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화방 안에 긴장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소연의 목소리였다.연경은 본능적으로 몸이 굳었지만 순간에 그쳤다.그녀는 재빨리 마음을 가다듬고 태연하게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소저는 저와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요? 어찌 첫 만남부터 저를 죽으라 저주하시나요?”소연은 연경의 눈빛 속에 어리둥절함과 그녀가 하고 있는 차림새를 보고 멍하니 할 말을 잃었다.하지만 그녀 곁의 아현과 아민이 가짜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들은 연경을 모시던 사람들이었다.둘째 부인은 지부 부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가 심상치 않은 상황을 보고 연경의 곁으로 다가왔다.“이분이 아마도 소씨 가문의 아씨겠지요? 역시 자태가 빼어나고 기품이 남다르시군요.”소씨 집안의 딸이 소연 한 명만 있는 건 아니어서 둘째 부인은 소연을 잘 알지 못했다.그저 소씨 가문의 서녀가 무안 후작의 첩실로 들어갔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눈앞의 사람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소연은 건성으로 미소 짓고는 담담히 물었다.“부인은 누구신가요?”둘째 부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의 귀족 규수들은 이런 모임에 참여할 때, 얼굴을 모르는 부인을 만나도 공손히 예를 갖추고 사적으로 아는 사람을 통해 알아보는 법인데 면전에 대고 묻는 것은 실례이거나, 너무 오만하여 상대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의미였다.연경은 곧바로 둘째 부인의 불쾌함을 알아챘다.둘째 부인에게 자신은 내분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녀는 즉시 나서서 말을 보탰다.“이 소저는 방금 전에 제 죽음을 저주하더니 이제는 제 큰어머니께 이런 무례를 범하시네요. 저희 진씨 집안이 소씨 집안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습니까? 저희 큰어머니는 지부 대인의 정실 부인이십니다. 비록 진씨 집안이 승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늘 본분을 지키며 소씨 집안을 건드린 적은 없습니다.”안 그래도 둘째 부인은 한참 어린 후배에게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았는데 연경이 대신 나서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화방에 오른 여인들
둘째 부인은 화가 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위씨 노부인은 한때 군주였었고 위씨 가문은 황상이었기에 노부인께서 젊었을 적에는 진정한 금지옥엽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분이 가르친 아이가 어디 부족한 데가 있을 리 없었다.둘째 부인은 반박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연경은 위씨 노부인이 둘째네와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미소를 지으며 중재에 나섰다.“할머니, 저를 아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둘째 큰어머니와 예절 어멈에게 한번 검증을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만약 제 예의범절이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면 큰어머니도 안심하시지 않겠어요?”위씨 노부인도 그 말을 뱉고 나서 살짝 후회하고 있었다.진짜 진연은 과거 집안 다툼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몸이 몹시 허약했다. 노부인은 셋째 아들과 막내딸을 위해 덕을 쌓고자 그 어린 생명에게 손대고 싶지 않았기에 친히 곁에서 길렀다.진연 역시 순종적이고 예의 바른 아이였다.노부인은 연경이 지난 몇 년 간 고된 생활을 했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다시 배워야 할 점이 많을까, 일시적인 감정이 앞서 며느리를 거절한 것이 오히려 해가 되진 않았을까 걱정했다.연경의 말을 들은 노부인도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둘째 부인은 연경이 스스로 자태를 숙이고 나오니 표정을 풀었다.“연이 네 말이 맞아.”어멈은 무표정한 얼굴로 있다가 둘째 부인의 눈짓을 보고 연경의 예의범절을 시험하기 시작했다.앉고 서고 걷는 것, 온갖 자태와 동작을 연경에게 하나씩 해보게 했다.연경은 이미 강씨 어멈에게서 정성 들인 가르침을 받았기에 차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을 때도 그녀가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면 단정하고 대범하여 조금도 틀린 곳을 찾을 수 없었다.둘째 부인은 그녀가 이 부분은 배울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지켜보니 비로소 진정한 귀족 규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이미 시집을 간 둘째 부인의 딸보다도 더 단정했다.여러 차례의 시험을 거친 후, 둘째 부인도 인정
