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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7화

Author: 코코넛 서고
평이는 저 사람들한테 구경거리를 만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웃음거리로 삼을 기회도 주지 않았다.

연풍의 얼굴은 이미 관우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평이가 이렇게 대놓고 두 사람 사이를 드러낸 건 이미 그의 마음을 받아들였다는 뜻이었다.

연풍의 가슴엔 기쁨이 차올랐다. 그러나 동시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한참을 참고 있다가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지만 결국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그는 그냥 연기준과 서인경의 말고삐를 잡아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후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에는 어딘가 허둥대는 기색이 배어 있었다.

늘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하던 그와는 참으로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

한바탕 웃고 떠든 뒤, 평이는 그들을 농가 안으로 안내했다.

평이가 고른 거처는 산기슭에 자리 잡은 곳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작은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집은 많지 않았지만 마침 점심 무렵이라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밭일을 마친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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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217화

    미혹술.직접 본 적은 없어도, 그 이름만으로도 여인이 남자를 홀리는 기술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그러나 임선우가 어디 그런 색욕에 휘둘릴 인물인가. 그가 어찌 그런 것에 얽매일 수 있단 말인가.잠시 멍해졌던 그는, 이내 얼굴빛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저도 압니다. 진국이 외실을 업신여긴다는 것을. 헌데 황후 마마께서 이미 세상을 떠난 한 여인을 이렇게 모함하는 건, 도가 지나친 것 아닙니까? 그녀는 결코 유곽 출신 따위가 아니었습니다!”서인경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연기준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막 손을 쓰려는 찰나, 서인경이 그의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손바닥 위를 살짝 긁으며 화를 누르라는 뜻을 전한다.입가엔 여전히 미소를 띤 채, 서인경은 임선우를 바라봤다.“제가 모함을 하는 건지 아닌지는, 어르신께서 이미 짐작하고 계셨을 겁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겠지요. 임씨 부인은 명문가 출신으로, 저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강남에서 이름난 기인이었고, 문무를 겸비한 데다 재색 또한 뛰어났다고 하더군요. 그런 여인이, 도대체 어떻게 외실 하나에게 무너졌을까요? 물론 남자들 입장에선 집 안의 꽃보다 들꽃이 더 향기롭다고들 하죠. 헌데 어르신은 눈이 먼 것도 아니고, 어리석은 분도 아니시잖아요. 출신도 모를 여인 하나 때문에, 평생 임씨 부인의 용서를 받지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 아닙니까?”서인경의 말에, 임선우의 머릿속에 오래전 기억이 스며들었다.그의 부인은 아름다웠다. 가문도, 재능도, 기품도 강남에서 견줄 자가 없었다.혼례를 올리던 날, 강남의 사내들은 모두 그를 부러워했다.두 사람은 한동안, 분명 사랑했다.하지만 고요한 호수에 떨어진 돌멩이처럼, 그의 마음에 잔물결이 번지기 시작한 것은 그 여인이 나타난 뒤부터였다.부인이 모란이라면 그 여인은 들꽃이었다. 자유롭고 거침없으며, 제멋대로 피어나는 꽃.처음에는, 그저 호감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향한 가벼운 감탄에 불과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 시간을 거슬러   제1216화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 되고, 화족 전체의 부흥이라는 짐을 대신 짊어질 이유도 없으며, 함부로 일불락의 다른 이들을 미워해서도 안 된다는걸요. 저는 임 가의 모든 재산을 내놓는 한이 있어도, 그 아이의 목숨 하나만은 바꾸고 싶습니다. 부디 폐하와 황후 마마께서 허락해 주십시오.”연기준은 시선을 정면에 둔 채, 그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어르신께서 말하는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임선우의 얼굴빛이 한층 더 하얗게 질렸다.“폐하의 총명이라면 이미 짐작하셨을 겁니다. 제 불효 자식… 화족의 후예이자, 임 가의 장남, 임충서입니다.”장남이라고?서인경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조금의 숨김도 없이 비웃음을 흘렸다.“그러니 임씨 부인이 끝내 눈을 감지 못했겠죠. 정식으로 혼례를 올린 본처였는데도, 임 가의 장남 자리는 이름도 없는 첩의 자식에게 넘어갔으니. 정작 임씨 부인의 친아들은 평생 그 아이를 형님이라 불러야 했을 테고… 저라면 형님은커녕, 아버지라는 말조차 입에 담고 싶지 않을 겁니다.”임선우의 얼굴이 다시 한번 창백해졌다. 중병에서 막 회복된 사람처럼,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러나 서인경은 그의 안색 따위는 보이지 않는 듯, 계속해서 가슴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어르신께서 줄곧 임씨 부인의 대답 한마디를 듣고 싶어 했던 건, 스스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헌데 알면서도 결국 그렇게 행동하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 대답은 굳이 물을 필요도 없겠네요. 임씨 부인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아마 가장 먼저 당신을 베어버리고 싶어 할 겁니다.”임선우는 얼굴이 더없이 창백해졌다.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참이나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다가 겨우 속에 고인 쓰라림을 눌러 담았다.“황후 마마,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연기준이 낮게 말했다.“짐은 오히려 황후의 말이 지극히 옳다고 봅니다. 임충서의 생사는 그가 어떤 짓을 했느냐에 달렸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더라도 돌아와 잘

