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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몸이 먼저

Author: 이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6 13:53:57

칼이었다.

사내의 손이 허리춤에서 칼자루를 움켜쥐는 순간.

연화의 눈빛이 달라졌다.

'안 돼.'

생각은 그뿐이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였다.

사람들 틈을 가르며 뛰어든 연화가 사내의 팔목을 낚아챘다.

사내가 놀란 얼굴로 돌아섰다.

"이년이!"

욕설과 함께 팔을 뿌리치려는 순간.

연화는 그대로 허리를 숙여 그의 몸을 걸었다.

쾅!

사내의 몸이 허공을 크게 한 바퀴 돌더니 그대로 돌바닥에 떨어졌다.

손에서 놓친 칼이 데구르르 굴러 사람들 발치에 멈췄다.

장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숨도 쉬지 못한 채 연화와 쓰러진 사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연화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헉."

'또 몸이 먼저 나갔네.'

사내를 내려다보던 연화가 작게 중얼거렸다.

"...송구하옵니다."

이미 정신을 잃은 사내는 대답이 없었다.

무관은 재빨리 칼을 주워 들었다.

칼날은 이미 반쯤 뽑혀 있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다.

관리들이 달려와 사내를 결박해 끌고 갔다.

장터는 조금씩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연화는 조심스레 헌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거듭 숙였다.

"...송구하옵니다."

헌이 연화를 바라보았다.

"무엇이 송구하다는 것이냐."

연화는 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소란을 피웠사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관은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왕의 목숨을 구해 놓고.

정작 본인은 장터를 뒤집어 놓은 것만 걱정하고 있었다.

헌은 짧게 말했다.

"...됐다."

그 한마디에 연화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다행이다. 혼나는 줄 알았네.'

세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시장 끝자락으로 접어들 무렵.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더니 작은 애벌레 하나가 툭 떨어졌다.

공교롭게도 헌의 어깨 위였다.

헌의 걸음이 딱 멈췄다.

"..."

말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연화의 뒤로 반 걸음 물러나 있었다.

연화가 의아한 얼굴로 돌아봤다.

"...나리?"

헌은 아무 말 없이 자기 어깨를 슬쩍 가리켰다.

연화는 그제야 애벌레를 발견했다.

"...이 아이 때문이셨사옵니까."

손끝으로 살며시 집어 풀숲에 내려놓자 헌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허허 됐군. 무서워서는 아니네."

연화는 뚱하게 헌을 바라봤다.

'뭐여, 겁이 많으신가.

'

그러나 조금 전 칼을 든 사내 앞에 서 있던 헌의 모습이 떠오르자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가.'

무관은 모른 척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칼 앞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던 분이.

애벌레 하나에는 궁녀 뒤로 숨으셨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낼 수 없는 생각이었다.

장터를 벗어나 궁으로 돌아가는 길. 무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하."

헌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은 위험했습니다."

"...알고 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무관이 다시 물었다.

"다음 암행에도 저 아이를 데려가시겠습니까."

헌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앞에서는 연화가 들꽃에 내려앉은 나비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무관의 눈치를 보고는 얼른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헌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짧은 침묵 끝에 그가 말을 이었다.

"곁에 두고 싶기도 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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