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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3화

作者: 코코넛 서고
연기준의 머릿속이 웅 하고 울렸다.

그의 기억 속에서 자신과 혼약을 맺은 사람은 오직 서인경뿐이었고 예정연이라는 존재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있는 것은 어머니가 갖고 있던 것과 똑같은 옥패였다.

그 옥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오직 그만이 알고 있었다.

“말하거라.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예정연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서인경과 화이하고 저를 왕비로 맞으세요. 그 여자가 당신에게 아들을 낳아줬으니 저는 그 여자를 시녀쯤으로 살아갈 수 있게 허락하겠습니다. 당신의 침소를 따뜻하게 해주는 그런 시녀 말입니다.”

연기준은 가볍게 비웃었다.

“허황된 꿈이지.”

그러자 그녀도 즉각 얼굴빛이 굳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평생 어머니의 비밀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겠지요.”

연기준은 잠시 멈췄다가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네가 모비와 어떤 관계였든, 무엇을 알고 있든, 본왕의 행복을 빌미로 협박한다면 몸비께서 살아 계셨더라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연기준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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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221화

    평이의 속은 내내 조마조마했다.서인경이야 두렵지 않았지만 연기준이 노할까 봐 그게 더 걱정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연기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풍을 불렀다.“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성 안의 주루를 전부 빌려라.”연기준은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들였고, 비용까지 흔쾌히 부담하겠다는 뜻이었다.평이는 제 작은 꾀가 통했다는 사실에 속으로 은근히 들떴다.반면, 서인경은 속으로 천오백 명의 식비를 계산해 보다가 약왕곡의 은자를 떠올렸다.가슴이 저릿해져 더는 계산을 이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연기준은 돈을 쓸 때 망설임이 없었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백성들의 희생을 줄일 수만 있다면, 무고한 아이들을 구해낼 수만 있다면, 금족과 화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돈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평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던 서인경조차 이 순간만큼은 연기준을 조금은 우러러보게 되었다.그녀의 남자는 정말 대단했다.연기준은 자신을 바라보는 서인경의 눈동자에 반짝이는 빛을 알아차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겉으로는 큰 짐을 짊어진 듯한 야심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쉽게 만족하는 여자였다.평이는 암위들을 이끌고 이틀 밤낮을 바쁘게 움직였다.*마침내 사흘째 되던 날. 날이 밝기 전, 마을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빼내는 데 성공했다.그 사이 낮 시간에는, 연기준과 서인경이 거친 베옷으로 갈아입고 마을 주변을 돌아다녔다.겉으로는 유유자적 노니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지형을 세밀하게 살피는 일이었다.그들은 산속에서 내려오는 이들을 보기도 했다.화족인지 금족인지 분간은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은 한결같이 차가웠고 온몸에 살기가 서려 있었다.연기준과 서인경을 보았을 때도, 그저 평범한 마을 사람으로 여겼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사람들이 지나가자 서인경은 얼굴에 묻힌 흙을 손으로 더듬었다. 그러다 그만 한 조각을 떼어내고 말았다.서둘러 약왕곡에서 떠온 온천수를 손바닥에 조금 붓고 비벼 다시 얼굴에 덧발랐다.둘

