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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돌아와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0 07:00:22

대표이사에서 해임된 날 밤.

한남동 골목에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여진의 아틀리에 안은 따뜻한 조명과 아이리스, 샌들우드 향으로 고요했다. 막 마지막 시향을 끝내려던 순간 유리문이 거칠게 흔들렸다.

“한여진!”

문 앞에는 강태혁이 서 있었다.

출입문 비밀번호는 바뀌어 있었지만, 예약 고객이 나가는 틈을 타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바닥에는 그가 지나온 빗물이 길게 번졌다. 여진은 즉시 카운터 아래 보안 버튼 위치를 확인했다.

젖은 수트는 흙탕물로 얼룩졌고, 턱에는 며칠째 면도하지 않은 수염이 자라 있었다. 한 달 전 파리에서 샴페인을 들던 남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여진은 가엾다고 느끼지 않았다. 태혁의 몰골은 누군가가 망가뜨린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내린 선택들이 돌아온 모습이었다.

여진은 스포이트를 거치대에 놓았다.

“영업 끝났습니다. 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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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이사에서 해임된 날 밤.한남동 골목에는 장대비가 쏟아졌다.여진의 아틀리에 안은 따뜻한 조명과 아이리스, 샌들우드 향으로 고요했다. 막 마지막 시향을 끝내려던 순간 유리문이 거칠게 흔들렸다.“한여진!”문 앞에는 강태혁이 서 있었다.출입문 비밀번호는 바뀌어 있었지만, 예약 고객이 나가는 틈을 타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바닥에는 그가 지나온 빗물이 길게 번졌다. 여진은 즉시 카운터 아래 보안 버튼 위치를 확인했다.젖은 수트는 흙탕물로 얼룩졌고, 턱에는 며칠째 면도하지 않은 수염이 자라 있었다. 한 달 전 파리에서 샴페인을 들던 남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웠다.하지만 여진은 가엾다고 느끼지 않았다. 태혁의 몰골은 누군가가 망가뜨린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내린 선택들이 돌아온 모습이었다.여진은 스포이트를 거치대에 놓았다.“영업 끝났습니다. 나가세요.”태혁의 다리가 풀리듯 꺾였다.그는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제발 한 번만 들어줘.”품 안에서 젖은 서류 봉투를 꺼냈다.자신이 보유한 루시엘 주식 양도 의향서.가압류된 지분을 태혁은 당장 넘길 수 있는 선물처럼 내밀었다.특허 발명자 정정에 전면 협조한다는 확인서.이혼과 민사소송에서 여진의 청구를 수용하겠다는 합의안.“내 지분 전부 네게 줄게. 발명자도 바로잡고, 손해배상도 네가 부르는 대로 할게.”“당신에게 지금 마음대로 줄 수 있는 게 얼마나 남았죠?”태혁의 얼굴이 굳었다.“방법은 만들 수 있어. 네가 동의만 하면 돼.”여진은 서류에 손대지 않았다.“이미 법원과 특허 당국이 처리할 일입니다.”“네가 회생절차에 참여하면 투자자들이 다시 검토하겠대. 한여진이 돌아온다는

  • 시그니처 향수를 훔친 남편에게   20화. 대표이사 해임

    수요일 오전 10시, 루시엘 임시 주주총회.강당은 소액 주주와 기관 투자자, 채권자들의 항의로 소란스러웠다. 입구에서는 위임장과 의결권 수를 다시 확인했고, 회의 전부터 해임 찬성표가 압도적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단상에 선 사외이사가 의사봉을 들었다.“제1호 의안, 강태혁 사내이사 해임의 건을 상정합니다.”맨 앞줄의 태혁이 벌떡 일어났다.“제가 이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해외 유통망과 투자 네트워크도 전부 제가 만들었습니다. 지금 저를 내보내면 루시엘은 정말 끝입니다.”태혁이 준비한 매출 그래프의 제품 대부분은 여진이 개발한 것이었다. 자신의 자료가 오히려 그녀의 기여를 증명했다.2대 주주인 오리온 에셋 측 대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우리가 투자한 이유는 독보적인 R&D와 제품력이었습니다.”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그 기술을 만든 사람의 이름을 지우고, 검증되지 않은 처방을 강행해 회사를 550억 원의 위험에 빠뜨린 경영자를 더 신뢰할 수 없습니다.”대리인은 연구 기록을 띄웠다. 매출 상승 시점은 여진의 신제품 출시 시점과 겹쳤다.강당 곳곳에서 동의하는 목소리가 터졌다.태혁은 마이크를 붙잡았다.“한여진이 돌아오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설득하겠습니다.”“한 수석은 이미 복귀 의사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마지막 방패까지 사라졌다.태혁은 투자자들에게 개인 보증까지 서겠다고 했지만 이미 자산은 가압류 상태였다. 대표직을 유지할 명분도, 회사를 살릴 자금도 내놓지 못했다.***“표결 결과, 찬성 94.8%로 강태혁 사내이사 해임안이 가결됐습니다.”의사봉이 세 번 울렸다.이어 기업회생 절차 신청과 강태혁 전 대표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안건도 통과됐다.

  • 시그니처 향수를 훔친 남편에게   19화. 첫사랑의 배신

    월요일 오전, 윤서린의 단독 인터뷰가 공개됐다.[ 윤서린 “강태혁 대표의 가스라이팅에 속은 피해자” ]영상 속 서린은 화장기 없는 얼굴로 눈물을 닦았다. 뒤에는 조명도 브랜드 로고도 없었다. 파리 무대에서 완벽하게 계산했던 표정과 달리, 이번에는 약자로 보이기 위한 연출이었다.“저는 마케팅 디렉터로 참여했을 뿐입니다. 강 대표가 ‘검증이 끝난 기술이고 한여진 수석도 동의했다’고 말해 믿었습니다. 발명자 등록과 생산 승인 과정은 전혀 몰랐습니다.”그녀는 강태혁을 사기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인터뷰 기사는 ‘첫사랑에게 이용당한 여성 임원’이라는 제목으로 포장됐다. 서린은 자신이 먼저 여진을 범인으로 몰았다는 사실도, 품질회의에서 연구진을 압박한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550억 원의 책임과 형사 수사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선 긋기였다.***압류 통지서가 쌓인 대표실에서 기사를 본 태혁은 휴대전화를 집어 던질 뻔했다.“윤서린, 너 지금 뭐 하는 거야?”태혁은 비서도 없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 회사 안에서 그의 지시를 받아 줄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소리쳤다.- 사실대로 말한 거예요.“네가 이름 단독으로 넣어달라고 했잖아! 파리 무대에서 네가 만든 향수라고 떠들 때는 좋았지?”- 그 무대를 만든 건 당신이에요. 나는 당신이 준비한 대본을 읽었고.“특허 서류에 직접 서명한 건?”- 대표가 시키니까 한 거죠. 내가 법률 전문가도 아니고 어떻게 알아요?서린의 목소리는 눈물 섞인 인터뷰와 달리 차갑고 또렷했다.“우리가 어떻게 사랑했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사랑?짧은 웃음이 들렸다.- 성공한 뷰티 회사 대표라서 만난 거예요. 550억 빚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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