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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Author: 코코넛 서고
그런 말을 하는 연풍의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서인경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황가에 형제의 우애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풍이의 말이 맞았다. 연기준은 이용가치를 잃게 되는 순간 황제에게 가차없이 내쳐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의 적이었던 자들이 우르르 몰려올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도 장군으로서의 상왕이 필요했다.

그가 쓰러진다면 변방의 안녕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서인경은 전생의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변방 백성들의 안위를 무시할 수 없었다.

만약 연기준에게 나쁜 일이 생긴다면 나라는 기용할 수 있는 장군이 없으니 할아버지도 은퇴하고 귀향할 수 없었다.

‘설련삼이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것은 내상과 외상에 특효가 있는 진귀한 약재였다.

그게 있으면 연기준은 한달 안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알겠다. 왕야께선 내일 아침에 눈을 뜰 거다. 닷새 동안 침상에서 내려서는 아니되고 두 달 안에 격렬한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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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115화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한 번이라도 터지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존재는 바로 화친 공주였다. 상대가 분풀이를 하듯 공주를 죽이거나, 전장 한복판에 끌어내 모욕을 주는 일. 그런 일은 역사 속에서 셀 수 없이 반복되어 왔다.금수 대장공주는 줄곧 믿어왔다. 아버지는 자신을 두 나라의 관계를 이어주기 위해 보낸 것이라고, 자신이 시집온 이상 양국의 관계는 굳건해지고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리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진국이 전쟁을 일으킬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그녀의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있어 가장 절대적이고 신과 같은 존재였으니까.이미 성조 선제와 함께 묻혀버렸어야 할 비밀을 연기준이 지금 이 자리에서 드러내고 말았다.금수 대장공주는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 채, 눈빛이 흐트러졌다.“방금 네가 한 말은 전부 거짓이라고 하거라.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다.”연기준은 그저 연민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황고모께서 짐의 조건을 받아들이신다면, 즉시 그들에게 손을 멈추게 하겠습니다. 요동의 도성도, 영토도 지킬 수 있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지요. 허나 황고모께서 이를 거부하신다면 요동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 생각하십시오. 황고모께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진국군이 성을 함락시키는 속도는 결코 만만하지 않으니까요.”말을 마친 연기준은 그대로 돌아섰다.막사를 나서자마자, 등 뒤에서 찢어질 듯한 절규가 터져 나왔다.“연기준, 꿈 깨! 네 황후도, 네 진국군도 모두 도성에 묻히게 될 것이다! 넌 너무 일찍 기뻐한 거야! 하하하하!”연기준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대로 말을 몰아 떠났다.*그 무렵, 단은설과 그녀의 협력자들은 이미 모두 붙잡혀 있었다.다만 봉한설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저 사람들, 연강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냐?”연기준은 나무에 묶여

  • 시간을 거슬러   제1114화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진국군은 거침없이 밀고 들어와 이미 도성 코앞까지 이르고 있었다.금수 대장공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탁자를 세게 내려치며 분노에 휩싸여 외쳤다.“연기준, 감히 본궁을 속이다니!”연기준은 평온한 표정으로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황고모께서도 짐을 속이시지 않았습니까? 진국군을 기습하라고 보낸 자들, 모두 정예 중의 정예였지요. 다만 짐이 한 수 위였을 뿐입니다.”금수 대장공주는 발걸음이 휘청이더니, 넋이 나간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한참 뒤, 분노로 일그러졌던 얼굴에 억지 웃음이 번졌지만 눈동자 깊은 곳의 패배감은 끝내 숨기지 못했다.“좋다… 참으로 좋다. 역시 연도현이 눈여겨본 사람답구나. 그 아이보다도 네 재능이 훨씬 뛰어나구나.”연도현의 이름이 언급되자 연기준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 흔적은 금세 사라졌다.“열셋 째 황숙의 체면을 봐서라도 짐은 황고모와 죽고 죽이는 지경까지 가고 싶지 않습니다. 요동은 사람을 보내 진국 땅에서 날뛰던 메뚜기 떼를 소탕하고, 백성들에게 평안을 돌려주십시오. 또한 요동의 황제와 황후는 재해 속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수만의 진국 백성 앞에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혼령을 위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 다섯 곳을 내어주고 앞으로 십 년간 요동 사람은 단 한 명도 진국 땅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하십시오. 그러면 이 일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헛된 망상이다!”금수 대장공주는 반생을 바쳐 진국을 굴복시키려 해왔다. 그런데 마지막에 맞이한 결과가 고작 이것이라니.이대로 궁으로 돌아간다면, 요동의 백성들은 더 이상 그녀를 믿지 않을 것이고 요동 후궁에서도 그녀가 설 자리는 사라질 터였다.“헛된 망상이라고요?”연기준은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털며 돌아섰다.“그렇다면 황고모께서는 요동이 완전히 진국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날을 기다리십시오. 그때가 되면 황고모의 최후는, 지금 짐이 제시한 조건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입니다.”연기준은 더는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고