  • 시간을 거슬러   제1215화

    말 위에서, 연기준은 서인경을 품에 안은 채 북쪽을 향해 달렸다.말은 숲길을 가르며 질주했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는 어딘가 비가 몰려올 듯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서인경의 미간이 살짝 움직였다.“화족과 임선우… 두 사람 사이가 어떤 관계라고 생각합니까?”연기준은 그녀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낮게 속삭였다.“임선우가 왜 스스로 부인에게 미안하다고 했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왜 천 명의 목숨을 대가로라도 그녀를 되살리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왜 굳이, 그 입으로 ‘후회했느냐’는 한마디를 듣고 싶어 했는지.”서인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곧 답을 찾은 듯 입을 열었다.“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찔리는 일이 있으니까 그런 질문을 하는 거죠. 임선우는 다른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것도 혼인한 뒤에. 그러니까 죽은 사람의 대답에 그렇게 집착하는 거예요. 아마… 백 년 뒤에라도 다시 만났을 때, 스스로를 변명할 수 있게 하려고 말입니다.”연기준의 팔이 조금 더 단단히 조여졌다.“맞아. 그럼 하나 더 맞춰볼래? 그가 사랑한 사람이 누군지.”연기준이 굳이 이렇게 묻는 순간, 이미 답은 하나였다.“화족의 후손…?”연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말을 몰았다.숲을 빠져나가기 직전, 서인경이 갑자기 손을 뻗어 연기준의 팔을 꼬집었다.“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말 안 했습니까? 저 혼자 바보처럼 헤맸잖아요.”그 정도 통증은 연기준에게 아무렇지도 않았다.그는 가볍게 웃었다.“연풍이 처음 알아낸 건 단서뿐이었다. 전부 다 맞춰진 건 아니었지. 임선우의 말을 들으면서 야 대충 윤곽이 잡힌 것이다. 임선우는 평생 두 여자밖에 없었다. 부인의 친정은 대대로 상업으로 기반을 쌓은 집안으로, 오백 년 가까운 역사를 지녔어. 제 가나 단 가처럼 전국에 이름이 알려진 명문은 아니지만, 강남에선 제법 뿌리 깊은 가문이지. 조상 중에 지방관도 여럿 있었고, 영향력도 적지 않았다. 그런 집안에 화족의 후손이 섞여 있었다면, 절대

