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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밥을 다 먹니?"
연화는 대답 대신 마지막 밥 한 숟갈을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꿀꺽.
빈 그릇이 됐다.
옆에 앉아 있던 궁녀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넌 아까도 한 그릇 먹었잖아.""응."
"배 안 불러?"
"아직."
연화는 자연스럽게 맞은편 궁녀 상으로 손을 뻗었다. "고기 남기지?""야!"
궁녀가 황급히 젓가락으로 막았다. "그건 내 거야!""안 먹잖아."
"먹을 거거든!"
"방금 한숨 쉬었잖아."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연화는 아쉬운 듯 손을 거뒀다.궁녀들이 혀를 찼다.
"기집애가 사내처럼 먹기는.""많이 먹어야 오래 살지."
"그래서 넌 왜 그렇게 오래 살고 싶은데?"
연화는 잠시 생각했다. "출궁해서 떡집 해야지.""또 떡집이래."
"떡집 좋잖아."
"네 머릿속엔 떡밖에 없냐?"
"곶감도 있어."
궁녀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지만, 연화는 진지했다.궁에 들어온 지 삼 년.
그동안 깨달은 건 두 가지였다.
첫째.
세상에 공짜는 없다.
둘째.
궁에는 공짜 밥이 있다.
게다가 엄청 맛있다.
연화는 이게 너무 좋았다.
--- "야." 옆 궁녀 하나가 슬그머니 물었다. "근데 너 진짜 관심 없어?""뭐."
"승은."
연화가 인상을 찌푸렸다. "싫어.""왜?"
"귀찮아."
"이년아."
궁녀들이 동시에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전하께 승은 드는 게 귀찮다고?""응."
"너 미쳤어?"
연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좋아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그럼?"
"전하잖아!"
연화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고민했다.그러곤 진심으로 물었다.
"전하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데?""..."
"..."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궁녀들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연화를 쳐다봤다.
"너 진짜 몰라?""응."
"궁에 들어온 지 삼 년인데?"
"멀리서만 봤어."
"세상에."
연화는 억울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느라 바빴다. 밥 먹고.일하고.
간식 먹고.
또 일하고.
곶감 나오면 줄 서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끝나는데, 왕 얼굴 볼 틈이 어디 있나.연화는 시선을 떡에 고정한 채 말했다.
"난 존재감 없이 지낼 거야." 궁녀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존재감이 없다고?
아침마다 장작 두 묶음씩 들고 다니고, 궁녀 셋이 드는 물동이를 혼자 옮기고.
남의 반찬 뺏어 먹다가 쫓겨다니는 애가?
--- 문이 벌컥 열렸다.상궁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뭐 하고 있느냐!" 궁녀들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연화도 따라 일어나다가 마지막 남은 떡 하나를 얼른 입에 넣었다.
상궁의 시선이 연화에게 잠시 머물렀다 이내 못 본 척 넘어갔다.
아마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창고 정리를 도울 사람이 필요하다." 궁녀들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창고.
그 말은 곧 무거운 짐이라는 뜻이었다.
"수라간 뒤편 창고 말씀이십니까?""그래."
상궁이 고개를 끄덕였다. "쌀자루와 장작이 밀려 있다. 오늘 안으로 옮겨야 한다." 순간 궁녀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모였다.연화.
"오늘 곶감 나오는 날인데..." 연화가 작게 중얼거리자 상궁의 눈썹이 꿈틀했다. "뭐라 하였느냐.""아무것도 아닙니다."
"창고 일 끝내고 먹어라."
"..."
끝났다.곶감은 끝났다.
창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분명 남는 게 없을 것이다.
연화는 인생의 시련을 마주한 사람처럼 고개를 떨궜다.
--- 상궁에게 한바탕 혼난 뒤, 연화는 수라간 뒤편 창고로 향한다.곶감은 결국 못 먹었다.
생각할수록 분했다.
