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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윤서의 첫 반격

Author: 지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9 07:04:32

윤서는 식탁 위에 놓인 서류를 천천히 넘겼다. 새 거처로 옮긴 뒤 처음으로 변호사와 마주 앉은 자리였다. 서류 첫 장에는 자신의 이름과 남태호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이혼 소장이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하겠습니다. 이 내용대로 접수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변호사의 물음에 윤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더는 미루고 싶지 않아요.”

변호사는 소장에 적힌 혼인 파탄 사유를 짚었다. 반복된 폭행과 위협,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사정들이 정리돼 있었다.

“상대방은 혼인 파탄의 책임이 윤서 씨에게 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사실관계와 증거를 일치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윤서는 준비해 둔 서류 봉투를 건넸다.

폭행으로 병원 진료를 받았던 기록과 진단서, 경찰 신고 내역이었다. 태호 측의 접근을 우려해 병원에 출입 제한을 요청했던 자료도 날짜별로 정리돼 있었다.

변호사는 서류를 하나씩 확인했다.

“병원에 출입 제한을 요청하신 이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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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어머니가 붙여준 도련님과 불륜 중입니다   85. 두 개의 사건

    경찰서 삼층 회의실 화이트보드에는 사건 번호 두 개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하나는 남태호의 배우자 폭행 사건. 다른 하나는 최미연의 별장 감금 및 강요 사건.“섞지 맙시다.”팀장이 마커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피해자가 같고 가해자가 모자지간이라 자꾸 한 덩어리로 보이는데, 두 사건은 증거도 다르고 법리도 다릅니다. 폭행은 진단서, 신고 기록, 피해자 진술. 감금은 관리인 진술, 출입 기록, 원본 영상, 녹음 파일. 서로 끌어다 쓰지 말고 따로 쌓으세요.”“편집본 유포는요?”“그건 별건으로 이미 분리됐고.”팀장이 화이트보드 구석에 작은 글씨를 하나 더 적었다.[남태호 자택 카메라 — 설치·관리 경위 / 침실 영상 유출 여부]“그리고 이거. 이게 제일 조심해야 하는 사건입니다.”---윤서는 그날 오후 두 번의 진술을 했다.첫 번째는 폭행 사건이었다. 담당 수사관은 결혼 이후의 날짜를 하나씩 확인했다. 처음 손이 올라온 날, 술이 있던 날과 없던 날, 그리고 마지막 밤.“집을 나오던 그날 밤에는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고 하셨죠.”수사관이 진술서의 날짜를 짚으며 물었다.“네. 그래서 더 무서웠어요. 그 전까지는 술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었거든요.”두 번째는 감금 사건이었다. 담당 수사관이 바뀌었고, 질문도 바뀌었다. 윤서는 이번에도 날짜와 시각부터 말했다. 별장에 들어간 시각, 문이 잠긴 소리, 스피커에서 처음 들린 문장.두 진술 사이에 수사관이 물었다.“두 사건을 이렇게 나눠서 말씀하시는 게 힘들지 않으십니까. 결국 같은 집안 일인데요.”“같은 집안 일이니까 나눠야죠.”윤서는 물컵을 내려놓았다.“남편이 때린 건 남편의 일이에요. 시어머니가 가둔 건 시어머니의 일이고요. 둘을 섞으면 그 사람들은 서로를 핑계로 빠져나갈 거예요. 엄마가 시켜서, 아들이 그래서. 저는 그 핑계를 하나도 남겨 두고 싶지 않아요.”수사관은 그 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같은 가족의 두 사람을 동시에 고소한 피해자들

