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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5화

Autor: 코코넛 서고
서인경은 맹은영이 보내온 장난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물총을 들고는 한참을 이리저리 눌러보았다.

이건 꼬막이뿐 아니라 엄마인 자신도 충분히 좋아할 만한 물건이었다. 그때 들려온 연기준의 말에 서인경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여기 두면 쓰기 편하잖아요. 아, 다리 좀 치워요. 꼬막이 작은 수레 밟겠어요.”

연기준은 한 발 물러섰다.

그녀는 끝까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직 아이는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이미 자신의 자리가 밀려난 기분에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가 균형을 잃고 있는 사이, 서인경은 여전히 장난감에 몰두해 있었다. 다음 순간, 몸이 갑자기 허공으로 들렸다.

“어머!”

본능적으로 연기준의 목을 끌어안았다.

“뭐 하는 거예요?”

연기준은 발치의 상자를 툭 차 치우고 그녀를 안은 채 침상으로 걸어갔다.

“그 아이가 돌아오기 전에 본왕에게 한 번쯤 보상해 주는 건 어떠냐?”

서인경은 웃음이 터졌다.

“전혀요! 내일 꼬막이 마중 나가야 해요. 오늘처럼 늦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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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975화

    서인경은 맹은영이 보내온 장난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물총을 들고는 한참을 이리저리 눌러보았다.이건 꼬막이뿐 아니라 엄마인 자신도 충분히 좋아할 만한 물건이었다. 그때 들려온 연기준의 말에 서인경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여기 두면 쓰기 편하잖아요. 아, 다리 좀 치워요. 꼬막이 작은 수레 밟겠어요.”연기준은 한 발 물러섰다.그녀는 끝까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아직 아이는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이미 자신의 자리가 밀려난 기분에 썩 유쾌하지 않았다.그가 균형을 잃고 있는 사이, 서인경은 여전히 장난감에 몰두해 있었다. 다음 순간, 몸이 갑자기 허공으로 들렸다.“어머!”본능적으로 연기준의 목을 끌어안았다.“뭐 하는 거예요?”연기준은 발치의 상자를 툭 차 치우고 그녀를 안은 채 침상으로 걸어갔다.“그 아이가 돌아오기 전에 본왕에게 한 번쯤 보상해 주는 건 어떠냐?”서인경은 웃음이 터졌다.“전혀요! 내일 꼬막이 마중 나가야 해요. 오늘처럼 늦잠 자면 안 돼요.”연기준은 그녀를 침상 위에 내려놓고 곧장 몸을 숙였다.“상왕비, 이건 좀 불공평하지 않느냐?”그가 진지하게 질투하는 모습이 오히려 우스웠다.“그럼 어쩌겠어요? 한 사람이 두 사람을 다 챙기다 보면 가끔은 물이 고르지 않을 때도 있는 거죠. 당신은 그 아이 친아버지잖아요. 어른이니까 이해 좀 해요.”그는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이 아이를 갖자고 끝까지 고집한 것도 결국 자신이었다. 사실은 딸을 바랐지만 말이다.“좋다. 이해는 하겠다. 그러니 그 아이 오기 전까지만은 본왕에게 집중하거라.”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입술이 그녀를 덮었다.휘장이 내려오고 촛불은 천천히 타들어가다 꺼졌다. 방 안은 곧 어둠에 잠겼다.오늘의 연기준은 어제보다 훨씬 부드러웠다.전날의 거칢을 스스로 의식한 듯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가갔다.서인경은 그 밤, 기묘할 만큼 편안했다.몸은 가벼웠고 피곤함은 없었다.그녀는 그의 가슴에 기대어 낮에 들은 이야기들을 떠올렸다.“무성을

  • 시간을 거슬러   제974화

    열 살짜리 아이를 지켜주고 싶었다. 어른들의 권력 다툼과 시비 속에서 멀리 떨어진 곳, 아무 걱정 없이 숨 쉴 수 있는 세상으로 보내고 싶었다.하지만 황실의 피를 타고난 이상, 평범한 집안 아이처럼 근심 없이 자라는 삶은 애초에 허락되지 않는다.연무성의 말에는 분명 옳은 부분이 있었다.지금은 가짜 죽음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해도 그가 살아 있는 한 발각될 위험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그때 진국의 황제가 누구이든 서 가의 혈통과 황실의 피를 동시에 이은 황자를 살려둘 리는 없을 것이다. 평생을 숨어 살며 자기 이름조차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삶을 택하느니 차라리 한 번 크게 부딪쳐보는 편이 낫다.그것이 연무성이 고른 길이라면, 그에게 그만한 뜻이 있다면, 서인경은 더 이상 그의 앞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그렇다고 대신 선택해 줄 자격도 없었다.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그 아이가 이미 마음을 정했다면 전 경성에 남아 그 아이를 돕겠어요. 헌데 고모, 이제 더는 서은숙이라는 이름을 쓰면 안 돼요. 죽다 살아났다는 사실이 새어 나가면 또 다른 파문이 일어날 거예요. 할아버지의 가짜 죽음까지 파헤쳐 질 수도 있어요. 그땐… 모든 비밀이 무너질지도 몰라요.”서은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우려를 모를 리 없었다.“걱정 말거라. 이미 생각해두었다. 오늘부터 나는 서은숙이 아니다. 성은 운, 이름은 금. 신 황귀비 궁에서부터 열다섯 째 황자를 모셔온 운 유모다. 열다섯 째 황자가 내 음식을 좋아해 곁에 두고 가까이 모시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신 황귀비 궁의 궁녀들이 모두 증인이니 의심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운금.낯선 이름. 완전히 다른 얼굴.그제야 서인경은 마음을 놓았다.운금과 연무성이 함께 늦은 저녁을 마친 뒤, 서인경은 연기준과 말을 타고 군영을 나섰다.이미 밤이었다.은빛 초승달이 걸려 있었고 달빛은 옥처럼 두 사람의 윤곽을 감쌌다.서인경은 아무 말 없이 연기준의 품에 기대 있었다. 세상에는 말굽 소리만이 고요하