"하..." 한숨을 쉬며 어깨에 짐을 올렸다.쌀자루였다.
궁녀 둘이 들어도 버거운 무게지만, 연화는 익숙하게 번쩍 들었다.
창고와 수라간을 잇는 길은 한산했다.
궁녀들도 잘 안 다니고, 상궁들은 더더욱 안 다닌다.
그냥 일꾼들만 쓰는 길이었다.
연화는 쌀자루를 멘 채 걷다가 문득 멈췄다.
앞에 누가 서 있었다.
높은 나무 아래, 그것도 혼자.
'누구지.' 복색은 좋았다.꽤 높으신 분 같은데... 얼굴은 처음 본다.
"비켜주실래요?" 연화가 말했다.상대는 눈을 깜빡였다.
"뭐라고?""길이 좁아서요."
연화는 쌀자루를 살짝 들썩였다. "이거 무거워요." 남자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지금 자신에게 길을 비키라는 건가.
"네가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싫은데요."
"..."
"멀어요."
잠시 침묵.남자는 결국 옆으로 물러났다.
연화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그러곤 지나가려 했다.
그때 쌀자루 끝이 문설주에 걸렸다.중심이 틀어졌다.
연화는 괜찮았지만 문제는 남자였다.
퍽- 거대한 자루가 기울며 그대로 남자 쪽으로 떨어졌다. "전하!" 어디선가 비명이 들렸다.그제야 연화는 눈을 깜빡였다.
전하? 그 순간 반사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탁.
남자의 팔을 잡고 확 끌어당긴다.
원래라면 자루가 떨어질 자리.
대신 왕이 연화 쪽으로 확 끌려왔다.
너무 세게...
"...""..."
연화의 품 안에 왕이 들어와 있었다.그리고 조금 멀리서,
내관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전하..." 연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았다.
'전하였네.'강무영은 연화의 손목을 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힘은 돌아왔구나.”연화가 웃었다.“아버지께서 놓아 주신 것 아닙니까?”“그것도 모르고 빠져나왔다고 좋아할 사람은 아니지.”그는 딸의 발을 보았다.발끝이 조금 돌아가 있었다.오래전에 가르친 동작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강무영의 입가에도 웃음이 생겼다.그때 이헌이 가까이 왔다.“무엇을 하고 있었느냐?”연화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배운 것을 잊지 않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이헌이 그녀의 발끝을 보았다.그러고는 강무영을 보았다.장군은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이헌이 짧게 웃었다.“장군이 가르친 것은 확실히 오래가는군.”연화는 대답 대신 그의 손을 잡았다.손목을 잡아 돌리던 때와는 달랐다.손가락을 천천히 맞물렸다.강무영이 두 사람을 보고 말했다.“소신은 아기씨를 뵙고 가겠습니다.”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이헌이 연화에게 물었다.“나는 다시 확인하지 않아도 되겠지?”연화는 잠깐 생각하는 척했다.“전하께서 궁금하시면…….”“궁금하지 않다.”대답이 빨랐다.연화가 웃음을 터뜨렸다.이헌도 웃으며 잡은 손을 조금 당겼다.그녀는 발을 바꾸어 그의 곁으로 섰다.넘어뜨리는 것보다 익숙해진 동작이었다.아이는 강무영의 품에 앉