  • 시간을 거슬러   제1220화

    “다친 거예요?”그제야 서인경은 알아차렸다. 연기준이 떠날 때 입고 있던 겉옷이 사라지고 지금은 검은 속옷 한 벌만 걸치고 있다는 것을.손을 뻗어 만져 보자, 옷감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손바닥에는 선명한 피가 묻어났다.서인경은 곧장 그의 옷을 헤치려 했지만 연기준이 가볍게 두 손을 붙잡았다.“밖이지 않느냐. 이건 좀 곤란하다.”치켜 뜬 서인경의 눈꼬리는 살짝 붉어졌다.그 눈빛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연기준은 곧바로 설명을 덧붙였다.“내 피가 아니다.”서인경은 여전히 그를 노려봤다.“거짓말하면... 알죠?”연기준은 난처한 듯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등 뒤 어깨 쪽으로 이끌었다.그곳에는 칼에 베인 상처가 하나 나 있었고, 피가 더 진하게 배어 있었다.“그냥 겉상처일 뿐이다.”서인경은 곧장 그의 뒤로 돌아가 직접 확인했다.상처가 크지 않고, 이미 피도 멎은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숨을 돌렸다.“얼른 돌아가요. 제가 약 발라줄게요.”연기준은 다리로 말배를 죄자, 말이 속도를 높여 마을 쪽으로 달려갔다.가는 길에 그는 흑갑군의 상황을 서인경에게 들려주었다.지휘관은 성격이 좀 거칠긴 했지만, 의리 있고 우직한 사람이었다.연기준이 그를 제압했고, 호부까지 쥐고 있으니 더 이상 문제는 아니었다.*거처로 돌아와 서인경이 막 연기준의 상처를 다 치료해 주었을 때였다.문이 벌컥 열리며 평이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고 숨은 가쁘게 차올랐으며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뒤따라 들어온 연풍이 얼른 물을 따라 건넸다.평이는 몇 모금 연달아 들이켜고서야 겨우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됐어요. 다 얘기 끝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잠시 떠나기로 했어요.”서인경이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이틀은 잡아준 일이었는데, 반나절 만에 끝낼 줄은 몰랐다.평이는 다시 물을 한 잔 따라 들고, 컵을 감싼 채 말을 이었다.“다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 번에 움직이면 소리가 커져서 산속 사람들한테 들킬까

  • 시간을 거슬러   제1219화

    임선우를 보내고 난 뒤, 서인경은 다시 봉한설에게 편지 한 통을 써서, 암위를 시켜 급히 전하게 했다.그 일을 마치고 나서, 연기준은 흑갑군의 병부를 들고 두 시간 동안 모습을 감추었다.흑갑군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진국의 부름을 받지 않았다.연기준으로서도 그들의 충성심이 여전히 확고한지, 지금 그들을 이끄는 인물이 어떤 자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만일 성미 까다로운 인물이라면, 그를 복속시키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그 사이, 서인경은 마을의 배치를 살피러 나섰다.눈앞의 마을은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었고, 노무림은 산허리에 위치해 있었다.대략 반 시진쯤 산을 오르자 가파른 절벽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그곳은 어느 정도 무공이 있거나, 지형을 잘 아는 이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곳이었다.예전에 사냥꾼 하나가 떨어진 일이 있었고, 그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다시는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그 때문에 노무림은 오랫동안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채, 비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마을 동쪽의 좁은 길 하나가 산으로 오르는 유일한 통로였다.하지만 만무림 안에 사는 이들은 내려올 때 굳이 마을을 거칠 필요가 없었고, 산속의 비밀이 들통날까 두려워 마을 사람들과는 거의 왕래하지 않았다.마을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어도 그들은 냉담하게 대응했고 시간이 흐르며 양쪽은 완전히 단절되었다. 마주쳐도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을 정도였다.이 모든 이야기는 서인경이 마을 동쪽 어귀에 앉아 아낙네들이 신발 밑창을 꿰매며 수다를 떠는 사이사이에 캐낸 것이었다.필요한 것을 다 캐낸 뒤에도,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뜨지 않았다.두 손을 소매 속에 넣은 채 바람 부는 쪽에 앉아, 아낙네들의 이런저런 잡담을 듣고 있었다.만무림 속에서 칼을 차고 다니는 험악한 사내 이야기, 마을에서 가장 잘생긴 서생 이야기, 그리고 동쪽 집 며느리가 먹기만 하고 게으르다는 이야기부터, 서쪽 집 남자가 못생겼으면서도 입만 열면 욕을 한다는 이야기까지 빠짐없이 하나하나 모두 엿들었다.