  • 시어머니가 붙여준 도련님과 불륜 중입니다   84. 최미연의 실수

    태호가 본가 현관에 들어선 건 밤 아홉 시가 넘어서였다.오는 길 내내 낮에 받은 답변서의 마지막 줄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협상할 의사가 없다. 윤서는 이제 자신과 말을 섞을 생각조차 없었다.그리고 어머니는 경찰에게 아들의 이름을 내밀었다. 양쪽에서 문이 닫히고 있었다.외투 안주머니에는 출석 요구서가 접혀 있었다.바지 주머니에는 그 USB가 들어 있었다. 변호사는 출석할 때 반드시 가져오라고 했다.태호는 가져가기 전에 한 번은 어머니 얼굴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응접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최미연은 혼자 앉아 있었다.며칠 사이 얼굴이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그래도 화장은 지우지 않았고, 등은 꼿꼿했다.압수수색이 지나간 뒤로 서재 문은 늘 닫혀 있다고 가사도우미가 말했다.“연락도 없이.”“연락하면 받았어?”태호는 출석 요구서를 꺼내 테이블 위에 던졌다. 최미연은 그것을 집어 들지도 않았다.“봤어. 변호사한테 들었다.”“편집본 소지자래. 내가.”“네가 갖고 있는 건 사실이잖니.”“엄마가 준 거잖아!”태호의 목소리가 응접실을 울렸다. 주방 쪽에서 무언가 달그락거리다 멈췄다.“경찰한테 서면으로 냈다며. 편집본은 아들한테 줬다고. 그건 쓰면서 엄마가 만들었다는 얘기는 왜 빼먹었어?”“내가 만들었다고 누가 그래.”“작업 파일이 엄마 서랍에서 나왔대. 원본이랑 같이. 내 변호사가 다 들었어.”최미연의 손가락이 찻잔 손잡이에서 멈췄다.“그거랑 네가 무슨 상관이니. 넌 받기만 했잖아. 그대로 말하면 돼.”“그대로 말하면 엄마가 다 걸리는데?”“그러니까 넌 받았다는 것만 말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 엄마가 지금까지 너 하나 못 지킨 적 있니?”태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켜 준다던 어머니의 손에서 나온 USB가 지금 자신을 피의자 자리 바로 앞까지 끌고 와 있었다.태호가 소파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주머니 속 USB의 모서리가 허벅지를 눌렀다.“그거 말고. 하나만 묻자.”최미연이 처음으로 아들을 똑바로 봤다.“왜 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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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호 측의 제안서는 월요일 아침에 도착했다.변호사가 서류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두 장짜리였다. 첫 장은 정중한 인사말로 시작했고, 둘째 장에 조건이 적혀 있었다.[원고가 이혼 소송을 취하할 경우, 피고는 당분간의 별거를 인정하고 별거 기간의 생활비를 부담한다. 또한 양측은 별장 관련 영상 및 사생활에 관한 모든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원고는 폭행 사건에 관하여 처벌불원 의사를 밝혀 주기 바란다.]윤서는 끝까지 읽은 뒤 서류를 내려놓았다.“별거를 인정해 준다고요.”“네. 표현은 그렇습니다.”“제가 이미 나와 사는데요.”변호사가 쓴웃음을 지었다.“결국 핵심은 마지막 줄입니다. 처벌불원서요. 소송을 멈추고, 폭행 사건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류를 써 주면 이혼은 하지 않고 떨어져 살게 해 주겠다는 겁니다.”“왜 하필 지금이죠?”“남태호 씨가 편집본 소지자로 출석 요구를 받았습니다. 편집본이 조작이라는 게 원본으로 확인됐고요. 답변서에 썼던 주장, 상무님이 먼저 결혼을 망쳤다는 주장이 통째로 무너졌습니다. 지금이 그쪽이 가장 불리한 때예요.”윤서는 창밖을 봤다. 코 위의 보호대는 떼었지만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 아직 그 자리에 옅은 멍이 남아 있었다.결혼은 유지하고, 남편이 때린 일은 없던 일로 하고, 별장의 일은 서로 덮자.달라진 건 문장뿐이었다. 시어머니가 카페에서 했던 말과 같은 구조였다. 이혼하지 않으면 묻어 주겠다는 말.“한 번은 이런 제안을 받을 줄 알았어요.”윤서가 말했다.“그런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요. 그쪽이 그만큼 급하다는 뜻이겠죠.”“답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서면으로 할게요. 받아 적어 주세요.”변호사가 노트북을 열었다. 윤서는 천천히, 한 문장씩 불렀다.“원고는 피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원고는 혼인 관계를 유지할 의사가 없다. 이혼 소송과 폭행 및 감금 관련 형사 사건은 각각의 절차에 따라 계속 진행한다. 원고는 처벌불원서를 작성하지 않는다.”잠시 말을 멈췄다가