  • 시간을 거슬러   제1214화

    “그럴 리가 없습니다!”임선우의 눈빛이 단단히 굳었다.“그 호부는… 분명 그때 열셋 째 왕야, 연도현의 손에 있었습니다. 태황태후가 그걸 손에 넣으려고, 그분에게 형벌까지 가했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끝내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요. 그때 당신들은 아직 갓난아기였습니다. 헌데 어떻게 그 호부가 당신들 손에 있을 수가 있는 겁니까?”연기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당신이 알고 있는 건… 그것뿐입니까?”임선우는 순간 자신이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걸 깨달았다.그리고 이미 상황이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결국 그는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했다.“흑갑군은… 지금도 제 손에 있습니다. 그때 태황태후는 흑갑군이 열셋 째 왕야에게 넘어갈까 봐 온갖 수단을 다 써서 그분을 제거하려 했지요. 군부를 손에 넣으려 했던 겁니다. 헌데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왕야가 죽은 뒤, 호부의 행방은 사라졌고… 태황태후는 저를 회유하기도 하고 압박하기도 하면서 흑갑군을 손에 넣으려 했습니다. 허나 임 가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규율이 있습니다. 호부 없이는 절대 군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결국 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흑갑군은 이미 오래전에 해산되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고는 군을 그대로 묶어두고, 때를 기다리게 했습니다.”그 이야기를 들은 서인경은 잠시 말이 없었다.그래도 완전히 양심을 버린 사람은 아니었다.만약 흑갑군이 정말 태황태후의 손에 들어갔다면 진국에는 또 하나의 ‘무측천’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연기준이 짧게 물었다.“그럼 지금 흑갑군은 어디 있습니까?”임선우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만무림에 있습니다.”그 한마디에 서인경의 머릿속이 하얘졌다.마치 벼락이 떨어진 듯, 순간 모든 감각이 멈췄다.“뭐라고요? 만무림에 있다고요? 그럼… 덕비랑 금수 대장공주와 함께 있는 그 세력이 흑갑군이라는 말입니까?”말을 내뱉은 순간, 서인경은 스스로 이상함을 느꼈다.“아닙니다. 이상합니다. 금수 대장공주가 그게 흑

  • 시간을 거슬러   제1213화

    연기준은 임선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그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어르신, 말씀해 주십시오. 화족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임선우는 ‘기사회생이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무너져 내렸다.눈동자는 초점을 잃었고 순식간에 열 살은 더 늙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화족이 정말 나를 속였단 말이지...? 내 부인은 다시 깨어날 수 없다는 뜻이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만무림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기사회생이야. 덕비가 그녀의 딸을 되살려내기만 하면… 나도… 내 부인을 살릴 수 있어.”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러니까, 다 알고 있었던 거군요. 변방이 십수 년이나 기근에 시달리는 걸 그대로 두고, 아이들이 끌려가는 것도 방치하고,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천 명이 희생되는 걸 눈감아 주고… 임선우, 당신은 임 가의 선조들께도, 당신 이름에도 부끄러운 사람입니다.”그 말은 깊이 꽂혔다.임선우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서 있었다.서인경의 가슴은 분노로 들끓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 사람과 말다툼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한 걸음 다가섰다.“지금 와서 후회해도 늦었습니다. 말해 주세요. 화족이 왜 당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당신과 어떤 거래를 한 건지.”그러나 임선우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연기준과 서인경의 말은 그의 귀에 닿지 않는 듯했다.연이어 쏟아진 진실에 정신이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내가 부인에게도, 백 가에도, 백성들에게도 모두 죄를 지었구나. 부인을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 죽었어야 할 몸이야. 이렇게 오래 버틴 끝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인가…”그의 목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졌다.서인경은 그를 바라보았다.그가 부인을 향한 마음만큼은 거짓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그는 진심으로 그 여인이 다시 눈을 뜨기