  • 시간을 거슬러   제1113화

    그곳에 이르게 되면 자신은 결국 주인의 짐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차라리 진국 황궁으로 돌아가 주인을 대신해 태자를 목숨 걸고 지키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주인 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연풍의 마음은 더욱 아렸고 놓아주기 어려워졌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반드시 주인보다 먼저 앞에 나서겠다고, 설령 주인을 대신해 죽게 된다 해도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봉한설의 말은 분명 연풍에게 큰 타격이 되었다. 그 깊은 무력감은 오히려 그를 더욱 성실하고 치열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그 변화는 연기준뿐 아니라, 어린 꼬막이조차 눈치챌 정도였다.*다음 날, 부생이 그들을 데리고 단은설을 찾으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자 연풍은 유난히 적극적으로 나섰다.“폐하, 저를 보내주십시오. 반드시 단은설을 데려오겠습니다.”연기준은 담담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럴 필요 없다. 단은설 곁에는 연강호가 남긴 사람들이 있다. 너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한설이에게 맡기거라.”말을 마친 뒤, 연풍의 낙담한 표정을 보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한설의 무공이 너보다 약할 수는 있어도 일불락을 상대하는 데는 훨씬 능하다.”그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는 언젠가 반드시 설산으로 가게 될 날이 떠올랐다. 그곳에 이르면 자신은 진짜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연풍은 다시 한 번 깊이 무너져 내렸다.하지만 연기준의 말은 사실이었다. 억지로 따라간다 해도, 그저 짐이 될 뿐이었다.그때, 꼬막이가 그의 가라앉은 기색을 눈치채고 다가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연풍 형님, 저랑 같이 가요. 부탁할 게 있습니다!”연기준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또 무슨 생각이냐?”꼬막이는 신비롭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대신 친척 좀 만나러 가야 합니다!”연기준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꼬막이를 연풍에게 넘겨주었다.“잘 지키거라.”자신에게도 아직

  • 시간을 거슬러   제1112화

    검은 옷의 사내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그는 방금 연기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설마 너희가 일불락의 원수가 아니라는 것이냐? 그럴 리가…”봉한설이 담담히 말했다.“왜 그럴 리가 없습니까? 그들은 일불락의 원수일 뿐만 아니라, 당신이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손을 쓰라고 부추긴 그 자야말로 진짜 일불락의 가장 큰 원수예요.”검은 옷의 사내는 눈을 크게 떴다.“아니, 그럴 리 없다. 그는 분명…”말을 반쯤 꺼내다 말고 그는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지금의 나는 그도 믿지 못하겠고 너희도 믿지 못하겠다. 오늘 일은 여기서 끝내지.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이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을 거다.”그 말을 마치자마자 검은 옷의 사내는 꼬막이를 연기준 쪽으로 던져 버렸다.연기준이 몸을 날려 받아냈다. 꼬막이는 공중에서 한 줄기의 호를 그리며 날아가 그대로 그의 품에 단단히 안겼다.검은 옷의 사내가 달아나려 하자 암위들이 즉시 장검을 뽑아 들고 그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그때, 꼬막이가 다급히 외쳤다.“아아아, 잠깐! 아프게 하지 마세요!”그의 말에 암위들의 손길이 순간 멈칫했다.그 틈을 타 검은 옷의 사내는 꼬막이를 깊이 한 번 바라보더니 곧바로 몸을 날려 자취를 감췄다.짧지만 소란스러웠던 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꼬막이는 큰일을 겪고도 무사히 다시 연기준의 곁으로 돌아왔다.아이는 뒤늦게 가슴을 두드리며 중얼거린다.“아이고... 아기 심장 떨어질 뻔했습니다.”연기준이 곁눈질로 그를 흘겨봤다.“아까 보니 꽤 침착하던데.”꼬막이는 연기준의 어깨를 끌어안고 온몸의 힘을 빼듯 축 늘어졌다.“그건 다 속인 겁니다. 사실은 정말 무서워서 죽을 뻔했거든요.”그 말투를 듣고서야 봉한설은 그가 크게 다치지 않았음을 알았다.“왜 암위들한테 잡으라고 안 했습니까? 그자를 잡으면 줄기를 따라가서 뒤에 있는 가문까지 찾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요