  • 시어머니가 붙여준 도련님과 불륜 중입니다   82. 원본이 말한 것

    봉인 테이프는 최미연의 변호사가 지켜보는 앞에서 뜯겼다.디지털 분석실의 분석관이 외장하드를 복제 장비에 연결했다. 원본에는 손대지 않고 사본을 떠서 그 사본만 열어 보는 절차였다. 복제가 끝나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화면에 폴더 하나가 나타났다. 날짜별로 정리된 파일이 사흘 치였다. 카메라 번호가 붙은 영상과, 그와 별도로 저장된 음성 파일이 있었다.“스피커 송출 기록까지 따로 남아 있네요.”분석관이 말했다. 별장 녹화기는 카메라 영상과 스피커로 내보낸 소리를 함께 저장하는 장비였다.변호사의 얼굴이 굳었다.---첫날 파일은 오후 다섯 시 십이 분에서 시작했다.현관이 열리고 윤서가 들어왔다. 거실을 둘러보며 남편을 부르는 목소리. 문이 닫히고 잠기는 소리. 얼마 뒤 도혁이 들어오고, 문이 다시 잠겼다.그리고 스피커가 켜졌다.'둘 다 왔구나.'수사관은 음성 파일의 볼륨을 높였다. 최미연의 목소리는 녹음 파일 속 카페에서보다 훨씬 또렷했다.'태호는 아이를 가질 수 없어.''남씨 집안 대는 이어야 하니까.''윤서는 건강하고. 도혁이 너도 남씨 핏줄이잖아.'화면 속 윤서가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저 이런 거 안 해요. 문 여세요.'도혁이 현관으로 가서 문을 몇 번이고 밀었다. 스피커에서는 도혁의 출생과 윤서 아버지의 연구소 이야기가 차례로 흘러나왔다. 협박이었다.수사관이 메모를 멈췄다.“채윤서 씨 진술하고 단어 하나 안 틀리네요.”---그날 밤 영상은 짧았다.자정이 조금 넘어 두 사람이 이층 복도에 나란히 섰다. 도혁이 방 하나를 가리켰고, 윤서가 그 방으로 들어갔다. 도혁은 복도 반대편 끝 방으로 들어갔다. 두 개의 문이 닫혔다.다음 날 아침 일곱 시가 넘을 때까지 복도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둘째 날 밤도 같았다. 각자 다른 방, 닫힌 두 개의 문, 그리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복도.그사이 스피커는 몇 번이고 켜졌다. 아이 얘기, 협박, 회유. 그리고 그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안 합니다.---사흘 치

