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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1화

Author: 코코넛 서고
진방옥의 얼굴에는 충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비록 얼굴이 붕대로 감겨 있었지만 그 놀란 눈빛만큼은 가릴 수가 없었다.

“방금 산 저 두 채의 집, 돈도 꽤 들었잖아요. 그걸 그냥 터뜨려 버린다고요? 안 아깝습니까?”

단평안의 얼굴에는 그 특유의 한량 기질이 묻어 있었다. 돈에 연연하지 않는, 제멋대로이면서도 당당한 표정이었다.

“돈이란 건 원래 몸 밖의 물건입니다. 쓰면 다시 벌면 되는 거예요. 능력 있는 사람은 어떻게 벌지를 고민하지, 능력 없는 사람만 돈을 쌓아두는 데 집착합니다.”

진방옥은 과장되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와, 이거지. 형님, 전 앞으로 형님만 믿고 갑니다. 절 부자로 만들어 주세요!”

연기준은 두 사람이 농담을 주고받는 걸 듣다가 말없이 등을 돌렸다.

“네 말대로 진행해.”

다른 곳은 괜찮았지만 입구 근처의 벽에는 금족의 무공 동작들이 그림으로 남아 있었다.

연기준은 검을 들어 올렸다. 동작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동시에 벽의 그림을 모조리 베어냈다.

검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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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115화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한 번이라도 터지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존재는 바로 화친 공주였다. 상대가 분풀이를 하듯 공주를 죽이거나, 전장 한복판에 끌어내 모욕을 주는 일. 그런 일은 역사 속에서 셀 수 없이 반복되어 왔다.금수 대장공주는 줄곧 믿어왔다. 아버지는 자신을 두 나라의 관계를 이어주기 위해 보낸 것이라고, 자신이 시집온 이상 양국의 관계는 굳건해지고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리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진국이 전쟁을 일으킬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그녀의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있어 가장 절대적이고 신과 같은 존재였으니까.이미 성조 선제와 함께 묻혀버렸어야 할 비밀을 연기준이 지금 이 자리에서 드러내고 말았다.금수 대장공주는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 채, 눈빛이 흐트러졌다.“방금 네가 한 말은 전부 거짓이라고 하거라.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다.”연기준은 그저 연민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황고모께서 짐의 조건을 받아들이신다면, 즉시 그들에게 손을 멈추게 하겠습니다. 요동의 도성도, 영토도 지킬 수 있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지요. 허나 황고모께서 이를 거부하신다면 요동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 생각하십시오. 황고모께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진국군이 성을 함락시키는 속도는 결코 만만하지 않으니까요.”말을 마친 연기준은 그대로 돌아섰다.막사를 나서자마자, 등 뒤에서 찢어질 듯한 절규가 터져 나왔다.“연기준, 꿈 깨! 네 황후도, 네 진국군도 모두 도성에 묻히게 될 것이다! 넌 너무 일찍 기뻐한 거야! 하하하하!”연기준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대로 말을 몰아 떠났다.*그 무렵, 단은설과 그녀의 협력자들은 이미 모두 붙잡혀 있었다.다만 봉한설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저 사람들, 연강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냐?”연기준은 나무에 묶여