  • 시간을 거슬러   제1111화

    검은 옷의 사내는 잠시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연기준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정답에 다다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순간, 그의 눈빛이 비통하게 일그러졌다.“그래서 어쩌겠다는 거냐? 수령의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원수가 대대로 고통받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어느새 암위들이 조용히 그의 등 뒤로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연기준은 곁눈질로 그 움직임을 확인하고는 다시 시선을 거두어 오직 검은 옷의 사내만을 똑바로 응시했다.“너와 네 뒤의 가문은 여전히 일불락 수령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 헌데 선과 악도 가리지 못하고, 옳고 그름도 분별하지 못하지.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고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가린 그자가 바로 일불락 수령의 가장 큰 원수다.”그 말에, 검은 옷의 사내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입을 떼지 못한 채, 그저 눈을 크게 뜬다.“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그의 주의력은 온전히 연기준에게 쏠려 있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단 한마디라도 더 알아내고 싶다는 듯 초조하게 매달렸다. 그 탓에 손에 들어간 힘도 어느새 느슨해졌다.꼬막이의 목을 조이던 압박이 조금씩 풀리자 아이는 급히 숨을 몰아쉬며 몇 번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 뒤에야 겨우 숨을 돌렸다.그러고는 아직 어린 목소리로 연기준의 말에 힘을 보탰다.“우리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여 할머니께서 그러셨거든요. 얼굴도 못 드러내는 그 사람은, 사람들 앞에 나설 낯이 없는 거래요. 일불락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얼굴만 보면 당장 죽여버릴 만큼, 대대로 잊지 못할 원수라고 했습니다.”여 할머니?검은 옷의 사내의 표정이 더욱 기이하게 일그러졌다.“어느 여 할머니를 말하는 것이냐?”꼬막이는 여전히 숨을 고르며 목을 매만졌다.“그냥 설산 안에 사는 그 여 할머니요! 입가에 검은 점 있는 그 할머니 말입니다!”그 순간, 검은 옷의 사내의 온몸이 굳어 버렸다.설산의 여 할머니라니?여족? 설장로? 입가의 검은 점…이 어린아이가 정말로 설장로를 안