  • 시어머니가 붙여준 도련님과 불륜 중입니다   81화. 잠긴 서재

    최미연은 여섯 시 반에 눈을 떴다.거의 자지 못했다. 밤새 머리맡에 둔 서랍 열쇠를 몇 번이나 손으로 확인했다. 날이 밝으면 외장하드를 꺼내 갤러리 수장고로 옮길 생각이었다. 작품 운송 상자 안이라면 누구도 열어 보지 않을 것이다.세안도 하지 않은 채 가운만 걸치고 서재로 내려갔다. 계단 아래 복도는 아직 어두웠다.서재 문을 열고 책상 앞에 앉았다. 맨 아래 서랍의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았다.그때 초인종이 울렸다.한 번, 그리고 곧바로 또 한 번.최미연의 손이 멈췄다. 이 시간에 이 집 초인종을 누를 사람은 없었다.복도 쪽에서 가사도우미의 발소리가 들렸다. 체구가 작은 여자는 평소처럼 종종걸음으로 현관을 향하고 있었다.“열지 마.”최미연이 서재 문을 열고 낮게 말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인터폰 화면 앞에 선 도우미가 얼어붙은 얼굴로 돌아봤다.“사모님, 경찰이라고…….”현관 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최미연 씨 자택 맞습니까. 압수수색 영장 집행하러 왔습니다. 문 열어 주십시오.”최미연은 서재로 돌아섰다. 서랍에 꽂힌 열쇠가 그대로 보였다. 지금 저 서랍을 열어 외장하드를 꺼낸다 해도 숨길 곳이 없었다. 창밖 정원에도 이미 사람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그녀는 열쇠를 뽑아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서재 문을 닫았다.---수사관 다섯 명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맨 앞의 수사관이 영장을 펼쳐 보였다.“별장 감금 및 강요 사건, 그리고 남태호 씨 자택 카메라 설치 사건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실시합니다. 대상은 이 집 서재와 진성갤러리 관장실입니다.”“카메라 사건은 또 뭐예요. 그건 별장하고 상관없잖아요.”“두 사건 모두 피의자가 최미연 씨입니다. 별장 사건 수사팀이 영장을 신청하면서, 아드님 댁 카메라 사건을 맡은 팀의 압수 대상도 함께 묶어 청구했습니다. 그쪽은 카메라 설치와 관리에 관한 자료입니다.”“변호사부터 부르겠어요.”“부르셔도 됩니다. 집행은 진행합니다.”최미연은 휴대폰을 들어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사

  • 시어머니가 붙여준 도련님과 불륜 중입니다   80. 별장의 목격자

    경찰서 진술실에 들어온 남자는 모자를 벗어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예순 가까운 나이였다. 작업복 소매 끝이 해져 있었고, 손등에는 마른 흙이 남아 있었다. 산 중턱 별장의 관리동에서 몇 해를 살아온 사람이었다.“편하게 앉으세요. 오늘은 당시 상황을 확인하려고 모셨습니다. 기억나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수사관의 말에도 관리인은 의자 끝에 엉덩이만 걸쳤다. 경찰이 연락하기 전에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은 그였다. 기사가 나간 다음 날 아침이었다.“먼저 확인하겠습니다. 채윤서 씨가 별장에 처음 도착한 날, 현관 앞에서 맞이한 사람이 선생님 맞습니까?”“네. 제가 맞았습니다.”“그때 채윤서 씨한테 뭐라고 하셨습니까?”관리인이 모자챙을 만지작거렸다.“남편분이 안에 계신다고 했습니다.”“안에 남태호 씨가 있었습니까?”“……없었습니다.”수사관은 펜을 멈추지 않았다.“그럼 왜 그렇게 말씀하셨죠?”“사모님이 그렇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며느님이 오면 안으로 들여보내라고요.”“그다음엔요?”관리인은 한참 바닥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며느님이 거실로 들어가신 뒤에 제가 현관문을 잠갔습니다. 밖에서요.”진술실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얼마 뒤에 배도혁 씨가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을 열어 드리고, 들어가시자마자 다시 잠갔습니다.”“누가 시킨 겁니까?”“사모님이요. 며칠 전에 전화로 지시하셨습니다.”관리인은 그날의 통화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본채 관리하는 사람은 다 빼라고 하셨습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까지요. 저만 관리동에 남아서 문을 지키라고. 그리고 거기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사모님이 말하기 전까지는 절대 문을 열어 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냉장고는요? 두 사람이 사흘 동안 먹은 음식은 어디서 나왔습니까?”“제가 채웠습니다. 사모님이 사흘은 버틸 만큼 넣어 두라고 하셔서요.”수사관이 고개를 들었다.“사흘이요? 처음부터 사흘이라고 하셨습니까?”“네. 그래서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습니다. 손님을 모시는데 왜 밖에서 문을 잠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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