  • 시간을 거슬러   제1212화

    연기준의 한마디는 곧장 임선우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그의 얼굴빛이 눈에 띄게 한층 창백해졌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배추 잎을 떼어냈다.그 반응을 지켜보던 연기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제가 알아보니, 어르신께서 이곳으로 오시기 전부터 이미 백씨 부인께서는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더군요.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어르신께서 가정을 돌보지 않는 데에 화가 나셔서 불문에 의지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지내신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임선우의 손이 떨렸다.그 순간, 움직임이 완전히 멈춰버렸다.서인경은 닭을 먹이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놀란 기색이 스쳤다.무언가를 짐작한 듯 고개를 돌려 연기준을 바라보았다.연기준은 그녀의 생각이 맞다는 듯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인경의 가슴이 답답하게 막혀왔다.한참의 침묵 끝에 임선우가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에는 물기가 고여 있었고 목소리에는 어딘가 내려놓은 듯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역시… 당신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군요. 당신 말대로입니다. 내 부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그녀를 묻지 않았어요. 특별한 방법으로,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해두고 있을 뿐입니다.”죽었으되 묻지 않았다.서인경은 그제야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어르신께서 기다리고 계신 건… 결국 기사회생술이군요. 부인을 다시 살려내기를 바라고 계신 겁니다.”임선우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결국 흘러내렸다.그는 멀리 시선을 던졌다. 어딘가 먼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저는 그저… 그녀가 눈을 떠서 말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나와 혼인한 걸… 후회했는지.”사람에게는 저마다 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 임선우에게 그것은 바로 이 집착이었다.서인경은 그와 그의 부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했다.어쩌면 그는 사람 하나를 되살리기 위해 어떤 대가가 필요한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

  • 시간을 거슬러   제176화

    연기준의 마음은 이미 들썩이고 있었다. 어제 하루 종일 먼 길을 달려온 그녀를 배려해 욕망을 억누른 자신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반면, 서인경은 분통이 터졌다.분노의 화살은 두 갈래였다. 느닷없이 농을 던지며 다가오는 연기준이 원망스러웠고 그의 두세 마디 말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려 솔직하게 반응해오는 자신이 미웠다.평이와 온조 앞에서는 뭐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는데 정작 연기준 앞에서는 매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그녀는 어떻게 해도 연기준을 이길 수 없었다.서인경은 그를 무시

  • 시간을 거슬러   제188화

    저건 제 아들을 새 황제의 옥좌를 지탱하는 도구로 삼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만민을 저버리지 않겠다, 황실을 저버리지 않겠다...?그런데 만약 그의 생모가 정말 태황태후에게 목숨을 잃었다면 황실은 이미 오래전에 그를 저버린 것이 아닌가.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얽히자 서인경은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손이나 씻고 올게요.”그 순간, 연기준은 막 고기를 집으려던 손을 멈추고 물었다.“그 닭... 뜯기 전에 손은 씻었느나?”서인경은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머뭇거렸다.“씻… 씻었…을

  • 시간을 거슬러   제165화

    단여월과 단은설은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단효산은 목을 곧추세운 채 호되게 그들을 꾸짖었다.“내가 뭐라 했느냐? 진 가와는 평화롭게 지내라 하지 않았더냐! 누가 감히 진 가 사람을 건드리라 했느냐?”단여월이 서둘러 변명했다.“아버지, 딸은 분명 아버지의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보이의 일은 정말 저희와 무관합니다.”그러나 단효산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네가 아니면 또 누가 있단 말이냐? 진 가가 이제 막 경성에 들어왔는데 누가 무슨 이유로 그들을 해치겠느냐!”단은설은 확신에

  • 시간을 거슬러   제207화

    서인경은 지쳐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짙은 어둠 속에서, 연기준의 매서운 시선이 기침마다 오르내리는 그녀의 곡선을 예리하게 붙잡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머리맡에 있던 흰색 속의를 집어 그녀 어깨에 걸쳐 주며 담담히 말했다.“이제 됐다. 잠들 거라.”그가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서인경은 비로소 긴장을 풀었다. 몸을 살짝 안쪽으로 옮겨 등을 돌리자 이내 고단한 잠이 밀려왔다.이튿날, 그녀는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마님, 도련님! 급히 아뢸 일이 있사옵니다.”육승의 다급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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