  • 시간을 거슬러   제1114화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진국군은 거침없이 밀고 들어와 이미 도성 코앞까지 이르고 있었다.금수 대장공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탁자를 세게 내려치며 분노에 휩싸여 외쳤다.“연기준, 감히 본궁을 속이다니!”연기준은 평온한 표정으로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황고모께서도 짐을 속이시지 않았습니까? 진국군을 기습하라고 보낸 자들, 모두 정예 중의 정예였지요. 다만 짐이 한 수 위였을 뿐입니다.”금수 대장공주는 발걸음이 휘청이더니, 넋이 나간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한참 뒤, 분노로 일그러졌던 얼굴에 억지 웃음이 번졌지만 눈동자 깊은 곳의 패배감은 끝내 숨기지 못했다.“좋다… 참으로 좋다. 역시 연도현이 눈여겨본 사람답구나. 그 아이보다도 네 재능이 훨씬 뛰어나구나.”연도현의 이름이 언급되자 연기준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 흔적은 금세 사라졌다.“열셋 째 황숙의 체면을 봐서라도 짐은 황고모와 죽고 죽이는 지경까지 가고 싶지 않습니다. 요동은 사람을 보내 진국 땅에서 날뛰던 메뚜기 떼를 소탕하고, 백성들에게 평안을 돌려주십시오. 또한 요동의 황제와 황후는 재해 속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수만의 진국 백성 앞에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혼령을 위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 다섯 곳을 내어주고 앞으로 십 년간 요동 사람은 단 한 명도 진국 땅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하십시오. 그러면 이 일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헛된 망상이다!”금수 대장공주는 반생을 바쳐 진국을 굴복시키려 해왔다. 그런데 마지막에 맞이한 결과가 고작 이것이라니.이대로 궁으로 돌아간다면, 요동의 백성들은 더 이상 그녀를 믿지 않을 것이고 요동 후궁에서도 그녀가 설 자리는 사라질 터였다.“헛된 망상이라고요?”연기준은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털며 돌아섰다.“그렇다면 황고모께서는 요동이 완전히 진국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날을 기다리십시오. 그때가 되면 황고모의 최후는, 지금 짐이 제시한 조건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입니다.”연기준은 더는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고

  • 시간을 거슬러   제1113화

    그곳에 이르게 되면 자신은 결국 주인의 짐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차라리 진국 황궁으로 돌아가 주인을 대신해 태자를 목숨 걸고 지키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주인 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연풍의 마음은 더욱 아렸고 놓아주기 어려워졌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반드시 주인보다 먼저 앞에 나서겠다고, 설령 주인을 대신해 죽게 된다 해도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봉한설의 말은 분명 연풍에게 큰 타격이 되었다. 그 깊은 무력감은 오히려 그를 더욱 성실하고 치열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그 변화는 연기준뿐 아니라, 어린 꼬막이조차 눈치챌 정도였다.*다음 날, 부생이 그들을 데리고 단은설을 찾으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자 연풍은 유난히 적극적으로 나섰다.“폐하, 저를 보내주십시오. 반드시 단은설을 데려오겠습니다.”연기준은 담담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럴 필요 없다. 단은설 곁에는 연강호가 남긴 사람들이 있다. 너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한설이에게 맡기거라.”말을 마친 뒤, 연풍의 낙담한 표정을 보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한설의 무공이 너보다 약할 수는 있어도 일불락을 상대하는 데는 훨씬 능하다.”그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는 언젠가 반드시 설산으로 가게 될 날이 떠올랐다. 그곳에 이르면 자신은 진짜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연풍은 다시 한 번 깊이 무너져 내렸다.하지만 연기준의 말은 사실이었다. 억지로 따라간다 해도, 그저 짐이 될 뿐이었다.그때, 꼬막이가 그의 가라앉은 기색을 눈치채고 다가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연풍 형님, 저랑 같이 가요. 부탁할 게 있습니다!”연기준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또 무슨 생각이냐?”꼬막이는 신비롭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대신 친척 좀 만나러 가야 합니다!”연기준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꼬막이를 연풍에게 넘겨주었다.“잘 지키거라.”자신에게도 아직

  • 시간을 거슬러   제1112화

    검은 옷의 사내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그는 방금 연기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설마 너희가 일불락의 원수가 아니라는 것이냐? 그럴 리가…”봉한설이 담담히 말했다.“왜 그럴 리가 없습니까? 그들은 일불락의 원수일 뿐만 아니라, 당신이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손을 쓰라고 부추긴 그 자야말로 진짜 일불락의 가장 큰 원수예요.”검은 옷의 사내는 눈을 크게 떴다.“아니, 그럴 리 없다. 그는 분명…”말을 반쯤 꺼내다 말고 그는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지금의 나는 그도 믿지 못하겠고 너희도 믿지 못하겠다. 오늘 일은 여기서 끝내지.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이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을 거다.”그 말을 마치자마자 검은 옷의 사내는 꼬막이를 연기준 쪽으로 던져 버렸다.연기준이 몸을 날려 받아냈다. 꼬막이는 공중에서 한 줄기의 호를 그리며 날아가 그대로 그의 품에 단단히 안겼다.검은 옷의 사내가 달아나려 하자 암위들이 즉시 장검을 뽑아 들고 그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그때, 꼬막이가 다급히 외쳤다.“아아아, 잠깐! 아프게 하지 마세요!”그의 말에 암위들의 손길이 순간 멈칫했다.그 틈을 타 검은 옷의 사내는 꼬막이를 깊이 한 번 바라보더니 곧바로 몸을 날려 자취를 감췄다.짧지만 소란스러웠던 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꼬막이는 큰일을 겪고도 무사히 다시 연기준의 곁으로 돌아왔다.아이는 뒤늦게 가슴을 두드리며 중얼거린다.“아이고... 아기 심장 떨어질 뻔했습니다.”연기준이 곁눈질로 그를 흘겨봤다.“아까 보니 꽤 침착하던데.”꼬막이는 연기준의 어깨를 끌어안고 온몸의 힘을 빼듯 축 늘어졌다.“그건 다 속인 겁니다. 사실은 정말 무서워서 죽을 뻔했거든요.”그 말투를 듣고서야 봉한설은 그가 크게 다치지 않았음을 알았다.“왜 암위들한테 잡으라고 안 했습니까? 그자를 잡으면 줄기를 따라가서 뒤에 있는 가문까지 찾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요