  • 시간을 거슬러   제973화

    연무성의 말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만큼 곧았고 직설적이었다.연기준의 눈빛도 함께 가라앉았다.“그날, 후궁에서 본왕에게 했던 말. 정말로 생각을 다 마친 것이냐?”그날 밤, 후궁의 어둠 속에서 연무성은 조용히 말했다.황위를 원한다고.최근의 변고는 그에게 분명히 깨닫게 해주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서야만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더는 눈앞에서 가족이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지 않겠다고 했다.연기준은 그를 말리지도 그 자리에서 허락하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말했다.황제의 자리는 쉽지 않다고.자비로워서도 안 되고 마음이 약해서도 안 되며 우유부단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제왕은 백성을 품되 결단할 때는 피를 묻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고. 망설임은 곧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의 목숨을 잃는 일이라고.치국은 말로 하는 일이 아니다. 그 길의 끝에는 늘 고처불승한(高处不胜寒)의 외로움만 남는다.그래서 연기준은 시간을 주었다. 다시 생각해보라고.지금, 연무성은 고개를 들어 어릴 적부터 동경해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황숙께서는 그 자리를 생각해 보신 적은 없습니까?”연기준은 담담했다.“네 누님이 원한다면 본왕은 한 치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헌데 지금 네 누님은 속박을 원치 않는다. 그러니 본왕은 그녀를 따를 것이다.”서인경의 어깨 위에는 일불락의 미래가 얹혀 있다.그녀의 앞날은 아직 수많은 변수로 가득하다. 그가 함부로 또 한 나라까지 짊어질 수는 없다.연무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황위가 다른 황형들 중 누구에게 돌아가도 우린 결국 남의 뜻에 매여야 합니다. 헌데 제 손에 있다면 황숙께서 필요할 때 저는 언제든 물러날 수 있습니다.”그는 권력을 탐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두 사람의 대화는 묘하게 평온했다.마치 황위를 두고 논하는 것이 아니라 배 한 알을 서로 양보하는 것처럼.연기준이 옅게 웃으며 연무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네 누님께서 들

  • 시간을 거슬러   제972화

    그 여인이 고개를 들자 서인경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처음 보는 얼굴이어야 하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강렬한 익숙함이 밀려왔다.열다섯 째 황자 연무성이 붓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섰다.그는 남장한 장수를 붙잡고 서인경 앞으로 데려왔다.“누님, 이분은 제 어머니입니다. 비록 얼굴은 달라졌지만 제겐 여전히 가장 소중한 분입니다. 이제 더는 숙귀비가 아닌, 그저 제 어머니, 서은숙입니다.”서은숙.너무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이름.한때는 황제의 여인이었고 후궁의 귀비였던 사람. 그리고 황자의 생모였던 사람이었다.아들의 입에서 오직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서은숙의 가슴이 요동쳤다.그녀는 서인경을 바라보았다. 핏줄로 이어진 가족.눈가가 서서히 젖어들었다.“인경아…”익숙한 목소리.서인경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눈이 순식간에 붉어졌다.“고모…?”오랜 세월을 돌아 다시 마주한 혈육.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았다.“고모, 어떻게 여기 계세요? 언제 돌아오셨어요? 그리고… 얼굴은…”서은숙은 눈물을 훔치고 서인경의 손을 잡아 앉혔다.“남경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어. 목숨은 건졌지만 얼굴 절반이 망가졌지. 다행히 지하흑시의 봉 대장로께서 뛰어난 의술로 새 얼굴을 만들어 주셨단다. 낯선 얼굴이었기에 후궁에 숨어들어 황자 곁에 머물 수 있었던 거지.”그녀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서인경은 그 과정이 얼마나 처절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얼굴을 바꾸는 고통. 정체를 감춘 채 살아가는 시간.서인경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목이 메어왔다.“고모, 많이 힘드셨죠…”서은숙은 고개를 저으며 서인경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너의 막북 이야기는 다 들었다. 아이를 품고도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아버지까지 구해냈다더구나. 내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모두 살아 있지 않느냐? 그게 가장 큰 복이다. 이제는 후궁에 얽매인 숙귀비도, 나라를 지키겠다며 가족을 희생해야 했던 장군부도 없다. 우리 가족, 다시는 흩어지지 말자.”서인경도 그 바람을