  • 시간을 거슬러   제1110화

    말을 마치자마자 봉한설은 즉시 몸을 날리며 한 줄기 바람처럼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뒷산.이미 연기준과 암위들이 검은 옷의 사내를 따라잡은 상태였다.그때쯤 꼬막이도 깨어났지만 사내의 어깨에 들려 있으면서도 조금도 겁을 먹은 기색이 없었다.까만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다가 연기준이 따라붙은 것을 보자마자 양팔을 흔들며 외쳤다.“아버지! 저 여기 있습니다!”그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연기준도 이렇게 빠르게 위치를 특정하진 못했을 것이다.그 순간, 검은 옷의 사내는 꼬막이를 어깨에 멘 채 연기준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훑어보았다.“생각보다 빠르게 따라붙었군. 진국의 황제라더니, 듣던 것보다 훨씬 영리하네. 일불락 수령 일족의 후예라던데 사람 보는 눈은 그 조상보다 훨씬 낫군.”연기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눈동자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넌 일불락의 후손이구나.”물음이 아니라 단정이었다.“어느 부족 출신인지 밝혀라.”검은 옷의 사내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나를 이기면 그때 알려주지.”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순간, 공기 속에 수없이 많은 빙능이 맺혀들었다.날카로운 얼음조각들이 일제히 연기준을 향해 쏟아졌다. 연기준은 가까이 있던 암위의 검을 뽑아 들고 내력을 끌어올려 검을 휘둘렀다.앞뒤에서 부딪히는 힘에 의해 빙능은 공중에서 산산이 부서졌다.그 반동으로 검은 옷의 사내는 내력이 역류하여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그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너... 목족 무공을 쓸 줄 아는 것이냐?”그 말에, 연기준 역시 순간 멈칫했다.방금 그가 사용한 내력은 어릴 적 연도현이 가르쳐준 것이었다.그때는 그저 일반적인 내공보다 깊고 강하다고만 여겼을 뿐이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연도현은 이미 그의 출생을 알고 일찍이 일족과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연기준은 낮게 말했다.“아이를 놓거라. 같은 일불락의 후손이라면 서로 죽일 필요는 없을 텐데.”검은 옷의 사내는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

  • 시간을 거슬러   제306화

    서인경이 왕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 그녀는 발소리를 죽이며 뜰로 들어섰다. 낭하에 매달린 두 개의 등불만이 희미하게 빛날 뿐 사방은 칠흑처럼 어두웠다.게다가 평이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평이는 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기는 상왕부이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인경의 마음속에는 의아함이 피어올랐다.그녀는 방 문을 밀어 열고 들어섰다. 탁자 위에 놓인 화절자를 더듬어 찾아내고 성냥불을 켜 촛불을 밝혔다. 순간, 방 안은 환히 밝아졌다. 그제야 그

  • 시간을 거슬러   제268화

    연기준의 눈빛에 잠시 짜증이 스쳤다.“머리가… 아프다.”서인경은 그의 손목을 놓고 이마에 살며시 손을 대보았다.“몸속에 아직 독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약을 지어드릴게요. 며칠만 더 복용하면 괜찮아질 겁니다.”아직 독성이 그의 기맥 속을 떠도는 탓일까? 연기준의 눈에는 피로가 깊이 깔려 있었고 말하기조차 귀찮은 듯한 나른한 기색이 번져 있었다. 서인경은 아까 연풍이 말한, 황제가 두 사람에게 조속히 경성으로 돌아오라 명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저는 흑시에 며칠 더 머물러 아이들을 제대

  • 시간을 거슬러   제279화

    부장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주 부장이 불쑥 앞으로 나서더니 아직 반쯤 펼쳐져 있던 화폭 위에 손을 꾹 눌렀다.“왕비 마마, 오해가 있으시옵니다! 여기, 이 부분을 보시지요!”무심코 그곳을 들여보다 본 서인경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졌다. 몸을 숙여 막 부장이 가리킨 지점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저건, 서 자? 이게, 여검의 영패란 말이냐?”그림 속, 미인이 몸을 담근 욕조 옆면에는 위장된 패가 그려져 있었다. 흐릿한 먹빛으로 새겨진 한 글자, 서.욕조의 색과 흡사하여 처음 보는 이들은 반드시 미인의 자태에

  • 시간을 거슬러   제311화

    서인경이 고개를 돌려 육승에게 물었다.“복래객잔은 어디에 있느냐?”육승은 곧바로 수상쩍음을 감지했다.“왕비 마마, 사태가 석연치 않사옵니다. 누군가 고의로 왕비 마마를 그곳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매복이 있을 수 있으니 신이 먼저 가서 살펴보겠사옵니다.”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시간이 없다. 상대는 분명 나 혼자 오라 했다. 너희는 반 시각 늦게 오거라.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자구나.”육승은 끝내 막아설 수 없었다. 그는 서인경에게 방향만 일러주고 곧장 사람을 시켜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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