연경은 손기욱에게 긴 서신을 써서 보냈다. 대부분 그의 악몽에 관한 내용이었다.그녀는 재삼 그에게 세상에 믿기지 않는 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그녀는 혼례식 전이든 후든, 그의 신변 안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꿈에서 말한 8대죄가 전생의 그가 죽은 이유라면 그 근원을 없애 버리면 될 것이다.그녀는 손기욱에게 꿈을 통해 전생으로 가서 8대 죄명을 찾아내길 부탁했다.아현은 두툼한 서신을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치풍 오라버니에게 들었는데 나으리는 매일 매향원에서 주무신다고 해요.”그녀는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이 없자, 작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나으리께서는 아씨가 남긴 쪽지를 매일 손에 내려놓지 않으신다고 해요. 상사병에 걸려서 자꾸 꿈을 꾸신 것 같다고요.”연경은 놀란 얼굴로 붓을 내려놓았다.“내가 그 많은 쪽지를 매향원에 숨겨두었는데 그걸 다 찾아냈단 말이야?”아현은 방긋 웃더니 말했다.“나으리께서는 첫번째 쪽지를 발견하신 이후로 방 안에 더 많은 쪽지가 있을 것을 미리 예견하시고 매향원 안팎을 다 뒤졌다네요.”연경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자업자득이지.”그녀는 진씨 저택에 도착하면 자주 그에게 서신을 보낼 기회가 없을 것을 우려했다. 신분이 들통날 것도 걱정되고 후작부로 서신이 도착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리기에 떠나기 전에 그에게 쪽지를 남겨두었던 것이다.그런데 그의 그리움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연경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신을 봉투에 넣은 후, 다시 붓을 들어 서신을 ㅡㅆ기 시작했다.“그걸 벌써 다 봤다면 왜 나에게는 말씀 한번 없으셨을까? 매화나무 아래에 묻어둔 술은 설마 다 마셔버린 건 아니겠지?”매향원에는 사방에 매화나무가 있었기에 그녀는 틈만 나면 매화주를 담가서 땅에 묻어두었다.시간을 계산해 보니 이제 마셔도 될 때였다.아현은 고개를 저었다.“나으리께서 술을 마신다는 얘기는 못 들었어요.”연경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그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쪽지가 있다는 거네. 내가 아주 깊
서주행은 나뭇잎을 힐끗 살피고는 말했다.“고련나무 잎이군. 독성이 있는 나무야. 실수로 잘못 먹으면 복통을 일으키거나 심할 경우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지.”그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연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노부인께서 장기간 혼수상태에 빠진 이유가 이것과 관련이 있단 말이냐?”연경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잘 처리했습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하고. 오라버니, 전에 부탁드린 일은 어떻게 되어 가나요?”서주행은 시큰둥한 어투로 대꾸했다.“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벌써 마음속엔 서방님 생각뿐이구나. 오라비가 힘든 건 생각지도 않고.”위씨 노부인이 의식을 회복한 후, 연경은 그에게 손기욱의 이름으로 곳곳에서 선행을 베풀도록 부탁했다.손기욱은 승주를 떠나면서 신씨 가문에서 보낸 예물을 모두 관아로 보냈다. 또한 양 지부를 시켜 승주의 가난한 백성들을 지원하게 하였다.연경은 이 일을 알게 된 후, 그래도 부족한 것 같았다. 승주의 백성들은 그의 이런 마음을 모르고 앞으로 양 지부가 자신의 이름으로 선행을 베푼다면 손기욱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그리하여 연경은 서주행에게 부탁하여 매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진찰을 무료로 해주며 손기욱의 선행을 자연스럽게 알리도록 했다.여론의 출처는 백성이니 이렇게 하면 신씨 가문의 계획을 알아서 깨부술 수 있었다. 그쪽에서 발견했을 때는 명성은 이미 좋은 쪽으로 변하고 있을 것이다.연경은 서주행의 말에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오라버니도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최선을 다하여 돕겠습니다.”서주행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안 그래도 네게 부탁할 일이 있었다.”연경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편히 말씀하세요, 오라버니. 저는 뒷방 여인이니, 그리 어려운 부탁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압니다.”서주행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영리한 녀석. 걱정 말거라. 다른 건 아니고 네가 나서서 진이의 마음을 좀 달래주었으면 해.”“어떻게 달래주면 되나요?”연경은 그가 진이에게 어떤 마음인지