연화가 처음 혼자 처소 밖으로 나간 날, 상궁은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마마, 누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연화는 마당을 보았다.볕이 돌길 위에 길게 누워 있었다.겨울이 지나고 봄이 들어선 뒤였다.아이를 낳은 지도 여러 달이 지났다.“오늘은 내가 먼저 걸어가겠다.”상궁이 고개를 숙였다.“궁녀 하나가 뒤에서 모시게 하겠습니다.”연화는 그것까지 거절하지 않았다.옷깃을 정리하고 신을 내려다보았다.궁 밖에 나들이를 갔던 날 이헌이 골라 준 편한 신이었다.발을 디뎠다.오래 기다렸던 첫걸음처럼 거창하지는 않았다.그저 문턱을 넘고, 다음 돌을 밟았다.그래도 걷는 동안 자꾸 웃음이 났다.아이는 아침부터 잘 먹고 잠들어 있었다.궁인에게 맡기고 나오려는데 작은 손이 연화의 소매를 건드렸다.잡으려는 것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었다.연화는 손끝을 한 번 쓸어 주었다.“잠깐 다녀오마.”그 말을 하고 돌아서는 데는 전보다 시간이 덜 걸렸다.처음에는 문밖에 나가서도 다시 들어왔다.아이의 숨을 확인하고, 이불을 보고, 궁인에게 같은 것을 두 번 물었다.이제는 필요한 말을 전한 뒤 맡길 수 있었다.돌아올 때도 아이는 잘 있었다.그 사실을 몇 달 동안 배웠다.연화는 길을 걸으며 제 손을 보았다.빈손이었다.늘 아이를 받치고 있거나, 천과 젖은 수건을 들고 있던 손.오늘은 소매 아래에서 가볍게 움직였다.그녀가 손가락을 한 번 폈다.멀리 중궁전 지
연화는 빗을 집으려다가 손을 멈췄다.상궁이 먼저 가져갔다.“소인이 빗겨 드리겠습니다.”“내가 할 수 있다.”“팔이 피곤하실까 염려되어서요.”연화는 손을 내렸다.머리카락을 정리한 뒤에는 물잔이 바로 앞에 놓였다.창을 보자 궁녀가 다가가 볕이 잘 들도록 문을 조금 더 열었다.담요를 만지면 덮어 주었고, 접시를 보면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었다.모두 고마운 일이었다.그런데 연화는 오전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아이는 먹고 잠든 뒤 궁인들이 돌보고 있었다.자신도 잠깐 눈을 붙였다가 깼다.몸은 아직 쉽게 지쳤다.그래도 늘 누워 있거나 앉아만 있는 것은 답답했다.연화가 다시 빗을 보았다.“내일은 내가 빗겠다.”상궁이 고개를 들었다.“마마?”“아프면 부탁할 것이다. 안 아프면 내가 해도 되지 않느냐.”상궁은 잠시 생각하다 빗을 연화 가까이 놓았다.“그러시옵소서.”연화는 그것을 자기 쪽으로 조금 당겼다.작은 물건 하나가 돌아왔을 뿐인데,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아이를 낳은 지 보름이 넘었다.연화는 조금씩 몸을 움직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를 안았다.젖은 천을 갈아 주는 동안에는 곁에서 얼굴을 살폈다.잠깐 눈을 뜨면 반가웠고, 울음이 길어지면 무엇을 놓쳤는지 걱정했다.그러다 잠들면 자신도 쉬었다.며칠은 밤과 낮이 뒤섞였다.오늘이 무슨 날인지 물었다가, 날짜를 듣고도 곧 잊었다.