  • 시간을 거슬러   제1218화

    진실을 알게 되면, 그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다만 지금의 서인경에게는, 그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그녀는 앞쪽에 펼쳐진 홍주림을 바라보며, 연기준에게 먼저 돌아가라는 신호를 보냈다.“지금은 흑갑군을 만날 때가 아니에요. 자칫 덕비와 금수 대장공주가 눈치채면, 그들이 대비할 수도 있고, 심하면 계획을 앞당길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산 아래 백성들과 산속 아이들을 구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거예요.”흑갑군을 동원해 적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금족과 화족의 전력 역시 만만치 않았다.양쪽이 진심으로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피해는 반드시 참혹해질 터였다.그건 서인경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녀는 가능한 한, 희생을 최소로 줄이고 싶었다.연기준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먼 곳을 응시하며 홍주림 입구의 지형을 눈에 담아 두고 마음속에 또렷이 새겼다.이윽고 그는 말머리를 돌려 산 아래를 향해 달려 내려갔다.임선우는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한 데다, 서인경에게서 또 하나의 충격적인 말을 던져진 상태였다.그는 곧장 말머리를 돌려 뒤따라갔다.뒤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서인경은 뜻을 이룬 듯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임선우가 우리 손에 있는 이상, 협상에서 한 수를 더 쥔 셈이에요. 임충서가 제 아버지의 목숨까지 모른 척하진 않겠죠.”서인경은 미혹술이라는 미끼를 던진 순간부터, 임선우가 반드시 따라올 것을 알고 있었다.연기준의 가슴이 미세하게 떨렸다. 웃음이 스며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도 바보는 아니니 곧 눈치채겠지. 묶어 둘 생각인 것이냐?”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사람을 묶어 두는 건 너무 저속하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그녀는 태연하게 부인했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대책이 다 서 있었다.연기준의 어깨가 더 크게 들썩였다. 그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뒤따라오던 임선우의 귀에까지 흘러들어갔다.임선우는 서인경이 말한 미혹술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안달이 났다.그러면서도,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 시간을 거슬러   제1217화

    미혹술.직접 본 적은 없어도, 그 이름만으로도 여인이 남자를 홀리는 기술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그러나 임선우가 어디 그런 색욕에 휘둘릴 인물인가. 그가 어찌 그런 것에 얽매일 수 있단 말인가.잠시 멍해졌던 그는, 이내 얼굴빛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저도 압니다. 진국이 외실을 업신여긴다는 것을. 헌데 황후 마마께서 이미 세상을 떠난 한 여인을 이렇게 모함하는 건, 도가 지나친 것 아닙니까? 그녀는 결코 유곽 출신 따위가 아니었습니다!”서인경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연기준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막 손을 쓰려는 찰나, 서인경이 그의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손바닥 위를 살짝 긁으며 화를 누르라는 뜻을 전한다.입가엔 여전히 미소를 띤 채, 서인경은 임선우를 바라봤다.“제가 모함을 하는 건지 아닌지는, 어르신께서 이미 짐작하고 계셨을 겁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겠지요. 임씨 부인은 명문가 출신으로, 저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강남에서 이름난 기인이었고, 문무를 겸비한 데다 재색 또한 뛰어났다고 하더군요. 그런 여인이, 도대체 어떻게 외실 하나에게 무너졌을까요? 물론 남자들 입장에선 집 안의 꽃보다 들꽃이 더 향기롭다고들 하죠. 헌데 어르신은 눈이 먼 것도 아니고, 어리석은 분도 아니시잖아요. 출신도 모를 여인 하나 때문에, 평생 임씨 부인의 용서를 받지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 아닙니까?”서인경의 말에, 임선우의 머릿속에 오래전 기억이 스며들었다.그의 부인은 아름다웠다. 가문도, 재능도, 기품도 강남에서 견줄 자가 없었다.혼례를 올리던 날, 강남의 사내들은 모두 그를 부러워했다.두 사람은 한동안, 분명 사랑했다.하지만 고요한 호수에 떨어진 돌멩이처럼, 그의 마음에 잔물결이 번지기 시작한 것은 그 여인이 나타난 뒤부터였다.부인이 모란이라면 그 여인은 들꽃이었다. 자유롭고 거침없으며, 제멋대로 피어나는 꽃.처음에는, 그저 호감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향한 가벼운 감탄에 불과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 시간을 거슬러   제1216화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 되고, 화족 전체의 부흥이라는 짐을 대신 짊어질 이유도 없으며, 함부로 일불락의 다른 이들을 미워해서도 안 된다는걸요. 저는 임 가의 모든 재산을 내놓는 한이 있어도, 그 아이의 목숨 하나만은 바꾸고 싶습니다. 부디 폐하와 황후 마마께서 허락해 주십시오.”연기준은 시선을 정면에 둔 채, 그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어르신께서 말하는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임선우의 얼굴빛이 한층 더 하얗게 질렸다.“폐하의 총명이라면 이미 짐작하셨을 겁니다. 제 불효 자식… 화족의 후예이자, 임 가의 장남, 임충서입니다.”장남이라고?서인경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조금의 숨김도 없이 비웃음을 흘렸다.“그러니 임씨 부인이 끝내 눈을 감지 못했겠죠. 정식으로 혼례를 올린 본처였는데도, 임 가의 장남 자리는 이름도 없는 첩의 자식에게 넘어갔으니. 정작 임씨 부인의 친아들은 평생 그 아이를 형님이라 불러야 했을 테고… 저라면 형님은커녕, 아버지라는 말조차 입에 담고 싶지 않을 겁니다.”임선우의 얼굴이 다시 한번 창백해졌다. 중병에서 막 회복된 사람처럼,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러나 서인경은 그의 안색 따위는 보이지 않는 듯, 계속해서 가슴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어르신께서 줄곧 임씨 부인의 대답 한마디를 듣고 싶어 했던 건, 스스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헌데 알면서도 결국 그렇게 행동하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 대답은 굳이 물을 필요도 없겠네요. 임씨 부인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아마 가장 먼저 당신을 베어버리고 싶어 할 겁니다.”임선우는 얼굴이 더없이 창백해졌다.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참이나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다가 겨우 속에 고인 쓰라림을 눌러 담았다.“황후 마마,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연기준이 낮게 말했다.“짐은 오히려 황후의 말이 지극히 옳다고 봅니다. 임충서의 생사는 그가 어떤 짓을 했느냐에 달렸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더라도 돌아와 잘