  • 시간을 거슬러   제1111화

    검은 옷의 사내는 잠시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연기준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정답에 다다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순간, 그의 눈빛이 비통하게 일그러졌다.“그래서 어쩌겠다는 거냐? 수령의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원수가 대대로 고통받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어느새 암위들이 조용히 그의 등 뒤로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연기준은 곁눈질로 그 움직임을 확인하고는 다시 시선을 거두어 오직 검은 옷의 사내만을 똑바로 응시했다.“너와 네 뒤의 가문은 여전히 일불락 수령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 헌데 선과 악도 가리지 못하고, 옳고 그름도 분별하지 못하지.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고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가린 그자가 바로 일불락 수령의 가장 큰 원수다.”그 말에, 검은 옷의 사내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입을 떼지 못한 채, 그저 눈을 크게 뜬다.“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그의 주의력은 온전히 연기준에게 쏠려 있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단 한마디라도 더 알아내고 싶다는 듯 초조하게 매달렸다. 그 탓에 손에 들어간 힘도 어느새 느슨해졌다.꼬막이의 목을 조이던 압박이 조금씩 풀리자 아이는 급히 숨을 몰아쉬며 몇 번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 뒤에야 겨우 숨을 돌렸다.그러고는 아직 어린 목소리로 연기준의 말에 힘을 보탰다.“우리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여 할머니께서 그러셨거든요. 얼굴도 못 드러내는 그 사람은, 사람들 앞에 나설 낯이 없는 거래요. 일불락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얼굴만 보면 당장 죽여버릴 만큼, 대대로 잊지 못할 원수라고 했습니다.”여 할머니?검은 옷의 사내의 표정이 더욱 기이하게 일그러졌다.“어느 여 할머니를 말하는 것이냐?”꼬막이는 여전히 숨을 고르며 목을 매만졌다.“그냥 설산 안에 사는 그 여 할머니요! 입가에 검은 점 있는 그 할머니 말입니다!”그 순간, 검은 옷의 사내의 온몸이 굳어 버렸다.설산의 여 할머니라니?여족? 설장로? 입가의 검은 점…이 어린아이가 정말로 설장로를 안