  • 시간을 거슬러   제971화

    눈을 피하기 위해, 꼬막이는 막 성주의 큰 가죽 상자 안에 숨겨져 배에서 내려온 후 그대로 막부로 옮겨졌다.상자에서 막 안겨 나왔을 때, 마치 어딘가에서 아버지의 지나치게 이른 기대를 들은 듯, 꼬막이는 가느다란 눈을 찡긋이며 온몸을 한 번, 두 번, 세 번 떨었다.‘우리 아버지는 진짜 구두쇠야. 역시 어머니가 최고지.’막수한은 품 안의 아이가 떠는 걸 느끼고는 추워서 그런 줄 알고 급히 부인에게 말했다.“어서 세자를 이불로 감싸거라. 감기 들면 안 되니까.”막 부인은 한낮의 햇볕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설산에서 그렇게 오래 있어도 멀쩡했는데 집에 와서 추워한다고요?”입으로는 의아해하면서도 손은 이미 두툼한 이불을 꺼내 꼬막이의 작은 몸을 칭칭 감쌌다.결국 꼬막이는 눈만 겨우 보인 채 꼼짝 못 하게 되었다.상왕부 주원.서인경은 속으로 꼬막이를 위해 삼 초간 묵념했다.연기준의 아들로 사는 것도 쉽지 않겠구나.하지만 그녀는 연기준의 결정을 반대하지 않았다.꼬막이는 단지 진국 상왕의 아들이 아니라 설산 일불락의 후인이기도 했으니.언젠가 그가 맞닥뜨릴 세상은 연기준이 겪은 것보다 백 배는 험할 것이다.하지만 그것은 서인경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꼬막이가 더 강해지기를 바라는 것뿐.위험이 닥쳤을 때, 적어도 한 번은 맞설 힘을 가지기를. 자신처럼 무력하게 휘둘리지 않기를.꼬막이 이야기를 마친 뒤에도 서인경의 마음엔 몇 사람이 더 남아 있었다.“할아버지랑 고모는 설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까? 열다섯 째 황자는 어디에 숨긴 겁니까?”연기준은 그녀의 그릇에 반찬을 얹어주며 하나씩 답했다.“설산은 세상과 떨어져 있고 돌보는 사람도 있으니 요양하기 좋은 곳이다. 열다섯 째 황자는 성 밖 군영에 숨겨 두었다. 필요할 때 불러올 것이다. 그리고 고모는…”그는 이제 숙귀비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잠시 머뭇거리는 기색에 서인경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고모가 왜요?”연

  • 시간을 거슬러   제970화

    전생의 일에는 분명 연기준조차 모르는 내막이 더 있을 것이다. 그는 반드시 모든 진실을 밝혀내어 서인경에게 마음 놓을 답을 주고 싶었다.갑작스레 끌어안긴 서인경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이 남자, 갑자기 왜 이렇게 감상적이지?차갑고 오만한 상왕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혹시… 진방옥이 뭐라고 했습니까?”서인경이 가장 먼저 떠올린 용의자는 역시 진방옥이었다. 이 시대에서 연기준의 사고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사람은 ‘넘어온 자’인 진방옥뿐이니까.연기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손을 잡고 방 안으로 이끌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너의 동향이라 했지? 앞으로는 그를 부에 두어 심심할 때 말동무라도 하게 하거라.”무심한 어투였다. 마치 애완동물 하나 들이는 듯한 말투.막 마당을 나서던 진방옥은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누가 욕하네!”맹경운이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왕비 마마와는 좀 거리를 두세요. 그게 단순히 욕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진방옥은 코웃음을 쳤다.“우린 타향에서 만난 동지입니다. 이 시대에서 서로의 유일한 위로라고요. 상왕이 그게 불만이라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참으라고 하세요.”맹경운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언젠가 쓴맛을 보면 알겠지. 연기준 같은 남자의 선이 어디까지인지.주원으로 돌아와, 연기준은 서인경을 식탁 옆에 앉혔다.곧이어 음식이 차려졌다.모두 장군부에서부터 따라온 사람들이었기에 그녀의 입맛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익숙한 반찬들을 보는 순간, 서인경은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자연스레 식욕이 돌았다.“꼬막이 데려오라고 했습니까?”연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사람을 보냈다. 막 성주께서 설산 비밀 통로를 통해 지하흑시까지 데려올 것이다. 그곳에서 암위가 인계받아 부로 데려올 테지. 헌데 설산에서 돌아왔다는 사실은 드러나선 안 된다.”일불락이 부활했다는 비밀은 아직 세상에 드러나선 안 됐다. 연기준의 치밀한 준비에 서인경은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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