강무영은 끝내 연화에게 바로 가지 못했다.손가락을 붙잡힌 채 반 시진 가까이 앉아 있었다.궁인이 아이를 살피러 가까이 오자 그는 먼저 말했다.“조금만 기다려 주게.”궁인은 아이보다 장군의 손을 보았다.손목이 굳어 있었다.“아기씨께서 손을 놓으시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깨우는 것은 아닌가?”“그렇지 않습니다.”그녀가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받쳤다.손가락이 풀렸다.강무영은 그제야 팔을 거두었다.곧바로 일어나지는 못했다.이헌이 곁에서 물었다.“저리느냐?”“괜찮사옵니다.”강무영은 팔을 다른 손으로 쓸었다.이헌은 못 본 척했다.자신도 아이를 처음 안고 나서 한동안 같은 자세로 있었다.그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연화가 기다린다.”강무영이 바로 일어났다.그러다가 잠든 아이를 한 번 더 보았다.작은 손은 아무것도 잡지 않은 채였다.그는 제 손가락을 내려다보고서야 방을 나섰다.연화는 기대 앉아 아버지를 맞았다.강무영은 들어오자마자 얼굴부터 살폈다.평소보다 창백했고, 머리카락도 느슨하게 묶여 있었다.그가 다가오자 연화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아버지.”강무영이 잡았다.딸의 손은 따뜻했다.그는 그 온도를 확인한 뒤에도 놓지 않았다.“고생했다.”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아프지 않았다는 말도, 별일 아니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아버지에게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많이 힘들었습니다.”강무영의 손이 조금 움직였다.그는
연화가 눈을 떴을 때, 이헌은 여전히 곁에 있었다.창호지 너머로 아침빛이 들어왔다.등잔은 꺼져 있었고, 방 안에서는 따뜻한 물과 깨끗한 천 냄새가 났다.연화는 잠깐 제 배를 보았다.묵직하게 차 있던 자리가 달라져 있었다.꿈이 아니었다.그녀가 손을 움직이자 이헌이 바로 고개를 들었다.“깼느냐?”“아이는요?”“옆방에서 잘 돌보고 있다.”연화는 숨을 놓았다.그다음에야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눈 아래가 조금 어두웠다.머리도 평소처럼 반듯하지 않았다.“전하께서는 주무셨습니까?”이헌은 잠깐 망설였다.연화가 그의 손을 보았다.자기 손가락이 아직 걸려 있었다.그녀가 천천히 놓았다.“제가 계속 잡고 있었습니까?”“그렇다.”“깨우시지 그러셨습니까.”“잘 자는데 왜 깨우느냐.”연화는 그의 손등을 살폈다.어젯밤 꽉 붙잡았던 자리가 붉었다.엄지로 가볍게 쓸자 이헌이 손을 돌려 그녀의 손을 감쌌다.“내 손 말고 네 몸부터 살펴라.”그녀는 조금 웃었다.웃기만 해도 배 아래쪽이 당겼다.표정이 굳자 이헌이 바로 가까이 왔다.“아프냐?”“예. 아직요.”그는 상궁을 불렀다.연화는 더는 괜찮다고 먼저 말하지 않았다.의녀가 몸을 살피는 동안 이헌은 옆으로 물러났다.
연화가 이헌의 손을 놓은 것은 의녀가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말했을 때였다.놓고 싶어서가 아니었다.방 안에서 준비할 것이 많았다.깨끗한 천이 들어왔고, 물을 데우는 궁인들이 문밖을 오갔다. 상궁은 연화의 머리카락을 흐트러지지 않게 정리했다.이헌은 곁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그 한 걸음에 연화의 눈이 따라갔다.그가 바로 말했다.“밖에 있겠다.”연화는 그의 손을 다시 잡았다.“멀리 가지 마십시오.”“문 앞에 있을 것이다.”의녀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연화는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헌의 손은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다.그가 몸을 낮췄다.눈높이가 같아졌다.“네가 부르면 듣는다.”연화는 그 얼굴을 오래 볼 여유가 없었다.배 아래쪽에서 통증이 밀려왔다.그녀가 손을 꽉 쥐었다.이헌은 움직이지 않았다.통증이 조금 가신 뒤에야 연화의 손가락이 풀렸다.그가 젖은 이마에 입을 맞췄다.그리고 문밖으로 나갔다.강무영이 도착했을 때, 이헌은 문 앞에 서 있었다.내관이 옆방을 가리켰다.미리 마련해 둔 자리였다.강무영은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연화는 어떠하옵니까?”이헌이 문을 보았다.“아이를 만나려 한다.”강무영도 문을 보았다.안에서 낮은 목소리들이 오갔다.연화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그 침묵이 두 사람에게는 더 견디기 어려웠다.잠시 뒤 강무영이 소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