  • 시간을 거슬러   제1110화

    말을 마치자마자 봉한설은 즉시 몸을 날리며 한 줄기 바람처럼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뒷산.이미 연기준과 암위들이 검은 옷의 사내를 따라잡은 상태였다.그때쯤 꼬막이도 깨어났지만 사내의 어깨에 들려 있으면서도 조금도 겁을 먹은 기색이 없었다.까만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다가 연기준이 따라붙은 것을 보자마자 양팔을 흔들며 외쳤다.“아버지! 저 여기 있습니다!”그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연기준도 이렇게 빠르게 위치를 특정하진 못했을 것이다.그 순간, 검은 옷의 사내는 꼬막이를 어깨에 멘 채 연기준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훑어보았다.“생각보다 빠르게 따라붙었군. 진국의 황제라더니, 듣던 것보다 훨씬 영리하네. 일불락 수령 일족의 후예라던데 사람 보는 눈은 그 조상보다 훨씬 낫군.”연기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눈동자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넌 일불락의 후손이구나.”물음이 아니라 단정이었다.“어느 부족 출신인지 밝혀라.”검은 옷의 사내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나를 이기면 그때 알려주지.”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순간, 공기 속에 수없이 많은 빙능이 맺혀들었다.날카로운 얼음조각들이 일제히 연기준을 향해 쏟아졌다. 연기준은 가까이 있던 암위의 검을 뽑아 들고 내력을 끌어올려 검을 휘둘렀다.앞뒤에서 부딪히는 힘에 의해 빙능은 공중에서 산산이 부서졌다.그 반동으로 검은 옷의 사내는 내력이 역류하여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그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너... 목족 무공을 쓸 줄 아는 것이냐?”그 말에, 연기준 역시 순간 멈칫했다.방금 그가 사용한 내력은 어릴 적 연도현이 가르쳐준 것이었다.그때는 그저 일반적인 내공보다 깊고 강하다고만 여겼을 뿐이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연도현은 이미 그의 출생을 알고 일찍이 일족과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연기준은 낮게 말했다.“아이를 놓거라. 같은 일불락의 후손이라면 서로 죽일 필요는 없을 텐데.”검은 옷의 사내는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

  • 시간을 거슬러   제372화

    연기준은 산산이 부서진 침상을 바라보며 얼굴빛이 잔뜩 어두워졌다.“꺼지거라!”평이는 목을 움츠리며 놀라 허겁지겁 달아났다. 문 앞에 다다라 봉한설이 따라오지 않는 걸 보고는 다시 용기를 내어 돌아와 억지로 그녀를 끌어냈다.봉한설은 여전히 발버둥치며 버텼다.“놓으세요! 저는 다시 들어가 왕비를 지켜야 합니다. 그가 왕비를 괴롭히면 어쩌려고 그럽니까?”평이는 필사적으로 끌어당기며 낮게 속삭였다.“우리가 남아 있으면 오히려 왕비께서 제대로 대처 못 하신다.”봉한설은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게 무슨 말입니까

  • 시간을 거슬러   제368화

    연기준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숙귀비는 이미 결정했다. 열다섯 째 황자를 태황태후의 침궁에 두기로. 어쨌든 그는 연 가의 혈맥이자 그녀의 증손이다. 비록 몸에 서 가의 피가 흐른다 해도 태황태후는 심하게 대하진 않을 것이다.”서인경은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왕야 말은… 고모께서 열다섯 째 황자를 궁에 남겨 태황태후의 인질로 삼았다는 겁니까?”연기준은 낮게 반박했다.“그렇게 거칠게 말하지 말거라! 태황태후 곁에 두는 편이 목숨이라도 지킬 수 있지 않겠느냐? 네가 정말 그 아이가 황후 손에 남길 바라느냐?”서인경은 단숨에

  • 시간을 거슬러   제380화

    노부인은 마치 서회윤 일행을 보지 못한 듯 시선을 곧게 전방에 두었다. 그 눈빛에는 한 치의 온기도 없어 끝없이 펼쳐진 설산처럼 차갑고 무심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이들은 그저 개미 같은 존재일 뿐.“외인조차 일불락의 규율을 아는데, 일불락의 후손인 네가 감히 그것을 어겼으니 죄가 극악하도다!”그 말에 남궁열의 안색은 순식간에 공포로 물들었다. 무언가 말하려 입을 떼기도 전에 시선은 그대로 굳어졌다.서회윤은 그의 눈길을 따라가 보았다. 노부인의 손바닥 위, 작은 불꽃 하나가 천천히 맺히고 커지며 마침내 눈부시게 이글대는 거대한

  • 시간을 거슬러   제391화

    서가군의 귀속은 본래 진국 내부의 정사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일이 야랑국과 얽히자 사안의 무게가 전혀 달라졌다. 황제의 눈빛에는 억누르지 못한 노기가 서려 있었다.“누구든 감히 서가군을 넘본다면 모두 죽어야 마땅하다!”황후와 대황자의 낯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들은 애초에 단지 숙귀비를 병상에 눕혀 무력하게 만들려 한 것뿐이었다.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일이 결국 야랑국과의 연루로 번져 버릴 줄은.서인경 또한 이 모든 상황이 기이하다고 여겨졌다. 아무리 그들이 어리석다 하여도 이렇게 중대한 순간에 타국의 그림자를 끌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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