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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전하께서 찾으신다

Author: 이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4 08:27:40

망했다.

연화는 무릎을 꿇으며 생각했다. 정말로 망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일단 말했다.

궁녀들은 원래 이럴 때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하는 법이다.

연화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말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 더 말했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죽을 죄를 지은 건가?

연화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

분명 쌀자루가 떨어질 뻔했다.

그리고 전하는 그 아래에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안 잡았으면.

넘어지셨을 텐데.

...

그럼 공 아닌가?

잠시 고민하던 연화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다. 전하를 잡아당겼다. 그것도 너무 세게.

"이름이 무엇이냐."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리자 연화의 어깨가 움찔했다.

"소첩은 연화라고 불리옵니다."

"연화."

왕이 짧게 이름을 되뇌었다.

이름을 따라하는 모습에, 연화는 이유 없이 더 불안해졌다.

"어느 전각 소속이지."

"수라간이옵니다."

"수라간."

또 따라 한다.

연화는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혼나는 게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왕은 화를 내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침묵이 길어졌다.

연화는 점점 초조해졌다.

이럴 거면 차라리 곤장을 때려라. 사람을 왜 이렇게 긴장시키는 거지.

"고개를 들어 보아라."

"..."

연화는 얼어붙었다.

고개를? 전하를? 정면으로?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들리지 않았느냐."

"소첩이 어찌 감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뒤이어 우르르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상궁이었다.

창백한 얼굴로 달려온 상궁이 그대로 엎드렸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뒤따라온 내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연화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였다.

다행인 건 아무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상궁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왕을 살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없다."

"망극하옵니다."

상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그제야 연화를 발견했다.

정확히는. 연화 옆에 놓인 쌀자루를. 그리고 상황을.

상궁의 눈이 가늘어졌다.

연화는 본능적으로 저 눈빛은 혼나는 눈빛이다라는 걸 알아차렸다.

"연화."

"예."

"이리 와라."

끝났다.

연화는 속으로 눈을 감았다.

오늘 곶감도 못 먹었는데. 곤장까지 맞게 생겼다.

인생이 참 팍팍했다.

---

상궁에게 한참을 붙들려 혼이 난 뒤에야 연화는 풀려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혼이 났다기보다는.

"네년은 눈이 없느냐."

"있습니다."

"귀는."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전하를 못 알아보느냐."

"...처음 뵈었습니다."

상궁은 결국 이마를 짚었다.

연화도 억울한 게, 정말 처음 봤다.

멀리서 본 적은 있을지 몰라도.

저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전하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혼이 더 날 것 같았으니까.

---

수라간으로 돌아왔을 때는 해가 제법 기울어 있었다.

궁녀 하나가 반색했다.

"어? 왔네."

"응."

"창고 일 많이 힘들었어?"

"조금."

연화는 대충 대답하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몸은 멀쩡했다.

문제는 마음이었다.

아직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전하.

전하.

전하.

자꾸 그 두 글자가 떠올랐다.

"왜 그래?"

궁녀 하나가 물었다.

"아까부터 넋이 나갔네."

"그런가."

"혼났어?"

연화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쯧쯧."

궁녀가 혀를 찼다.

"그러니까 조심하지."

연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상궁에게 혼난 건 별로 무섭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

"연화."

"응."

"곶감 먹을래?"

연화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곶감. 그 말에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그러나.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

"..."

순간 수라간이 조용해졌다.

궁녀들이 하나둘 연화를 쳐다봤다.

"너 어디 아프냐?"

"왜?"

"곶감을 거절했잖아."

"그러네."

"연화가?"

연화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결국 궁녀가 손등으로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네."

"원래 없었어."

"그럼 왜 그래?"

연화는 잠시 고민했지만, 솔직히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 전하를 잡아당겼다고?

그러면 다들 기절할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둘러댔다.

"피곤해서."

"거짓말."

"맞는데."

"너는 피곤해도 먹잖아."

그건 맞았다. 연화는 입을 다물었다.

---

저녁이 지나고 밤이 되자, 수라간 안은 조용했다.

궁녀 몇은 이미 잠들었고.

몇은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연화도 슬슬 눈을 감으려던 참이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수라간 궁녀 연화."

연화는 눈을 떴다.

설마. 아니겠지.

"..."

"수라간 궁녀 연화."

이번에는 더 또렷했다.

주변 궁녀들도 고개를 들었다.

"누구야?"

"이 밤에?"

연화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밖으로 나가자 낯선 내관 하나가 서 있었다.

정갈한 복색. 곧은 자세. 그리고 익숙한 말.

"연화가 너더냐."

연화의 불길한 예감이 정답임을 알렸다.

"...예."

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전하께서 찾으신다."

.

.

.

정적이 흘렀다.

연화는 눈을 깜빡였다.

뒤에 있던 궁녀들도 눈을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누구를요?"

궁녀 하나가 물었다.

내관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연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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