위씨 노부인의 눈빛이 흔들렸다.“전에는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입을 닫았다. 만약 어느날 셋째와 우리 막내가 스스로 집으로 돌아온다면 하는 기대를 안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네가 있지 않니. 곧 시집을 가게 될 텐데 집안이 흔들리면 안 되지.”연경은 멍하니 듣고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알겠어요, 할머니. 그 미친 할멈을 내쫓은 후에는 조용히 혼례를 기다릴게요.”손기욱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문성원.진형준, 진형오가 무릎을 꿇고 하소연한지 얼마 못가 다른 형제들도 그들의 뒤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오고 가는 시종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진충안 부부는 이 일을 조용히 덮을 수 없음을 깨닫고 내일 조씨를 산 속의 사찰로 보내기로 공표했다.진형준 형제는 그제서야 서로를 부축하며 일어나 문성원을 떠났다.진충안은 음침한 눈길로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연이 그 아이가 요즘 많이 한가한가 보군. 곧 혼례날도 돌아오니, 내일은 집안살림에 대해 부인이 좀 가르쳐주시오. 상대는 후작부인데 집안 망신을 시키면 안 되지.”둘째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예. 이틀 후면 지부 부인이 호수 나들이를 나간다고 하니, 마침 그날에 연이도 데리고 나가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여줄까 합니다.”진충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거운 표정으로 양심재 방향을 바라보았다.다음날 아침, 연경이 문성원으로 찾아가기도 전에 조씨는 어멈들에게 이끌려 마차를 타고 성밖의 사찰로 향했다.서주행은 아침 일찍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직접 아침을 준비했다.백초당에서 지낼 때도 한 적이 없던 일이지만, 최근 들어 그는 시간만 나면 진이를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물론 처음 하는 일이라 많이 서툴렀던지라, 오늘은 하마터면 부엌을 태워버릴 뻔했다.참다못한 진이가 방에서 나와 서주행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서주행은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녀를 보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진이는 부엌을 나오자마자 손을 놓고 붉어진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진형준은 다리를 다쳤을 때, 무안 후작이 나서서 자신을 지켜줬던 것을 떠올렸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그는 그날 시합에서 더 이상 일어설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는 늘 그에 대한 고마움을 연경에게 쏟고 있었다. 하물며 그는 처음부터 온순하고 어여쁜 여동생을 진심으로 좋아했다.그는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연이 넌 안심하고 돌아가서 쉬거라. 오라비가 방법을 생각해 보마.”진형천과 진형삼은 살짝 놀란 눈으로 큰형을 바라보았다.연경은 다시금 그들에게 예를 행했다.“그럼 할머니를 대신하여 오라버니들께 감사인사를 올릴게요.”진형욱이 살짝 서운한 듯, 투덜거리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누님. 저도 도울게요.”연경은 감격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마음은 이 누님도 알아. 내일 맛있는 떡과자를 만들어 줄게.”진형준은 진형욱을 시켜 연경을 양심재로 돌려보낸 후, 형제들끼리 진형오의 처소로 가서 상의했다. 평소에 진충안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진형천, 진형삼, 진형서 형제는 처음으로 진충안의 뜻을 거스르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보였다.진형준과 진형오는 평소에 진백안과 함께 장사를 주로 했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아버지께서 그리 하신 것도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우리 가문은 승주에 온지 얼마 안 돼서 이미 신씨 가문에 밉보였고 듣기로 양씨 가문도 최근에 시비가 잦다던데 이 시국에 내란은 적절하지 않습니다.”진형준은 진형천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너희가 작정하고 작은 할머니를 감쌀 생각이 아닌 이상, 할머니의 억울함을 풀어드리려는 일이 어찌 내란이 될 수 있지?”진형오가 고개를 끄덕였다.“큰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둘째 형님은 작은 아버지에게 영향이 갈까 걱정되신다면 나서실 필요 없습니다. 이따가 제가 큰형님과 함께 가서 작은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사정하겠습니다.”진형삼은 진형준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큰 형님은 다리를 다쳤으니 무릎을 꿇으면 안 됩니다.”진형준은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할머니께서 하마터면 돌아가실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