  • 시간을 거슬러   제428화

    서가군 군영.서인경이 도착했을 때, 장졸들은 이미 훈련을 마친 뒤였다. 대부분의 병력은 숙귀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던 터라 이곳에는 마 씨 성을 가진 부장이 남아 군영을 지키고 있었다.그는 서인경을 보자 뜻밖이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마마, 어찌 이곳에 오셨습니까?”서인경은 되묻듯 고개를 기울였다.“내가 오면 안 되느냐?”마 부장은 급히 손을 저었다.“아… 아니 옵니다. 다만 조금 전까지 상왕과 대황자께서 직접 지휘하시기에 저희는 마마께서 경성에 남아 태를 기르시는 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요즘 서가군은 위태로운

  • 시간을 거슬러   제444화

    “도둑?”어느 미친 도둑이 감히 장군부 안으로 들어오겠는가?시위들이 의아해하자 단안은 오히려 성질을 냈다.“다 너희들 탓이다. 내가 내 몸 하나 못 지킨다고 했더냐? 괜히 몇 겹으로 순찰을 돌리니 밖에서 보기엔 이 뜰 안에 무슨 희귀한 보물이라도 숨겨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느냐? 눈독 들이지 않는 게 더 이상하겠다.”시위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 눈앞의 노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못했다.“예… 그럼 물러가겠사옵니다.”“이놈들아!”단안이 그들을 다시 불러 세웠다.“뭐하러 멀뚱히 서 있느냐? 어서 도둑을 잡으러 가지 않고!

  • 시간을 거슬러   제439화

    언뜻 보니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었다.그 사내아이는 얼굴 윤곽이 연기준을 닮았지만 눈매와 입술선에는 서인경의 그림자가 스며 있었다. 두 사람의 흔적이 그대로 섞여 빚어진 작은 조각상 같았다.그의 머리에는 양 갈래로 작은 머리 뭉치를 묶어 올린 두 개의 꼬마 솜방울이 달려 있었고 두툼한 솜옷을 껴입어 마치 섣달그믐날의 복덩이 아기처럼 포동포동했다.작은 손에는 빨대를 꽂은 꼬막우유(旺仔牛奶: 1996년에 대만에서 상시한 우유)가 들려 있었고 아이는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그 우유를 빨고 있었다.서인경을 본 순간, 꼬마의 눈이 별처럼

  • 시간을 거슬러   제440화

    어쩐지 그 말투가 마음에 걸렸다.아이의 말은 분명 사실이었으나 그 속엔 철부지답지 않은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마치 어미가 힘을 내지 못하니 뱃속의 아이가 스스로 나서서 자신을 지켜야 된다는 듯한 태도였고 어린 생명이 짊어지지 말아야 할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이제 겨우 콩알만 한 태아가 이렇게 꿈속에서 그녀와 말을 나누고 있다니.서인경은 사방을 둘러보았다.“여긴 바깥이잖니. 만약 누가 오면 어찌 하느냐?”꼬마는 태연히 대꾸했다.“올 리 없습니다. 여긴 일불락의 옛터라 벌써 눈 속에 묻혀버린 곳이거든요. 여길 오려는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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