”“품삯을 달라고 했습니다.”연화가 이헌을 돌아봤다.온궁 수리를 위해 인근 백성들을 일꾼으로 썼다는 보고는 받았다. 하지만 나라에서 품삯과 식량을 모두 지급하도록 명한 일이었다.이헌이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그 종이를 내게 다오.”아이는 종이를 건네려다가 멈칫했다.“정말 전하이십니까?”주변의 내관들이 숨을 삼켰다.왕에게 신분을 증명해 보이라고 묻는 것과 다름없었다.이헌은 화를 내지 않았다.“네 눈에는 내가 무엇으로 보이느냐?”아이가 이헌의 옷과 말, 길게 늘어선 행렬을 살폈다.“아주 돈 많은 분으로 보입니다.”연화가 입술을 깨물었다.공주는 고개를 돌렸고, 뒤편의 금군들 사이에서도 헛기침이 이어졌다.이헌이 연화를 바라봤다.“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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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는 승마복과 쪽지를 번갈아 보았다.온궁으로 가는 길에는 반드시 말을 타셔야 합니다.“누가 보낸 것입니까?”상궁이 상자 안쪽을 확인했다.“정 소원마마의 처소에서 보냈사옵니다.”연화는 승마복을 펼쳤다.붉은 비단 위에 금실로 꽃과 구름이 수놓아져 있었다. 아름답기는 했으나 소매가 지나치게 넓고 치맛자락도 길었다.공주가 승마복을 살펴보다 코웃음을 쳤다.“이것을 입고 말에 오르면 치맛자락이 안장에 걸리겠다.”“좋은 것을 보내 주신 줄 알았습니다.”“좋은 옷과 말을 타기 좋은 옷은 다르지.”“그러면 돌려드려야 합니까?”“아니.”공주가 승마복을 연화의 몸에 대 보며 웃었다.“정 소원의 정성이니 입고 찾아가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연화는 공주의 표정을 보고 상자를 닫았다.“공주마마께서 재미있는 생각을 하신 얼굴입니다.”“나를 제법 잘 아는구나.”“그런 얼굴을 하실 때마다 신첩이 힘들었습니다.”다음 날, 공주는 후궁들을 승마장으로 불러 모았다.연화의 온궁 행차를 앞두고 직접 승마를 가르치겠다는 명분이었다.정 소원은 연화가 자신의 승마복을 입고 나타나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마음에 드셨습니까?”“아주 곱습니다.”연화가 양팔을 벌었다.넓은 소매가 바람을 받아 펄럭였다.“다만 이 옷을 입고 말을 타면 신첩보다 옷이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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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는 정 소원이 보낸 청원지를 다시 읽었다.내일 밤, 전하를 모실 예정이니 각별히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꿀떡과 잣죽, 약과까지.이헌은 연화의 허리를 감싼 채 태연히 말했다.“왕이 이미 강 숙의의 처소에 붙잡혀 있어 갈 수 없다고 전하라.”연화가 그의 손을 떼어 냈다.“붙잡은 적 없습니다.”“지금 놓았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그렇게 답을 보내면 신첩이 질투하여 전하를 막았다고 할 것입니다.”“질투한 것이 아니냐?”“아닙니다.”연화의 대답은 빨랐다.이헌이 그녀의 볼을 눌렀다.“그런데 왜 꿀떡을 빼겠다는 것이냐?”“전하의 건강을 생각한 것입니다.”“잣죽도?”“잣은 비쌉니다.”“약과는?”“그것은 신첩이 먹을 것입니다.”이헌이 웃음을 터뜨렸다.연화는 웃지 않았다. 정 소원이 청한 음식이 문제가 아니었다.왕의 거동이 정해진 것처럼 말해 필요한 것을 먼저 챙기려 한 것이 문제였다. 이번 일을 그냥 넘기면 다른 후궁들도 앞다투어 같은 수를 쓸 터였다.연화는 새 청원지를 꺼냈다.“다시 먹을 갈아 주십시오.”“내가?”“가장 귀한 장부를 받으신 분이니 끝까지 도와주셔야 합니다.”이헌은 순순히 먹을 갈았다.연화가 붓을 들고 한참 고민하자 그가 물었다.&l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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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은 대신 업어치기를 했습니다   106화. 가장 귀한 한 접시

    “그래도 한 번 드셔 보시겠습니까?”연화가 밤과자가 담긴 접시를 영의정 부인 앞으로 밀었다.“방금은 드시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마음이 바뀌었습니다.”연화는 진지한 얼굴로 부인의 빈 접시를 바라봤다.“다른 분들은 모두 드시는데 혼자 입맛만 다시고 계셔서 안타까워졌습니다.”공주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영의정 부인의 얼굴이 붉어졌다.“내가 언제 입맛을 다셨다고…….”“조금 전부터 세 번 다셨습니다.”연화가 손가락까지 펼쳐 보였다.“정확히는 네 번이다.”공주가 거들었다.주변에 앉아 있던 부인들이 황급히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영의정 부인은 결국 밤과자 하나를 집었다.부드럽게 으깬 밤소에 꿀과 잣가루를 섞은 과자였다. 화려한 무늬도, 고운 빛깔도 없었다.마지못해 한입 베어 문 부인의 눈이 조금 커졌다.연화가 곧장 물었다.“맛있으십니까?”“그럭저럭 먹을 만합니다.”“그러면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필요 없습니다.”“손은 이미 가고 계십니다.”부인의 손이 접시 위에서 멈췄다.이번에는 대비까지 웃음을 흘렸다.“그만 고집을 부리고 먹게. 내 생일상에서 체면을 차리다 굶었다는 소문이 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황공하옵니다.”영의정 부인은 고개를 숙인 뒤 밤과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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